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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sey – Viva H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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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sey가 The Smiths를 떠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스튜디오앨범이다. The Smiths는 밴드 명을 제목으로 한 데뷔앨범은 1984년 내놓은 이래 1987년 마지막 앨범 Strangeways, Here We Come에 이르기까지 매년 한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았는데 이 앨범이 1988년 발매되었으니 역시 1년마다 앨범 한 개씩 내놓는 그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햇수로는 1년이지만, The Smiths의 마지막 앨범과의 시간 갭은 6개월이라고 하니 이미 그룹이 해체되기 전부터 앨범 작업을 차곡차곡 준비해놓은 것 같다. Johnny Marr의 빈 자리는 the Durutti Column의 Vini Reilly가 맡았다. 프로듀서는 The Smiths 시절 같이 작업했던 Stephen Street를 기용하여 전체적인 톤은 상당 부분 The Smiths의 연장선상에 있다. 앨범에서는 Everyday Is Like Sunday와 Suedehead가 특히 사랑받았다. 재밌는 것이 I Don’t Mind If You Forget Me는 그룹을 떠나 Morrissey가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만든 Johnny Marr에 관한 곡이라고 한다. 앨범 마지막 곡인 Margaret On the Guillotine은 아마도 음 ……(노래 마지막에 길로틴이 덜컹하고 내려오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넣었다) 앨범 커버는 The Smiths 시절에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유명 작가 등의 사진을 쓰던 것과는 달리 Morrissey의 사진을 크게 줌인해서 박아넣었고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이 스타일은 그의 솔로 앨범 커버의 특징이 된다.

1. “Alsatian Cousin”
2. “Little Man, What Now?”
3. “Everyday Is Like Sunday”
4. “Bengali in Platforms”
5. “Angel, Angel Down We Go Together”
6. “Late Night, Maudlin Street”
7. “Suedehead”
8. “Break Up the Family”
9. “The Ordinary Boys”
10.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11. “Dial-a-Cliché”
12. “Margaret on the Guillotine”

모리시, 비니 라일리 그리고 [Viva Hate]

모리시의 솔로 데뷔 앨범, [Viva Hate]에 관한 얼터너티브 프레스의 기사이다. 원문은 모리시-솔로닷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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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시

증오 만세

스미스의 해체 후 얼마 안 되어 녹음/발매 된 모리시의 솔로데뷔 앨범은 여전히 그의 가장 뛰어난 정규앨범으로 남아있다. 이 비참의 대명사가 얼마나 동료를 좋아하는지 데이빗 헤밍웨이가 입증해 보일 것이다.

모리시가 스티븐 스트릿과 듀러티 컬럼의 비니 라일리와 함께 녹음한, 비바 헤이트는 모리시가 스미스의 해체로 비롯된 들뜬 분위기에 안주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 앨범이었다. 물론 그렇게 단언하기엔 앨범이 다소 유행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긴 하지만 – 심지어 모리시조차 앨범을 “뜻했던 바대로 얻어낸 결과라기보다는 어쩌다 일어난 일에 가깝다”고 표현하였다 – 비바 헤이트의 많은 수록 곡은 여전히 당신을 흥분시킬 만큼 좋은 음악이다. 처음 듣는 이들을 위해 제목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것은 통쾌할 정도로 염세적인 제목이다. 모리시의 말에 따르면, 비바 헤이트는 원래 뒤집힌 교육이라는 가제를 달고 있었으나, 최종 제목인 비바 헤이트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방식입니다. 증오의 감정은 넘쳐나고 사랑의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죠. 증오는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입니다.”

광란적이고 집요한 비니 라일리의 기타 사운드로 포문을 연 비바 헤이트는 불친절하고 급작스럽게 끝을 맺는다, 마치 길로틴에 의해 잘려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너와 그는 연인이었던 거야?/그랬다면 그렇다고 말해/시트 위/텐트 안에서/너의 텐트가 활짝 열린 채.”라는 다소 천박한 가사가 모리시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드러나는 첫번째 트랙, “알사스인 사촌”은 앨범의 가장 뛰어난 수록 곡 중 하나이다. 마지막 곡인 “사형대의 마가렛”의 경우, 대처를 자극시키기 위해 던진 다음과 같은 가사 덕분에 모리시는 경찰에 취조 당하기까지 했다. “언제 죽을 거야? 언제나 돼야 죽을 거냐구?”

또 다른 측면에서 비바 헤이트는, 아역스타로 인생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버린 이의 운명에 대한 고찰한다든가 (“별 볼일 없는 녀석, 이젠 또 뭐야?”), “폐쇄되었어야만 하는 한 해안마을”에 핵폭탄이 떨어지길 빈다든가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아”) 혹은 (비록 끔찍이도 재미없는 풍자이긴 했지만) 전통의상을 온몸에 걸치고 다니는 벵골인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든가 (“승강장의 벵골인”) 하는 등의 모리시의 영국성(性)에 대한 집착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앨범의 가장 중요한 곡이자, 기묘하게 늘어지며 단조로운 “늦은 밤, 우수에 찬 거리”는 1972년 무렵의 어린 모리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3곡 중 첫 번째 곡이다. (나머지 곡은 “가족을 해체해”와 “스웨이드헤드”) 라일리의 부드러운 기타 연주 위로 모리시가 이렇게 읊조린다. “난 다른 이들의 즐거운 시간에 몰래 손 댄 적 없어.”

“그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습니다.”. 라일리가 그 곡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고 다들 별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만은 제스터 게임을 하지 않았죠, 내 장담 합니다.“

“가족을 해체해”에서, 모리시는 친구들과 헤어지던 유년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행운을 빌어줘, 친구. 안녕.”) 이것은 모리시가 스미스 시기에도 또 그 이후에도 반복해야 했던 일이기도 하다: 비바 헤이트의 제작이 끝나고, 그는 다시는 라일리나 스트릿과 함께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데이빗 헤밍웨이와 비니 라일리의 대화.

어떻게 비바 헤이트의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스티븐 스트릿이 듀러티 컬럼의 앨범 두 장을 프로듀스 했었습니다. 그는 모즈(모리시)를 위한 코드와 곡 구성을 짜고 있었죠. 그들은 몇 개의 러프한 데모를 만든 상태였는데, 건반과 샘플 스트링, 기타를 연주할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그래서 스티븐이 나에게 제안을 했죠. 모리시는 꽤 맘에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어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작업에 들어갔을 때, 내가 모든 음악을 다시 쓰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스트릿이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 그는 뛰어난 프로듀서예요 – 하지만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곡을 다시 썼어요. 모든 작업은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나는 그들을 매우, 매우 좋아해요.

이전에도 모리시와 친분이 있었어요?

몇 번 그를 보긴 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혼자였어요. 조이 디비전의 공연을 보러 오거나 했었죠. 혼자 있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모리시의 여성 친구이자, 맨체스터의 펑크 밴드인 루더스 (Ludus)의] 린더와는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 전까진 인사도 나눠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스미스의 팬이었습니까?

“순이는 지금 어때”를 듣자마자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죠. 정말 뛰어난 곡입니다. 엄청난 기타 리프와 보컬을 담고 있어요. 멋진 곡이죠.

모리시의 다른 음악을 들어보았나요? 최근의 곡이라던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바 헤이트 이후의 곡은 별로 듣지 않았어요. “국제적 바람둥이들의 최후”는 들어보았습니다만…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로커빌리 스타일의 음악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거든요. 관심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꽤 불행한 일이죠. 난 내가 듣는 음악에 대해 세밀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클래식 음악, 플라멩코, 남아프리카 힙합처럼요. 내가 절실히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있죠.

모리시와 작업하는 건 어땠나요?

즐거웠어요. 음악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구요. 반주의 음량을 낮추면 어느 부분이 절(verse)이고 어느 부분이 코러스인지 알 수 없게 되는데요, 그는 코러스를 불러야 하는 부분에서 절을 불렀고 절을 불러야 하는 부분에서 코러스를 불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줬어요. 그가 과연 어떤 음으로 노래를 부를 것인지 항상 기대할 수 밖에 없었죠.

함께 제스터 게임을 하거나 음식 빨리 먹기 게임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모리시의 냉소적인 유머감각 덕분에 우린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모리시는 애정을 담아서 날 놀려먹곤 했어요. 매우 친절하고 재밌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그와 작업할 마음이 있습니까?

비바 헤이트 이후에도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받았었죠. 하지만 난 그걸로 내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내 작업을 하는 중이기도 했구요. 또한 나는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일을 하는데 능하지도 않고, 관심이 많지도 않아요. 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거든요. 나는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것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모리시와의 작업이 당신에게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까?

나 자신의 음악을 다루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비바 헤이트를 만들 때는 내 접근법을 바꿀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나의 방식을 취했습니다. fin.

 

 이 인터뷰에선 좋은 얘기만 하는 비니지만, 모리시의 비공식 다큐멘터리, [주얼 인 더 크라운]에서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한다. 그는 모리시와 스티븐 스트릿이 비바 헤이트의 작곡 크레딧에 자신을 이름을 안 올려준 것이 영 섭섭한 모양이다. 비바 헤이트의 전곡은 모리시/스트릿으로 크레딧이 올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