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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l Tuesday

‘Til Tuesday는 1985년 “Voices Carry”란 곡 하나로 MTV와 팝챠트를 강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드라마틱한 데뷔는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발매된 두개의 싱글은 주목을 끄는데 실패했고 그들 역시 팬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그룹의 간판스타였던 Aimee Mann은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스쿨에서 수학한후 그 도시의 펑크씬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Young Snakes나 초기 시절의 Ministry와 함께 활동하였다.

1983년 그녀는 남자친구인 Michael Hausman (드럼)과 그의 친구들인 Joey Pesce (키보드), and Robert Holmes (키타)와 함께 ‘Til Tuesday를 조직하여 보스턴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한 지방 래디오 방송국의 밴드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Epic 레코드사와 계약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데뷔싱글 Voices Carry를 녹음하였다. 이와중에 Mann과 Huasman은 연인 관계를 청산하였고 이후 쏭라이터 Jules Shear가 Mann의 새로운 연인이 되었다.

1986년 가을 그룹은 두번째 앨범 Welcome Home을 녹음하였다. 그러나 앨범은 히트곡을 내지 못하였고 Pesce가 그룹을 떠났다(그의 빈자리는 Michael Montes가 메꿨다). 그룹은 또한 키타리스트 Jon Brion과 Clayton Scobel을 보강하였다. Welcome Home이 발매된 즈음 Mann은 다시 Shear와의 연인관계를 끝냈다. 1988년 발매된 그룹의 세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Everything’s Different Now에서는 Elvis Costello가 작곡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판매량은 Welcome Home에도 못미쳤다. 그러나 비평은 호의적이었는데 주로 Mann의 일취월장한 작곡솜씨에 초점이 맞춰졌다.

Aimee Mann은 80년대의 부시시한 헤어스타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로 현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솔로경력을 쌓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보컬과 쏭라이터 능력이 겸비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솔로 작업은 P.J. Harvey, Tori Amos 또는 Liz Phair와 동등한 레벨로 인정받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5 Voices Carry [Epic]
1986 Welcome Home [Epic]
1988 Everything’s Different Now [Epic]

링크
RollingStone.com의 ‘Til Tuesday관련 페이지
Aimee Mann Official Site

Thompson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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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pson Twins Feb84” by Ohconfuciu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Thompson Twins가 처음 탄생한 것은 지난 1977년 전직 음악교사였던 Tom Biley가 당시 영국에서 새롭게 붐을 이룬 펑크 스타일에 레게와 아프리카 리듬을 섞은 사운드를 연주하는 7인조 그룹을 결성하면서, 이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틴틴의 대모험’의 등장인물인 탐슨 쌍동히 형제의 이름을 따서 밴드의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주로 댄스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기대화는 달리 일부 댄스클럽에서만 인기가 있을 뿐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때,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흑인 아티스트 조 리웨이(Joe Leeway)와 뉴질랜드에서 온 방송 기자 출신의 앨러나 커리(Allena Currie)가 가입하면서 그룹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이들은 1981년 데뷔 앨범 AProduction To Participation을 발표하였고 뒤 이어 82년에는 2집 Set을 발매했다. 이 때 멤버는 초창기와 달리 탐, 엘레나 그리고 조 리웨이의 트리오로 단축되어 있었다. 2집 Set에서 싱글로 발표한 In The Name Of Love가 미국과 영국의 댄스클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집 Sidekicks에서는 토속적인 타악기에 신서사이저를 조화시킨 Lies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약 세계적인 뉴웨이브 그룹으로 부각되었다.

이어서 84년의 4집 Into The Gap에서는 더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는데 특히 Hold Me Now, Doctor Doctor는 전세계의 방송가와 디스코텍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펑크 스타일의 독특한 의상을 입은 이들의 콘서트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4장의 앨범 발표로 단단한 기반을 구축한 이들은 다섯 번째 앨범 제작 중 톰 베일리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Live Aid에서 훌륭하게 재기, 1985년에 5집 Here’s To Future Days를 발표했다. 비록 4집에 비해서는 그 열기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Lay Your Hands On Me가 히트하였다. 이를 기회삼하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순회 공연에 나섰는데, 이 순회 공연 중에 조 리웨이가 탈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레나 커리가 병원에 입원, 그룹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 후 루퍼트 파인이라는 프로듀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6집 Close To The Bone을 발표하였으나 이전만한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디스코그래피
A Product Of…(1981)
Set (1982)
Quick Step And Side Kick (1983)
Into The Gap (1984)
Here’s To Future Days (1985)
Close To The Bone (1987)
Big Trash (1989)
Queer (1991)

링크
팬페이지

Spandau Ba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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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by Andrew Hurley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는 1979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뉴 로맨틱(New Romantic) 그룹으로 80년대에 불어닥친 뉴 웨이브(New Wave) 사조 안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였다. 록시 뮤직(Roxy Music)의 영향을 받은 소울, 팝, 댄스가 어우러진 사운드를 구사하는 이들은 신디사이저 위주의 댄스 팝으로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기타리스트 개리 켐프(Gary Kemp)와 베이시스트 마틴 켐프(Martin Kemp) 형제를 주축으로 보컬인 토니 해들리(Tony Hadley), 리듬 기타와 색소폰, 퍼커션을 두루 담당한 스티브 노먼(Steve Norman), 드럼의 존 키블(John Keeble)의 5인조로 출발, 학교 친구인 스티브 대거(Steve Dagger)를 매니저로 두고 오랜 기간 팀웍을 자랑했다.

초창기에는 언론매체로부터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로 일컬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과장되고 패셔너블한 의상과 분장을 한 채 런던의 나이트 클럽에서부터 활동을 시작되었다. 이들은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직접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라는 레이블을 설립, 크리살리스(Chrysalis)와 배급 계약을 체결하는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80년 말 발표한 첫 싱글 ‘To Cut a Long Story Short’와 81년 초 ‘The Freeze, Musclebound’ 등의 싱글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가운데 이들은 81년 데뷔 앨범인 [Journey to Glory]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로부터 받은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를 주도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보컬이 어우러진 사운드를 들려주었다.그 해 여름 펑키(Funky)하고 소울풀한 싱글 ‘Chant No.1(I Dont Need This Pressure on)’이 발표되었으며, 연이어 ‘Instinction’, ‘Lifetime’과 같은 히트곡들이 탄생되었다.

2집인 [Diamond](82)는 리듬 위주의 흑인음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펑키(Funky)하면서도 동양적인 멜로디 위주의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1집과 비슷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3집 [True](83)는 70년대 후반 록시 뮤직의 앨범과 같이 정교하고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백인 소울(Soul) 계열이었다. 스티브 노먼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으로, 그의 색소폰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타이틀 곡인 ‘True’는 당시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를 누르고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는데, 몇 개월 뒤 미국 차트에서 싱글 4위, 앨범은 19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마치 영화 [007]의 주제가를 연상시키는 곡 ‘Gold’는 당시 L.A 올림픽의 찬가처럼 사용되면서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으로 이들의 음악적 방향이 설정되기는 하였으나, 3번째 싱글인 ‘Communication’이 미국에서 실패하면서 이들의 상업적 성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4집 [Parade](84)에는 가사 면에서 게리 켐프의 성숙함과 강한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는 ‘Only When You Leave’가 수록되어 있긴 하였으나, 앨범 자체는 미국 시장에서 실패하였으며 영국에서의 성공도 전작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85년 미국에서의 미비한 홍보를 이유로 크리살리스에 소송을 제기, 승소 후 소속사 교체라는 결과는 얻었으나 결국 이들의 경력에 오점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다음 해에 현 소니뮤직(Sony Music)을 통해 5집인 [Through the Barricades](86)를 발표하는데,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비발매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회·정치적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타이틀 곡은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다음 곡인 ‘How Many Lies’는 최후의 미국 차트 진입곡이 되고 말았다.89년 6집인 [Heart Like a Sky]를 발표하고 이듬해인 90년에는 결국 해체하고 말았다.

게리와 마틴 형제는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보디가드] 등 몇몇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토니 해들리는 솔로 활동을 하며 93년 [State of Play]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토니, 존, 스티브 세 사람이 재결합하여 새 앨범을 구상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들과 견줄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는 듀란 듀란(Duran Duran)이 유일하며, 스팬도 발레는 최초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로서 비평가들로부터 낙천주의 감각과 스타일을 잘 결합시켜 유쾌한 댄스 음악을 창조한 밴드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changgo.com

스튜디오앨범
1981 Journeys to Glory Chrysalis
1982 Diamond Chrysalis
1983 True Chrysalis
1984 Parade Chrysalis
1986 Through the Barricades Epic
1989 Heart Like a Sky Reformation
2000 Musclebound Disky
2009 Once More

링크
www.spandauballet.com
Unofficial Page

Soft Cell

Tainted Love라는 경이적인 히트곡을 기록한 Soft Cell은 1979년 결성되었다. 나른하면서도 다소 퇴폐적인 목소리의 소유자 Marc Almond와 신서사이저 및 퍼커션 주자인 Dave Ball이 그 멤버였다.

결성 직후 북부 영국의 소울 밴드에서 기량을 닦던 듀오의 첫 싱글 Memorabilia가 발표된 것은 1981년 초였다. 그러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싱글 Tainted Love와 그해 연말의 Bedsitter를 통해서 였다. 이들 곡5을 수록한 데뷔 앨범 Non Stop Erotic Cabaret역시 챠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장식할 수 있었고, 1982년 1월에 싱글 커트된 Say Hello Wave Goodbye를 시작으로 Torch, Non Stop Ecstatic Dancing, Numbers로 이어졌다. 데뷔 앨범을 재편집하여 2집으로 내놓은 EP가 얻은 성공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Tainted Love가 얻은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곡은 흑인 싱어 Gloria Jones의 60년대 히트곡을 The Four Freshman의 창단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Ed Cobb이 편곡하여 듀오가 리바이벌시킨 것으로서 빌보드 팝싱글 챠트에 42주 연속으로 머무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The Arts Of Falling Apart로 음악적 성숙과 함께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독창적으로 리메이크하는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 소프트 셀은 이 작품을 끝으로 사실상 해체하게 되는데 80년대 후반에 리더인 데이브 볼(Dave Ball)만이 그리드The Grid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고 마크알몬드는 꾸준한 솔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1 Non-Stop Erotic Cabaret [Sire]
1982 Non-Stop Ecstatic Dancing [Sire]
1983 The Art of Falling Apart [Sire]
1984 This Last Night in Sodom [Sire]
1994 Down in the Subway [Alex]
1998 Non-Stop Erotic Cabaret [Germany] [Polygram]
2002 Non-Stop Erotic Cabaret [Bonus Tracks] [Universal]

링크
팬페이지
마크알몬드 Official Site

Kajagoog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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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jagoogoo in Germany Bochum 2008” by RicoZX81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결성 : 1982년
해체 : 1985년
멤버 : Limahl, Steve Askew, Nick Beggs, Stuart Neale, Stuart Crawford

Kajagoogoo의 발란한 신쓰팝과 귀여운 용모는 MTV 초기시절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Limahl (본명 Chris Hamill)이 이끌던 이 그룹은 Steve Askew (guitar), Nick Beggs (vocals, bass), 그리고 Stuart Crawford (vocals, synthesizer)로 구성되었다. Duran Duran의 Nick Rhodes가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흥미있는 사실때문에 한때 제2의 Duran Duran으로 불리기도 하고 Duran Duran의 팬들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Kajagoogoo의 데뷔 싱글 “Too Shy”는 1983년 초 영국에서 넘버원을 기록하였다. 또한 미국에서는 5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다. “Too Shy”와 이어서 나온 데뷔앨범 White Feathers는 그들의 음악이 Duran Duran 이나 Naked Eyes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특징이 없다고는 말못하겠는데 소위 버블검 싸운드의 씬쓰팝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후 “Ooh to Be Ah”와 “Hang on Now” 같은 곡들이 영국에서 히트를 하였지만 미국에서는 챠트에 오르지 못하였다. 결국 Limahl은 그룹을 떠나 솔로로 전향하였고 Kajagoogoo는 Nick Beggs가 리드싱어로 전환하면서 그룹활동을 계속해갔다.

1984년에는 2집 Islands를 발표하였지만 예전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반면 Limahl은 Neverending Story의 테마송을 부르는 등 대조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룹은 이름을 아예 Kaja로 바꿔버리고 Crazy People’s Right to Speak를 발표하였다. 판매는 극도로 저조했고 그룹은 이듬해 해산해버렸다. Limahl은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어갔으며 1992년 Love Is Blind를 앨범을 발표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3 White Feathers One Way
1984 Islands EMI
1993 Too Shy: The Singles…& More EMI
1993 Too Shy ERG

링크

kajagoogoo.c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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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band”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Jap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약간은 어설픈 glam-rock 밴드에서 스타일리쉬한 synth-pop 밴드로 변모한 Japan은 그들 시대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밴드이다. 1974년 런던에서 결성된 이들은 처음에 싱어쏭라이터인 David Sylvian, 베이시스트 Mick Karn, 키보디스트 Richard Barbieri, 드러머 Steve Jansen(David Sylvian의 동생), 그리고 키타리스트 Rob Dean, 이렇게 5인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Daivid Bowie나 New York Dolls 스타일의 glam-rock을 흉내냈다. Sylvian의 보컬은 Bryan Ferry를 연상시켰으며 Japan은 자주 Roxy Music과 비교되곤 했다.

레이블이 후원하는 한 콘테스트에서 우승한뒤 그들은 독일의 Ariola-Hansa 레코드사와 1977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Adolscent Sex와 Obscure Alternatives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청중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그룹명 잘 지어야겠죠?) 1979년 Quiet Life로 그들은 보다 세련된 스타일과 그들만의 영역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는 Smokey Robinson의 오리지널인 I Second That Emotion(예전에 영어강사에게 이 뜻을 물어봤는데 “동의합니다” 정도의 뜻이라 함)이 히트하였다.

1980년 Gentlemen Take Polaroids에서는 그들의 음악적 범위가 좀더 확대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만의 운치있는 싸운드에 이국적인 색채가 좀더 더해졌다. 1981년 Tin Drum이 그룹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Funk, 중국풍의 연주, 중동 지역의 리듬과 같은 다양한 쏘스들을 덧칠하여 팝에서 보다 실험적인 톤과 텍스춰로 승부하였다. 영국에서는 싱글 Ghosts가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Tin Drum이 그룹의 이별곡이 되고 말았다. 오랜동안 지속되어오던 그룹의 불화와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그룹은 결국 1982년 일본 나고야의 콘써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말았다. 개개인은 신속하게 그들만의 프로젝트 작업에 착수하였다. Sylvian은 솔로커리어를 시작하였고 Ryuichi Sakamoto, Holger Czukay, Robert Fripp와 같은 이들과 작업하기도 하였다. Karn은 1982년 솔로앨범을 발매하였다. 이어 Bauhaus출신의 Peter Murphy와 짧은 기간 듀오를 하기도 하였다. Jansen과 Barbieri는 Dolphin Brothers라는 이름으로 1986년 Worlds in a Small Room을 발표하였다.

1987년 Karn이 Sylvian과 Jansen의 도움을 받아 Dreams of Reason Produce Monsters를 발매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룹의 재결성에 대한 풍문이 나돌았고 결과적으로 1989년 4명의 주요멤버가 Rain Tree Crow라는 이름으로 다시 팀을 조직하였다. 1991년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선회하였다. Sylvian은 꾸준히 솔로활동을 펼치는 반면 Karn, Jansen, Barbieri는 솔로활동을 지속하면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디스코그래피

1978 Adolescent Sex
1978 Obscure Alternatives
1979 Quiet Life
1980 Live in Japan
1980 Gentlemen Take Polaroids
1981 Tin Drum
1982 Japan [Virgin]
1983 Oil on Canvas [live]

링크
David Sylvian 웹사이트

Human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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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eaguemk2” by A&M Records 1982. Licensed under Wikipedia.

‘일렉트릭 아바’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단순한 멜로디와 신서사이저 등 전자 음향을 유합해 새로운 일렉트로닉 팝을 창출해냈던 Human League는 1970년대 후반 팝의 한 분야로 발전된 테크노 팝의 대표주자로 영국의 쉐필드에서 1977년 결성되었다. 그 곳 출신의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이언크레이그 머쉬와 마틴 웨어 두 사람이 필립 오키와 함께 손을 잡고 정식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팀 결성 직후인 1978년 3월, 이 그룹의 네번째 멤버가 된 에드리언 라이트를 가입시키면서 휴먼리그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데, 이 때부터 이들은 팝에 전자적인 요소를 가미함과 동시에 슬라이드 조작을 통한 시각적인 영상 창조에 주력했다.

쉐필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에딘버러에 있는 패스트 트로덕션의 제작사 밥 라스트를 만났고, 밥은 이 들의 진보적인 발상을 높이 평가, 드디어 레코드 취입을 제의하였다. 이 것을 계기로 버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이 들은 두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유럽 공연을 마친 후 2명의 멤버가 탈퇴해 버려 사실상 휴먼리그는 해체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은 두 명의 벰버는 당시 디스코 클럽에서 노래하던 17세의 조앤 캐더럴과 수전 설리를 참가시켜 새로운 출발을 꾀했다. 계속해서 이언 버든과 레질로스라는 지방 밴드의 리더 조 콜리스를 가입시켜 다시금 휴먼리그의 중흥을 꾀앴다.

한편 휴먼리그를 탈퇴한 두 명의 멤버는 Heaven17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했다.

혼성 6인조 테크노 팝 그룹으로 재기의 발돋움을 시작한 휴먼리그는 첫 앨범 Dare를 1982년 초에 발표했는데,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그 해 여름 싱글 Don’t You Want Me가 미국 팝챠트 1위에 오르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인 1983년 초에 싱글 Mirror Man과 Fascination을 다시 히트시켰다.

그러나 84년에 발표한 Hysteria는 Dare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들은 1990년에 Romantic?을 발표하고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5년후인 95년에 Octopus를 발표했다. 또한 2001년에는 신작 Secrets를 발표하여 All I Ever Wanted를 히트시켜 건재함을 과시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 Reproduction
1980 – Travelogue
1981 – Dare
1984 – Hysteria
1986 – Crash
1990 – Romantic?
1995 – Octopus
2001 – Secrets

링크

http://www.ozemail.com.au/~jjva/human.htm
Blind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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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cut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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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cut 100 Live” by ChrisFJM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키타리스트 Graham Jones, 키타/베이스 플레이어 Les Names 그리고 싱어 Nick Heyward 가 Haircut 100을 결성하던 1980년 그들은 모두 19살이었다. 당시에는 자기네들끼리 즐긴다는 단순한 생각이었고 음악에는 60년대의 쾌활함과 80년대의 댄쓰비트를 섞어놓은 스타일이었다. 1981년 그들의 첫싱글 “Favourite Shirts (Boy Meets Girl)”은 영국챠트에 4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인기에는 Heyward의 미소년적인 외모도 한몫거들었다. 이듬해초 데뷔앨범 Pelican West를 발매하였다. 이어진 히트싱글은 Love Plus One이었는데 그룹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러나 Heyward는 솔로활동을 위해 83년 그룹을 떠나고 만다. 나머지 멤버들은 기존의 이름을 고수한채 드러머 Mark Fox를 새로운 싱어로 내세웠지만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 Heyward는 83년 North Of a Miracle이라는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에피소드1 : 어릴적 몇번 들었었던 Love plus one의 멜로디는 학창시절 내내 가끔씩 입가에 맴돌았었는데 누가 부르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웬지 “Bow Wow Wow가 불렀던 노래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뒤에야 이른바 mp3가 등장하고 나서야 오랜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의문이 풀렸다.

디스코그래피
1982 Pelican West Arista
1983 Paint & Paint Polydor
1993 Pelican West Pluse [Bonus Tracks] Alex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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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ie Goes To Hollywood

Frankie Goes to Hollywood in London cropped.jpg
Frankie Goes to Hollywood in London cropped” by Jane McCormick Smith – Jane McCormick Smith.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0년대 중반 런던의 패션디자이너이자 Bondage Wear(주로 성적소수자들이 성행위시 입는 가죽끈으로 된 복장(?) : 역자주) 판매상이었던 Malcolm McLaren은 밴드를 하나 조직하였다. 그는 그 밴드에서 취미삼아 노래를 부를 생각이었으나 곧 매니저를 선택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McLaren은 밴드의 이름을 Sex Pistols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음악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성난 듯한 행동은 즉각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God Save The Queen은 영국 챠트 1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 시기에 이미 British Radio는 그 곡을 금지곡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다.

80년대 팝씬이 70년대 중반의 펑크시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가벼움의 시대라 할 수 있지만 80년대 팝씬의 몇몇 현상들은 이러한 Sex Pistols의 성공스토리와 상당히 비슷했다. 다만 이 시기 막후 지휘자는 Trevor Horn이었다. The Buggles와 Yes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미 ABC의 음반을 능숙하게 프로듀싱하여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1983년 Frankie Goes to Hollywood를 발견하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힘과 적당한 오만함, 그리고 성적 에너지의 발산에서 상업적인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들의 프로듀서를 자청하고 나섰다.

‘Frank Sinatra가 헐리우드에 가다’라는 낡은 잡지의 헤드라인에서 그룹명을 딴 이들은 보컬리스트 Holly Johnson, 기타리스트 Brian Nash, 드러머 Peter Gill, 베이시스트 Mark O’toole,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보컬리스트 Paul Rutherford가 가담하여 5인조 진용으로 출발하였다.

20대가 갓 넘은 이들 다섯 사내들은 가죽옷을 입고 삐뚤어진 섹스의 이미지를 노출하여 BBC로부터 방송 금지를 당해야 했지만 Relax와 Two Tribes를 1984년 7월 14일자 영국 챠트에 나란히 1,2위에 올려 놓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두 곡 모두 넘버 1을 차지하는 영국에서의 대히트에 이어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비디오로 발매된 Two Tribes는 링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체르넨코 서기장이 싸우는 장면과 닉슨 대통령과 케네디의 묘사가 적나라하게 펼쳐져 화제가 되었으나, 영국에서 심야 이전 방영이 전면 금지되고 미국 TV에서는 재편집 방영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들은 이 후 1985년 1월에 Relax를 재발매하여 또다시 히트를 기록하였고 4월에는 Welcome To The Pleasuredome를 크게 히트시켰다.

Frankie는 2년뒤 두번째 앨범 Liverpool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Sex Pistols가 그랬던것처럼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은 차갑게 식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Frankie가 Relax에서 써먹었던 Sex에 대한 주제는 Prince와 Madonna가 써먹기 시작했다.

디스코그래피
1984 Welcome to the Pleasuredome ZTT/Island
1986 Liverpool ZTT/Island
2000 Maximum Joy: 2000 Remixes Im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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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ck of Seagulls

희한한 헤어스타일의 소유자인 미용사 Mike Score(리드보컬, 키타)는 그의 동생이 Ali(드럼)과 동료 미용사인 Frank Maudsley(베이스)와 함께 1980년 A Flock of Seagulls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몇달후 키타에 Paul Reynolds를 보강하였다. 1981년 그룹은 Cocteau 레코드사에서 데뷔 EP를 발매했지만 챠트에 오르는데는 실패했다. 싱글 Telecommunication은 유럽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그해말 메이저레이블인 Jive와 계약을 맺은 그들은 1982년 봄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첫싱글 “I Ran (So Far Away)”는 그 특이한 비데오클립때문에 MTV의 단골곡으로 떠올랐고 미국챠트 10위안에 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는 “I Ran”이 큰 주목을 끌지 못한 반면 “Wishing (If I Had a Photograph of You)”(이 곡은 그들의 두번째 앨범 Listen에 수록되어 있다)가 10위까지 올랐다. 한편 이 앨범에서는 “Space Age Love Song”(예전에 김형준 DJ의 FM Pops의 인트로로 쓰였던 곡)도 크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성공이 순식간에 찾아온 것처럼 쇠락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984년 세번째 앨범 The Story of a Young Heart는 히트싱글을 내는데 실패했고 Reynolds는 그룹을 떠났다. 1986년 Dream Come True를 위해 멤버가 대폭 교체되었지만 역시 챠트진입은 실패했다. 그래서 밴드는 해체되었다. Mike Score는 1989년 그룹을 새롭게 결성하여 싱글 “Magic”을 발매하고 미국 순회공연에 들어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1995년 The Light at the End of the World를 발매했다.

디스코그래피

1982 A Flock of Seagulls Jive
1983 Listen Jive
1984 The Story of a Young Heart Jive/Arista
1986 Dream Come True Jive
1995 Telecommunications Elite
1996 Light at the End of the World S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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