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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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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1일 새벽 12시 1 분 24시간 방송하는 케이블 뮤직 네트웍 MTV가 런칭되었다. 워너 커뮤니케이션과 어메리칸익스프레스가 조인트벤처로 시작한 이 방송은 뮤직비디오와 공연을 보여줄 목적으로 시작하였다. 최초의 VJ는 J.J. Jackson, Mark Goodman, Alan Hunter, Nina Blackwood, Martha Quinn 이 맡았다. 이 방송은 음악을 상업화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MTV가 방송을 개시하던 날의 방송 일부

John Taylor와의 인터뷰

Taylor performing at the O2 Arena in 2023
By Raph_PHDuranO2_1_010523 (22 of 74), CC BY 2.0, Link

그들이 요트위를 거닐건 또는 그들의 비데오클립 Wild Boys를 위하여 로드워리어처럼 행세를 하건 Duran Duran은 뮤직비데오를 일종의 상상력의 포스트모던 놀이터로 재해석했다. 키타리스트 John Taylor가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선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상한다.

VH1: Duran Duran은 처음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를 꺼려했나요?

John Taylor: 그것은 우리가 원하기전에 이미 존재했었어요. 그러나 그건 대단한 도구였죠. 밴드는 히트곡을 선전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 비디오들은 미국에서는 효과만점이었죠. 우린 우리가 하는 모든 인터뷰마다 왜 사람들이 비디오에 관해 언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Hungry Like The Wolf”나 “Rio”같은 노래는 당신들은 비데오로 먼저 접했지요. 그 음악과 비주얼한 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들은 우리가 비디오를 만드느라 몇달을 고생하는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12시간내에 찍을 수 있었죠.

VH1: Duran Duran의 비디오에서의 모습에 영향을 준것은 무었인가?

Taylor: ’80년대 초에 나에게 최고의 비디오는 “제3의 인물” – 오손웰즈의 영화를 말하는듯(역주) – 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천재적인 영화에 경의를 표했었던 Ultravox의 “Vienna”였었어요.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Hungry Like The Wolf”에 도입했었죠.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Apocalypse Now(프랜시스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두가지 아이디어를 따왔어요. 사실 그 노래의 콘텍스트도 거기서 따왔죠.

VH1: Duran Duran은 그런 비디오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요?

Taylor: 꼭 그렇진 않아요. 난 음악가이지 영화제작자는 아니니까요. 우린 Russell Mulcahy와 일했는데 그는 뮤직비데오에 관한 책을 썼었죠. 그는 언제나 우릴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러나 우린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린 가만히 앉아서 창조적으로 우리 비디오를 만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Wild Boys”는 비디오를 위해 곡을 쓴 최초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네요. 우린 그때문에 Russell과 William Burroughs(네이키드런치의 작가) 의 책 Wild Boys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는 그걸 full-length 의 작품으로 만들기를 원했죠. 그는 그것을 위해 노래 한곡을 쓸것을 요구했죠. 우린 곡을 썼고 그가 그 비데오를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집어넣었어요. 그게 우리가 비디오에서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쓴 최초의 곡이었죠.

VH1: 당신은 MTV가 팝뮤직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MTV 정말 고마워요! MTV는 차트에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공급했죠. 젊음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MTV는 새로운 아젠다를 요구했어요. 왜냐하면 더이상 라디오에서 연주하는 방식으로는 노래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Air Supply나 Christopher Cross의 뮤직비데오에서 그들은 연주는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접해야 했죠. Duran Duran이나 UItravox같은 이들말이죠.(우하~ 뭉게는군요. 못생겼다고…)

VH1: Duran Duran의 성공에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기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뮤직비디오는 우릴 수백만의 미국인의 가정에 전파했어요. 그러나 우리 역시 비디오에도 좋았어요 – 자신들이 뮤직비디오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인것 같음(바보역자주) – . 우린 어떤 밴드가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을 프로모트하는가에 대한 텍스트북 케이스였죠. 그리고 우린 매우 빠르게 진화했어요.

VH1: 뮤직비디오가 그들의 경력에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뮤직비디오를 거부하는 어떤 행동과 마주친적이 있나요?

Taylor: The Stones, Rod Stewart 또는 David Bowie같이 이미 명성있는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해야했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생존자라면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순응하여야 했죠. 비디오를 만들지 않는것은 매우 인디적인 자세입니다. George Michael은 그의 두번째 앨범 제작시 비디오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걸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걸 – 두번째 앨범(?) – 사지않았아요. 누군가 성공을 원한다면 비디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면 뭐하러 레코딩 스튜디오로 갑니까?

VH1: 당신들은 “Girls On Film” 비디오가 그렇게 야한 데에 놀라지 않았습니까?

Taylor: 우린 그 비디오의 내용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알지 못했다면 매니져라도 알고 있었겠죠. MTV가 일반화되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락클럽이었어요. 우리 비디오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는 잘 나갔드랬죠. 그래서 우린 Playboy와 Hustler가 조우하는 “Girls on Film”을 만든거에요. 찍는것은 끔찍했어요. 재미도 하나 없었어요. 우린 그런 녀석들이 아니랍니다. 그거 아세요? 그러나 발매되자 마자 논란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Thanks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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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와 뮤직비디오

음악과 영상의 조우

19세기말에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서 영화라는 것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시기적 전후관계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동시대에 애디슨에 의해서 축음기가 발명되었다. 물론 초기의 영화는 소리를 삽입하는 기술에까지는 미치지 못한 무성 영화의 형태를 가졌었고, 부가적 설명은 상영과 동시에 리얼타임으로 들어가는 변사의 대사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영상과 사운드의 결합이 당연히 사운드 트랙은 팝음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게 되었다.

팝/록음악과 영화와의 첫 번째 조우는 1955년의 ‘블랙 보드 정글(Blackboard Jungle)’에서 부터이다. 이 영화의 테마가 바로 최초의 록큰롤이라고 알려진 ‘Rock Around The Clock’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록큰롤의 황금기였든 50∼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즉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웨스트 트랙(그 자체로도 하나의 독립된 장르를 형성하는)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영상은 서로 맞물려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음악이란 것이 청각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음악을 영상과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한 사실의 이면에는 아마도 뮤직 비디오라는 매개물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다.

현대 대중음악, 즉 팝 음악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없이는 이토록 크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MTV는 뮤직비디오의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준 매우 영향적 매체였다고 할 수 있다. 81년 5월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빌보드 Hot 100챠트에 오른 100곡의 노래 가운데에서 비디오 클립이 제작된 노래는 23곡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82년에는 30곡이 제작되었고, 83년에는 챠트에 오른 100곡 가운데서 59곡이 비디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86년에는 82곡이 만들어져 있었고, 요즘에는 대체적으로 100곡이 거의 다 비디오로 제작된다.

뮤직 비디오의 선구자들과 걸작

비디오 1979년에서 80년대 초까지 런던에서는 뮤직비디오의 새로운 개척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호주 출신의 러셀 멀케이는 버글스의 대표작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만들었고(’79), 데이빗 머렛은 붐타운 랫츠의 ‘I don’t like mondays’를 역시 79년에 만들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글랜드라는 영화감독은 그룹 M의 ‘Pop Music’을 80년대에 만들었다. 같은 해, 뮤지션 출신의 고들리 앤 크림은 듀란듀란의 ‘Girl on Film’을 만들게 되었다. 스티브 바론은 잼의 ‘Strange Town’을 78년에 연출했다. 그는 나중에 아하의 ‘Take on Me’를 제작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연출가가 된다. 오늘날 뮤직 비디오는 연출계의 대부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런던에서 주로 뉴웨이브계 아티스트들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뮤직 비디오가 프로모션용 필름으로 시작해서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기까지는 위와 같은 초기 뮤직 비디오 감독들의 노력이 컸고, 또한 24시간 뮤직 비디오 방송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민 MTV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983년에 들어서면서 대작 비디오 클립들이 차례로 제작되어지는데 무려 10만 달러를 들여서 제작된 마이클 잭슨의 ‘Beat It’, 빌리 조엘의 ‘Pressure’,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등, 이들이 모두 당시의 걸작 뮤직 비디오들이었다. 그 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은 14분 짜리 대작 뮤직 비디오 ‘Thriller’였다.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Blues Brothers)”의 존 랜디스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 후 영화 감독에 의한 비디오 클립이 수없이 나오게 된다. 윌리암 프레디킹에 의한 로라 브레니건의 ‘Self Control’,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라이오넬 리치의 ‘Dancing On A Ceiling’,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벌어들인 영화 “Flash Dance”는 뮤직 비디오 기법으로 제작이 된 영화로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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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thriller” by Poolparty. Licensed under Wikipedia.

이러한 뮤직 비디오 제작이 주는 또 다른 가치는 비디오 촬영 및 제작 사업의 활성화로, 젊으나 film maker들이 적은 예산으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 하나의 등용문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거론했던 russell Mulcahy 등이 당시 회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Buggles, Ultravox, Rod Stewart, Kim Carnes, Bonnie Tyler) 이들은 거의가 20대로 TV, Movie와 함께 자라나 세대, 즉 ‘TV Babies’였다. 비디오의 내용들은 매우 stylishgkrh 시각적으론 adventurous했으며 점차 도발적이고, sexual 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Olinia Newton John의 ‘Physical’-Brian Grant)

1982년 가을에는 그 sexy함이 최고조에 달하여 심지어 Transsexuals and The Bath’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주목할 만한 가수가 나오게 되는데 바로 Duran Duran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뮤직 비디오를 가장 빠르게, 가장 계산적으로 잘 이용한 가수로 알려졌는데, Rolling Stone지는 “They may be first rock band to ride in on a video wave”라고 쓸 정도였다.

뮤직 비디오 부문을 거론함에 있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Michael Jackson일 것이다. 그야말로 Visual Performer, 진짜 뮤직 비디오의 이상에 딱 맞는 흑인 가수였고, 이 분야를 예술적으로 한 차원 승화시킨 인물일 것이다. 앞서 거론한 ‘Thriller’는 총 제작비 110만 달러, 길리는 14분인 대작으로 모든 춤과 댄서들도 훌륭했지만, 특히, 분장과 특수 효과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앨범판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른 앨범 같으면 잊혀질 즈음에 ‘Thriller’는 매주 60만장씩 팔려 나갔다고 한다.

이후 1990년을 지나면서 마돈나가 눈에 띄게 되는데, 그녀가 가졌던 팝계의 위상이 높고 화려했던 만큼, 뮤직 비디오 상에서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었었다. 그 예로 ‘Vogue’비디오에서 실은 가슴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지만 교묘하게 젖꼭지만 가려, 방송상의 누드 규정을 피해갔고, ‘Justify My Love’에서는 나뭇잎 무늬 같은 것이 한 겹 씌워진 흑백 화면 속에서 성적 절정, 변태 성욕을 조금씩 느끼게 끔 만든 경우를 들 수 있다.

출처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