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와 뮤직비디오

음악과 영상의 조우

19세기말에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서 영화라는 것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시기적 전후관계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동시대에 애디슨에 의해서 축음기가 발명되었다. 물론 초기의 영화는 소리를 삽입하는 기술에까지는 미치지 못한 무성 영화의 형태를 가졌었고, 부가적 설명은 상영과 동시에 리얼타임으로 들어가는 변사의 대사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영상과 사운드의 결합이 당연히 사운드 트랙은 팝음악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게 되었다.

팝/록음악과 영화와의 첫 번째 조우는 1955년의 ‘블랙 보드 정글(Blackboard Jungle)’에서 부터이다. 이 영화의 테마가 바로 최초의 록큰롤이라고 알려진 ‘Rock Around The Clock’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록큰롤의 황금기였든 50∼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즉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웨스트 트랙(그 자체로도 하나의 독립된 장르를 형성하는)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영상은 서로 맞물려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음악이란 것이 청각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음악을 영상과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한 사실의 이면에는 아마도 뮤직 비디오라는 매개물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다.

현대 대중음악, 즉 팝 음악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없이는 이토록 크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MTV는 뮤직비디오의 발전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준 매우 영향적 매체였다고 할 수 있다. 81년 5월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빌보드 Hot 100챠트에 오른 100곡의 노래 가운데에서 비디오 클립이 제작된 노래는 23곡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982년에는 30곡이 제작되었고, 83년에는 챠트에 오른 100곡 가운데서 59곡이 비디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86년에는 82곡이 만들어져 있었고, 요즘에는 대체적으로 100곡이 거의 다 비디오로 제작된다.

뮤직 비디오의 선구자들과 걸작

비디오 1979년에서 80년대 초까지 런던에서는 뮤직비디오의 새로운 개척자들이 속속 등장한다. 호주 출신의 러셀 멀케이는 버글스의 대표작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만들었고(’79), 데이빗 머렛은 붐타운 랫츠의 ‘I don’t like mondays’를 역시 79년에 만들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글랜드라는 영화감독은 그룹 M의 ‘Pop Music’을 80년대에 만들었다. 같은 해, 뮤지션 출신의 고들리 앤 크림은 듀란듀란의 ‘Girl on Film’을 만들게 되었다. 스티브 바론은 잼의 ‘Strange Town’을 78년에 연출했다. 그는 나중에 아하의 ‘Take on Me’를 제작해서 실력을 인정받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연출가가 된다. 오늘날 뮤직 비디오는 연출계의 대부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런던에서 주로 뉴웨이브계 아티스트들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뮤직 비디오가 프로모션용 필름으로 시작해서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기까지는 위와 같은 초기 뮤직 비디오 감독들의 노력이 컸고, 또한 24시간 뮤직 비디오 방송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민 MTV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983년에 들어서면서 대작 비디오 클립들이 차례로 제작되어지는데 무려 10만 달러를 들여서 제작된 마이클 잭슨의 ‘Beat It’, 빌리 조엘의 ‘Pressure’,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등, 이들이 모두 당시의 걸작 뮤직 비디오들이었다. 그 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은 14분 짜리 대작 뮤직 비디오 ‘Thriller’였다.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Blues Brothers)”의 존 랜디스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 후 영화 감독에 의한 비디오 클립이 수없이 나오게 된다. 윌리암 프레디킹에 의한 로라 브레니건의 ‘Self Control’,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라이오넬 리치의 ‘Dancing On A Ceiling’, 흥행수입 1억 달러를 벌어들인 영화 “Flash Dance”는 뮤직 비디오 기법으로 제작이 된 영화로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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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thriller” by Poolparty.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Michael Jackson’s Thriller“>Fair use via Wikipedia.

이러한 뮤직 비디오 제작이 주는 또 다른 가치는 비디오 촬영 및 제작 사업의 활성화로, 젊으나 film maker들이 적은 예산으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 하나의 등용문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거론했던 russell Mulcahy 등이 당시 회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Buggles, Ultravox, Rod Stewart, Kim Carnes, Bonnie Tyler) 이들은 거의가 20대로 TV, Movie와 함께 자라나 세대, 즉 ‘TV Babies’였다. 비디오의 내용들은 매우 stylishgkrh 시각적으론 adventurous했으며 점차 도발적이고, sexual 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Olinia Newton John의 ‘Physical’-Brian Grant)

1982년 가을에는 그 sexy함이 최고조에 달하여 심지어 Transsexuals and The Bath’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주목할 만한 가수가 나오게 되는데 바로 Duran Duran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뮤직 비디오를 가장 빠르게, 가장 계산적으로 잘 이용한 가수로 알려졌는데, Rolling Stone지는 “They may be first rock band to ride in on a video wave”라고 쓸 정도였다.

뮤직 비디오 부문을 거론함에 있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Michael Jackson일 것이다. 그야말로 Visual Performer, 진짜 뮤직 비디오의 이상에 딱 맞는 흑인 가수였고, 이 분야를 예술적으로 한 차원 승화시킨 인물일 것이다. 앞서 거론한 ‘Thriller’는 총 제작비 110만 달러, 길리는 14분인 대작으로 모든 춤과 댄서들도 훌륭했지만, 특히, 분장과 특수 효과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앨범판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른 앨범 같으면 잊혀질 즈음에 ‘Thriller’는 매주 60만장씩 팔려 나갔다고 한다.

이후 1990년을 지나면서 마돈나가 눈에 띄게 되는데, 그녀가 가졌던 팝계의 위상이 높고 화려했던 만큼, 뮤직 비디오 상에서도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었었다. 그 예로 ‘Vogue’비디오에서 실은 가슴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지만 교묘하게 젖꼭지만 가려, 방송상의 누드 규정을 피해갔고, ‘Justify My Love’에서는 나뭇잎 무늬 같은 것이 한 겹 씌워진 흑백 화면 속에서 성적 절정, 변태 성욕을 조금씩 느끼게 끔 만든 경우를 들 수 있다.

출처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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