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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y Flip

Candy Flip은 Happy Mondays와 Stone Roses와 함께 레이브신, 매드체스터가 맹위를 떨치던 1990년대 맨체스터에서 밴드생활을 시작하였다. 비록 음악적 평가에서는 이들 밴드들에 미치지 못했지만 매드체스터 특유의 몽롱한 사운드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이를 고급스러운 신디사이저 등 새로운 악기편성으로 재창조해내어 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특히 이들은 The Beatles 의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클럽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영국 차트 3위에 오르고 영화 I Am Sam 의 사운드트랙에도 쓰이는 등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을까? 그들의 오리지널 싱글 들은 Strawberry의 인기를 능가하지 못했다. Simon & Garfunkel의 Scarborough Fair를 리메이크했지만 그건 그냥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싱글들이 큰 인기를 얻었던 Stone Roses와 선명하게 비교되는 장면이다. 어쨌든 이들은 1991년 Madstock…The Further Adventures of Fish Rides a Bicycle 라는 긴 이름의 그들의 유일한 앨범을 내놓는다. 그리고 1992년 그룹은 해체하고 레이브신에서 사라졌다. 여기 소개하는 곡 Ask Why 는 그들 앨범에서 열 번째 트랙으로 라틴풍의 키타 연주와 부드러운 보컬이 잘 조화된 곡이다.

디스코그래피
1990 Strawberry Fields
1991 Madstock…The Further Adventures of Fish Rides a Bicycle

링크
아티스트 정보

Madch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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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ch” by Mike Colvin – http://www.flickr.com/photos/mikecolvin82/124404117/.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Madchester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영국락계를 뒤흔드는 주요한 힘이었다. acid-house의 댄쓰리듬과 멜로디팝의 혼합을 통해 태어난 Madchester는 짧게 연속적으로 끊어치는 리듬, 싸이키델릭하면서도 장식적인 연주와 코러스 등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노래의 구조는 매우 친근한 반면 음악의 배열과 자세는 매우 모던하면서도 때로는 레트로적인 분위기 – 즉, 찰랑거리는 키타싸운드, 소용돌이치는듯한 올갠 등 – 를 풍기기도 했다. Madchester를 대표하는 두 밴드가 있었는데 The Stone Roses와 Happy Mondays가 그들이다. The Stone Roses는 전통적인 키타팝 밴드이다. 그들의 노래는 느슨한 비트에 의해 뒷받침되는 팝튠에 가깝다. 그들의 노래는 어떤 면에서는 ’60년대 팝 – 그들이 Simon & Garfunkel의 노래를 리메이크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것 – 의 현대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Happy Mondays는 래퍼의 쌤플링에 비틀즈풍의 코러스와 음습한 싸이키델릭 댄쓰를 뒤섞었다. 이런 전혀 다른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두 밴드는 acid-house의 음악과 문화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룹의 인기가 높아져감에 따라 영국 언론들은 이 두 밴드를 – 그리고 비슷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The Charlatans와 Inspiran Carpets을 묶어서 – “Madchester”라 이름지었다.(밴드 멤버들이 다소 헐렁한(baggy) 옷들을 즐겨입었기 때문에 “Baggy”로 알려지기도 했다) Madchester는 수년간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뒤 이들 밴드들의 레코드사와의 계약문제로 인한 앨범 발표 지연, 마약문제 등으로 인하여 서서히 인기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들의 영향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얼터너티브씬에서조차) 그러나 Madchester의 후손들은 – 컨템포러리와 클래식팝의 격돌에 영향받은 Oasis, Pulp, Blur 등 – ’90년대 중반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The Stone Roses

Stone Roses-17-07-2012 Milan.JPG
Stone Roses-17-07-2012 Milan” by Alfio66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결성 : 1985년 영국 맨처스터
해체 : 1996년(최근 재결성)
멤버 : Peter Garner, Ian Brown, Mani, Reni, John Squire, Aziz Ibrahim, Robert Maddox, Andy Couzens

80년대 댄스비트에 대한 이해와 함께 60년대 스타일의 기타팝이 맛물려 스톤로우지즈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영국 기타팝 씬을 정의하였다. 데뷰앨범은 맨체스터사운드의 시조가 되어 영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1989년 계속해서 비슷한 맨체스터 사운들르 추구하는 the Charantas(U.K), Inspral Carpets와 the Happy Mondays와 같은 밴드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2집앨범을 내기까지 5년이나 기다려야 했고 2집 발매후 1년 반정도의 기간동안에 그들은 서서히 그 빛을 잃었다.

스톤로우지즈는 1985년에 학교룸메이트인 John Squire(기타)와 Ian Brown(보컬)이 만든 맨체스터에 기반을 둔 밴드 English Rose로부터 탄생하게 된다. 스톤로우지즈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Squire와 Brown이 드러머 Reni, 기타리스트 Andy Couzens 그리고 베이시스트 Pete Garner를 영입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룹은 맨체스터 근교 창고에서 연습을 사직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룹은 전통적인 브리티쉬 60년대 기타 팝과 고쓰(Goth)록 냄새가나는 헤비메탈사이를 크로스어버시키기 시작한다. 1987년 Gouzens가 그룹을 떠나고 Ganer가 대신 그 자릴 대신했고 Mani가 뒤에 들어와 다시 기타를 맏는다. 그들의 첫번째 싱글 을 녹음하고 Thin Lne레코드의 주목을 받아 발매하게 된다. 87년이 끝나갈때 스톤로우지즈는 두 번째 싱글 을 발매하게 되었고 이 싱글은 기타팝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룹이 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을 설정해 주게 된다. 88년 가을에 밴드는 Silverstone레코드와 계약하게 되어 쉬운 곡조의 네오싸이키델릭 기타팝을 정의하게 되는 싱글 을 발매하게 된다.

발매후 얼마지나지 않아 본격적인 스톤로우지즈 시대를 열었다. 1989년 초 그룹은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의 공연이 모두 매진되는 성황을 이룬다. 5월달에 스톤로우지즈는 역사적인 앨범인 그들의 셀프타이틀 데뷰앨범을 내었고 그것은 60년대 기타 사운드의 편애성 뿐만아니라 컨템포러리 애시드 하우스의 리드믹한 감수성까지 보여 주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지만 곧 영국에서 그들과 유사한 사운드로 묶을 수 있는 밴드들이 나타나게 된다. 여름이 끝나기 전 스톤로우지즈는 록 앤 록과 애시드 하우스 문화를 융합한 맨체스터 사운드를 이끌게 된다. 세번째 싱글 는 처음으로 여름이 끝나기 전에 Top40에 오른다. 그리고 11월에 가 8위에 링크 된다. 를 발매하기전 그들은 Widnes의 Spike Island에서 자신들의 페스티발을 만든다. 그 콘서트에는 3만명 이상이 모여들었고 향후 5년동안 영국에서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란 것을 알게 해 준다. Spike Island이후 스톤로우지즈는 Silverstone 레코드와 법적 싸움에 말려들게 된다.

그룹은 Silverstone레이블을 떠나기 원했으나 레코드사는 그룹이 어떠한 앨범발매와 활동을 막는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 다음 2년 동안 밴드는 레코드사와 싸우는 동안 2집준비를 하게 되나 법정문제 때문에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는 동안 몇 몇 메이저 레이블은 비밀스럽게 밴드와 협상한다. 1991년 3월에 소송은 끝이 나게되고 두 달후 그들은 Silverstone에 대한 소송에서 완전이 이겨 케펜 레코드와 계약을 한다. 다음 3년동안 스톤로우지즈는 미완성 태잎을 남겨둔채 2집작업을 드디게 진행시킨다. 이 기간 동안 그룹은 언론에게 노출되는 것을 자제하고 축구를 관전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 신비감을 유지하게 된다. 마침내 1994년 봄, 그룹은 앨범을 완성시키고 게펜은 스톤로우지즈의 2집 SECOND COMING을 가을에 발매한다. 밴드의 컴백 싱글 는 11월 초에 Radio One에서 처음 들려진다. 이 싱글은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Top10에 몇 주 밖에 머무르지 못한다. 스톤로우지즈는 1995년 초 앨범홍보를 위한 국제적인 튜어를 계획하게 되나 막판에 몇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튜어떠나기 전에 Reni가 탈퇴함으로 드러머없이 튜어를 하게 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Rebel MC에서 연주했던적이 있던 Robbie Maddix를 영입하고 영입후에 또 다시 John Squire가 오토바이사고로 쇄골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해 이것을 마무리 짓고 난 다음에야 짧은 일정으로 미국튜어를 할 수 있었다. Squire의 사고로 25회 Glastonbury 페스티발에 헤더라이너로 초청된 것을 취소 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영국에서 데뷰앨범 발매후 5년동안의 첫 콘서트가 될뻔 했다. Squire가 회복할때 쯤에는 이미 스톤로우지즈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동료들, the Charantas(U.K), the Happy Mondays를 만들었던 보컬리스트 Shaun ryder등은 예상치 않았던 성공적인 컴백에 존경의 표시를 한다.

스톤로우지즈는 1995년이 끝나갈 즈음 1990년 이후로 처음있는 영국튜어를 하기전에 키보디스트를 영입하고 떠난다. 96년 봄에 John Squire는 좀더 활발한 밴드활동을 위해 새 밴드를 결성하고 스톤로우지즈를 탈퇴할 것을 알린다. 스톤로우지즈는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그들의 의지를 불태우나 그해 10월에 밴드를 해체 시킨다. Squire는 새밴드 Seahorses는 97년 6월 데뷰앨범을 발표했고 그러는 동안 Brown은 솔로 데뷰앨범 UNFINISHED MONKEY BUSINESS를 98년 초에 발표하게 된다. 스톤로우지즈는 맨체스터 사운드의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인 밴드이며 그들의 데뷰음반은 영국역사상 가중 뛰어나 데뷰음반으로 칭송받고 있다.

The Gate Of Rock(http://my.netian.com/~clubnono)에서 펌

디스코그래피
1989 The Stone Roses[US]
1989 Stone Roses [UK]
1994 Second Coming

링크
www.thestoneroses.co.uk

Happy Mondays

결성 : 1985년 영국 맨처스터
해체 : 1992년
멤버 : Paul Davis, Paul Ryder, Shaun Ryder, Gary Whelan, Mark “Cow” Day, Bez

스톤 로우지즈와 함께 해피 먼데이즈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매드체스터 씬의 댄스클럽에 영향력을 행사한 선두주자였고1992년 씬이 쇠약해지고 난후에도 잠시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햇었다. 스톤 로우지즈가 60년대 팝을 기반으로 하는 동안 해피 먼데이즈는 댄스 음악적 요소를 가미함으로 클럽과 레이브 문화에 열중하게 되었고 곧 환각적인 씬의 가장 인정받는 밴드가 되었다. 해피 먼데이즈의 음악은 사운드의 헤비함과 하우스 뮤직의 리듬에 바탕을 두고 70년대 소울적 삽입장식음과 60년대 싸이키델릭을 섞어 넣었다. 그래서 귀에 속속 들어오는 노래들로 밝고 컬러풀한 음악이 되었다.

무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해피 먼데이즈는레이브 문화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다. 그들은 악한 존재였지만 순수했으며 단순하였다. 즉 어떠한 약물문화의 표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차용했고 이것은 심지어 영국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레이브 씬에 외관상으로는 일조하였다. 보컬리스트 Shaun Ryder의 리더쉽아래 그룹의 사운드와 활동들은 마치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동료 스톤 로우지즈와는 대조적으로 갱(Gang)같았다. Ryder의 가사는 기괴한 팝문화의 영향과 험악한 섹슈얼리티를 더해 뒤틀리고 초현실주의적 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적당하게 타장르의 음악을 섞어 사용하였다. 그래서 힙합테크닉을 접목시킨 최초의 록 밴드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즉 샘플링은 하지 않았지만 곡의 진행과정에서 멜로디와 가사를 차용했다. 그들의 거칠고 과도한 모습들의 추구는 약물의 효과에 적절히 희석되었지만 놀랍게도 케미컬 브라더스에서 부터 오아시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88년 그들의 앨범 BUMMED는 해피 먼데이즈나 리더싱어 Shaun Ryder를 영국에서 수퍼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90년에 발매된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가장 창조적이였고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미국 앨범차트 Top100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국만큼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그후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YES PLEASE가 발매되었고 매드체스터 사운드는 대중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비록 그들의 앨범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하더라도 앨범 발매후 2년동안은 상압적 타협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중의 관심도 떨어졌으며 Shaun Ryder는 헤로인에 중독되게 되었고 밴드로 부터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Hight – Level레코드와 계약후 Shaun Ryder는 헤로인으로 밴드를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룹도 해체되었다. Shaun Ryder와 해피 먼데이즈의 전속댄스인 BEZ는 90년대 중반 Black Grape로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밴드는 평론가들로 부터 호평을 받은 데뷰앨범 IT’S GREAT WHEN YOU’RE STRAIGHT….YEAH!를 95년 늦여름에 발매하였다. Black Grape의 사운드는 해피 먼데이즈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했다. 단지 사운드와 가사에 있어서 조금 강렬해지고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디스코그래피
1987 Squirrell & G Man Twenty-Four Hour Party…
1988 Bummed
1990 Pills ‘n’ Thrills & Bellyaches
1991 Live
1991 Baby Big Head Bootleg Album
1992 Yes, Please
1999 Pills ‘n’ Thrills & Bellyaches [Japan]

Charlatans

80년대 초반 등장하여 영국 전역을 초토화시킨 더 스미스는 맨체스터 출신이었다. 스미스의 출현이후 단지 대규모 공업지대에 지나지 않았던 맨체스터는 음악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조류-일명 매드체스터-를 형성하는 지역이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소위 매드체스터라고 불리는 일군의 음악적 흐름을 조성했던 네 밴드-스톤 로지스,해피 먼데이스,인스파이럴 카펫츠,샬라탄스 -는 60년대 비틀즈에 기반한 정통 기타팝과 사이키델릭 사운드,그당시 클럽가에서 유행하던 애시드 하우스 뮤직 등을 융합한 독특한 형태의 음악을 제시하였고 이들의 음악은 80년대 후반 영국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매드체스터 씬의 후발 주자로 매드체스터 씬이 최고의 절정을 이루고 있을때 시장에 뛰어든 샬라탄스는 스톤 로지스나 해피 먼데이스 등 배기 사운드의 선배 들과는 조금 다른-댄서블한 비트에 하몬드 오르간의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접목 한-음악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매드체스터의 마지막 보루 샬라탄스는 88년 말에 맨체스터 남부의 노스위치에서 결성되었다.초기의 라인업은 존 브룩스(D),마틴 블런 트(B),롭 콜린스(K),존 베이커(G),바즈 케틀리(V)이었다.스톤 로지스의 오프닝 밴드 로 활동하던 이들은 좀더 카리스마를 가진 보컬을 찾아나서게 되고 결국 오디션에 합격된 새로운 보컬은 ‘믹재거의 입술을 가진 남자’라고 불리는 팀 버제스가 되었다.


팀 버제스가 보컬로 영입된 후 샬라탄스는 89년 데뷔 싱글 ‘INDIAN ROPE’를 발표한 다.팀 버제스의 독특한 보컬과 하몬드 오르간을 전면에 배치한 새로운 사운드로 평 론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처음 발매한 싱글이 2만 5천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 록한 후 샬라탄스는 여러 메이저 레코드사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지만 결국 자신들의 활동에 편리한 밴 한대를 받는 것을 추가 조건으로 하고 인디 레코드 회사인 베가스 뱅큇과 계약을 맺는다.


새로운 싱글’THE ONLY ONE I KNOW’는 싱글차트 9위에 진입하고 데뷔 앨범’SOME FRIE ND’는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그러나 기타리스트인 존 베이커가 음 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를 하게되고 한때 인스파이럴 카펫츠의 운전수로 일한 적이 있는 마크 콜린스가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영입된다.


새로운 라인업으로 발표한 ‘WEIRDO’라는 유명한 싱글이 들어있는 2집 ‘BETWEEN 10TH AND 11TH’는 1집 때보다 좀더 팝적인 성향이 강한 스타일의 앨범으로 샬라탄스 사 운드의 핵이었던 롭 콜린스의 유려한 하몬드 오르간 사운드가 주목할만하다. 2집의 상업적 성공 이후 3집 앨범 녹음 작업중 키보디스트 롭 콜린스가 무장강도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는데 이때문에 샬라탄스는 3집을 키보드를 제외한 부분을 먼 저 녹음하고 롭의 출소를 기다린뒤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 생한 3집 앨범’UP TO OUR HIPS’는 전의 앨범들보다 좀더 테크노에 가까운 형태를 보여준다.


3집을 발표한 이후 영국 음악계에는 변화가 생긴다.기존의 매드체스터 씬은 서서히 소멸해가고 있었고 오아시스를 필두로 한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조성되고 있었던 것 이다.소위 ‘브릿팝’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이 기타팝의 부상은 매드체스터 씬의 마지막 보루였던 샬라탄스에게도 자극이 되었고 95년 발표한 4집 앨범’CHARLATANS’ 는 기존의 키보드 사운드보다는 기타가 중시된 형태가 되었다.롤링스톤즈의 정통 락 과 애시드 하우스를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평단의 호의적인 태도와 함께 이 앨범은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공에 이어 찾아온 큰 시련이 샬라탄스를 덮쳤다.키보디스트 롭 콜린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샬라탄스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롭 콜린스의 사망은 샬라탄스 에게 굉장한 위기였다.팀의 해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멤버들은 어찌되었건 작 업을 하고 있던 앨범을 마무리지었고 키보드는 프라이멀 스크림의 마틴이 대신 녹음 을 해주게 되었다.


이렇게 발매된 5집’TELLIN’STORIES’는 롭 콜린스를 애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자켓을 달고 발매되었고 많은 팬들과 음악 잡지의 우려와는 달리 별로 변하지 않은 바로 그 ‘샬라탄스 사운드’를 들려주었다.이 앨범 역시 발매 첫주에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동안 몸담았던 베가스뱅큇 레이블과 결별한 샬라탄스는 MCA와 새롭게 계약을 맺었 으며 토니 로저스가 새로이 키보드에 영입되었다.롭을 위해서라도 결코 밴드를 해산 시키지 않겠다던 밴드의 다짐이 현실화된 것이다. 현재 샬라탄스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올해 베가스뱅큇에서 그동안 발매된 샬라탄스의 싱글들과 앨범 수록곡들을 모아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Written by 오키스(유니텔 뮤직플러스)(1998. 9.17)


디스코그래피
댄서블한 리듬 위에 얹힌 팝적인 멜로디,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올갠 사운드, 간간히 눈에 띄는 도취적인 사이키델리아 등을 담고있던 샬라탄스의 음악은 맨체스터 붐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으며 이 인상적인 데뷔앨범은 영국차트 1위에 올랐다. 이들은 [Between 10th And 11th](92), [The Charlatans](95) 등의 수작들을 비롯해 베스트앨범 [Melting Pot](97)을 계속해서 발표하며 브릿팝씬을 주도해 나갔다. 본작을 발표하기 직전 미국에 동일한 이름의 밴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밴드명을 ‘Charlatans UK’라고 개명했다.

1990 Some Friendly Beggars
1992 Between 10th and 11th Beggars
1994 Up to Our Hips Beggars
1995 The Charlatans [UK] Beggars
1997 Tellin’ Stories MCA
1999 Us and Us Only Uptown/Univers
2000 Us and Us Only [Import Bonus Tracks] Universal

링크
공식 홈페이지

808 State

Acid House Sound(Acid House는 House 음악과 마약과의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 창출된 슬랭 : 필자주)의 선구자인 808 스테이트(808 State)는 1988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되었다. 도시의 유력한 레코드 상점인 Eastern Bloc의 소유자이자 독자적인 레이블인 Creed의 창설자 마틴 프라이스(Martin Price)가 지역 뮤지션이자 제작자인 그레이엄 마세이(Graham Massey)와 결합하면서 처음으로 팀이 만들어졌다.


이후 협력자인 제랄드 심슨(Gerald Simpson)과 팀을 결성한 후 808 스테이트는 1988년 그들의 데뷔 EP 앨범인 [Newbuild]를 내놓았다. 또한 인스피럴 카펫(Inspiral Carpets)과 같은 그룹의 리믹스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심슨은 팀에서 나와 솔로 프로젝트인 가이 콜드 제랄드(A Guy Called Gerald)를 진행한다.


프라이스와 마세이는 스핀마스터스(Spinmasters)로 잘 알려져 있는 DJ 앤드류 바커(Andrew Barker)와 대런 패팅턴(Darren Partington)을 기용하여 89년 EP [Quadrastate]를 녹음하고, ‘Pacific’이라는 트랙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같은 해 이들은 ZZT 레코드사에서 새로운 레이브 문화의 출현을 받아들인 앨범 [90]을 발매했다. 힙합 MC인 Tunes와 함께 녹음한 808 스테이트의 다음 싱글 ‘The Only Rhyme That Bits’는 하드 코어 랩으로의 극적인 방향 전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또 다른 히트작이 되었다.


뒤이은 다양한 싱글 시리즈는 뉴 오더(New Order)의 버나드 서너(Bernard Sumner)와 뷰욕(Bjork)이 객원 보컬로 참가한 1991년 앨범 [Ex:El]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 해 808 스테이트는 MC Tunes의 LP [The North at Its Heights]의 음악을 연주하고 제작하기도 하였다.


1992년 마틴 프라이스는 솔로 프로듀서로 전업하였으며, 이후 그 자신의 레이블인 Sun Text를 설립했다. 남은 멤버들은 활동을 계속하여 1993년 Gorgeous와 함께 David Bowie, Soundgarden, Bomb the Bass 등의 리믹스 작업을 진행하였다. 1996년에는 실험적인 앨범 [Don Solaris]를 발표하였으며, 2년 후인 98년에는 베스트 앨범인 [808:88-98]을 내놓았다.

디스코그래피
Newbuild 1988
808 Utd. State 90 1990/06
Ex:El 1991/05
Gorgeous 1993/01
Don Solaris 1996/06
Thermo Kings

관련링크
http://www.808st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