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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Secada / Jon Secada

80년대 팝씬에서 팝화된 라틴음악, 소위 라틴팝이라고들 하는 음악을 들려주며 성공가도를 달렸던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그들의 인기비결은 무엇보다도 라틴음악을 하는 가수가 별로 없던 시절의 ‘희소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미모도 한몫 했겠지만..) 90년대 후반 느끼마틴 열풍으로 우리나라에서까지 라틴팝이란 생소한 장르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 열풍은 사실상 80년대 한동안 퇴조하고 있던 라틴음악을 다시 현대적으로 부흥시킨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의 공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 점 때문에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은 몇몇 한계 – 그 노래가 그 노래, 글로리아의 가창력은 평균이하 – 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론가들에게선 좋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를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존 세카다입니다. 존 세카다는 인기면에서 80년대 후반의 MSM, 90년대 후반의 리키마틴에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그리 뜨거운 반응을 얻은 건 아니었지만, 두 세대의 음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아티스트입니다. 그리고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의 실력파이구요…

쿠바 태생의 존 세카다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백보컬로도 활약하며 다졌던 가창력과 작곡 실력을 발휘하며 1992년 솔로로 데뷔했습니다. 그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인 이 작품엔 총 1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Just Another Day”와 “Do You Believe In Us?”, “Angel” 등이 싱글차트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Just Another Day”의 인기는 상당했는데 국내보다는 미국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고 하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보다 훨씬 한국형 발라드에 가까운 “Angel”이란 곡이 라디오에서 곧잘 흘러나왔구요…

이 앨범이 주는 느낌은 한마디로 ‘세련미’입니다. 무엇보다도 특히 사운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라틴음악 특유의 토속적이고 다양한 악기 편성(이 앨범처럼 온갖 악기가 다 등장하는 작품도 드물 것 같아요)과 90년대 초반 메인스트림을 지배하던 팝사운드가 적절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라틴음악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타악기들의 리듬감이 주는 매력, 중간중간 양념처럼 배어있는 스패니쉬 기타 그리고 브루스 혼즈비의 곡에서 들을 수 있는 깔끔하면서도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 ‘도시적이다’라는 말을 연상케 하는 작품인데 “Dreams That I Carry” 같은 곡에선 약간의 펑키함마저 느껴집니다. 사운드면에서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히트곡들을 떠올리시면 적합할 듯 한데, 그녀의 곡들이 뛰어난 사운드 편성에 비해 가수의 목소리와 곡 멜로디에 이렇다할 매력이 없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세카다의 목소리는 반주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힘과 굵기가 있어 앨범의 사운드를 더욱 살려줍니다.

그의 보컬은 확실히 훌륭합니다. 칼로 자른 듯 명확한 음정조절, 분위기 있는 저음, 고음으로 올라갈 때 어딘지 힘겨운 듯 들리면서도(이상하게도 이 점이 매력이란 말이죠~^^) 시원스럽게 뻗어나가는 느낌, 그리고 간간이 들을 수 있는 높은 키의 하이노트… 제임스 인그램과 프린스를 합친 보이스 컬러라고나 할까요? 트렌스 트렌 다비같은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특히 라이브 트랙으로 수록된 “Always Something”는 넓은 폭의 음역을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노래솜씨에서 다이내믹함을 느껴지는 곡이죠. (마치 리사 피셔의 곡을 듣는 기분이에요.) 히트곡은 두세곡 정도였지만 앨범 여기저기에 숨은 보석이 많습니다. 멜로디보다는 프로듀싱이 뛰어난 곡이 많은데 그런 탓인지 처음 들었을 때보다는 여러 차례 반복해 들으면서 더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총 12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끝의 두 곡은 각각 “Just Another Day”와 “Angel”의 스페인어 버전입니다. (이 앨범은 똑같은 내용물로 스페인어 버전으로 앞서 발매된 바 있습니다. 표지가 참 머시기 하더군요…)

조용한 가운데 절제미가 느껴지는 미드템포의 곡 “Time Heals”, 경쾌하고 기분 좋은 느낌의 곡 “Do You Believe In Us?”, 세련된 리듬감과 깔끔한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I’m Free” 등은 수준작이며, “One Of A Kind”는 음산한 가운데 흑인 합창단의 백코러스와 플룻 연주가 곡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역시 존 세카다를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는 “Just Another Day”가 앨범에서 가장 잘된 곡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이 곡은 특히 공명이 풍부한 스테레오로 들어야 제맛이 나는데 얼마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입니다… 앨범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더없이 아끼는 곡인 “Angel”… 정말 너무나도 멋진 곡입니다. 가을비가 내리는 느낌을 주는 피아노, 갈색으로 채색된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애절한 멜로디. ^^

이 앨범을 다 듣고나면 내용도 알차지만, 전반적으로 그리 자극적인 멜로디를 사용하지 않고 성실하게 곡 자체가 주는 느낌에 충실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에밀리오 에스테판이 일등공신이겠죠.) 존 세카다의 이 앨범은 90년대 초 가장 성공한 라틴팝 앨범 중 하나로서 판매면에서도 좋은 실적을 올렸죠. (300만장 판매) 이후 앨범들에서도 “If You Go” 등의 히트곡을 내긴 했지만 (라틴팝 스타들이 흔히 그렇듯) 시간이 갈수록 지나치게 팝화되어가는 음악 때문인지 그의 인기도 턱없이 식어버렸죠. 묻혀버리기엔 참 아까운 가수인데…

90년대 초 앨범이지만, 들을 때마다 (적어도 저에게는) 80년대 음악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앨범이라 추천해보았습니다. 존 세카다를 잊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이 겨울밤, 오랜만에 “Angel”을 들어보시면서 낙엽쌓인 거리를 혼자 걸어가는 고독한 남자를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오늘도 슬슬 옆구리가 시려오기 시작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JH)

01 Just Another Day
02 Dreams That I Carry
03 Angel
04 Do You Believe In Us
05 One Of A Kind
06 Time Heals
07 Do You Really Want Me
08 Misunderstood
09 Always Something
10 I’m Free
11 Otro Dia Mas Sin Verte
12 Angel (Span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