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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전편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독특한 캐릭터와 묘한 스토리로 신세대 일본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2003년 발표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라 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여교사에서 천재작가의 동거녀, 창녀, 이발사, 야쿠자의 동거녀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고향의 강을 닮은 도쿄의 어느 강가에서 외로이 죽어간 마츠코란 한 인물의 삶을 조카의 눈을 통해 재조명한 작품. 언뜻 들으면 굉장히 비장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가 연상되지만 – 실제 원작도 그러하겠지만 – 나카시마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뮤지컬을 통한 형식적 실험, 배우들의 슬랩스틱 연기 등을 통해 희극과 비극이 짬뽕된 MTV 정서의 오락물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화려한 껌종이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감독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문을 잘못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정을 두고 만들었다 하니 상당히 악취미다. 개인적으로 모모코와 마츠코 중에 어느 쪽이 맘에 드는지 묻는다면 모모코를 택하고 싶다. 마츠코는 전형적인 비련의 주인공인 캐릭터라 머리 조금만 굴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지만 로로코 풍의 옷을 좋아하며 폭력배에게 굴하지 않는 공주 스타일의 여자라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런 캐릭터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 있으니 더 말할 나위없으리라.

Shopgirl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은 거의 없었다. 스티브 마틴의 퉁퉁 부은 얼굴과 짜증나는 진지한 연기, 클레어 데인즈의 거칠어진 얼굴골격, 그리고 클레어 데인즈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이름모를 배우의 그 짜증나는 캐릭터, 결정적으로 스티브 마틴이 직접 썼다는 어설픈 줄거리로 그 스스로가 어설픈 LA 판 우디 알렌이 되려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1990년작 L.A. Story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엿보이기는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우디 알렌 조차 자기 스스로 로맨스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한 21세기에 스티브 마틴이 본업인 슬랩스틱을 포기한 채 중후하고 로맨틱한 중년이 되고자 하다니! Lost In Transition 이 빌 머레이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준 사례라면 이 영화는 스티브 마틴의 월권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이다.

Slaughterhouse-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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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City on Fire. Licensed under Wikipedia.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이미 솜씨 좋은 원작이 지니고 있었을 멋진 개성이 ‘스팅’이나 ‘내일을 향해 쏘아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오리엔트의 세계’를 감독했던 거장 조지로이힐의 뛰어난 연출력과 만나면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에 전쟁포로로 머물렀던 Billy 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의 살육에는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제목 제5도살장(Slaughterhouse Five)은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이기도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난 후의 드레스덴의 처참한 몰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Five 라는 단어는 마치 우주선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illy 가 나중에 찾아가게 되는 – 또는 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 트래팔마도어의 달표면과 같은 거친 표면은 또 바로 폭격 직후의 이 드레스덴을 연상시킨다. 그 황량한 별에서의 Billy 의 새로운 사랑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굴렌굴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눈길을 걸어가던 Billy 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오랜 여운을 남기며, Catch 22 나 M.A.S.H 같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삼총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다른 영화평

서평

Pride and Prejud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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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andprejudice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Focus Features.. Licensed under Wikipedia.

극중 인물 엘리자베스 베넷이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캐릭터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하지만 안 끌리는 – 역시 무엇보다도 너무 못생겨서(?!) – 콜린스보다는 언젠가 자신을 확 잡아당겨줄 사랑할 남자와 함께 하고 싶다는 그녀. 로맨틱코미디에서 신물 나게 보아온 인물상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19세기 초반 여성작가가 쓴 소설에서 등장했다면 꽤나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1813년 여류작가 제인오스틴이 발표한 이 작품은 이성관계의 연결고리를 지위나 재산으로 보기보다는 둘 사이의 감정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을 법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산층 이하의 영국여인에게 결혼이란 로맨스의 귀결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밥벌이인 동시에 가족부양의 주요한 수단 일만큼 절박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한정상속’이라고 하여 여자에게는 상속권이 없었고 가장 가까운 남자친척 – 극중에서는 콜린스 – 에게 상속권이 있었다고 할 만큼 여성의 지위는 보잘 것이 없었기에 고소득의 직업군이 있을 리 없을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이외에 다른 대안이란 있을 수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혼기가 차자 청혼을 받았으나 남자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면서 평생을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니 결국 엘리자베스는 사랑이라는 너무 위험한 베팅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지라 극 초반 다섯 자매의 호들갑은 충분히 이해할법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을 예쁘게 포장하여 무도회장이라는 시장(市場)에 내놓아 검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무도회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맏딸 제인이 빙리의 뇌리에 꽂혔고 엘리자베스는 어디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시큰둥하기만 한 달시와 어색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이후 진행되는 스토리는 그야말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형이라 할 만한 장르적 형식, 즉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오만한 달시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 주위에서도 다들 서로 싫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미묘한 긴장감, 그 뒤로 그들을 받쳐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시대극의 충실한 재현이 볼거리를 만들어준다.

1940년대부터 영화화되기 시작하여 1995년 BBC에서 시리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고 그 뒤에 원작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브리짓존스의 일기’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라 2005년 영화화에 많은 이들이 그 성과에 대해 반신반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엘리자베스역의 배우가 맘에 들지 않는다. 너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약간 나온 턱이 시종일관 눈에 밟혔다.(-_-;) 아버지 역으로 나온 도널드서덜랜드는 극 내내 변변히 등장도 못하다가 말미에 엘리자베스의 결혼소식에 눈시울을 붉히는 철촌살인의 명연기를 보여준다.

18세기 페미니스트라 할 만한 제인 오스틴, 그리고 그의 알터에고였을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결혼에 성공하였고 제인 오스틴은 당시에는 찬밥 대우를 받았으나 오늘날 영국에서 세익스피어 다음으로 최고의 문학가로 손꼽히고 있다한다. 둘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사랑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이 결혼의 필수조건이라는 모던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가 좌절했을 많은 여성들에게 원작은 오히려 여성해방 지침서가 아닌 싸구려 로맨스 소설로 간주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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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인생을 마음대로 정지시키거나 리워드, 포워딩 시킬 수 있는 리모트콘트롤이 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를 가래떡 뽑듯 죽죽 뽑아낸 아담샌들러 주연의 무난한 가족 코미디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스크루지와 비슷한데 다만 스크루지의 고용인이 겪었을법한 스토리다.

호색한이자 못된 고용주인 Mr. Ammer –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로 ‘전격 Z작전’의 데이빗핫셀호프 – 아래서 실력은 뛰어나지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Michael Newman 은 아이들과의 캠핑 약속도 못 지킨 채 일에 몰두한다. 어지러이 널려진 온갖 리모트콘트롤에 화가 치민 Newman 은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을 가능케 한다는 유니버셜 리모트콘트롤을 사기 위해 할인점에 들른다. 가게 뒤편의 이상한 방에서 만난 Morty는 – 역시 반가운 얼굴로 크리스토퍼웰켄 – 그에게 최신형 디자인의 이상한 리모트콘트롤을 주는데 이 물건은 전자기기뿐 아니라 Newman 의 인생까지 조절해주는 기막힌 물건이었다. 덕분에 Newman 은 피하고 싶은 상황은 포워딩하면서 인생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기계가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여만 간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이 영화역시 스크루지처럼 Newman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면서 인생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리고 가정을 팽개친 채 일에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설교하고 있다. 아담샌들러는 늘 그렇듯이 무난한 자신만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영화는 마치 그의 맞춤양복처럼 아담샌들러를 중심으로 편안하게 진행된다. 곳곳에 배치된 이지리스닝 계열의 80년대 팝 – 특히 The Cars 의 음악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있다 – 이 이 ‘무난’표 영화에 한 몫 하고 있고 Newman 의 아내역을 맡은 케이트버킨세일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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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

The Jerk

스티브 마틴은 찰리 채플린이 아니다. 우디 알렌도 아니다. 그에게서 찰리 채플린 식의 사회비판 정신과 페이소스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또한 우디 알렌 식의 도시우화도 기대하면 안 된다(물론 직접 시나리오 작업까지 참여한 L.A. Story에서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의 주전공은 아니다). 그는 그보다는 차라리 부조리한 상황설정을 통해 휘발성의 웃음을 선사하는 – 때로는 어이없기까지 한 – 개그맨에 가깝다. 일부 평자들은 이런 유의 웃음을 깊이가 없다며 비판하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코미디언의 본분이라는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그가 가장 재능 있는 코미디언중 하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The Jerk 는 그런 스티브 마틴의 매력이 잘 배어나오는 코미디다. 가난한 흑인 소작인의 집안에서 자라나 자신이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온(!) Navin R. Johnson (Steve Martin)은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영감을 얻어 집을 떠나 도시로 간다. 우연히 얻은 일자리는 주유소 직원. 이 주유소에서 그는 우연히 안경이 흘러내리는 것을 불평하는 손님의 안경에 작은 장치를 달아 불편을 없애준다. 이후 연쇄살인자에게 쫓기고, 새로 얻은 직장인 서커스단에서 만난 스턴트우먼에게 성적학대(?)를 받고, 마침내 아름다운 미용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다. 그 와중에 네이빈이 만들어준 안경으로 특허를 내어 성공한 손님이 그를 찾아 엄청난 수익금을 안겨줌으로써 일약 백만장자가 된다.

섹스가 무엇인지도 몰라 첫경험을 가족들에게 자랑하기까지 하는 멍청이 네이빈이 겪는 좌충우돌 인생사는 한참 후에 로버트 제메키스에 의해 만들어진 포레스트검프를 연상케 한다(물론 각각의 작품이 함의하는 메시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확실히 짐캐리 등이 주연한 덤앤더머는 스티브 마틴이 창조한 이 바보 캐릭터의 영향권 아래 있다(짐 캐리의 초기 캐릭터들은 스티브 마틴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동시대에서 그의 연기스타일과 비교될 수 있는 이는 몬티파이튼의 친구들, 특히 존 클리스를 들 수 있다.

스티브 마틴이나 그의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앞서의 두 위대한 코미디언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스티브 마틴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실히 기대에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연기자이다. 더구나 연기인생 중반기 이후부터는 출연작의 시나리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가로서의 능력도 증명하였다.

Monsieur 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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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ieur Hire” by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4755/photos/detail/?cmediafile=18658504. Licensed under Wikipedia.

철없는 금발미녀 Alice는 건달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다. 바로 길 건너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외모의 독신자 Hire 씨의 취미는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틀어놓은 채 Alice(Living Next Door To Alice?)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취미(?)의 Hire 씨는 경찰로부터 또 다른 금발미녀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어느 번개 치는 저녁에도 Alice 를 훔쳐보던 Hire 는 그만 Alice 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만다. 그러나 대범하게도 Alice 는 Hire 에게 접근하여 그를 은밀히 유혹한다. 너무 사랑하여 감히 그녀를 손댈 수 없는 Hire 는 그녀의 향수와 같은 종류의 향수를 음미하며 그녀를 회상한다. 왜 Alice 는 보잘 것 없는 Hire 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이것이 살해사건과 함께 또 하나 영화가 던져주는 미스터리다.

우리에게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Hairdresser’s Husband)”로 유명한 Patrice Leconte 감독이 그 영화를 만들기 한 해 전에 만든 작품이다. 스릴러라는 장르 형식을 띤 작품으로서는 이채롭게도 화면과 내러티브는 나직하고 은근하다. 그것은 Alice 를 사랑하는 – 그 사랑이 관음증적 사랑이라는 왜곡된 형태이기는 하여도 – Hire 의 고단한 일상을 소묘하기에는 그만이다.

Hir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Alic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아니면 그 둘은 선택할 다른 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The Sand Pebbles

Sound Of Music 으로 유명한 Robert Wise 감독이 Richard McKenna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Sound Of Music 을 제작한 이듬해인 1966년 만든 반전(反戰)영화이다. 시대는 1926년 혼란기의 중국에 정착 중인 San Pablo 라는 군함 – 선원들은 이 이름 대신에 조약돌이란 뜻의 Sand Pebbles 라고 부른다 – 에 배속된 Jake Holman(Steve McQueen)은 군인정신 투철한 군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배의 엔진에만 관심이 있는 엔지니어를 자처한다. 여정 중에 만난 아름다운 여인 Shirley Eckert(Candice Bergen)에 연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인 성격 탓에 극 초반 더 이상의 로맨스는 진행되지 않는다.또한 이러한 그의성격 탓에 동료들 중에서도 유일한 친구는 Frenchy(Richard Attenborough)뿐이었고 함장인 Collins(Richard Crenna)와도 충돌을 빚곤 한다. 

193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화면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중국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국민당 군인 등 중국인과 미군과의 갈등, Mailey라는 중국여인과 Frenchy 의 가슴 아픈 사랑, Jake 와 Shirley 와의 만남, Jake 의 억울한 누명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선상반란의 긴박감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극적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는 표면상으로 중국인 폭도들의 잔인함과 Collins 함장의 강직한 군인정신, 또는 신사도를 대비시켜 자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또 다른 이면에는 전쟁의 비참함과 부질없음을 깔면서 이 영화의 제작당시 자행된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헐리웃 주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감독과 작품 자체의 한계로 인한 타협으로 보이는데 Jake가 영화 말미 함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무정부주의적 성향의 선교사를 두둔하며 자신에게는 맞서 싸울 적은 없다고 선언하는 부분에서 감독의 제작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극중 등장한 San Pablo 호는 실존했던 군함이 아니라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에서 쓰였던 미군전함 Villa Lobos 를 모델로 홍콩에서 제작된 것이라 한다. 당시까지 중미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촬영되었다. Steve McQueen 은 이 작품에서의 호연 덕택에 생애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Phantom of the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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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 of the Paradise movie poster“. Via Wikipedia.

Brian De Palma 는 Carrie, Scarface, Dressed To Kill 과 같은 공포/스릴러/액션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가끔 Home Movies 와 같은 어처구니없는(그러나 배꼽 빠지게 웃긴) 코미디를 만들기도 했고 이 작품과 같이 지극히 컬트스러운 락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컬트>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만든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보다 한 해 먼저 만들어졌고, 그 영화의 주요캐릭터로 전대미문의 컬트적 캐릭터인 Dr. Frank N. Furter 와 상당히 유사한 Beef 까지 등장하니만큼 컬트적 요소는 두루 갖추었으나 그 명성은 The Rocky 에 훨씬 미치지 못하니 이야말로 진정한(!) 컬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악계의 흥행사 Phil Spector 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되는 Swan 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작곡한 Winslow 의 노래를 듣고는 그의 차기 프로젝트 Paradise 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Winslow 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그의 악보를 훔치고 그를 감옥에 처넣어버린다. 앙심을 품고 감옥을 탈출한 Winslow 가 Swan 의 레코딩을 방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로 그의 얼굴만 망신창이가 된다.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Swan 을 찾아가는데 Swan 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으로 그를 옭아맨다. 그리고 Winslow 가 맘에 들어 하던 여가수 Phoenix 가 노래를 하게 하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고 호들갑스러운 글램락 가수 Beef 가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를 안 Winslow 의 끔찍한 복수가 시작되고 이어 Swan 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대중음악계의 이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파우스트, 오페라의 유령 등의 에피소드와 결합되면서 좌충우돌의 컬트적 락뮤지컬로 태어났다. 영화속의 락밴드 The Juicy Fruits 나 Phoenix, Winslow 등이 들려주는 락넘버가 시원시원하다. Beef 역의 Gerritt Graham 은 Palma 의 초기작에 자주 등장하였고 후에 1979년 그의 또 다른 컬트 무비 Home Movies에서 완고하고 어이없는 청년 역으로 열연하였다.

The Four Feathers

A.E.W Mason 이라는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1939년 Zoltan Korda 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원작을 영화화한 네 번째 사례이자, 유성영화로는 첫 번째 만들어진 사례이다. 이후로도 TV 시리즈로 한번, 극장개봉작으로 또 한 번 영화화되었으니 총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비록 A.E.W Mason 이 헤밍웨이에 필적하는 훌륭한 소설가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소설이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의 어떠한 매력요소가 이토록 영상작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것은 영국의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활동이 극에 달하는 1800년대 말에 대해 영국인들 – 또는 서구인들 – 이 느끼는 강한 향수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 시기는 서구열강의 지도자로서의 영국이라는 위치, 이를 대변하는 영국인들의 강한 자긍심, 식민지 아프리카의 광대한 평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감 등 모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상이 추구하여야 할 매력요소가 이 시기에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병대 장교이기도 했던 감독 Zoltan Korda 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마흐디(Mahdi는 구원자 또는 영웅을 의미하며 실제 이름은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이끄는 반란군(?) 간에 벌어졌던 실제전투을 실제 전투 장소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양쪽의 병사까지 일부 써가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연출하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기법은 이후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답습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네 개의 깃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깃털은 겁쟁이를 상징한다. 주인공 Harry Faversham 은 영국군 장교로 수단으로의 파견을 얼마 두지 않은 시점에 불쑥 군을 떠나고 만다. 남은 친구 셋은 그를 겁쟁이로 간주하고 그에게 깃털 세 개를 보낸다. 남은 하나는 그의 약혼녀의 불신을 상징한다(1939년 작에는 약혼녀가 그에게 깃털을 주지 않았지만 2002년 작에서는 직접 준다). 바로 이 대목이 영화가 드라마의 형식으로써 가져야 할 기본갈등을 이루고 있다.

39년 작을 보면 Faversham 은 어릴 적부터 시를 읽기 즐겨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군인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억지로 군에 입대했을 뿐이다. 수단파견의 시점에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미련 없이 군을 관두고 만다. 반면 2002년 작에서는 집안의 강요는 동일한 설정이되 Faversham 의 아버지도 사망하지 않았고 다만 주인공은 약혼녀와의 결혼, 그리고 정말 수단파견이 겁이 나서 군을 그만두는 설정이다. 결과적으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39년 작이 보다 설득력이 있고 2002년 작은 이후의 어설픈 드라마 전개의 원죄로 작용한다.

영화가 계속 이어지려면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겁쟁이라는 비난에 반응하여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원작의 가장 어설픈 설정일 수도 있는데) Faversham 은 비난을 무시하는 대신 한 맺힌 깃털 세 개를 들고 수단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는 전쟁 중에 눈이 먼 그의 친구 John 과 감옥에 수감된 나머지 친구들을 구하고 결국에는 카르툼 요새를 수복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참 의아한 게 결국 친구들이 그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가 수단으로 갔어야 할 의의가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가다보니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고 그래서 영웅이 된 빈약한 개연성의 설정이다. 특히 2002년 작에는 Faversham 을 돕는 원주민이 등장하는데 그를 돕는 이유가 다만 신의 뜻이라고 말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이상에서 간단히 알아본 극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작을 포함한 이 영화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1930년 작) 에 등장하는 국수주의 부르주아들처럼 조국을 위해 몸 바치라는 허세에 반감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반전(反戰)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깃털 세 개의 치욕을 씻기 위해 군인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으로 제국주의 영국의 명예(?)를 수호한다.

에르제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땡땡이 콩고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열등민족에 대한 보호자적 지배를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명백한 한계이다. 때문에 언제까지 제국주의적 관점을 당연시할 수 없었던 2002년 작은 어설프게도 John 의 연설을 통해 Faversham 의 행동이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정을 위해 그러했노라고 변명을 한다. 어쩌면 여전히 이슬람을 적으로 몰아세워 난도질을 하는 다이하드 유의 액션물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Power of One 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백인 선지자의 역할은 놓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 작품이 또다시 영화화될 적에는 또 어떠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