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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1984), Mannequin(1987)

80년대 대중문화의 분위기를 표현하라면 무언가 잔뜩 부풀어 있고 유치한 듯 하면서도 흥겨웠던 분위기였다(물론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지극히 암울했지만). 특히 영미권의 대중문화는 흥겨운 뉴웨이브 음악, 어깨가 잔뜩 올라간 옷과 헤어밴드 등의 화려한 패션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껏 부추겼다. 영화 역시 이 시기에는 팝적인 분위기가 만발하였고 많은 대중취향의 영화가 장르를 불문하고 코믹하고 경쾌하게 그려졌다. 여기 소개하는 두 편의 영화 모두 그러한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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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ver2” by www.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Splash(1984)와 Mannequin(1987) 이 두 편의 영화는 당대의 스타였던 톰행크스, 앤드류맥카시, 다릴한나, 그리고 킴캐드럴(섹스앤더시티에서 밝히는 그 누님) 등을 주연으로 기용한 로맨틱코미디다. 이 두 영화는 또한 중요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연인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Splash 에서의 히로인은 인어이고 Mannequin 에서의 히로인은 마네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Splash 는 잘 아시다시피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그리고 Mannequin 은 그러한 맥락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일종의 현대판 로맨스 동화인 셈이니 영화가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익스큐즈해줄 설정이고 실제로 두 영화 모두 재미는 보장한다. 한편으로 두 영화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은막에서 재현하고 있는데 급진적인 여성해방론자라면 약간은 짜증이 날만도 한 스토리이다. 역시 다릴한나가 출연한 또 하나의 80년대 로맨스코미디 Roxanne 에서는 못생긴 남자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성공하는 데도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영화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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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quin movie 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etro-Goldwyn-Mayer.. Licensed under Wikipedia.

어쨌든 두 연인 모두 세간의 사람들에게 들킬 새라 조마조마한 사랑을 나누게 되고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아이디어의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극의 밀도감이나 폭소를 자아내는 몇몇 에피소드가 뛰어난 Splash 가 더욱 맘에 든다. 또 결국 남자가 여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를 따른다는 점에서도 약간은 여성해방론자의 구미에도 맞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 Splash 에서 영화 마지막에 감미로운 주제가 Rita Coolidge 의 Love Came For Me 가 깔리면서 두 연인이 해저를 헤엄치면서 인어왕국으로 가는 장면은 제법 감동적이다. 한편 Mannequin 의 주제가는 그 유명한 Starship 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 이다.

Clo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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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ckers film poster” by http://www.cduniverse.com/images.asp?pid=1282281&cart=757413591&style=movie&image=front&title=Clockers+DVD. Licensed under <a href="//en.wikipedia.org/wiki/File:Clockers_film_poster.jpg" title="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Clockers (film)“>Fair use via Wikipedia.

우디알렌의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이 되고 싶다는 스파이크리가 바라보는 뉴욕은 우디알렌이 바라보듯 그렇게 여유롭고 지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전쟁터다. 사는 게 전쟁이니 그 삶의 터전도 전쟁이다. 흑인들은 마약을 팔고 백인들은 마약을 산다. 마약을 파는 소년 Strike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는다. 마치 포르노배우가 가장 위생적으로 청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 대신 초콜릿무스를 수시로 마셔대는 통에 위장이 엉망이다. 그를 자식처럼 여긴다며 개뻥을 치는 마약상 Rodney는 그에게 사람을 죽여줄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암시였지 사주는 아니었다. 하여튼 살인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Rocco 형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Strike 의 형 Victor 가 자신이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나서는데 평소 행실이 발랐던 그의 말을 Rocco 형사는 믿지 않는다. 스릴러의 형식을 띤 흑인사회의 먹이사슬 보고서로 일관된 스파이크리의 정치적 행보는 마치 켄로치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흑인 우디알렌? Clocker 는 마약판매인 중에 가장 똘마니격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들을 일컫는 은어라고 한다. 총격으로 죽은 흑인들의 생생한 사진을 관객의 코 밑까지 들이대는 타이틀시퀀스가 충격적이다.

p.s. 영화포스터가 그 유명한 ‘살인의 해부’의 포스터를 차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Six Degrees Of Sep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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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ld Sutherland (1095412255)” by Alan LightDonald Suth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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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의 미국판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플랜 키트리지와 오이사 키트리지 부부는 미술품 거래상을 하면서 뉴욕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전형적인 상류층이다. 어느 날 그들의 투자자와 저녁식사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중 자신들의 자녀와 친구라는 한 흑인청년을 맞이하게 된다. 불쑥 찾아온 이 청년은 화려한 언변과 음식솜씨로 이들을 사로잡는데 스스로를 영화배우 시드니 포이티에의 아들 폴 포이티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이사는 다음날 아침 폴이 한 낯선 남자와 침실에서 완전나체로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둘을 내쫓는다. 이후 이들 주위친구들도 동일인물에게 비슷한 사기를 당하게 되고 이들은 정체불명의 폴이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영화제목 Six Degrees Of Separation 은 전혀 낯선 사람일지라도 여섯 단계만 거치면 알게 된다는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의미한다. 결국 폴의 매력에 빠졌다가 피해 아닌 피해를 입은 이들은 어느 사이 서로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조사를 하게 되고 이는 상류층의 만남에서 좋은 입담거리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거리의 흑인청년이었던 폴이 얼마나 쉽게 그들의 고귀하고 차별적인 공간에 스며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지조차 못한다. 결국 폴과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오이사는 폴을 도와주려 애쓰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딸의 진지한 대화요구는 거절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가 감칠맛 나면서 연극작품을 영화화하여 다분히 연극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비웃으면서도 어느새 그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에 동화되게끔 만드는 매력을 풍기는 작품이다. 그들의 폴의 미스터리에 대한 입담 장면은 마치 에큘 포와르가 용의자들을 응접실에 모여 놓고는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