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카우리마스키(Aki Kaurismäki)의 유머감각은 그의 고향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며 빈둥거리며 세월을 죽이는 그의 부모를 공양하는 불쌍한 소녀가장도 욕정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예쁜 옷을 부모 몰래 사서 술집에 가서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차라리 유치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하여, 외모가 보잘 것 없다하여 그의 이성에 대한 낭만적 사랑의 열망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꼬부랑 노인에게도 성욕은 당연한 권리이듯이). 그럼에도 그에게 접근하여 하루를 보낸 남자는 그를 하룻밤 여흥으로 치부해버리고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대사가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적막감이 흐르는 영화다. 핀란드/스웨덴 공동작업으로 1989년 작.
태그 보관물: 가족
Terms of Endearment
태어나서 자라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다 죽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거의 예외 없는 이러한 삶을 엠마(데보라윙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조명한다. 특별한 기교나 반전 없이 엠마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변해가는 삶을 관찰하는 이 작품은 초반 엠마의 밝은 성격으로 말미암아 다소 가벼운 로맨틱코미디의 분위기로 흘러가다 어느 날 엠마가 우연히 병원에서 종양을 발견하며 신파조의 – 그렇다고 너무 청승맞지 않은 – 멜로물로 전환한다. 중간 중간 엠마의 엄마(셜리맥클레인)과 이웃집 남자(잭니콜슨)가 벌이는 애정싸움도 볼거리다. 엠마가 죽는 순간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남편이 잠이 들었다가 깨는 장면이 여운을 남긴다.
The Stepfather
못된 계모이야기는 많아도 못된 계부이야기는 흔치 않은데 바로 이 영화가 못된 계부에 관한 관찰기이다. 평소에는 인자하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해온다는 느낌이 들면 살인마로 돌변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수염을 깎는 장면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는 살인범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 이후 그가 다음 목표를 고르고 언제쯤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과연 이번 살인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살인마가 착한 척 하고 만들어준 새집이 의외의 막판에 그에게 걸림돌이 된다. 후속작도 발표되었으나 전편만큼의 호평을 받진 못했다.
Heavenly Creatures(1994)
우정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악랄하리만큼 변태적인 컬트 Bad Taste 의 감독에서 ‘반지의 전쟁’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피터잭슨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1994년작. 외골수 파울린이 생기발랄한 소녀 줄리엣(케이트윈슬렛)을 만나서 애정에 가까운 우정을 발전시켜나가는 와중에 둘은 줄리엣의 엄마가 자신들의 우정을 파괴하려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결과는 파국적 종말. Bad Taste, Dead Alive 의 악동 스타일 영화로 명성을 얻은 피터잭슨은 정통극 영화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준 영화. 실화의 주인공은 후에 소설가가 되었다 한다.
Local Hero(1973)
다국적석유기업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어촌에 직원 맥맥캔타이어를 파견시킨다. 목적은 석유기지 건설을 위해 어촌 전체를 매입하는 건. 한편 그룹의 회장 펠릭스하퍼(버트랭카스터)는 맥캔타이어에게 하늘을 잘 살피라는 이상한 주문을 한다. 현지에서 어수룩한 회사동료 대니올슨과 함께 찾은 마을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고요한 마을이었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가 맥캔타이어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지고 모두들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장애물이 등장하게 된다. 영화는 분명히 장르는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딱히 웃음을 억지로 유발시키고자 하는 장치 없이 차분하게 진행된다. 덕분에 영화를 감상하며 짓게 되는 웃음은 파안대소가 아니라 엷은 미소이다. 특별한 반전이랄 것도 없고 큰 감정의 고저 없이 진행되면서도 단단한 바위처럼 탄탄한 진행을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마크노플러의 사운드트랙도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휴그랜트의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 과 비교하여 봐도 좋을 듯
Cachorro
“Tlareleasingbearcub” by Poster scan..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페인산 퀴어 영화다. 일단 퀴어 영화도 흔치 않은 소재인데다 스페인산이라니 스페인의 동성애자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할 법도 하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제법 살집이 있는 – 이 영화의 영어제목 Bear Club에서 Bear는 살집이 있으신 동성애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그쪽으로도 제법 시장(?)이 크다고 한다 – 두 남자가 벌이는 섹스신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성기, 거침없는 마약문화의 노출 등 제법 하드코어하게 나간다. 그렇지만 그러한 낯선 문화만 제쳐놓고 본다면 그리 거부감 없는 일상적인 드라마다. 사고뭉치 누나로부터 떠맡은 조카, 서먹함을 극복하고 같은 핏줄의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닥치는 시련, 이에 대한 극복 등 게이코드라는 배경을 깔고 일상에서 벌어질법한 일을 무리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 감독은 이런 잔잔한 드라마를 통해 동성애도 우리네 나머지 삶의 구성요소 중 특별할 것 없는 하나임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펌:아도니스]웰컴 투 사라예보
웰컴 투 사라예보 (Welcome To Sarajevo, Michael Winterbottom, 1997)
개인적으로 지금 영국에서 가장 주목하는 감독은 뭐니뭐니해도 마이클 윈터바텀입니다. ‘쥬드’에 한 방 먹어서 한 해 동안 얼얼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바늘 한 뜸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할 것 같은 컷 구사 능력에 잔뜩 매료됐었지요. 대체 이 감독이 누군가 싶어 그때부터 찾고 다녔어요. 안타깝게도 영국 영화제가 열릴 동안 뭔가 다른 일이 있어서 ‘더 클레임’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더 안타깝게도 영국 배우의 자존심 피터 뮬란과 제가 좋아하는 밀라 요보비치 양이 나왔음에도 그 영화는 제 기대를 만족시키주지 못했었습니다.
이미 비디오를 출시되었다는 ‘광끼’랑 ‘버터플라이 키스’를 찾고 다니느라 수유리 일대를 뒤졌지만 허사. 그는 지금 돈이 생기면 제가 사야 봐야 할 DVD 1순위. 아트 하우스에 경도된 국내 씨네마텍 경향에도 불만입니다. 윈터바텀, 아키 카우리스마끼, 예지 스콜리모우스키 등 현실 발언들을 한 감독들도 좀 불러들였으면 좋겠단 바램입니다.
마이클 윈터바텀은 다소 노쇄해 보이는 듯한 켄 로치를 대신할 차세대 영국 좌파 감독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이미 ‘웰컴 투 사라예보’와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대한 영화 ‘인 디스 월드’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지요. 가장 최근에 만든 영화는 ‘코드 46’인데, 팀 로빈슨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는 쏙 들어오지 않더군요.
제가 그의 영화들 중에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는 ‘광끼’, ‘버터플라이 키스’, ‘원더랜드’와 같은 초기작들과 ‘인 디스 월드’입니다. 대체 ‘인 디스 월드’는 국내에 들어오기나 한답니까? 나중에 DVD 구입할 때 이 양반 리스트를 몽땅 구입하고 싶어요. 현재 ‘24 Hour Party People‘은 구해놨는데 못 보고 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이야기여서 미루다 미루다 이제서야 본 ‘웰컴 투 사라예보’는 제 게으름을 난도질하는 통증이 있는 영화군요. 보스니아 내전 현장에 들어가 살아 있는 영상을 만든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사라예보 소녀를 영국으로 데려온 어느 기자의 눈을 통해, 제노사이드의 어떤 흔적도 없다며 20세기 최대의 인종청소 전쟁을 방관했던 서유럽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다큐와 픽션이 뒤섞여져 있는데, 너무 처참해서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세계 비극의 현장을 돌며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는 분들을 보면 한없이 왜소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푼수없이 또 울게 되더군요. 사라예보 산 꼭대기에서 공연이 펼쳐집니다. ‘사라예보를 구하자’라는 플랭카드가 붙여 있고, 혼자 남자가 첼로를 켜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알비노니의 ‘현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 며칠 전 타계한 수잔 손택도 문뜩 생각나더군요. 평화를 바라며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던 그녀가 당시 남긴 말은 ‘실제의 포탄 소리는 텔레비젼에서 듣는 것보다 크다.’
200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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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Of A Doubt
소매치기 사건이 마을신문의 탑기사에 오를법한 한적한 소도시. 은행원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2녀 1남의 단란한 가정의 장녀 찰리는 자신의 가정이 너무 의기소침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찰리 삼촌에게 응원을 요청하려 우체국에 달려간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미 삼촌은 집에 오고 있는 중이라는 전보를 받는다.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은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처럼 밝은 웃음이 안팎으로 넘쳐나고 때마침 미국의 단란한 중산층을 인터뷰하겠다며 정부 측 기자들이 집을 방문한다. 그 즈음부터 서서히 찰리 삼촌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진실에 한발 한발 접근해가면서 공포에 사로잡히는 찰리, 한순간에 환희는 악몽으로 바뀐다. 그리썸 반장이 이끄는 CSI 라면 반나절이면 해결할 사건을 며칠째 질질 끌어서 주인공을 생명의 위기로까지 몰고가는 것이 답답할 정도인 고전적인 스릴러지만 어쩌면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맛이 고전 스릴러의 참맛이 아닐까? 머리카락 한 올이면 머리카락 주인의 신상에서 사돈의 팔촌의 신상까지 잽싸게 다 파헤치는 초스피드의 수사극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형식적 여백과 허점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바로 이점을 알프레드히치콕은 이 영화를 비롯한 그의 필르모그래피에서 십분 활용하였고 때로 그 점이 오히려 관객에게 가학적일 정도의 두려움까지 선사하곤 하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진실을 나눌 단 한사람을 위해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까?
Hoop Dreams
Onibus 174가 제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그린 다큐멘타리라면 Hoop Dreams 는 제1세계,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가정의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는가에 대한 관찰기라 할 수 있다. 감독 Steve James 는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두 소년 William Gates와 Arthur Agee의 성장기를 오랜 기간 필름에 담는다. 둘 모두 재능을 인정받아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들의 농구인생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성장한다. 결국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NBA로 입성하게 되는가? 가족들의 나머지 인생들까지 걸린 도박에서 성공할 것인가? 1994년에 제작되어 선댄스 페스티발, 뉴욕비평가 협회, 아카데미 등에서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다큐멘타리다. 이후 유사한 스타일의 다큐멘타리가 다른 감독들에 의해 선보여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