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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

1946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뜨내기 건달, 학대받는 아내, 둘의 공모, 이를 모르는 그리스인 남편, 느와르가 갖추어야할 기본문법을 착실히 갖춰놓고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성행위의 적나라한 묘사로 인해 개봉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구설수 때문에 국내에서는 ‘우편 배달원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개봉제목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고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대체 우편 배달원과 포스트맨의 차이가 뭐람).  하지만 영화는 노골적인 성애영화라거나 – 물론 웬만한 성애영화보다도 성적묘사가 탁월하다 – 전통적인 느와르하고는 약간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둘의 범죄행위가 과연 죽음으로 단죄 받을 만큼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살짝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범죄의 요소만 빼고 본다면 서로 다른 성격의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적 성격도 강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극의 진행은 이 건달과 남편 살해범이라는 두 커플이 해피엔딩을 맺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관객에게 넌지시 암시한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고는 ‘마치 인간은 미워하지 못해도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관객을 희롱하는 것만 같다. 잭니콜슨의 애절한 눈물연기가 인상적인 라스트신이었다.

Le Notti di Cabiria(Nights of Cabiria)

어린 시절 ‘길(La Strada)’이라는 이탈리아 영화에서 본 젤소미나는 너무 여리고 너무 불쌍했다. 무지막지한 차력사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커다란 눈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그 여인의 슬픈 최후는 어린 내 마음에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슬프기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신파조였던 이 영화의 감독은 ‘로마 무방비 도시’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한 명감독 Federico Fellini 이고 불쌍한 젤소미나는 그가 단골로 찾던 여배우 Giulietta Masina 였다. ‘길’이 만들어진 3년 후 이 둘은 다시 한 번 뭉쳐 또 다시 하류층 여인의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4만 리라 때문에 애인한테 강으로 떠밀려 죽음의 위기를 겪은 Cabiria. 대차고 성격 활발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직업은 창녀. 밤거리에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유명배우가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가 화장실에서 잠재우는가 하면 자선사업가는 굴속에 사는 빈민들을 돕는다. 우연히 들른 극장에서 최면술에 걸렸다가 이를 계기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로버트 드 니로를 닮은 이 남자는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에피소드가 산만하게 펼쳐져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윤곽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어 보는 내내 어리둥절하거나 하진 않다. Giulietta Masina 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맘보 리듬이 흥겨운 영화다.

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The Departed

잭니콜슨, 마틴쉰,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 맷데이몬, 마크왈버그, 알렉볼드윈. 한 연기 한다는 이 양반들이 죄다 모여 만든 남성성 짙은 하드보일드 영화다. 홍콩영화 무간도를 마틴스콜세스가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Face Off, 첩혈쌍웅 등에서 오우삼이 즐겨 다뤘던 두 영웅의 정 반대의 삶을 통해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에 스파이로 들어간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대사의 절반이 욕이고 장면전개는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이리 저리 건너뛴다. 한 가지 궁금한 것. 디카프리오가 데이몬의 연인에게 주었던 그 노란 봉투의 내용은 왜 끝내 공개되지 않았을까? 도중에 결말이 바뀐 것인지?

Murder Most F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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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der Most Foul FilmPost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ovieposterdb.com.. Licensed under Wikipedia.

Agatha Christie의 Mrs. McGinty’s Dead 을 원작으로 한 1964년 작. Margaret Rutherford가 Agatha 의 유명한 캐릭터 Miss Marple 을 연기했는데 이 작품은 그녀가 Miss Marple 로 연기한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이 수다스럽고 경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Margaret Rutherford 여사의 Miss Marple보다는 좀더 품위 있고 신중했던 Joan Hickson 여사의 – BBC 의 연작에서 출연했던 – Miss Marple 이 더 맘에 든다. Miss Marple 은 자신이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사건에 의심을 품고 좀 더 파고들기로 마음먹는다. 살해당한 Mrs. McGinty 가 어느 극단의 누군가를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녀는 극단에 몰래 입단하여 단원들의 뒤를 캐고 마침내 진실을 밝혀낸다. 원작의 문제이겠지만 역시 Agatha 특유의 맛깔스러운 스토리 설정은 마음에 들되 다만 스토리 전개가 다소 산만하고 억지스러운 측면도 있어 비슷한 설정의 ‘쥐덫’에 한참 뒤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긴 해도 느슨한 일요일 오전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기에는 더없이 어울리는 흑백 스릴러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전편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독특한 캐릭터와 묘한 스토리로 신세대 일본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2003년 발표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라 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여교사에서 천재작가의 동거녀, 창녀, 이발사, 야쿠자의 동거녀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고향의 강을 닮은 도쿄의 어느 강가에서 외로이 죽어간 마츠코란 한 인물의 삶을 조카의 눈을 통해 재조명한 작품. 언뜻 들으면 굉장히 비장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가 연상되지만 – 실제 원작도 그러하겠지만 – 나카시마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뮤지컬을 통한 형식적 실험, 배우들의 슬랩스틱 연기 등을 통해 희극과 비극이 짬뽕된 MTV 정서의 오락물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화려한 껌종이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감독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문을 잘못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정을 두고 만들었다 하니 상당히 악취미다. 개인적으로 모모코와 마츠코 중에 어느 쪽이 맘에 드는지 묻는다면 모모코를 택하고 싶다. 마츠코는 전형적인 비련의 주인공인 캐릭터라 머리 조금만 굴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지만 로로코 풍의 옷을 좋아하며 폭력배에게 굴하지 않는 공주 스타일의 여자라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런 캐릭터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 있으니 더 말할 나위없으리라.

Breakfast on Pl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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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llian Murphy – Brkft on Pluto” by from the film. Licensed under Wikipedia.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하니같은 여자(사실은 남자) 패트리샤 키튼의 삶에 관한 영화다. 정치적 상황을 성적 정체성과 묶어놓기를 은근히 즐기는 닐 조단이 2004년 내놓았으나 국내에서는 이제야 단 한 개의 개봉관에서 개봉되었다. ‘28일 후’ 등에서 씩씩한 사나이 상을 보여주었던 킬리언 머피가 온갖 끼를 다 떠는 게이 패트리샤를 연기해 놀라운 변신 능력을 선보였다. 영연방의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대표주자 배우가 될것이 확실하다. 주드 로보다 머리숱도 많지 않은가. 훵키한 음악들도 훌륭하다. 아~ 브라이언 페리가 깜짝 출연하는데 아주 지저분한 역으로 등장한다. 노래도 흥얼거린다.

홈페이지

The Ladykillers

영국 코미디 특유의 짓궂음과 완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교수를 자칭하는 Marcus(Alec Guinness)가 예의바르지만 고집 센 할머니 Mrs. Wilberforce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그의 클래식 연주 동료들이 떼거리로 집에 찾아오자 Wilberforce 할머니는 그 부산한 분위기가 좋아 이런 저런 참견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고상한 연주동호회가 아닌 금고털이 범죄자들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Marcus 는 Wilberforce 할머니를 이용한 기발한 계획을 실천에 옮겨 계획이 보기 좋게 성공하게 될 바로 그 순간, 어수룩한 One Round 의 실수로 인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 된다. 결국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알게 된 Wilberforce 할머니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녀를 죽일 사람을 제비뽑기하게 된다. Mrs. Wilberforce 역의 Katie Johnson 할머니의 깐깐한 올드레이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코헨 형제에 의해 2004년 리메이크되었다.

Dust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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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북쪽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 한 백인 여행자가 나타난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과 섹스를 나누다가 돌연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고 손가락을 떼어낸 후 그녀의 피로 정체모를 의식을 치룬 후 집에 불을 질러버린다. 한 시골의 마법사는 그의 정체를 물어온 경찰에게 그는 마음먹은 대로 사람들의 몸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악령, 일명 Dust Devil 이라고 일러준다. 한편 남편과 대판 싸운 웬디는 차를 몰아 집을 떠난다. 연쇄살인자 또는 악령일지도 모를 이 이상한 사내를 태운 그녀 역시 남자의 매력에 빠져 그와 하룻밤 섹스를 즐긴다. 무심코 뒤진 그의 가방에서 나온 피가 얼룩진 손가락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차를 몰아 달아나지만 악령은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장르의 혼합 – 스릴러, 오컬트, 서부극, 로드무비 – 은 독립영화의 독특할 실험정신을 통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무미건조한 갈색톤의 화면은 광활한 사막이 상징하고 있는 인간의 고독을 잘 필터링하고 있다. 페이스는 같은 장르의 영화보다 느슨하고 배경음악은 서사적이면서도 묵시론 적이다. Hardware 를 통해 컬트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Richard Stanley 가 1992년 만든 작품으로 극장 개봉시 애초 필름이 뭉텅이로 잘려나가 8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감독의 재편집을 통해 103분 짜리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DJUNA의 영화평

Obsession

이 영화는 제목 자체가 일종의 눈속임이다. 브라이언드팔머의 1976년작인 이 영화는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이 유괴되어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한 부동산업자의 과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묘사하며 일종의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초자연적인 장르로 노선전환을 하는 가 싶더니 종국에는 치밀한 음모에 주인공이 희생된 범죄 미스터리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플롯 자체가 어느 노선으로 향하여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게끔 신축성이 있는지라 결말을 어떻게 꾸며도 나름대로 재밌었을 영화였다. 하지만 “히치콕의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감독답게 히치콕의 명작 ‘버티고’의 플롯을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비난을 받은 – 심지어 음악까지도 ‘버티고’의 음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이 맡았다고 한다 – 영화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개인적으로는 ‘버티고’의 스토리가 기억나지 않은 덕에 영화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로케이션, 조연들의 호연, 깔끔하게 처리된 음악, 서스펜스를 몰고 가는 연출력 등이 나름 매력 포인트이고 분위기로는 도널드서덜랜드 주연의 ‘Don’t Look Now’가 떠올랐고, 영화의 여러 상징과 설정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Old Boy’, 그리고 범인의 설정에서는 패트릭스웨이즈 주연의 ‘Ghost’ 가 떠올랐다. 흥행 면에서는 같은 해 개봉된 드팔머의 또 다른 작품 Carrie 에 훨씬 못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