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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When Worlds Collide

영화는 꽤 우울하게 시작된다. 외계행성이 지구와 조만간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에서 출발되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 Deep Impact나 Armageddon 에서는 이러한 별들을 용감한 자원자들이 폭파하여 지구를 구하는 설정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에게 아직 그러한 방법은 너무 급진적이었나 보다. 아무튼 지구의 과학자들은 행성을 폭파하는 대신 거대한 우주선을 만들어 – 일종의 노아의 방주 – 다가오는 행성의 위성에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제는 우주선의 수용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극은 이로 인한 갈등과 희생정신, 그리고 주인공들 간의 삼각관계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고 있다. 그 당시로서는 꽤나 스펙터클한 영상을 선사하고 있지만 새로운 별에 우주선이 안착하여 바라본 풍경은 꽤나 유치한 그림임이 너무나 명확하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도 ‘이 정도 하느라 수고했다’ 라는 느낌이다. Philip Wylie 와 Edwin Balmer 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51년작.

The Thir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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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ManUSPoster” by Movie Poster Database. Licensed under Wikipedia.

냉전시대 스파이 영화의 걸작인 이 영화의 무대는 전후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비엔나이다. 싸구려 소설작가 홀리마틴스는 비엔나의 친구를 찾아왔다가 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되는데 이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그의 주위에서 맴돈다. 냉전의 엄혹함, 전후의 스산함, 의심스러운 인물 등 데카당스한 분위기가 소름끼치도록 멋있게 묘사된 영화. 완벽한 시나리오, 최고의 연기, 최적의 로케이션 등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조합. 홀리마틴스는 Shadow Of A Doubt 의 소름끼치는 살인마역의 Joseph Cotten이, 죽음을 가장한 친구 역엔 Orson Welles 가 열연하였다.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인간은 언제부터 황금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을까? 일설에 의하면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은 금을 태양에, 은을 달에 비유하여 금의 지위를 고귀한 그 무엇으로 자리매김하였다고 한다. 이후 인류는 오랜 기간 금을 소유하는 것이 부의 본질이라고 착각하면서 연금술, 중금주의(重金主義), 금본위제 등의 역사를 구성해왔다.

각설하고 이 영화는 모험영화의 서브장르인 금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의 욕망과 좌절에 관한 영화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돕스(험프리보가트)와 커틴이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의 이야기에 혹하여 황금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고생 끝에 금을 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서로 자신의 금을 차지하려 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로 눈자위가 충혈 되기 시작한다.

언제나 깔끔하고 남자다운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험프리보가트가 탐욕으로 망가지는 이 영화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중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걸작. 존휴스턴 감독의 1948년작

“한때 1919년 단명한 뮌헨 소비에트 공화국에 관계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보헤미안 이주민 무정부주의자인 B. 트래번은 선원들과 멕시코에 관한 감동적인 글을 쓰는 데에 몰두했는데(험프리 보가트가 나오는 존 휴스턴의 Treasure Of Sierra Madre(소설 원제 Der Schatz der Sierra Madre)는 트래번의 글을 원본으로 삼은 것이다.” Eric Hobsbawn 의 ‘극단의 시대’ 中에서

Rope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가 이 과제에 도전한다. 이들은 친한 친구를 죽여 방 한가운데 궤짝에 시체를 넣은 후 천역 덕스럽게 그 친구의 부모, 여자친구, 자신들의 옛 스승(제임스스튜어트)을 불러 파티를 연다. 뭔가 의심쩍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스튜어트의 직감에 의한 예리한 질문으로 살인자들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영화 전체가 살인이 일어난 방안에서만 진행되는 연극과 같은 포맷으로 진행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영화. 알프레드히치콕의 첫 칼라영화다. 만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Play It Again, Sam

우디알렌의 희곡을 바탕으로 허버트로스가 1972년 만든 이 영화는 비록 우디알렌이 감독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의 필로모그래피 전반에 차용되는 여러 분위기들 – 이를테면 주인공의 편집증적인 성격, 도시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정과 배신,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순 등 – 이 충실하게 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소심하고 나약한 영화평론가 알란펠릭스(우디알렌)은 언제나 카사블랑카의 험프리보가트와 같이 카리스마있고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자신을 꿈꾸고 영화에서는 상상속의 험프리보가트가 이러한 알란의 또다른 자아를 설명한다. 알란은 가장 친한 친구 딕 부부의 도움으로 그는 이런 저런 여자들을 만나지만 그러다 정작 딕의 아내인 린다크리스티(다이안키튼)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애틋한 감정은 린다의 거절로 순간의 추억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알란은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처럼 자신도 린다를 남자답게 떠나보내 주었다고 자위한다. 우디알렌다운 뻔뻔함이다. 우리가 우디알렌에게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이 소품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맥주 한잔을 옆에 두고 감상하기 딱 좋다.

p.s. 이 영화의 제목은 잘 알다시피 영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