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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o Maltese : La cour secrete des Arcanes

이유는 잘 모르겠다. 원제를 굳이 번역하면 ‘비밀의 정원’ 인데 실제 내용은 코르트 말테제의 다른 에피소드 ‘시베리아’이다.(내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여하튼 – 내가 틀렸으면 글을 나중에 수정할 일이고 – 이 작품은 우고 프라트의 유명한 만화 ‘코르트 말테제(Corto Maltese)’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를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짜르의 황금을 실은 채 시베리아 철도를 오가는 열차를 탈취하기 위해 온갖 정치세력들이 모여들고 코르트 말테제 역시 중국의 한 정치집단 홍등과 함께 그 모험에 합류한다. 그의 오랜 친구 라스푸틴, 그리고 신비한 동양여인 상하이 리가 이 모험의 축을 이루고 시대착오적인 군벌지도자 웅게른 장군, 미스테리한 세미노바 공작부인 등이 비중 있는 조연을 꿰차고 있다. 주요군벌마다 잔뜩 무장한 기차를 몰며 전투를 벌인다는 박진감 있는 스토리가 큰 매력인데 우주선을 몰며 우주전쟁을 벌인다는 버전으로 만들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다른 에피소드처럼 이번에도 역시 황금은 코르트의 차지가 되지 않지만 코르트는 언제나처럼 (약간은 유치한) 로맨스를 가슴에 간직한 채 또 다시 먼 길을 떠난다(상황설정이 그지없이 민망하지만 코르트에게는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음악도 멋있고 영상도 일품이다.

Shopgirl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은 거의 없었다. 스티브 마틴의 퉁퉁 부은 얼굴과 짜증나는 진지한 연기, 클레어 데인즈의 거칠어진 얼굴골격, 그리고 클레어 데인즈의 남자친구로 나오는 이름모를 배우의 그 짜증나는 캐릭터, 결정적으로 스티브 마틴이 직접 썼다는 어설픈 줄거리로 그 스스로가 어설픈 LA 판 우디 알렌이 되려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1990년작 L.A. Story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이 엿보이기는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우디 알렌 조차 자기 스스로 로맨스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기를 포기한 21세기에 스티브 마틴이 본업인 슬랩스틱을 포기한 채 중후하고 로맨틱한 중년이 되고자 하다니! Lost In Transition 이 빌 머레이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준 사례라면 이 영화는 스티브 마틴의 월권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이다.

The Ladykillers

영국 코미디 특유의 짓궂음과 완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교수를 자칭하는 Marcus(Alec Guinness)가 예의바르지만 고집 센 할머니 Mrs. Wilberforce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그의 클래식 연주 동료들이 떼거리로 집에 찾아오자 Wilberforce 할머니는 그 부산한 분위기가 좋아 이런 저런 참견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고상한 연주동호회가 아닌 금고털이 범죄자들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Marcus 는 Wilberforce 할머니를 이용한 기발한 계획을 실천에 옮겨 계획이 보기 좋게 성공하게 될 바로 그 순간, 어수룩한 One Round 의 실수로 인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 된다. 결국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알게 된 Wilberforce 할머니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녀를 죽일 사람을 제비뽑기하게 된다. Mrs. Wilberforce 역의 Katie Johnson 할머니의 깐깐한 올드레이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코헨 형제에 의해 2004년 리메이크되었다.

Monsieur 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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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sieur Hire” by http://www.allocine.fr/film/fichefilm-4755/photos/detail/?cmediafile=18658504. Licensed under Wikipedia.

철없는 금발미녀 Alice는 건달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다. 바로 길 건너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외모의 독신자 Hire 씨의 취미는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틀어놓은 채 Alice(Living Next Door To Alice?)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취미(?)의 Hire 씨는 경찰로부터 또 다른 금발미녀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어느 번개 치는 저녁에도 Alice 를 훔쳐보던 Hire 는 그만 Alice 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만다. 그러나 대범하게도 Alice 는 Hire 에게 접근하여 그를 은밀히 유혹한다. 너무 사랑하여 감히 그녀를 손댈 수 없는 Hire 는 그녀의 향수와 같은 종류의 향수를 음미하며 그녀를 회상한다. 왜 Alice 는 보잘 것 없는 Hire 에게 접근하는 것일까? 이것이 살해사건과 함께 또 하나 영화가 던져주는 미스터리다.

우리에게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Hairdresser’s Husband)”로 유명한 Patrice Leconte 감독이 그 영화를 만들기 한 해 전에 만든 작품이다. 스릴러라는 장르 형식을 띤 작품으로서는 이채롭게도 화면과 내러티브는 나직하고 은근하다. 그것은 Alice 를 사랑하는 – 그 사랑이 관음증적 사랑이라는 왜곡된 형태이기는 하여도 – Hire 의 고단한 일상을 소묘하기에는 그만이다.

Hir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Alice 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까? 아니면 그 둘은 선택할 다른 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Paths Of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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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sOfGlory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United Artists.. Licensed under Wikipedia.

개인적으로는 영화 감상할 때 롱테이크니 트래킹샷이니 하는 현란한 영상문법보다는 내러티브에 빠져드는 편이다. 영화에서의 영상기법이나 소설에서의 문체는 그 자체로도 감상포인트이긴 하나 역시 매력적인 이야기를 꾸며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리큐브릭의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각적 요소의 탁월함과 현란함은 그 자체로도 매료될만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개미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는 장면이나 참호 속을 시찰하는 장면은 유사한 장면의 연출에 있어 고전으로 남을만한 – 또는 지금 재탕을 해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일만한 – 표본으로 남을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물론 지나친 비주얼함이 극의 집중에 방해가 될 만도 하나 적어도 개인적으로 그로 인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로 자리매김하였고 프랑스 군인에 대한 – 또는 군대 체제에 대한 – 신랄한 시각으로 말미암아 1975년까지 프랑스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는 이 작품은 큐브릭의 영화이력의 이정표로 인정되고 있는 역작이다. 그의 개인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배우 Susanne Christian 은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였던 서부전선에서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던 Broulard 장군은 개인영달을 위해 가능성 없는 개미고지의 점령을 명령하고 Dax 대령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피해를 뻔히 알고도 진격명령을 내린다. 일부 부하들이 진격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진격은 막대한 피해만 남긴 채 실패한다. 분노한 Broulard 장군은 희생양을 위해 무고한 사병 셋을 군사법정에 회부한다.

전직 변호사였던 Dax 대령은 그들을 변호하지만 법정에는 기소장도 없었고 증거제출도 거부한 채 사병들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 와중에 Broulard 장군의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령이 양심적인 장교의 고백에 의해 밝혀지지만 군부는 사형언도를 취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내용을 Broulard 장군의 축출에 활용한다. 이러한 더러운 암투에 Dax 대령은 진저리를 치지만 부하사병들이 포로로 잡힌 한 독일소녀의 노래에 나지막한 허밍으로 동참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명백히 잘못된 명령임에도 이에 복종하였으나 이내 부하들을 감싸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한 Dax 대령의 캐릭터는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법보다는 고뇌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그럼에도 말미부분에 암시되는 새로운 희망은 약간 작위적인 면이 없잖다. 차라리 부하사병들이 독일소녀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녀를 더 그악스럽게 약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배신당하는 Dax 대령의 모습이 더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Phantom of the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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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 of the Paradise movie poster“. Via Wikipedia.

Brian De Palma 는 Carrie, Scarface, Dressed To Kill 과 같은 공포/스릴러/액션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가끔 Home Movies 와 같은 어처구니없는(그러나 배꼽 빠지게 웃긴) 코미디를 만들기도 했고 이 작품과 같이 지극히 컬트스러운 락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컬트>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만든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보다 한 해 먼저 만들어졌고, 그 영화의 주요캐릭터로 전대미문의 컬트적 캐릭터인 Dr. Frank N. Furter 와 상당히 유사한 Beef 까지 등장하니만큼 컬트적 요소는 두루 갖추었으나 그 명성은 The Rocky 에 훨씬 미치지 못하니 이야말로 진정한(!) 컬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악계의 흥행사 Phil Spector 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되는 Swan 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작곡한 Winslow 의 노래를 듣고는 그의 차기 프로젝트 Paradise 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Winslow 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그의 악보를 훔치고 그를 감옥에 처넣어버린다. 앙심을 품고 감옥을 탈출한 Winslow 가 Swan 의 레코딩을 방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로 그의 얼굴만 망신창이가 된다.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Swan 을 찾아가는데 Swan 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으로 그를 옭아맨다. 그리고 Winslow 가 맘에 들어 하던 여가수 Phoenix 가 노래를 하게 하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고 호들갑스러운 글램락 가수 Beef 가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를 안 Winslow 의 끔찍한 복수가 시작되고 이어 Swan 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대중음악계의 이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파우스트, 오페라의 유령 등의 에피소드와 결합되면서 좌충우돌의 컬트적 락뮤지컬로 태어났다. 영화속의 락밴드 The Juicy Fruits 나 Phoenix, Winslow 등이 들려주는 락넘버가 시원시원하다. Beef 역의 Gerritt Graham 은 Palma 의 초기작에 자주 등장하였고 후에 1979년 그의 또 다른 컬트 무비 Home Movies에서 완고하고 어이없는 청년 역으로 열연하였다.

Carrie

소름끼치는 틴에이저 공포물 Carrie 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펄프픽션의 대가 Stephen King 의 원작을 바탕으로 Brian De Palma 가 만든 작품이다. 펄프픽션의 대가와 B급 영화의 귀재가 만났으니 그 결과물은 당연히 기대를 충족시켜줄만한 양질의 공포영화로 귀결되었다. 거기에 Sissy Spacek 의 소름끼치는 연기는 영화의 시너지를 극대화시켰다.

Stephen King 의 자전적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이 원작의 탄생비화가 소개되고 있다. 애초 King 자신이 너무 진부한 소재라 생각하여 쓰레기통으로 처넣은 스크립트를 아내가 꺼내어보고 좋은 소재라며 격려해주었고 이에 분발하여 장편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또한 캐리의 캐릭터를 구상하는데 도움(?)을 준 이들이 소개되는데 King 은 그의 고교시절 왕따를 당했던 두 소녀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른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King 역시 희대의 살인자 Ed Gein 을 모델로 하지 않았는가 생각했었다. Ed Gein 은 어릴 적부터 광신적인 기독교도였던 어머니의 틀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살아오다 가족들이 모두 죽은 후 여자시체의 살갗으로 옷을 해 입으며 여성이 되고자 했던 그야말로 초엽기적인 인물이었다. 그 인생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에 그의 인생의 파편들이 각각 텍사스전기톱살인사건, 싸이코, 양들의 침묵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Carrie 를 보면 Ed Gein 의 경우와 상당히 일치하는 가정환경임을 알 수 있다. Carrie 의 어머니 역시 Ed Gein 의 어머니가 그러했을 것처럼 딸에게 극단적으로 섹스에 대한 혐오감을 강요한다. 이는 결국 Carrie 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걸림돌 으로 작용하고 왕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극단이 또 하나의 극단을 낳게 만든 꼴이 되고 만 것이다. King 에 따르면 그가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동급생의 어머니에게서 그러한 종교적 보수성을 느꼈다고 하니 Ed 의 어머니가 극단적이었을 따름으로 상상외로 이러한 꼴통적인 가정환경이 극히 드문 현상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감탄할만한 점은 초경의 공포과 돼지 피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가 ‘빨간 색’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교집합으로 형성하면서 관객들에게 ‘끔찍했던 학창시절’을 상기시키는 극대화된 공포를 경험하게 만드는 연출솜씨이다. Amy Irving, William Katt 등 조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Shadows And Fog

어느 사람에게어떤 영화를 싫어하냐고 했더니 ‘어두운 영화가 싫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슬픈 줄거리의 영화인줄 알았더니 그냥 화면이 어두운 영화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는 이 영화를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안개 자욱한 밤거리에서 벌어진 하루 동안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니깐 말이다. 시종일관 주의를 기울여보지 않으면 등장인물이 안보일 정도로 화면이 어둡다.

이유도 모른 채 동네 사람들에 의해 잠이 깬 클라인만(우디 알렌)은 동네 사람들이 계획한 연쇄살인범 체포 작전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가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한다. 한편 동네 어귀의 서커스단에서는 칼을 집어 삼키는 여인 아이미(미아 패로우)가 그의 남편과 싸우고 집을 뛰쳐나와 버린다. 이후 등장인물들은 이런 저런 에피소드로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된다.

마틴 스코세스 감독의 1985년작 After Hours, 토드 브라우닝의 Freaks, 그리고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이 한데 합쳐져 카프카의 소설에나 나옴직한 무대 세트에 옮겨 각색된 듯 한 작품으로 예의 우디 알렌의 신경쇠약적인 유머 – 칼을 삼켰을때 딸꾹질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식의 – 와 셀 수 없을 정도의 카메오가 눈요기 거리(일 수도 있고 오히려 보다 지칠 수도 있)다.

Match Point

내가 우디 알렌에게 기대하는 두 가지 것, 즉 냉소적 유머와 뉴욕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리고 영국식 악센트와 비극적인 사랑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감상했다. 전반부는 흔해 빠진 삼각관계의 연애담이다. 성공을 갈망하는 야심찬 젊은이, 그의 매력에 반한 부잣집 아가씨, 바람둥이인 그녀의 오빠, 그리고 야심찬 젊은이의 뜨거운 눈길을 견뎌야 하는 미국에서 온 금발의 ‘그녀의 오빠’의 애인. 후반부를 봐야 하는 이틀째 이대로 영화가 계속 상투적으로 간다면 우디 알렌의 영화라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빗나간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부잣집 아가씨 클로이와의 결혼하여 성공의 사다리를 타게 된 야심찬 젊은이 크리스는 사랑(love)과 욕망(lust)은 다른 것이라며 이미 남이 되어버린 ‘그녀의 오빠의 전(前)애인’ 노라 라이스와 육체적 유희에 빠져든다. 제어할 수 없는 심성의 소유자인 노라(그녀의 오빠의 애인)[스칼렛 요한슨]의 독기어린 이혼요구에 크리스는 드디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생각을 하게된다. 결말은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만약 내 예상대로 결말이 나지 않았더라면 대단히 실망스러웠을 뻔했다. 역시 우디 알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냉소’가 있어야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테니스공과 반지, 그리고 마약중독자의 커넥션이 이어지는 순간. 그러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한 장면. 그가 나 빗속을 뛰쳐나간 노라와 이를 뒤쫓아 간 크리스가 보리밭에서 격정에 휩싸여 섹스를 하는 그 장면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진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락한 장소도 아닌 비오는 보리밭에서 비에 축축이 젖었을 그 청바지를 정성과 시간을 들여 벗고도 여전히 정욕이 남아 있을 만큼 그렇게 그 둘이 뜨거웠을까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人狼(인랑;Jin-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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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Roh-The-Wolf-Brigad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567d14c5. Licensed under Wikipedia.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의 감독 오시이 마로루가 기획하고 각본을 쓰고 ‘아키라’, ‘공각기동대’의 캐릭터를 담당한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한 1998년 작.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 영화제, 캐나다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전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일본사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자치경, 수도경, 공안부라는 일종의 가상의 공안/첩보 조직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를 통해 조직논리와 인간성의 상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공각기동대나 아키라를 연상시키는 리얼리즘적인 터치와 입체적인 시점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그림으로 표현된 극영화인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이러한 표현형식은 자못 심각한 작품의 주제와 잘 매치된다. 또한 ‘빨간 두건 소녀’의 동화를 다중적인 메타포로 활용하여 자칫 빤해 보이는 조직 내 암투의 단선구조를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로는 인간병기로 규정 지워진 특기대의 후세가 가지는 심적 갈등에 대한 묘사가 심도 깊지 못한 반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체력안배에 실패했다는 느낌이고, 보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주제는 굳이 일본의 전후 혼란상에 빗대지 않더라도 로보캅 등 허다한 SF 를 통해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주제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