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am – In The City

1977년 5월 20일 The Jam의 데뷔앨범 “In The City”가 발매되었다. Vic Smith 와 Chris Parry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은 1977년 3월 런던에 있는 스트랫포드 팔라스(Stratford Place)에서 녹음되었다. 1960년대 런던의 모드(Mod) 문화, The Kinks나 The Who의 색채가 묻어나는 이 앨범은 당시의 다른 펑크/뉴웨이브 밴드와는 다른 음악을 창조하였다. 밴드는 다른 펑크 밴드와 달리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공연을 했으며, 기타 연주는 Pete Townshend의 스타일이 짙게 배어있다. 앨범에는 두 개의 커버송이 있는데 Larry Williams가 불렀던 Slow Down과 60년대 TV시리즈 Batman의 주제가가 그것이다. Paul Weller라는 걸출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가 이끈 The Jam은 이 앨범을 통해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인 면에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20위까지 올라갔고 싱글은 “All Around The World”과 “In The City” 등이 인기를 얻었다.

Side one
1.”Art School” (2:02)
2.”I’ve Changed My Address” (3:31)
3.”Slow Down” (2:39) (Larry Williams)
4.”I Got By in Time” (2:07)
5.”Away from the Numbers” (4:03)
6.”Batman Theme” (1:31) (Neal Hefti)

Side two
1.”In the City” (2:19)
2.”Sounds from the Street” (3:14)
3.”Non-Stop Dancing” (2:28)
4.”Time for Truth” (3:10)
5.”Takin’ My Love” (2:15)
6.”Bricks and Mortar” (2:37)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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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gabriel – <a rel=”nofollow” class=”external free” href=”https://www.amazon.com/25th-Anniversary-Remaster-Peter-Gabriel/dp/B008V59AF2″>https://www.amazon.com/25th-Anniversary-Remaster-Peter-Gabriel/dp/B008V59AF2</a>, Fair use, Link

1986년 5월 19일 Peter Gabriel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So”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Daniel Lanois와 Peter Gabriel이 프로듀스했고 영국의 배쓰 근처에 있는 Ashcombe 스튜디오에서 1985년 5월과 1986년 3월 동안 녹음됐다. Daniel Lanois는 이 앨범이 Peter와 두 번째로 같이 작업한 결과였는데 이전에 영화 Birdy를 위한 음악을 함께 만들었었다. 이전에 Brian Eno나 U2와 함께 일했었던 Lanois는 이 앨범에 앰비언트 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따. 이전까지 Peter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앨범 제목을 붙이지 않았는데 이 앨범이 이름이 붙게 된 첫 앨범이었다. 수록곡들은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록과 월드뮤직의 색채가 강하면서도 이전보다 팝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되었다. 그러한 결과로 앨범은 큰 인기를 얻었는데, 영국 앨범 차트에서는 1위, 미국 앨범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싱글 역시 팝차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 싱글 차트 1위와 영국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한 “Sledgehammer”를 비롯하여 “Big Time”과 “In Your Eyes” 등이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다. 롤링스톤誌는 이 앨범을 “80년대 탑100 앨범”에서 14위로 선정하였다. 앨범 커버는 New Order와 함께 일했던 Peter Saville의 작품이다.

V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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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Berlin2” by U2005.comMadonna Berlin 2012-06-30.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1990년 5월 19일 Madonna의 “Vogue”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머물렀다. Madonna와 Shep Pettibone가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의 여덟 번째 1위곡이 되었다. 이 곡은 Madonna가 뉴욕에 있는 The Sound Factory 클럽에서 본 “voguing”이라 불리는 스타일리쉬한 댄스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1960년대 뉴욕의 언더그라운드의 게이클럽 등지에서 유래된 이 춤은 마치 모델들의 포즈 모양인 것과 같은 각진 춤동작을 취하기 때문에 패션 잡지 “Vogue”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악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최신 조류에 따라 하우스 스타일로 프로듀스되었다. 가사는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해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즐기라는 내용인데, 곡 중간에는 나레이션도 있는데 할리우드의 황금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들의 이름이 불려진다. Madonna는 이 곡을 그녀의 스튜디오 앨범 Like a Prayer의 다섯 번째 싱글 “Keep It Together”의 B-side 곡으로 쓰려 했다. 이를 안 Warner Bros는 그녀를 설득해서 영화 “Dick Tracy”의 사운드트랙 앨범이라 할 수 있는 “I’m Breathless”에 넣었다. 뮤직비디오는 Se7en으로 유명한 David Fincher가 맡았는데, 1920년대를 암시하는 흑백 화면을 배경으로 Madonna의 할리우드의 여러 여배우에 대한 오마쥬와 댄서들의 안무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비평가들은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하우스 뮤직이라는 메인스트림과 디스코적인 작곡,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의 춤 문화를 주류에 끌어올렸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Madonna의 전성기에 나온 가장 인상적인 곡과 비디오라고 평가한다. 전 세계에 6백만 장이 넘는 싱글을 팔아치우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뮤직비디오

Let’s Get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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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maineJackson2007(cropped)” by JosephJackson2007.jpg: Reflexivity Capital Group[1] of picasa.google.com
derivative work: Solid State Survivor (talk) – JosephJackson2007.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0년 5월 17일 Jermaine Jackson의 “Let’s Get Serious”가 빌보드 R&B 차트 1위에 올라 6주간 머문다. 핫100 차트에는 같은 해 7월 12일 9위까지 오른다. Stevie Wonder와 Lee Garrett이 작곡한 이 곡은 The Jackson 5의 멤버였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으로 남게 된다. Jermaine Jackson은 아직 The Jackson 5의 멤버로 남아 있었던 1972년 처음으로 솔로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the Shep & The Limeliters 의 클래식 “Daddy’s Home”을 커버해서 1973년 3월 R&B차트 3위, 팝차트 9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의 형제들이 1975년 모타운을 떠나지만 모타운의 설립자 Berry Gordy의 딸과 결혼한 Jackson은 레이블에 남아서 세 장의 앨범들을 1976년부터 연차별로 발표한다. 1970년대 말 Jackson은 같은 레이블에서 활동하는 친구 Stevie Wonder에게 도움을 부탁했고 Wonder는 그의 다섯 번째 앨범을 위해 세 개의 노래를 작곡했다. 특히 “Let’s Get Serious”는 어린 시절 학우인 Lee Garrett과 함께 썼다. 곡이 완성되자 Wonder는 Jackson과 함께 1979년 여름 스튜디오에 들어가 거의 7개월간에 걸쳐 그가 작곡한 “You’re Supposed To Keep Your Love For Me”, “Where Are You Now”, 그리고 “Let’s Get Serious”를 녹음했다. 타이틀곡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이름의 앨범 “Let’s Get Serious”는 빌보드 R&B 앨범 차트 1위에 5주간 머문다. 탑200 차트에는 6위까지 오른다. 그 해말 “Let’s Get Serious”는 빌보드 잡지가 선정하는 ‘1980년 최고의 R&B 싱글’에 선정되었다. 그의 동생 Michael의 “Rock With You”는 2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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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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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ti LaBelle – On My Ow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CA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6년 5월 17일 Patti LaBelle과 Michael McDonald가 함께 부른 “On My Own”이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4주간 머문다. LaBelle의 스튜디오 앨범 Winner In You에 실린 이 곡은 6월 14일에는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3주간 머문다. Burt Bacharach와 그의 前부인 Carole Bayer Sager가 작곡한 이 곡은 당초 Dionne Warwick 의 앨범 Friends에 실릴 예정으로 녹음되었으나 최종 리스트에는 불명확한 이유로 빠졌다. LaBelle이 녹음할 당시 프로듀서 Richard Perry의 도움으로 앨범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결과가 실망스러워서 두 작곡자가 직접 프로듀스에 나섰다. 그들은 실력파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연주를 녹음한 후 LeBelle의 목소리를 보탰다. 하지만 모두들 뭔가가 부족하다고 여겼고 LeBelle의 아이디어로 Michael McDonald를 초청해 목소리를 더했다. 보컬을 각자가 입힌 것처럼 뮤직비디오 역시 각자 다른 도시에서 녹화했다. 그래서 실은 두 가수가 투나잇쇼에 라이브로 노래 부르기 위해 만나기 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다. 노래의 내용은 이별을 앞에 둔 연인들의 심정에 관한 이야기다.

뮤직비디오

Bette Davi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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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Carnes BD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MI America.. Licensed under Wikipedia.

1981년 5월 16일 Kim Carnes의 “Bette Davis Eyes”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9주간 – 연속은 아니지만 – 머물렀다. Donna Weiss와 Jackie DeShannon이 만든 이 곡은 로스엔젤레스 출신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된다. 이 곡은 원래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Put A Little Love in Your Heart”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Jackie DeShannon이 1975년 녹음한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거의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시 Kim Carnes의 프로듀서였던 George Tobin은 Kim에게 오리지널을 들려주었고 그는 오리지널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둘이 결별한 후에 공동 작곡가 Donna Weiss가 Kim의 새 프로듀서 Val Garay에게 그 곡의 카피를 보냈다. Val은 이 곡을 키보드 주자 Bill Cuomo와 함께 완전히 새로 어레인지했다. Cuomo는 Sequential Circuits Prophet-5 신디사이저로 곡의 주요한 키보드 리프를 연주하였다. 1981년 2월 이 곡이 발매되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 해 3월 28일 핫100 차트에 80위로 처음 등장한 후 7주 만에 정상을 차지한다. 5주간 정상에 머물다가 Stars On 45 의 “Medley”에게 1주간 자리를 내준다. 이후 다시 1위에 올라 4주간 더 머물렀다. 이 곡은 특히 Duran Duran과 함께 일하기도 했던 Russell Mulcahy가 감독한 인상적인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하다.(중간에 전 세계의 고유 복장을 입은 남녀가 함께 모여 여자들이 남자들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싱글은 두 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는데 ‘그 해의 레코드’와 ‘그 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Jackie DeShannon 버전
Kim Carnes 버전

When Doves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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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dove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5월 16일 Prince의 싱글 “When Doves Cry”가 출시되었다. Prince가 작곡하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Purple Rain”이란 이름의 영화와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처음으로 싱글로 나온 곡이다. 정작 곡을 만든 시기는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였는데, 영화의 감독 Albert Magnoli 가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추억에 관한 회상 씬을 위한 노래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여 Prince가 하루 만에 만든 곡이다. Prince는 헐리웃에 있는 선셋사운드 레코드사에 가서 36시간 동안 이 노래를 녹음한다. 보컬과 모든 악기는 Prince 혼자서 해냈다. 믹싱 과정에서 Prince는 여유분의 트랙에 이미 담겨 있던 베이스 연주를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된다. 워너브러더스는 처음에 이렇게 만든 곡을 발매하기를 꺼려했지만 Prince는 있는 그대로 발매할 것을 주장했다. 싱글이 발매되자마자 이 곡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싱글은 그때까지 그 레이블에서 발매된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서 5일 만에 백만 장이 팔렸다. “When Doves Cry”는 1984년 6월 30일 빌보드 R&B 차트 1위를 기록한다. 같은 해 7월 7일에는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5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Prince에게는 최초의 핫100 차트 1위곡이었고 싱글은 이백만 장이 팔려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앨범이 되었다. 롤링스톤지는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중에서 52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Ebony And Iv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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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ny and Ivory” by Personal scan of the single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Paul McCartney와 Stevie Wonder가 함께 부른 “Ebony And Ivory”가 1982년 5월 15일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7주간 머문다. Paul McCartney가 작곡한 이 곡은 McCartney에게는 솔로 활동 기간 중 여덟 번째로 차트 1위곡이 되었고, Wonder에게는 일곱 번째의 차트 1위곡이 되었다. McCartney는 코미디언 Spike Milligan의 발언에 이 곡의 영감을 얻었는데, Milligan은 “검은 건반, 하얀 건반, 그리고 당신은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둘을 연주해야 합니다. 친구!”라고 말했다. 즉 이 곡은 인종을 피아노 건반에 비유하여 인종 간의 화해를 주제로 한 곡이다. 이 노래의 처음 버전은 1980년 Paul 혼자서 노래한 버전이다. 듀엣으로 부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Paul은 바로 Stevie Wonder를 떠올렸다. 이후 Paul의 양아버지 Lee Eastman 이 Stevie에게 이 말을 전해줬고 노래를 들은 Stevie는 듀엣에 동의했다. 두 슈퍼스타는 1981년 2월 AIR 스튜디오에서 만나 기본 트랙과 목소리를 녹음한다. 이 곡은 Paul McCartney의 “Tug Of War” 앨범에 수록되어 3월 29일 싱글로 출시된다. 발매되자마자 인기가 치솟았고 Keith McMillan이 감독한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졌다. 비디오에서 둘이 각자의 파트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둘은 바쁜 스케줄 탓에 각각 런던과 L.A.에서 따로 비디오를 찍어야 했다. 이 싱글은 그래미에서 ‘이 해의 녹음과 노래’ 부문을 포함하여 3개 부문에서 수상한다. 또한 McCartney는 비틀즈 멤버 중에서 최초로 빌보드 R&B 차트 순위에 오르는 멤버가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인종차별 정책이 실행되던 시대에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뮤직비디오

Remain in Light

1980년 1월 Talking Heads의 멤버들은 한 해전에 발표한 그들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Fear of Music을 위한 순회공연을 마친 후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당분간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싱어 David Byrne은 Brian Eno와 함께 실험적인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발표한다. Jerry Harrison은 Nona Hendryx의 앨범을 뉴욕에 있는 시그마 사운드 스튜디오의 지사에서 프로듀스했다. 부부가 된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는 Byrne의 밴드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다는 Weymouth의 조언에 따라 그룹을 떠나는 문제를 상의한다. Frantz는 이 생각을 좋아하지 않았고 둘은 그 대신 밴드 생활과 결혼 생활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 캐러비언으로 여행을 떠난다.

둘은 마침내 바하마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1980년 봄에 Byrne과 Harrison이 합류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그간 밴드의 창작에 대한 부담이 Byrne에게만 쏠려있었음을 동의하게 된다. Remain in Light의 개념은 이렇게 부분적으로는 Talking Heads가 “Byrne과 그 백업 밴드”라는 세간의 인식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업은 Byrne의 표현에 따르면 “상호 협조를 위해 우리의 에고를 희생하기”였다. Byrne의 가사에 밴드가 곡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대신, 그들은 Fear of Music의 수록곡 “I Zimbra”를 시점으로 하여 일련의 가사 없는 연주 즉흥연주를 이어갔다.

Eno가 3주 후에 바하마에 도착했는데 그는 처음에는 밴드와 다시 일하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데모 테잎을 들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Eno는 “너희들이 가려는 방향이 절대적으로 맘에 들어”라고 외쳤다. 이들은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공동체적인 아프리카의 방식을 실험하기로 결정했다. 개별 파트는 화합하는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폴리리듬(polyrhythm : 대조적 리듬의 동시 사용) 나이지리아 뮤지션 Fela Kuti가 1973년 발표한 아프로비트 앨범 Afrodisiac이 이 앨범을 위한 견본이 되었다. 녹음은 바하마와 미국에서 1980년 7~8월에 이루어졌다.

Byrne은 앨범의 마지막 믹스 작업을 일종의 “정신적인(spiritual)”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즐겁고 황홀하지만 또한 진지한” 작품 말이다. 그는 “우리가 암시한 것보다 Remain in Light에 아프리카적인 요소는 덜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대한 아이디어는 특정한 리듬들을 마주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no는 이 앨범이 훵크(funk)와, 펑크(punk), 그리고 뉴웨이브가 섞여 있는 앨범이라고 말했다. 앨범은 1980년 10월 Sire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는 19위, 영국 차트에서는 21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J. Geils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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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eils Band 1973” by Premiere Talent Associates (management) – eBay item
photo front
photobac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80년대에 발표한 음악으로만 그들을 접했던 입장에서는 다소 의외인데 애초에 J. Geils Band는 블루스 밴드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밴드라고 한다. 또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실인데 당연하게도 밴드의 리더는 기타리스트 J. Geils라고 한다.(나는 여태 싱어였던 Peter Wolf라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싱글은 강렬한 락비트가 특징인 Come Back이었다. 뭔가 비장한 톤으로 “다시 돌아와”라고 외치는 모습이 80년대 풍의 허세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곡은 밴드가 1980년 발표한 Love Stinks에 수록되어 있는데, 같은 이름의 타이틀 싱글 Love Stinks는 80년대를 추억하는 영화 Wedding Singer에서 주인공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부르기도 한다. 또한 기억에 남는 곡은 1981년에 발매된 앨범 Freeze Frame – 이 앨범은 카세트테잎으로 구매했었다 – 에 담긴 동명의 싱글 Freeze Frame 이다. 이 노래는 당시 우리나라의 한 청소년 대상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퀴즈 꼭지를 시작할 때 배경음악으로 써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이 앨범에는 밴드의 최대 히트곡 Centerfold가 담겨있다. 이 곡은 밴드의 싱글 중 유일하게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무려 6주간이나 머물렀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인이 성인잡지의 전면화보에 등장한 것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는 한 남성의 시각을 담은 이 곡은 가수 송대관의 히트곡 ‘해뜰날’과 멜로디가 비슷하다 하여 “逆표절이 아니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만) 한편 개인적으로는 같은 앨범에 담긴 Angel In Blue를 좋아한다. 제목은 “우울한 천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곡인데 스트리퍼로 살아가는 여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AllMusic의 리뷰에서는 이 곡이 ‘Centerfold의 연장선상의 곡이다’라고도 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수긍이 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는 빠른 리듬의 Centerfold와 달리 미드 템포의 구슬픈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1983년 싱어 Peter Wolf가 음악적 입장의 차이를 이유로 그룹을 떠나자 밴드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결국 1985년 밴드는 해산했다. 솔로로 나선 Wolf는 Lights Out이란 노래로 반짝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