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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dding Singer

물론 아담샌들러와 드류배리모어라는 두 걸출한 스타가 출연하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80년대”라는 시대의 문화코드이다. 80년대는 이 영화의 국내포스터 카피처럼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80년대 팝문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로 전 세계가 행동통일을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프레디크루거의 야수성에 치를 떨었고, 레이건이 신보수주의를 주창했으며, 라이브에이드를 모두가 함께 지켜보았던 이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결혼식 축가가수에 불과한 로비하트(아담샌들러)는 며칠 후에 있을 결혼식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었지만 약혼녀는 로비가 장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식장에 나타나질 않는다.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를 다정히 감싸준 것은 역시 결혼을 앞둔 줄리아설리반(드류배리모어)이었다. 바쁜 그녀의 약혼자를 대신해 결혼준비를 도와주던 로비는 어느새 줄리아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고 영화의 큰 줄기는 어떻게 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가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영화 전편에 흐르는 80년대 팝문화 코드가 주요한 볼거리다. 보이조지피트번즈를 합쳐놓은 듯한 여장싱어, 마이클잭슨이나 마돈나를 흉내 낸 극중 배우들의 의상, 프레디크루거 가면을 쓰고 노는 로비의 조카 등 그 시절의 과장되고 풍요로운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묘사되고 있고 그 시절을 서양 팝문화에 빠져 살았던 이들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추억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연인과의 사랑이 싫증난 사람들이 보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Don’t Look Now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축복 또는 저주)을 지닌 한 남자와 그의 아내가 겪게 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소재로 한 심리 스릴러다. 익사사고로 딸을 잃은 존박스터(도널드 서덜랜드)와 로라 부부는 남편의 일 때문에 베니스를 찾는다. 실의에 빠져 있던 로라가 식당에서 우연히 딸의 존재를 느끼는 영매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로라는 남편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죽은 딸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매의 말을 믿고 이를 남편에게 전하지만 존박스터는 미신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이어지는 공사장에서의 사고와 하나 남은 아들의 사고 등으로 인해 부부는 갈등에 처하게 된다. 물의 도시라는 베니스의 특성과 부부의 심적 상태가 묘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한 가족의 불안한 미래가 끊임없이 암시된다는 점에서 영화는 극적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유발시키고 있다. 한편으로 극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는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서정적인 배경음악은 오히려 시각적, 청각적 상승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Tetsuo: The Iron Man

인간의 몸에 기계, 혹은 철을 결합시킨다는 일종의 기계인간의 이야기는 공상과학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 결합이 단순히 인간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육체적 능력만을 향상시키는 ‘600만불의 사나이’와 같은 존재도 있는가하면 기계인간이 되기 이전의 기억으로 인해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로보캅’과 같은 존재도 있다. 저예산 컬트로 알려진鐵男(Tetsuo)은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영화와 같은 부류의 기계문명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시각을 지닌 작품이다. 스토리를 요약하거나 서술하는게 별로 의미없는 영화이지만 하여튼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비대칭적인” 고철이 자라나는(?) 한 샐러리맨이 겪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기계문명의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SF 애니메적인 상상력과 변태적인 성적환상, 뮤직비디오 스타일의 편집,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음악의 적절한 사용 등 태생적으로 컬트가 될 자양분이 충분하였고 당연하다는듯이 컬트가 되었다.

A Nightmare on Elm Street

Fred Krueger (Robert Englund)라는 공포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웨스크레이븐의 1984년작. 부모들에 의해 불타죽은 이가 그들의 아이들의 꿈에 나타나 복수를 시도한다는, 즉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통해 일종의 초현실주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의례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십대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 소녀는 쉽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잠자기를 거부하며 두려워하다가 이내 프레디의 존재를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여전사의 모습이다.(그에 반해 자니뎁이 연기한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수룩하게 당해버리고 만다) 앞서도 말했듯이 프레디는 이후 가장 유명한 공포영화 캐릭터로 자리 잡아 여러 편의 후편에 출연하게 된다. 심지어 ‘13일의 금요일’에서의 또 다른 유명한 공포영화 캐릭터인 제이슨과 한판 대결을 벌인다는 Freddy Vs. Jason 이라는 어이없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장국영 주연의 두 영화

주말에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두 작품을 감상하였다. 관금붕 감독의 인지구와 왕가위 감독의 Happy Together. 하나는 이승에서 맺지 못한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이루기 위해 자살했던 한 여인(매염방)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고스트스토리였고, 다른 영화는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이라는 두 홍콩 젊은이들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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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gefilm”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tieba.baidu.com/p/1484558002. Licensed under Wikipedia.

두 작품 모두에서 장국영은 책임감 없고 우유부단한 연인으로 등장한다. 선천적인 꽃미남 장국영은 어쩔 수 없이 귀티 나고 연약한 인상 탓인지 대개의 배역이 이런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영웅본색에서는 범죄에 몸담은 형 때문에 괴로워하는 강직한 형사로 등장하였을 뿐이다. 매염방과 장국영의 기구한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덕분에 인지구는 보다 감정이입이 쉽게 될 수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은 되는 영화였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천재연기자의 생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배역 그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 연기자들에게도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그 둘이 생전의 깊은 인연만큼이나 내세에서도 잘 지내고 있을는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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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poster” by http://www.moviegoods.com/movie_poster/happy_together_1996.htm. Licensed under Wikipedia.

이에 비해 Happy Together 는 생각만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우선은 나의 성(性)취향과는 관계없는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수도 있겠지만 왕가위 감독 특유의 스타일 위주의 극진행이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다. 여전히 그는 스타일리쉬하긴 하지만 극의 깊이감에 있어 2% 모자란 무라카미하루키 유의 팝아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중경삼림보다도 더 적은 에피소드로 더 깊은 사유를 강요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어쩌면 현실적인 연인관계가 필연적으로 배태하고 있는 상실감에 대한 영화였다.

요컨대 장국영은 어느 영화에서든지 존재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배우였다. 얼굴 그 자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할까? 이런 면에서 그는 분명 홍콩영화의 큰 별이었다. 매염방과 장국영, 두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Phantasm

사실 공포영화는 모순되게도 보수적인 영화장르다. 스크림에서 웨스크레이븐이 친절하게 설명한 바와 같이 공포영화에는 몇몇 암묵적으로 정해진 공식이 있는데 많은 부분 사회가 용인하지 못하는 부도덕함에 대한 징벌적인 성격이 강하다. 물론 도덕적인 징벌이 뭐 나쁘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영미권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나 추리영화의 보수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주로 기존체제의 부르주아 도덕률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떻게 보자면 공포영화에서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폭력묘사에 대한 도덕적 인과관계의 서술을 통해 관객이 극에 몰입하게 하는 동시에, 폭력묘사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기 위한 미봉책일수도 있다.

이 영화 Phantasm 은 그러한 공포영화의 보수성을 답습하지 않는다. 웨스크레이븐의 ‘공포의 계단’과 같이 진보적인 시각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억지스러운 인과관계를 꾸미기 위한 상황설정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처럼 폭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런데 너무 재미만 좆다보니(?) 이런 저런 잡탕소재가 섞여서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악당이 오컬트 쪽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외계인으로 둔갑되는데 특별한 설명도 없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대단히 창조적인 악당(?)이 등장하는데 한순간에 어이없이 당하기도 한다. 그런 허술함이 이 영화를 컬트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Don Coscarelli 가 불과 23살의 나이에 시나리오, 감독, 프로듀서 등을 도맡아 하였다.

Body Heat

어렸을 적 이 영화의 포스터가 동네에 붙여져 있었을 때 당연히 ‘야한’ 영화일거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영어솜씨라도 Body 라는 단어와 Heat 라는 단어의 뜻은 대충 알았고 ‘몸이 뜨겁다는’ 것이 무엇을 은유하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스틸도 제법 야했다.

사실 야한 영화이긴 하다. 스릴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끈적끈적한 날씨와 치명적인 매력의 캐서린터너가 결합되면서 묘한 에로틱한 분위기가 영화 전편에 걸쳐 뿜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스릴러 고전 Double Indemnity 와 흡사하다. 팜므파탈 캐릭터의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지적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접근하여 음모를 꾸민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찌 보면 Double Indemnity 의 오마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로렌스캐스단은 무슨 배포로 Double Indemnity 를 리메이크 혹은 오마쥬 하였을까? 자칫 반전이 묘미인 스릴러를 어설피 베끼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텐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캐서린터너의 능력을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공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우리는 비록 이미 Double Indemnity 를 감상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아무런 저항감이나 지루함 없이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만큼 박진감 넘치고 그만큼 묘한 Body Heat 만의 매력이 있다. 그 당시 막 연기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윌리엄허트와 캐서린터너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호연으로 인해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The Great Escape

인간의 몸과 마음이 속박당하고 있는 상태에선 어떻게 행동할까? 십중팔구는 자유를 원한다. 이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탈출영화다. 인간의 자유갈구를 소재로 한 액션물이라 할 수 있다.

캐스팅은 초호화판이다. 스티브맥퀸, 찰스부른손, 제임스가너, 리차드아텐보 등 당대의 스타들이 연합국 포로로 등장한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한 이들 포로들은 그야말로 밥먹듯이 탈출을 일삼는 자들이다. 그러나 탈출의 명분은 묘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탈출을 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어떤 이는 그저 구속이 싫어서 탈출하려는 것뿐이다.

탈출계획은 그야말로 거창하다. 지하로 갱도를 파서 대규모 인원이 일순간에 빠져나간다는 시나리오다. 탈출공모자들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시니컬한 스티브맥퀸을 일행에 끌어들인다. 그의 임무는 우선 먼저 탈출하여 인근지리를 살피고 오는 것.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그도 일행의 음모에 동조하여 그들을 돕는다.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계획은 성사단계에 이르러 하나둘씩 수용소를 탈출한다. 이들이 성공하는지 아니면 실패하는지는 영화의 말미에 드러나지만 요는 탈출과정 그 자체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비극적인 결말은 우리를 아쉽게 한다.

수용소로 다시 잡혀 돌아온 스티브맥퀸이 벽에 쳐대는 야구공은 결코 의지가 꺾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최고의 명장면은 스티브맥퀸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국경을 넘으려는 장면

달콤, 살벌한 연인

영화는 크게 달콤한 부분과 살벌한 – 그다지 살벌하지는 않지만 –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하디흔한 스크루볼 코미디에 살인이라는 소재를 가미해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기에 그나마 TV 쇼의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문득 ‘그래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를 연상시키는 소재다. 도끼부인에서는 연인이 살인자일 것이라는 상상이 헛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둘의 사랑은 그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물거품이 – 아련한 추억이 – 되어버렸다. 남자로서는 도저히 실정법에 ‘매우’ 심하게 위반되는 살인을 용인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정법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른 연인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로는 마이클더글러스 주연의 ‘Romancing The Stone’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에는 최강희의 살인에 대한 설명이 ‘크게’ 부족하다. 최강희가 그렇게 귀여운 캐릭터로 –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듯한 – 묘사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엄연히 냉혹한 남편 살인자이다. 이미 그러한 설정이 둘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으리라는 뻔한 결말로 이어진다.

만년조연으로 처음 주연을 맡지 않았을까 싶은 박용우의 고군분투 덕에 나름 코믹함이 돋보인 영화이고 소재의 신선함(?)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겠지만 극장개봉용 영화로 걸기에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듯한, 뒷맛이 그리 개운치만은 않은 영화다.

p.s. 여러장의 포스터 중 하나인 위의 포스터도 비슷한 류의 잔혹코미디 ‘친절한 금자씨’를 노골적으로모방했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끝 모를 지루하고 무의미한 전쟁터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 달리 무기의 발달과 참전국의 확대로 인해 대량학살이 동반되었던 그 이전의 어느 전쟁보다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부전선은 밀고 밀리는 와중에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던 곳이었다. 후대의 어느 역사가에 따르면 이러한 참혹한 전쟁에 대한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준동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였고, 심지어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려 – 동맹국을 내주고서라도 – 하였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참전군인의 눈이 아닌 독일 참전군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 할만하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승리자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 또한 당연히도 그 배급자도 역시 승전국인 영미권이 주이기에 – 웬만한 웰메이드 전쟁영화조차도 선악이분법의 구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독일의 평범한 시민이자 학생이었다가 참전한 이들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우선 이 작품이 전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석이 되고 있다.

군인들의 시가행진, 시민들의 환호, 참전을 부추기는 애국교수의 열변, 크게 감화되어 입대를 결심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극 초반 숨 가쁘게 진행되며 극은 중반으로 돌입한다. 애국주의에 감화되어 도착한 전쟁터는 이념이 설 자리가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순함이 자리 잡고 있는 생지옥이었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며 호승심은 공포로 바뀌어 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가 갖고 있던 신발이 내 차지가 되고, 전우의 죽음이 더 많은 식량배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성마비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잠깐의 휴식과 전우들뿐이다. 잠깐의 휴가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머릿속으로만 전쟁을 하는 국수주의자들은 멋대로 승리를 예견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군인들의 휴식처는 전쟁터가 되고만 것이다.

선구자적으로 사용한 크레인샷을 통해 비참한 전쟁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주인공이 애국교수가 혼쭐이 날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장면, 그리고 나비를 좇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등이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