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in Rock 등 장르 설명

Latin Rock (라틴 록)

라틴과 록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음악. 일종의 퓨전 음악인데,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1969년에 데뷔 앨범을 발매하여 1년만에 2백만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던 6인조 그룹 산타나의 창설자이며 멕시코 태생인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ta)이다. 재즈맨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퓨젼이 이룩된 라틴 재즈와는 달리 라틴 록은 그룹들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서 퓨젼이 이루어진 것인데, 그 중요한 역할을 한 그룹들에는 캄보 그룹들인 엘치카노(El Chicano), 창고(Chango), 세귀다(Seguida) 등이 포함된다.

East-coast rock (이스트코스트 록)

  미국의 동해안을 기점으로 발생한 록을 가리킨다. 동해안의 중심은 뉴욕이며, 따라서 아티스트들의 주요 활동지역도 뉴욕이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록계로부터 등장한 뉴욕 뉴웨이브 계통과,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아메리컨  프로그레시브의 움직임이 이스트코스트 록을 대표하고 있다.

drug music (드럭 뮤직)

환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음악, 또는 드럭에 의한 환각체험을 자아내는 듯한 음악.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가깝다.

Downer Rock

사운드의 우울한 분위기와 메시지의 병적인 상태에 의해서 한정 지어지는 록의 한 분파. 주요 연주인들에는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블러드로드(Bloodrod), 그리고 MC 5 등이 포함된다.

Barouque Rock (바로크 록)

1967년과 ’68년 사이에 생겨났으나 금방 소멸해 버린 록 음악의 한 형태. 원래는 리코더(recorder), 플루트, 하프시코드가 만들어 내는 바로크 모들 뮤직(Baroque modal music)의 사운드를 록 비트에 결합시키려는 시도로 출발하였다.  이러한 분야의 그룹으로는 아르스노바(Ars Nova), 크리설리스(Chrysalis), 뉴욕 스트링 앙상블(New YorkString Ensemble), 그리고 뉴욕 로큰롤 앙상블(New York Rock andRoll Ensemble)등이 있다. 바하의 칸타타 <Sleepers Awake>를 각색한 프로콜하름의 <A Whiter Shade of Pale>이 바로크 록의 대표 곡이라 할 수 있다.

Attitude Rock (애티튜드 록)

1960년대 중반에 출현한 난해한 부류의 록 뮤직.  애티튜드 록은 주어진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야기된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범주의 작곡가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비평, 공격, 저항뿐만 아니란 자신의 감정과 성찰에 대한 탐구에도 관심을 가졌다

british hard rock (브리티쉬 하드 록)

1970년경 영국에서 일어난 록. 리듬 앤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면서보다 힘차고 속도감이 있으며, 큰 음향으로 연주된다. 리듬앤 블루스라고는 해도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서,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전개하여,기타리스트를 주로 내세운 사운드와, 고음부를 강조한 보컬의 특징을가지고 있다. 아메리칸 하드 록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보다 무겁고보다 끈끈한 느낌을 주는 것인데,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딥 퍼플,레드 제플린 등이 있다.

Afro rock (아프로 록)

아프리카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거나 영향을 받은 록을 전체적으로말한다. 이전에는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아메리카의 흑인 뮤지션들의 사운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의 유능한 뮤지션의 대두가 두드러져서, 아프리카 사운드에 대한 말로 변화하고 있다.

New Wave (뉴 웨이브)

광란적인 사운드와 기괴한 머리 모양, 복장, 난폭한 무대 매너 등 펑크 스타일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고 서정미를 강조하여 초기 록큰롤의 흥취가 느껴지는 70년대말 펑크 이후 새롭게 등장한 록.
  카즈(the cars), 조 잭슨(Joe Jackson), 붐타운 래츠(Boomtown Rats),폴리스(Police), 클래쉬(clash), 블론디(Blondie), 칩 트릭(cheapTrick) 등이 뉴웨이브의 대표적 아티스트들이다.

Aleatory Rock (에일리어토리 록)

칼하인츠 스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밀튼 배빗(MiltonBabbit), 존 케이지(John Cage) 같은 전위적인 작곡가들은 음악적인 법칙과 상식에서 벗어난 우연성 작곡 (chance composition, randomcomposition)을 시도하였다. 에일리어토리(Aleatory)란 말은 ‘도박과 주사위’와 관련 있는 라틴어,
‘aleator, alea’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연성 음악’을 뜻한다. 실제로 러시아계 미국인 죠셉 실린저는 우연성기법의 기본형으로 숫자들을 사용하였으며 존 케이지는 동양악기인 칭(Ching)을 사용하기도 했다. 혹자는 신서사이저나 컴퓨터, 테이프 반복 진행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틀즈나 프랭크 재퍼는 이러한 형태의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Southern Rock (서던 록)

1970년대 초 올맨 브러더스 밴드와 함께 록 음악계에 대두한 것이 서던 록이다. 미국 남부 출신의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들고 나왔다 하여 ‘서던 록’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사운드는 70년대전반에 걸쳐 특히 미국의 남부에서 유행했다.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이 남아 복잡한 사운드가 팝스계를 누비던 시기에 서던 록은 록의 원류 즉 리듬 & 블루스와 컨트리& 웨스턴에서 그 사운드의 기초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뿌리로의 그리고 록의 본 모습으로의 귀환이었다. 그러므로 서던 록은 그 내용면에서도 미국 남부인들의 소박하고 낙천적인 인생관과 남부 특유의 지역색으로 인한 비극적 운명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서던 록의 핵심이라면 록큰롤의 기원인 소울과 컨트리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돌리려 한 데 있다.

West Coast Rock (웨스트 코스트 록)

미국의 서해안을 기점으로 하여 발생한 록을 가리킨다. 캘리포니아사운드라고도 한다. 서해안의 중심은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리스인데, 주로 여기서 생성된 록을 말한다.

사운드 면에서는 컨트리 뮤직의 흐름을 받은 것이 많으며, 코러스등에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후반의 히피 무브먼트에 의해 부각된 미국의 새로운 사운드의 개념. 웨스트 코스트 록의 대표적인 그룹들로서는, 제퍼슨 스타쉽, 클리톤즈, 또 그레이트풀 데드, 이글스 등을 꼽을 수 있다.

Psychedelic Rock (사이키델릭 록)

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기성 질서와 개념을 타파하고자 하는 히피들이 등장해 갖가지 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문화운동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당시 미국이 깊이개입했던 월남전에 대항하는 ‘꽃의 시위'(Flower Movement)와 ‘드럭무브먼트'(Drug Movement)를 들 수 있다.

이들 문화운동은 특히 마마스 & 파파스의 ‘꿈 속의 캘리포니아'(California Dreamin’)와 스코트 매킨지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머리에 꽃을 꽂으세요'(San Fransisco Wear Some Flowers In YourHair) 두 곡의 노래에 의해 이미지가 정착되었고 전세계의 히피들이’사랑과 평화'(Love & Peace)의 메시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곡이 도화선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에 번졌던 록 뮤직이 사이키델릭 록이었다.

사이키델릭 록 뮤직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반전과 인류애와 평화를주장하며 환각제 등을 사용하는 음악을 선보였다. 조명효과를 이용하는 화려한 라이브 무대에서 블루스 록을 기반으로 하여 재즈나전위음악적 요소를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제퍼슨 에어플레인은관능적인 메시지 송으로 록 음악에 불가사의 한 힘을 주며 과거의가치관을 타파해 갔다.

환각제에 의한 사이키델릭한 음을 표현한다 하여 ‘애시드 록'(AcidRock)이라고도 불리며 제퍼슨 에어플레인 외에 그레이트 풀데드등의아티스트가 있다.

Theater Rock (시어터 록)

무대의상, 행동 또는 풍채 등의 매력이나 이상스러움 또는 익살스러움에 의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거나 즐겁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용어.
1974년에 데뷔를 한 4인조 그룹인 키스(Kiss)는 수염난 고양이, 은색눈빛의 우주인, 입술을 내밀은 모양, 그리고 흡혈귀등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짙은 분장을 하였다.
1980년에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그들의 새 앨범, [The Wall]중에서 발췌한 곡들을 연주하는 동한 한 패거리는 벽돌을 한장씩 쌓아서 35피트x210피트의 대형 벽판을 만들었다. 시어터 록은 이러한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포용하며 단순한 흥행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충격을 주기 위해서 폭력이나 불건전한 행위까지도 자행한다. (*Glitter Rock: Shock Rock란 참조)

Teenage Rock (틴에이지 록)

하나의 장르라기 보다는 록큰롤 발달 과정의 한 단계로 봐야 할이 틴에이지 록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후인 1957년부터 약 5년간 지속되다가 로큰롤 음악이 포크 록, 프로페스트 록, 포에틱 록(Poetic Rock), 사이키델릭 록, 등의 형태로 복잡하게 개발되었고,밥 딜런(Bob Dylan)과 비틀즈의 출연을 보게 되는 시대에 이르러서는사라지게 되었다.

Shock Rock (쇼크 록)

록 그룹들이 그들의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줄 목적으로 폭력이나 섹스의 해프닝으로 치닫는데, 그러한 공연의 록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앨리스 쿠퍼(Alice Cooper)는 팬티 스타킹과 검은 타이츠를 입고 구렁이와 춤을 추거나 장난감 인형들을 처형하고 토끼들을 죽이고 하는 행위가 대표적인 예.

Protest Rock (프로테스트 록)

프로테스트 록은 가사의 주제적인 문제나 정신적인 자세 또는 이념등과 결부된 개념의 말이다. 프로테스트 록은 1960년대에 월남전 반대, 인종차별 반대, 반핵 등의 사회적인 운동의 일환으로서 개발되었다. 밥 딜런(Bob Dylan)은 필 오크스(Phil Ochs), 탐 팩스튼(TomPaxton), 피트 시거(Pete Seeger)등이 선구자이다.
레이버, 스톨러, 그리고 스펙터의 <Spanish Harlem> (1961)을 비롯,크리스탈즈 그룹의 히트곡이 되었던 진 피트니(Gene Pitney)의 <He’sa Rebel> (1962), 1965년에 1위의 히트곡이 되었던 배리 맥과이어(Barry McGuire)의 <Eve of Destruction>, 그리고 돈 맥클린(DonMcLean)의 <American Pie>(1972) 등이 모두 프로테스트 곡들의 예이다.

Progressive Rock (프로그레시브 록)

프로그레시브 록은 록 음악의 한 분야나 범주 라기보다는 오히려1964년에 비틀즈의 등장에서 비롯된 60년대를 통한 하나의 록 연주 추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녹음을 위한 새로운 기계들이 개발되는 것과때를 같이 하여 록 그룹들은 갖가지 음향변조기계와 새로운 전기 악기류, 신서사이저 등 새로운 장비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추세는 초기 로큰롤의 사운드나 최소주의 악기편성과는 달리 복잡성이 따르는 스튜디오 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Poetic Rock (포에틱 록)

1960년대에 록 음악의 가사들은 밥 딜런과 비틀즈와 함께 그 주제의깊이와 이미지의 신선함 그리고 표현의 우아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와 결부된 이 요소들은 각기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니 밋첼(Joni Mitchell), 닐 영(Neil Young), 로라 니로(Laura Nyro), 잭슨브라운(Jackson Browne),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캐롤 킹(Carole King), 랜디 뉴먼(Randy Newman), 폴 사이먼(Paul Simon),캣 스티븐스(Cat Stevens) 그리고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등의곡에서 발견된다. 특히 코헨은 1968년에 록 싱어겸 작사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인정받는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다.

No Wave Rock (노 웨이브 록)

펑크와 뉴 웨이브에서 파생된 록 음악의 하나로서 그 경향은 극단적인 비상업주의로 흘렀으며 비직업적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도 포함되었다.

Italo-American Rock (이탈로-어메리컨 록)

어떤 스타일이나 장르를 뜻하는 말이 아니고 뉴 저지의 이탈리아인 지역으로부터 나온 일군의 그룹들인 브롱크스(the Bronx), 크레스츠(the Crests),디온 앤 벨몬츠(Dion & the Belmonts), 프랭키 밸리 앤 더 포 시즌스(Frankie Valli & the Four Seasons), 영 래스컬스(the Young Rascals)등의록을 단순히 지칭하는 말이다. 후에 출현한 이 부류의 그룹들에는 블루스마구즈(the Blues Magoos),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 그리고 제이 앤 디아메리컨즈(Jay & the Americans)등이 있다.

Instrumental Rock (인스트루멘틀 록)

보컬이 없이 악기로만 연주되는 록을 말하며 전기 오르간이나 전기 기타또는 테너 색소폰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인 1959년에서 1963년 사이에 그전성기를 이루었다.

God Rock (갓 록)

종교적 성향을 띤 작품을 일컫는 말. 1967년에 일렉트릭 프룬즈(the Electric Prunes)는 헤브루 기도문에 근거를 둔 작품인 [Releaseof an Oath]와 [The Kol Nidrei]에 이어서 [Mass in F Minor]을 녹음하였다. 갓 록의 또 다른 그룹인 어소시에이션(the Association)도[Requiem for the Masses]라는 앨범 하나를 녹음했다. 밥 딜런의1979년도 앨범 [Slow Train Coming]과 1980년도 앨범 [Saved]는그리스도 교인으로서 다시 태어났다는 그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서역시 갓 록에 포함시킬 수 있겠으나, 갓 록이 아닌 지저스 록(Jesus Rock)으로 분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Glitter Rock (글리터 록)

70년대 초에 영국인 폴 가드(Paul Gadd)가 예명으로 사용했던 개리글리터(Gary Glitter)라는 이름에서 따온 록의 한 분파 이름. 그는무대 공연의 한 부분을 시각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구경거리를 연출하는 록 연주인들 중의 선두주자였다. 이상하고 기상천외한 의상과 분장, 머리 모양, 무대 도구들, 그리고 익살스런 행동 등 온갖 수단을동원하여 음악적 프로그램에다 시각적인 면을 더한 것이 글리터 록의특징이었다. 이러한 시각적인 면의 범위를 넘어서 폭력과 섹스를 가미하여 단순한 흥행의 차원을 넘어 선 것은 쇼크 록(Shook Rock)이라고 하고, 이 두 유형의 시각적인 록을 포괄하는 의미로는 시어터 록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Fusion Rock (퓨전 록)

재즈 그룹이 록 음악을 시도하거나 록 그룹들이 재즈를 연주하려고 시도하던 1970년대의 실험적인 혼합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 록과 라틴 리듬이 결합된 것도 역시 퓨전 록에 속한다.

Experimental Rock (익스페리멘틀 록)

록의 한 스타일이나 그 범주를 말할때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실험적 록 음악을 뜻하며 우연성 록, 전위 록, 클래식록, 그리고 전자 록 등이 이에 속한다.

Euro rock (유로 록)

영국 이외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록을 한때 유로 록이라고했다. 유로 록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실제로 오늘날에도계속되고 있는데, 그 절정을 이룬 것은, 네덜란드의 포커스가 영국으로 진출하여, 1972년의 멜로디 메이커지인 팝 폴, ‘브라이티스트호프’에서 1위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PFM, 독일의탠저린 드림이나 크라프트 베르크 등이 세계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둔것이라고 하겠다. 유로 록이 전성기를 이룰 무렵, 그 중심지는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의 3국이었으며, 음악적으로는 다양한스타일을 형성했는데, 그 대부분은 한때 영국에서 번영을 누린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이나 현대 음악을 바탕으로하는 언더그라운드적인 록이었다.

Sob Rock (소브 록)

하나의 장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노래부르는 스타일과 결부된 말로서 흐느끼며 울부짖는 블루스곡의 레코드를 단순히 일컫는 말이다.

swamp rock (스왐프 록)

스왐프는 ‘습지, 늪’이란 뜻으로서, 서든 록계의 음악, 특히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를 가리킨다. 델라니 & 보니,리온 러셀,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등의 사운드를 말한다.

Space Rock (스페이스 록)

우주 탐사의 개념에 근거한 록의 한 분야. 외계를 암시하는 사운드의 부수적인 사용과 함께 스페이스 록은 공상 과학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실질적인 업적을 이룩한 사람은 1973년에 앨범 [SpaceOddity]를 발표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였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그들의 밀리언 셀러 앨범 [Dark Side of the Moon](1973)에 이 주제를 다루었고 그 기념으로 런던의 천문관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출처불명

Purple Rain(1984)

프린스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80년대 흑인음악 – 어쩌면 전체 팝음악 – 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걸물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이클잭슨은 건전한 가수, 프린스는 퇴폐적인 가수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에 마이클잭슨이 더 변태적으로 사회에서 낙인찍히긴 했지만 ….

1984년 Prince 가 자주색의 이미지로 포장된 Purple Rain 이라는 앨범과 동명의 영화를 들고 나왔던 그 시기가 그의 음악경력에서는 최고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후에도 이에 필적할만한 음악적/상업적 성과를 낸 앨범들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그의 존재감이 그렇게 눈부신 시기는 이전이나 이후에 찾아볼 수 없었다. Purple Rain 과 When Doves Cry 라는 최대의 히트곡일지라도 나머지 곡들이 히트곡에 묻어간다는 느낌이 없이 제각각 빛을 발하는 앨범이 바로 Purple Rain 이다. 그리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이 착실히 연주되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영화가 바로 동명의 영화 Purple Rain 이다.

앨범과 같은 해인 1984년에 공개되었으나 프린스는 이미 우리나라 검열당국에게 찍혀 Let’s Go Crazy 와 Darling Nikki 가 금지곡으로 분류되었으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가 공개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해외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TV프로그램 등 다른 매체에서 이 영화의 부분장면을 맛보기로나마 볼 수 있었을 따름이다(삼성 비디오플레이어 선전에서도 이 영화의 자료를 썼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프린스를 위한, 프린스에 의한, 프린스의 영화이다. 음악이 영화를 설명해주기 위해 쓰였다는 느낌보다는 영화가 음악의 (퍼포먼스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해 땜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프린스의 반자전적인 스토리라고 하는 오이디프스컴플렉스적인 갈등과 반목, 그리고 Apollonia 라는 야심만만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역시 프린스의 화려하고 육감적인 노래와 공연이 이 영화의 줄기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 “감독님 참 밸도 없으십니다^^”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기라 한다면 100점 만점에 공연은 100점이고 드라마는 50점인데 공연이 전체 영화의 80%는 차지하는 것 같으니 100*80%+50*20% 해서 9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만다. 🙂

결국 아무려나 영화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영화가 신나고 재미난 경우가 비단 이 영화뿐이겠는가. 그래서 B급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이고 컬트가 있는 것이고 우리네 인생이 삼류라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요즘의 레트로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많이 놀림당하기는 하지만 – 대표적으로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 프린스와 80년대 음악의 팬이라면 이 영화의 심히 부담스러운 당시의 패션과 춤들, 그리고 프린스의 그 거창한 모터사이클이 전혀 촌스럽다거나 유치하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프린스 사단이었던 The Time 의 Jungle Love 와 Apollonia 6 의 Sex Shooter 등도 즐거운 볼거리이고 일종의 악역으로 등장한 The Time 의 리더 Morris Day 도 썩 훌륭한 연기를 – 어쩌면 프린스보다 한수 위의 – 보여주었다.

Breakin’ 2: Electric Boogaloo(1984)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이 영화가 나온 1984년만 하더라도 힙합댄스, 브레이킨과 같은 거리의 춤은 흑인들과 같은 타고난 몸을 가진 이들이나 추는 춤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나 했는데 지금은 비보이네 뭐네 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분야의 지존으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Breakin2.jpg
Breakin2“. Via Wikipedia.

여하튼 이 작품은 그러한 거리의 춤을 소재로 한 몇 안 되는 전문영화이다. 전작의 호응에 힘입어(?) Kelly, Ozone, Turbo 의 세 주요인물을 그대로 기용하여 해도 넘어가기 전에 2편을 제작해버리는 그 순발력이 놀랍다. 전편을 보진 못했으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 춤과 노래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 스토리, 캐릭터는 초절정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Kelly 는 부잣집 딸에 백인이면서도 Ozone, Turbo 와 같은 흑인댄서들과 친하게 지낸다. 한편 이들은 미러클이라 부르는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로 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땅이 탐이 난 한 개발업자가 쇼핑센터로 재개발하고자 하나 이를 안 Ozone 과 마을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마침내 자신들의 커뮤니티센터를 지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도심재개발에서의 공공성과 상업성 간의 갈등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 및 근린주구운동이라는 자못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영화의 주된 소비층으로 예상되는 빈민가 흑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을 소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지 간에 청문회 자리에서 Ozone 이 ‘인민(people)’, ‘공공(public)’, ‘공동체(community)’, ‘근린(neighborhood)’ 등을 외쳐가며 자본가에게 대항하는 모습은 무슨 좌익 성향의 뉴시네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각설하고 영화는 역시 춤에 초점이 맞추어진 만큼 사실 위와 같은 스토리는 심하게 말하면 곁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을 정도로 상영시간의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하고 있다. 카메라는 팝핀, 브레이킨, 째즈댄스 등 주인공들의 현란한 춤 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프레드아스테어의 그 유명한 벽과 천장을 타며 춤추던 장면을 패러디한 장면도 눈에 띈다. Ollie & Jerry 의 Electric Boogaloo 등 – 본인의 페이보릿이기도 – 화려한 사운드트랙이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춤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들의 연기나 의상들이 민망할 정도여서 오히려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전편의 3천6백만 달러에 달하는 국내 흥행성적을 기대하며 급조된 후편이었지만 정작 흥행은 7백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Electric Boogaloo’ 라는 제목은 조잡한 후편이라는 놀림감으로 여러 응용사례를 통해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한다.

초고화질의 영화의 공연 장면 보기

귀여운 반항아 (Charlotte And Lulu, L’Effrontee, 1985)

80년대 프랑스산 성장영화.

이 영화는 진지하고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춘기의 아픔과 성장을 거침없이 표현한 영화이다. 역시 프랑스산으로 Sophie Marceau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La Boum 이 아름다운 십대 소녀 사춘기에 설탕을 입혀 곱게 포장해 내놓은 청춘멜로물이었으며, 당시 미국에서도 유난히 Endless Love, Paradise 등 십대의 모습이 과장되어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취향의 작품이 유행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과감성과 용기가 더욱 돋보인다.

Charlotte Gainsbourg 는 철물점을 운영하는 편부 슬하에서 십대소녀가 가질법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시골소녀이다. 무엇이든 불만에 차있는 이 소녀는 어느 날 동갑내기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를 통해 현실탈피를 꿈꾸지만 그것은 결국 도달할 수 없는 꿈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고통 받지만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성격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이후 성장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렴풋한, 또는 노골적인 선악구도에 비해 그 심리관찰이 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탁월한 관찰능력을 보여준 영화는 이 후 Thora Birch와 Scarlett Johansson 이 주연한 Ghost World 정도일 것이다.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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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 ver3” by 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Jack Black 이라는 배우에 대해 처음 존재감을 느꼈던 영화는 아마도 귀여운 구피 Will Smith 가 주연을 맡은 1998년작 Enemy of the State에서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엑스트라에 가까운 정부의 첨단추적시스템 오퍼레이터들 중 하나였던 그런 있으나마나한 배역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가 John Cusack 주연의 감각적인 코미디 High Fidelity에서 제법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했을 때에도 그저 신경질적이고 콤플렉스 강한 뚱보 역의 조연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영화의 말미에서 그는 Marvin Gaye 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 제켰고 이것이 그의 영화인생과 음악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역사적인 장면이 되고 말았다. 이후 MTV 의 각종 수상식에서 사회를 보는 등 미국의 청년문화의 새로운 (나름대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Tenacious D 라는 배우가 만든 이래 가장 실력 빵빵한 밴드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 판 To Sir With Love 인 School Of Rock에서 그의 뛰어난 키타 솜씨와 노래 솜씨를 선보이더니 자신을 닮은 Peter Jackson 의 블록버스터 King Kong 에서는 순수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어느덧 주류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진지한 표정만 짓고 다니기에는 너무 장난기가 넘쳐나는 종합 예술인이다. 하여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와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본 작품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를 Tenacious D 의 동료 Kyle Gass 와 함께 만든 것이다. ‘운명의 피크’를 찾아 음악의 지존이 되겠다는 두 아티스트의 역경과 고뇌를 담은 이 작품에 Meat Loaf, Ben Stiller, Tim Robins, 심지어 Ronnie James Dio 까지 우정 출연하여 Jack Black 의 병풍이 엄청 탄탄함을 과시하고 있다. Ben Stiller이나 Will Ferrell 유의 촌철살인 화장실 유머에 탄탄한 음악이 실려 있어 몇 배 가속된 강도 높은 유머 특급이 되었다. 추천!

Lawrence Kas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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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ge Skidmore, CC BY-SA 3.0, Link

로랜스캐스단의 영화이력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걸작 The Empire Strikes Back 의 시나리오 참여부터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이 양반의 다음 작업은 또한 초유의 히트작 인디아나존스의 Raiders of the Lost Ark 의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이때부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만방에 떨쳤고 마침내 1981년에는 감독으로서의 처녀작인 스릴러 Body Heat 를 내놓는다. Double Indemnity 의 후속편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 끈적끈적한 작품으로 로랜스캐스단은 단숨에 히트감독의 명예를 획득하게 된다.

이후 1983년 또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 Return of the Jedi 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후부터 그의 변신은 시작된다. 스타워즈나 바디히트처럼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던 영화가 주특기였던 그가 1983년 갑자기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위해 장례식장에 모인 옛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The Big Chill 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빠르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은 템포로 이제는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그린 수작이다. 또한 쏘울 명곡으로 가득 찬 사운드트랙도 감칠맛인데 이를 통해 그의 음악적 편력도 드러냈다.

이후 The Big Chill에서 같이 작업했던 William Hurt를 내세워 만든 Accidental Tourist에서 또 한 번 서정적인 드라마를 통한 인생회고담의 장기를 선보인 그가 1990년에는 난데없이 포복절도 코미디 I Love You To Death(비디오 출시명 : 바람둥이 길들이기)를 내놓는다. 케빈클라인, 리버피닉스, 커누리브스, 윌리엄허트, 트레이시울먼, 피비케이츠 등 초호화배역을 내세워 바람둥이 남편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여인의 실화를 극화한 이 작품으로 그는 코미디에도 한 재주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1991년 그는 Grand Canyon 으로 다시 특유의 인생역정 드라마 전문 감독의 입지를 확인하였다. 큰 에피소드 없이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통해 인생의 맛을 음미하는 이 영화에서는 대니글로버와 스티브마틴을 등장시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인종적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에도 접근하였다.

1992년에는 케빈코스트너와 휘트니휴스턴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에 프로듀서와 시나리오에 참여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만 작품 자체는 이전의 양질의 작품에 비해 다소 질이 떨어지는 영화인으로서의 갱년기 증상도 보이게 된다.

그러한 탓인지 이 이후의 작품은 이전만한 재기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케빈클라인과 맥라이언을 앞세운 로맨틱코미디로 반짝 성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기에 2007년 자신의 아들인 Jon Kasdan 의 작품 In the Land of Women 의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는 그가 언젠가 90년대까지 보여준 가공할 공력을 다시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Repo Man(리포맨,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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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Man CD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CA..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존립근거가 신용사회, 즉 ‘상호간의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우주인의 UFO 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접시 모양이 아니라 자동차 모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일 수도 있다.

“뭐 재밌으면 됐잖아”

라고 감독이 한마디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펑크 음악에 대한 애정이 유난할 것 같은 – 그래서 실제로 차기작으로 펑크씬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시드와 낸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 감독 Alex Cox 가 바로 그 펑크적 감성으로(“연주 못하는 게 뭐? 신나면 되잖아?”) 만들었고 의도한 바대로 영화사에서 Rocky Horror Picture Sho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컬트 아이콘이 되었다.

찰리쉰과 따로 떼어놓으면 모르겠지만 옆에 두면 형제인줄 알 것 같은 에밀리오에스테베즈가 질풍노도의 펑크족에서 현대 신용사회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은 Repo-Man(Repossesing Man의 준말로 자동차를 할부로 사고 할부금을 갚지 않는 사람들의 차를 다시 ‘재소유’ 즉 뺏어오는 직업을 의미한다고)으로 변신한 Otto 역을 맡았고, 따분하고 지저분한 중년을 대표하는 듯한 외모의 소유자 Harry Dean Stanton 이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변변히 모아둔 것도 없는 중년 리포맨 Bud 역을 맡으면서 에밀리오와 투탑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이 둘을 축으로 차를 뺏어오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자주 들르는 편의점에서 이어지는 펑크족 강도들과의 만남, 외계인 시체를 트렁크에 실은 채 정처 없이 떠도는 과학자와 이를 뒤쫓는 정부기관 간의 해프닝 등이 상영시간 내내 골고루 배합되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있는데 Otto 가 이전에 친구였던 펑크족 강도들을 슈퍼마켓에서 맞닥뜨리는 그 짧은 몇 초에 매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슈퍼마켓의 진열장의 상품들이 하얀 포장에 그저 Food, Milk 등만 쓰여 있다는 점이다. 선진화된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저러지 않을까 싶은 그런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이 장면은 어느 블로거에 따르면 스폰서가 붙지 않은 탓에 억지로 찍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한편으로 어쩌면 감독이 초창기 애드버스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한편으로 이와 반대로 토마토 공격대 2탄에서는 스폰서가 붙어야 영화 펀딩이 되는 영화계의 현실을 비꼬아 아예 노골적으로 상품광고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 Bud 가 Otto 에게 ‘믿음’이 기반을 두는 신용사회가 맘에 든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이런 사회를 꿈이나 꾸겠냐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대화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끊임없이 주입되는 과잉소비의 지출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할부소비나 외상을 조장해왔고 오늘날 이러한 왜곡된 지불행태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리포맨은 바로 그러한 소비와 지불의 간극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응달 속의’ 집달리 들인 것이다. Bud 가 자본주의의 더러운 쓰레기나 치우는 마름이면서도 자본주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다.

80년대 헤비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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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s Priest Retribution 2005 Tour“.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뉴 웨이브 열기 비집고 헤비메틀 재등장

  70년대 신디사이져의 등장으로 잠시 전성기를 뉴뮤직에게 넘겨줬지만, 메틀 밴드들이 기피해 오던 신디사이져를 도입해 과감한 시도를 한 밴드도 적지 않았다. 바로 프로그래시브 메틀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던 것이다.

  1980년 레드 제플린은 존 본햄을 잃고 추락하였고, 리치 블랙모어는 여전히 변덕스럽게 레인보우의 멤버를 갈아대고 있었다. 오지 오스본이 떠난 블랙 사바스는 레인보우를 나온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를 받아들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보려고 했지만 팬들은 새로운 블랙 사바스의 사운드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키스의 요란한 화장도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고, 유라이어 힙은 아직 활동하고 있지만 팬들은 이미 그들을 과거 시제로 얘기하고 있다.

  AC/DC, 반 헤일런, 주다스 프리스트, 트라이 엄프 등이 공연과 앨범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헤비메탈의 명맥을 잇는 정도로 여겨졌고 핑크 플로이드의 《Wall》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Guilty》는 이들의 활약을 그늘에 묻어버렸다.

  70년대를 뜨겁게 했던 디스코의 열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맥을 이어온 헤비메틀은 이제 팝 음악의 변두리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으로 보였다. 디스코가 지난다음 다시 락의 황금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웃는 듯 팝 뮤직의 대세는 뉴 웨이브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헤비메틀의 새로운 역사는 그때 막 시작의 움직임을 보였다.

  헤비메틀사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시작 되었듯이 새로운 역사도 영국에서 시작 되었다. 펑크나 뉴 웨이브 밴드들에게 빼앗겼던 클럽의 무대에 다시 헤비메틀 밴드들이 나타난 것이다. 신진세력인 데프 레퍼드와 아이언 메이든의 등장은 헤비메틀 매니아의 주 연령층인 10대들과 비슷한 나이여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신진밴드의 등장으로 활력을 얻은 헤비메틀은 이제 화려한 영광을 되찾을 결정적인 찬스를 노리고 있었다.

  1983년 데프 레퍼드는 앨범 《Pyromania》을 가지고 미국 시장의 공략에 나섰다. 영국 팬들의 넋을 빼놓은 그들은 세계 최대의 음악시장인 미국을 정복함으로써 세계를 손아귀에 쥐려는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 마침 휘몰아친 마이클 잭슨의 열풍에 그만 그 야망은 실패를 하고 말았지만 《Pyromania》라는 제목처럼 미국에서 새로운 헤비메틀의 붐에 불을 붙이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뒤를 이어 등장한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앨범 《Metal Health》는 마이클 잭슨의 열풍을 비집고 올라서서 정상을 정복함으로써 본격적인 헤비메틀의 시대를 다시 열어놓았다.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성공은 팝스계를 다시 헤비메틀 쪽으로 돌려 놓았으며 바야흐로 헤비메틀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락은 하나의 음악이며 또 하나의 사회현상

  헤비메틀 붐으로 60년대부터 활동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많은 밴드들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 붐의 주역은 역시 데프 레퍼드나 콰이어트 라이어트, 아이언 메이든, 머틀리 크루 같은 신진세력이다. 아이언 메이든이 7년의 경력을 갖고 있을 뿐, 그들은 거의가 밴드를 결성한지 3~4년에 불과한 그야말로 풋나기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6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 온 헤비메틀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고 그 위에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

  60년대에 락이 탄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 새로운 음악을 두고 여러가지로 말을 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그것도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전쟁에 대한 격렬한 증오, 기존 도덕에 대한 도전, 정체된 사회에 대한 좌절감 등이 뭉쳐서 히피가 생겨나기도 하고 스튜던트 라워가 전 세계를 휩쓸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은 모던 포크와 락이었다. 모던 포크는 반항적이고 심각한 내용의 가사로, 락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통기타의 반주로 노래를 하던 모던 포크는 70년대를 고비로 락의 급류에 휘말리게 되었고 락은 팝 음악의 한부문에서 팝 음악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녀간의 사랑얘기나 부르던 비틀즈도 70년대에 가까워지면서는 반항적인 내용, 정치적인 가사, 나중에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변화를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일렉트릭 기타를 내세워 힘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 주던 하드 락은 젊은이들의 넘치는 혈기에 꼭 맞는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같은 이름은 젊은이들에겐 바로 우상이었고 기타를 잡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더 큰소리로 더 거칠게 연주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하드 락은 어느 시기엔가 그 금속성의 기타소리에 걸맞게 헤비메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제는 헤비메틀 밴드로 불리는 새로운 밴드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유행도 시대가 변하면 낡은 것이 되듯이 70년대 초반을 지나며 사회의 혼돈이 가라앉자 그와 함께 락도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가기 시작하였다. 락은 하나의 음악이기도 했지만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거치고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인기를 얻었던 락이 조용해진 세상에서 계속인기를 얻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80년대의 헤비메틀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곡의 길이가 짧은 것을 들 수 있다. 예전의 헤비메틀 밴드들은 거의 8~10분, 심지어는 13~15분이나 되는 긴 곡을 앨범에 수록하곤 했다. 더군다나 공연무대에서는 더 길어지기 일쑤여서 기타솔로가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헤비메틀 앨범들은 거의 10곡정도를 수록하고 있다. 그 만큼 곡의 길이가 짧아져서 5분이 넘는 곡이 드물다. 공연에서도 연주의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기타솔로라든지 키보드 솔로를 넣는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60, 70년대 헤비메틀 밴드들은 대부분 걸출한 스타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딥 퍼플은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 레드 제플린에는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블랙 사바스에는 오지 오스본, 유라이어 힙에는 데이빗 바이런과 켄 헨슬리가 있었다. 그들은 스타를 중심으로 밴드를 이끌어 나갔고 스타들이 빠진 밴드는 인기의 대열에서 낙오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헤비메틀 밴드는 거의 스타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스타를 키워 낼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겠지만 팬들도 밴드의 사운드를 더 좋아하는 부류로 바뀐 것 같다.

  80년대 헤비메틀의 또 다른점은 기교적으로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데프 레퍼드 같은 밴드의 음악에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었던 복잡한 코드의 진행이나 딥 퍼플의 클래식한 선율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다. 어떤 면으로는 그들이 1960~70년대 헤비메틀 밴드보다는 혹시 락큰롤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거칠고 강력하게 터져 나오는 기타, 두드려 부수는 드럼, 쇠사슬 처럼 철커덕 거리는 베이스, 목이 터져라 질러대는 샤우트 창법을 들어보면 그들의 음악도 분명 헤비메틀이다.

  밴드마다 거의 한결같이 키보드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다른 점이다. 60, 70년대 밴드도 기타의 사운드를 정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요즘의 밴드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밴드에 키보드를 제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딥 퍼플의 존 로드라는 불세출의 키보디스트가 있었고 유라이어 힙에서 켄 헨슬리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따로 키보디스트가 없었던 레드 제플린에서도 베이시스트 졸 폴 존스의 키보드 실력은 전문 키보디스트를 뺨칠 정도였다. 그들은 하몬드 오르간과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신디사이져의 연주로 헤비메틀의 사운드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요즘 활동하는 헤비메틀 밴드에서는 키보디스트를 찾기가 힘들다. 있다면 마이클 쉥커 그룹이나 레인보우, 화이트 스네이크 정도일까. 이 중 레인보우와 화이트 스네이크가 딥 퍼플에서 갈라져 나온 밴드이고 더우기 화이트 스네이크의 키보드 주자가 전 딥 퍼플의 존 로드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바꾸어 말하면 신진 헤비메틀 밴드는 거의 키보디스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1960~70년대 헤비메틀과 80년대 헤비메틀의 방향을 더욱 극명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헤비메틀이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에 있던 시대였다. 그 당시의 락 밴드들은 블루스, 락큰롤, 클래식, 컨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데 몰두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락이라고 해도 무척이나 여러 향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 유라이어 힙 같은 밴드의 음악이라도 전형적인 헤비메틀의 곡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는 어커스틱 기타의 반주로 노래하는 발라드풍의 곡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키보드는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헤비메틀은 이런 가운데 탄생한 한 부류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메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그 중에서 전형적인 헤비메틀 사운드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화려하고 깊이있는 소리를 내는 키보드가 오히려 헤비메틀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밴드가 5인조이면 의례 기타, 보컬, 키보드, 베이스, 드럼의 편성이었지만, 요즘의 헤비메틀 밴드는 오히려 트윈 기타를 채용하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있다.

  기타의 연주에서도 꽤 변화를 보이고 있다. 블루스나 락큰롤의 영향이 짙게 베어 있었던 초기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에 비해 요즘의 기타리스트들은 헤비메틀 기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놓고 있다. 솔로 연주에서 멜로디의 전개와 리듬 감각을 중요시 했던 선배들에 비해 빠른 속도의 손가락 놀림과 깊게 디스토션이 걸린 사운드, 전체적으로 힘과 스릴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80년대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곡이 짧아서 듣기에 부담이 줄었고 한두 사람보다는 밴드자체가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으며 곡의 구성이나 기교가 단순해져 있고 키보드가 배제된 상태에서 기타가 사운드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기타의 연주 스타일도 헤비메틀 특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을 80년대 헤비메틀의 특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http://tai88.hihome.com/80year.htm

비교 분석 Glam Rock & Visual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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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ori Orochi from JAPAN – 9-5nin, CC BY 2.0, Link

http://www.beautynet.co.kr/beautynet/radiogaga/read.php?db=2512&no=4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지만 링크는 살려둠)

비교 분석 Glam Rock & Visual Rock  2001-08-13  Glam Rock 과 Visual Rock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까 싶어 블루노이즈(www.bluenoise.co.kr)에 나온 기사를 여과없이 올립니다 (beautynet.co.kr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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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락과 비주얼락은 같은 장르인가 아닌가?! 그리고 비주얼락이 글램의 하위장르인가 하는 문제들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돼 왔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글램락과 8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생겨난 비주얼락에 대해서 살펴보고 과연 이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헛갈리는 부분들이 아주 많을 정도로 글램과 비주얼의 상관관계에 대해 명확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지극히 매니아적인 입장에서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글램, 비주얼 어느 쪽의 매니아도 아닌 입장에서 두 장르(?)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Glam Rock

Glam Rock은 ”Glamurous Rock”, 즉 매혹적인 락음악이라는 뜻이다. 이 음악은 화려한 의상이나 여성보다 더 요염하고, 중성적인 이미지의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됐고, 그들 음악의 특징은 팝적이면서도 Punk적인 색깔이 가미돼 있는 Rock음악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르는 1970년대 초반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음악이고, 그 모태는Glitter Rock(glitter:반짝이는, 화려한)이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던 10대를 비롯한 젊은 이들은 휘황찬란한 미국의 대중문화를 동경하고 있었고 이런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그 시대에 태어난 음악이Glitter Rock이었다.

글리터 락의 영향을 받아 글램 락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T-Rex의 마크볼란이라고 할 수 있고, 1950년대 Rock’n Roll이 시작돼서 1970년대 중반 Punk Rock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기 전인 과도기적인 시대에 나온 음악이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아주 기본적인 4마디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Simple Rock’n Roll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클래식이나 서사시 같은 복잡한 음악들에 지쳐 있던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단순하면서 춤추기에도 좋은 리듬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 글램락 뮤지션들은 실제로 멤버들이 같은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글램락이 중요시 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표현이었다.

그 중에서도 강한 자의식을 표현하는 것에 충실했고, 70년대 당시 페미니즘 운동에 힘입어서 인기를 얻어갔던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글램락의 전성기에 활동한 뮤지션들을 보면 글램락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고 볼 수 있는 David Bowie, Velvet Underground, Stooges, Sweet, T-Rex, Alice Cooper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Glam Rock 의 시대가 가고 있을 쯤 글램락의 색깔이 나타났던 팀이 Queen이다. 현재 글램락의 영향이 나타나는 뮤지션으로는 Elton John, Suede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Visual Rock

비주얼락은 80년대 중반 일본의 ‘보위’라는 뉴웨이브 밴드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고 중성적인 분위기의 뮤지션들의 외모는 글램락과의 혼란을 가져오기 쉬운 부분이었다. 이후 비주얼 락의 발전은 X-Japan이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어떻게 보면 비주얼 락은 글램락의 분위기에 메탈적인 요소와 특유의 일본적인 색깔 – 애매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한국적인 락이라는 표현이 어떤 느낌이라는 걸 이해한다면 일본적인 색깔도 대충은 감이 잡히지 않을까 – 이 들어가 있는 음악이다. 이 후 ‘Luna Sea’, ‘Lar~en~ciel’, ‘Glay’, ‘Dir en Grey’ 등의 뮤지션들이 출연하면서 하나의 장르로서 힘을 얻게 됐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보면 글램락과 비주얼락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글램은 팝적인 요소와 펑크 음악적인 요소가 가미된 락큰롤이고, 비주얼락은 약간은 더 헤비하고 일본적인 색깔이 가미된 음악인 것이다. 차이점을 찾자면 이런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 이런 기준들이 그리 명확하다고 하기에는 또 그 기준이 너무 애매하기도 해서 지금도 글램락과 비주얼락의 팬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글램락 매니아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비주얼락은 글램락의 영향을 받아 그 음악을 흉내내려고 하지만 그램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비주얼락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자신들의 음악을 타당화 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비주얼락 매니아들은 외모부분에서 화장을 했다고 글램락이 아니고, 비주얼락은 글램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다른 장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어느쪽이 맞다 그르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하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필자 스스로도 그런 주장들을 정리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일임을 느꼈다. 단지 글램락과 비주얼락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비교하는 정도에서 외에는.

글램락과 비주얼이 비교되는 이유는 표현이라는 부분에서 일 것이다.

비주얼과 글램은 표현이라는 큰 카테고리는 일치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르다고 볼 수도 있다. 굳이 그 차이점이나 공통점을 찾아 보자면 이런 점들이 있지만 필자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글램락과 비주얼락에 관한 논쟁은 계속 되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글램이나 비주얼이 우리 나라에서 생소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쟁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일본문화 개방 이전부터 매니아들은 일본의 비주얼락 밴드에 큰 관심을 가졌었고, 지금 다시 글램락과 비주얼락의 영향을 받은 음악들이 우리 나라에서도 서서히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우리 나라에도 비주얼이나 글램락을 중심으로 하는 클럽(이대 앞 ‘Queen’)도 생겨나고, Mino&Alive등의 밴드들이 글램락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밴드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도 머지 않아 글램이나 비주얼락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글: soundlove@bluenoise.co.kr

LA Metal

원래 미국의 HR 씬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이스트코스트(East Coast) 사운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웨스트코스트(We st Coast)로 구분되어 발전하였는데, 70년대부터는 AEROSMITH, KISS를 맹주로 한 동부세력이 득세하였다. 그러나 78년 VAN HALE N의 등장으로 L.A.와 캘리포니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특히 80년에 들어서는 영국의 N.W.O.B.H.M.의 영향으로 M TL EY CR E, QUIET RIOT, RATT라는 3대 밴드를 주축으로 ROUGH CUTT, W.A.S.P.등 일단(一團)의 신진 밴드들이 대거 출현하였으니 이 거대한 흐름을 지역적 이름을 따서 L.A. Metal이라 부른다.(처음에는 L.A.를 위시한 캘리포니아 출신의 밴드를 L.A. Metal 이라고 했으나 후에는 지역은 틀려도 ‘L.A. Metal과 같은 성향의’ 밴드도 L.A. Metal로 집어넣었다.)

L.A. Metal의 특징은 외모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스와 스프레이로 부풀린 머리, 화려한 화장, 가죽 점퍼와 청바지라는 전통적인 의상을 벗어 던지고 산뜻한 T 셔츠와 스판바지, 가죽조끼로 무장한 이들은 음울하고 남성적인 HM의 이미지를 밝고 명랑한 여성적인 것으로 변모시 켰다. 물론 사운드 자체는 전형적인 브리티쉬 HM이었지만 N.W.O.B.H.M에 비해서는 기타리스트의 중요성이- 조지 린치, 워렌 디마 티니, 제이크 E. 리는 밴드의 후광이나 인기와는 별도로 자신들의 입지를 세웠다.- 부각된 것이었고, 그위에 약간의 미국적인 현실, 허장성세(?)도 가미된 HM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 이 L.A. Metal은 하나의 장르만이 아닌 잡다한 수많은 분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가장 과격한-무대에서 날고기를 씹는 충격적인 매너를 보여준 W.A.S.P.에서부터 블루스적인 취향의 GREAT WHITE, 파워메틀 밴드인 ARMORED SAINT, 달콤한 여성취향의 POISON, 가장 전형적인 L.A. Metal의 특성을 가진 M T LEY CR E, RATT, 그리고 지역적 음악적으로 전혀 달랐지만 L.A. Metal에 집어넣는(?) BON JOV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밴드를 포 섭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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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Jovi 1” by Rosana PradaFlickr.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결과적으로 이러한 다양성으로 L.A. Metal은 80년대의 주도권을 쥘 수가 있었던 것이고 나아가서는 88년 {그래미}에 HM/HR부분이 신설된 것으로 상징되는 ‘HM의 시민권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혹자(或者)에 따라서는 “L.A. Metal은 상업적이다”, “인기위주로 나아갈 뿐 철학이 없다”는 등의 비난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L.A. Metal은 탄생이래 언더그라운드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HM을 밝은 태양 아래 인도했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조류였다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로스앤젤레스와 그 위성도시를 중심으로 한 메틀이라는 뜻이 첫째요, 두번째로는 ‘L.A.메틀적인’ 정취를 가진 밴드의 음악을 가리킨다. 즉 쾌락적이고 감각적인 미국적인 기질에잘 어울리는 메틀인 것이다. L.A.는 연예도시인지라 물론 밴 드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이 소녀취향의 팝 밴드였다(물론 DOORS는 제외하고서라도..) 그러던 중에 VAN HALEN의 등장 은 많은 뮤지션들의 관심을 로큰롤로 이끌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불어온 N.W.O.B.H.M.의 영향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 故랜디 로즈가 이끌던 QUITE RIOT, LONDON, REGS DIAMOND등이 불씨를 지폈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L.A.메틀의 신호탄은 8 1년 데뷔한 M TLEY CR E부터였다. 경쾌하면서도 박력있는 8비트의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와 활력이 넘치는 에너지,현실 적인 가사는 그대로 L.A.메틀의 표준이 되었고, 이후 RATT, ROUGH CUTT, BLACK N’BLUE, DOKKEN, GREAT WHITE, GUNS N’ROSES, POISON, WARRENT, L.A. GUNS, FASTER PUSSYCAT, BANG TANGO, SLAUGHTER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점차 대세를 잡아갔다. 무 엇보다 L.A.메틀의 공적은 매니아·언더그라운드 취향에 머물던 HM을 음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키웠다는 것에 있다 . 물론 여성 취향이라거나 인기에 영합한다, 내용이 없다라는 비난도 없지는 않았지만서도 그때까지 영국에 빼앗겼던 HM의 주도 권 내지는 뿌리깊은 열등감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출처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