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한국에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1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도 옆 나라 일본에는 토킹헤즈 활동 초창기부터 공연을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고,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었고, 솔로 활동 시절에도 공연을 했었음에도 우리나라는 오지 않았었다. 그나마 한국에 방문한 흔적을 남긴 것은 오래전에 그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음악 활동과는 관계없는 방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드디어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런 만큼 개인적으로는 감개무량한 첫 공연이었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데이빗 번 개인과 토킹헤즈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공연 기획사의 계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토킹헤즈의 현역 시절에는 한국에는 그러한 시장이 없었다.2 어제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관객층의 나이는 토킹헤즈 시절에 음악을 즐겼을 만한 중장년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락페스티벌 및 스탑메이킹센스의 극장 상영으로 신규 유입된 듯한 젊은 팬들이 많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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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은 경희대학교에 있는 ‘평화의 전당‘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건물(외관도 거창하다4)이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트위터에서 공연장이 걸어가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위치였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안젠치타이 공연을 감상했던 추억의 장소였지만,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에게는 불만이 나올만한 나쁜 접근성의 공연장이었다.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척박한 것이다. 전문 공연장도 아니고 접근성이 후진 대학교 부속건물을 쓰는 공연 인프라. 그게 2026년 K-컬처의 현재다.
이제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인 감회가 있어 공연 수준의 뛰어남을 논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공연이 아니었다.5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밴드 둘을 꼽자면 The Smiths와 함께 탑으로 꼽을 밴드인 토킹헤즈, 그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번옹이 생애 처음으로 공연을 펼치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경험은 냉정함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 처음 그들의 음악을 접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 어떤 아련함과 벅참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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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올라온 셋리스트 숫자를7 세어보니 번옹이 공연에서 들려준 노래는 총 21곡이었다. 공연시간은 대략 1시간 4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번옹이 토킹헤즈 곡들 사이사이에 솔로 곡들을 빼곡하게 배치했다는 점이다. 솔로 앨범의 곡들은 총 10곡이다. 거의 비중이 50대 50인 셈이다. 본인의 솔로 활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옹의 솔로 활동 곡보다는 모리씨의 솔로 활동 곡을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을 보며 선입견이 좀 바뀌었다.8
조금 냉정을 유지하고 그의 공연을 평하자면 그의 컨셉트는 확실하게 동적(動的)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락 공연이라기보다는 뮤지컬 혹은 댄스 퍼포먼스에 가까운 공연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트위터에서의 각종 감상 트윗) 그간 영상으로 느꼈던 그 역동성이 육안으로 다가오자, 확실히 그 공연의 다이나믹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기술의 발전과 본인의 천재성으로 만든 13인조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적인 건물 안에 우리 관중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게 번옹의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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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옹은 사견으로 본인을 뮤지션이 아닌 퍼포먼서 내지는 종합 예술인이라고 자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캐릭터는 그가 음악이 아닌 미술 전공의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 다녔던 이력에서부터 형성되었을 것이다.9 그리고 이후 뮤지션으로서의 활동한 이후에도 공연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는 무대를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왔고, 토킹헤즈 초기 활동에서의 그 컨셉트의 정수는 바로 스탑메이킹센스 홍보 공연과 조나단 드미의 영화화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즉, 번은 로버트 윌슨, 트와일라 타프, 토니 실 등 종합예술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찌감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뮤지션이 단순한 소리의 전달이 아닌 다양한 감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내한 공연을 포함한 그의 공연 포맷은 그러한 신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그간 그의 작업은 뮤지컬로 확장되기도 했었고, 때로는 건물 자체를 악기로 사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요컨대 번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이번과 같은 마술 같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폰카메라를 꺼내게 만든, 그 유명한 Make America Gay Again(이미지 출처)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을 마법적인 황홀감에 빠지게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치트키는 사실 그런 독특한 공연 컨셉트나 고령을 무색하게 하는 그의 노익장 뭐 그런 것도 아니고 – 그런 것도 있겠지만 – 토킹헤즈 및 그의 솔로 곡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에10 있었다. 누가 – 다른 곡들보다 호응은 덜 했던 듯하지만 – 그 시절에 어떻게 Air와 같은 곡을 만들고 공연할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지금 들어도 ‘뭐야 이건?’ 할만한 독창성을 뽐냈던 뮤지션, 그들이 토킹헤즈다.
어떤 사용자는 티나가 오지 않는 공연이어서 공연에 올지 망설였다는 트윗을 올렸던데, –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 어떻게 보면 이러한 고민은 과거 실시간으로 유명 해외 뮤지션의 공연을 즐길 수 없었던 환경의 나라에서는 다소 배부른 고민일 수밖에 없다. 한창 그들의 음악을 듣던 시대가 아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이제야 가까스로 시장이 형성된 때에 찾아오는 뮤지션들. 그런데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고 공연에 안 간다고? 당연히 가야지! 인생은 그런 것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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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이 순회공연을 하면서 전성기 시절의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이에 호응할 수 있는 환경, 이건 문외한인 내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추억팔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그런 추억팔이도 시장이 있고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수많은 뮤지션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번옹은, 슬기롭게 그런 추억팔이와 본인의 솔로 커리어를 조화롭게 팬들에게 선보여서 팬으로써 너무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번옹.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위시리스트가 몇 개 있다. 이제 나 역시도 이미 장년을 바라보는 비루한 처지라서 신진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은 아니고, 어린 시절 감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그런 뮤지션들을 그나마 K-컬처의 유행 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마도 … ㅎㅎ 어렵겠지. Joe Jackson, Paul Weller, Depeche Mode, ABC 등등의 뮤지션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한 축으로 번옹의 공연을 이번에 본 것이다. 그래서 감사해야겠지. 건강하세요 번옹. ㅋㅋㅋ
공연 영상
- 한국 가수의 나이와 비교하면 나훈아가 내한 공연하는 수준 ↩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발매된 그들의 스튜디오 앨범은 리틀크리쳐다. ↩
- 그런 의미에서 소간지님 고맙습니다. 님이 한국에 멋진 서브장르를 만들어주셨습니다. ↩
- 벨기에의 생 미셸성당을 모델로 만들어진 고딕 건축물이라고 한다.(출처) ↩
- 그저 눈물이 주루륵 ↩
- 예전에 모리씨 공연을 보고 이제 번옹의 공연을 봤으니, 버킷리스트의 두어 개 정도는 지워도 될 것 같다 ↩
- 참고로 일본 썸머소닉 공연 셋리스트와 동일하다 ↩
- 그래서 공연을 직접 봐야 작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겠지. ↩
- 잘 알다시피 크리스와 티나 역시 그 학교에 다녔고 번은 이후 중퇴하지만, 그 둘은 끝까지 남아 학교를 졸업했다. ↩
- 이러한 독자성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넘사벽의 독창성으로 규정할 수 있고 이러한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을 극히 희귀하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일단 토킹헤즈, 스미쓰, 스트랭글러스, 엑스티씨, 조이디비전 정도가 생각난다. 지금 Bros를 듣고 있는데 그들도 독자성이 있을까? 좋아하는 밴드여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