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cker

어렸을 적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자잘한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끝에 건널목에서 그 사람들이 다 모여서 끝을 맺는 그런 영화형식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이런 내 상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영화가 있는데 Richard Linklater 의 1991년 작 “게으름뱅이(Slacker)”가 딱 이런 작품이다. 영화의 고갱이가 되는 플롯은 없다. 카메라는 그저 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를 파 헤집고 다닐 뿐이다. 어수룩한 강도, 혁명을 회상하는 노인, 길가는 사람들에게 음모론을 전파하는 룸펜, 유명 연예인의 대변이라며 이를 팔려는 여인(위 사진)등…….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영화로 완성된다. 영화제작비는 2천만 원 약간 넘게 들었다 한다. 물론 8백만 원 들었다는 엘마리아치도 있지만 아무튼 상당히 저렴하게 90년대 독립영화 최고의 문제작을 만들어냈으니 남는 장사다. 이 영화가 데뷔작이었던 감독의 이후 필르모그래피는 줄리델피 주연의 ‘해뜨기 전에(Before Sunrise)’에서부터 잭블랙의 스쿨오브락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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