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Synth Pop

Men Without Hats

결성 : 1980년 캐나다 퀘벡
해체 : 1990년
멤버 : Stefan Doroschuk, Allan McCarthy, Colin Doroschuk, Ivan Doroschuk, Roam Martin

뉴웨이브 씬쓰팝 밴드인 Men Without Hats는 1980년 Ivan과 Stefan Doroschuk 형제에 의해 결성되었다.Ivan은 대부분의 노래를 작곡하고 리드보컬을 담당한 그룹의 리더였다. Stefan은 키타를 담당하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자주 교체되었다.밴드는 1980년 데뷔 EP를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다음해 영국에서 재발매되었고 마침내 1982년 데뷔 앨범 Rhythm of Youth를 발매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싱글 “The Safety Dance”가 큰 히트를 기록하여 마침내 1983년 미국 챠트에서 3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연이은 앨범의 실패로 말미암아 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디스코그래피

1982 Rhythm of Youth MCA
1983 Rhythm of Youth [With Folk of the 80’s EP]Statik
1984 Folk of the ’80s, Pt. MCA
1987 Pop Goes the World Mercury
1989 The Adventures Of Women And Men Without Hate… PolyGram
1991 Sideways PolyGram

M(Robin Scott)

Country: U.K.
Genre:Techno Pop, Disco Music
Members: Robin Scott
Affiliates: The Factor, Comic Romance
Connections: Ryuichi Sakamoto , Yukihiro Takahashi , Thomas Dolby

M으로 알려진 Robin Scott는 디스코풍의 테크노팝 명작중 하나인 Pop Muzik이라는 곡으로 유명하다. M은 Mirror의 M, Modern의 M, 알파벳의 13번째 글자로써의 M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했다. Scott은 60년대 후반 Croydon 아트칼리지를 다니고 있었는데 – 급우중에 Malcom McLaren이라는 애도 있었다 – 이때부터 지방클럽에서 포크쏭을 불렀었다. 이로 인해 Head 레코드사에서 Woman From the Green Grass라는 LP를 내놓게 되었다. 70년대에 그는 펍락밴드 Roogalator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로 변신하였다. 그는 그들의 Cincinnati Fatback을 프로듀스하였는데 이 곡은 영국의 인디 레이블인 Stiff 레코드사가 내놓은 최초의 싱글이기도 했다. Scott은 자신의 레이블인 Do-It을 통해서 Adam and the Ants의 데뷔앨범을 내놓기도 했다. Scott은 1978년 파리로 갔는데 거기에서 그는 여성 펑크 밴드 The Slits의 앨범을 프로듀스했다. 이 시기에 Scott은 이름을 M으로 바꾸고 싱글 Moderne Man을 녹음하였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다음 싱글 Pop Muzik에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 곡의 엄청난 히트로 말미암아 데뷔앨범 New York-London-Paris-Munich에서의 몇몇 싱글들이 연이어 히트했다. 후에 그는 YMO의 Ryuichi Sakamoto의 Left Handed Dream, The Waterboys의 A Rock in the Weary Land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Yukihiro Takahashi와 Thomas Dolby가 참여한 자신만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M과 Huey Lewis & The News는 Ray Parker Jr.의 Ghostbusters가 각각 그들의 Pop Muzik과 I Want A New Drug을 표절하였다고 주장하며 Ray Parker Jr.를 고소했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Huey Lewis의 주장은 근거없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Pop Muzik과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고 판결하여 Ray Parker Jr.가 M에게 판권료를 지급할 것을 명령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9 New York-London-Paris-Munich Sire
1980 Official Secrets Act Sire
1982 Famous Last Words Sire
1989 Boogie with a Suitcase Freestyle
1989 Walking on the Water Fuego
1999 Le Bapteme EMI
2000 New York London Paris Munich [Japan Bonus] Crown Japan
2000 Official Secrets Act [Japan Bonus] Crown Japan
2000 Famous Last Words [Japan Bonus Tracks] Crown Japan
2000 Je Dis Aime Virgin France

링크
Official Site

Listening Pool, The

1989년 O.M.D(Orchestral Manouevres in the Dark) 해체후 – 그 뒤에도 Andy McCluskey는 O.M.D.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였지만 – 그룹의 멤버였던 Paul Humphreys(보컬), Malcolm Holmes(드럼), Martin Cooper(키보드)는 The Listening Pool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Telegraph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싱글 ‘Oil for the Lamps of China’, ‘Meant to be‘를 발표한 뒤 마침내 1993년 정규앨범 Still Life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특히 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Andy McCluskey라는 핵심인물을 제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앨범은 과거 O.M.D.의 로맨틱한 사운드를 충실히 재현하였다. 그러면서도 멤버 각자의 역량을 싱글에 골고루 배치하여 싱글들 나름의 매력을 살렸다. 한편으로는 어쿠스틱 키타의 풍부한 질감과 깔끔한 키보드 사운드가 Roxy Music의 Avalon 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청량감으로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감싸고 있어 여름에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 그룹은 뚜렷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그들의 레이블인 Telegraph 레코드사의 경영실적도 신통치 않아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퍼온 글 : OMD에서 The Listening Pool까지 小史]

금년 5월 중순, 솔로데뷔작이 되는 앨범 「카바즈」의 녹음을 준비중인 Thomas Lang을 보러 리버풀에 방문했을 때였다.

“실은, 바로 이전, OMD로부터 멀어진 멤버가 만든 새로운 밴드의 앨범으로 게스트보컬을 했다.”

라며 들려주었던 것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Wild Strawberries」였다. 이 때, 그가 운전하는 차의 카스테레오의 카셋트로부터 흐르기 시작한 것은, 마치 토마스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곡. 조금은 우울하고 애수감 넘치는…. 이것을 들으면서 그는 여느 때처럼 테이프에 맞추어 노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체험했던 것이 한번에 반한다라는 것이다. 결국 한동안 이 곡을 반복해 듣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났을 것을까. Thomas로부터 보내져 왔던 것이 The Listening Pool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밴드의 앨범이었다. 이 시점에서 알고 있던 정보라면 일찍이 OMD에 재적한 멤버가 만든 밴드라는 정도인데 이 CD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테크노 음색이야말로 희박하면서도 현재의 OMD 이상으로 OMD 적인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사운드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레이블로부터 보내져 온 자료에 의하면, 이 The Listening Pool을 구성해 있는 것은 OMD의 거의 결성시 부터의 멤버 3명이 앨범에 가장 OMD 인것 같은 표정을 느꼈던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생략해 OMD가 Andy McCluskey와 Paul Humphreys에 의해 리버풀에서 결성된 것은 78년. 다음 해 79년 5월 맨체스터의 파크트리 레이블에서 「Electricity」로 싱글데뷔 하였다. 그 후 Virgin으로 이적해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82년에는 Martin Cooper와 Malcolm Holmes가, 그리고 86년에는 Graham Weir와 Neil Weir가 멤버에 참가하였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Andy&Paul을 핵으로 하여 Martin과 Malcom이 뒤를 받쳐주는 시스템이 OMD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 OMD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 그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80년대의 중반이었다. Stephen Hague의 프로듀스아래에서 녹음한 「Crush」에 이어 같은 멤버로 「The Pacific Age」에 착수하지만 Andy가 주도하고 있던 그룹의 노선에 불만을 느꼈던 Paul, Martin과 Malcom의 3명은 싱글의 선택에 관해서 Andy와 큰 격차가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오리지날 OMD에 있어 마지막 스튜디오앨범이 되었다.

양자의 관계수복 기간에 발표되었던 것이 결성 10년을 기념한 1988년의 「The Best of OMD」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앨범 발표에 아울러 제작된 싱글 「Dreaming」에 관한 이견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도 3명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Andy의 의견이 채택되었다. 이것이 양자간에 결정적인 균열을 만들어냈다. 결국 세계적으로 2백만 매를 판 앨범실적을 바탕으로 Depeche Mode와 전미 투어에 나서지만, 오리지날 OMD로서 마지막 라이브가 되었던 것이 10만 명을 앞에 둔 로스앤젤레스의 로즈 보울 축구·스타디움.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 3명이 밴드와 결별하고 말았다.

어떤 의미로는 OMD가 OMD가 아니게 되었던 것이 그 90년이었다. The Listening Pool로부터 보내져 온 자료에 의하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룹이 해체되면 OMD는 소멸한다고 하는 상호결정이 결성시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Andy가 OMD의 이름을 사용하고 싶다고 주장해, 이 3명은 그에게 그 권리를 매도하게 된다. 그 배후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지만 그렇게 남겨진 Andy의 밴드를 OMD라고 부르는데 저항이 있다. 실제 OMD는 그 시점에서 소멸했을 것이다. 그들의 자료에는 「OMD가 끝나갈 무렵 3명이 곡을 만들고 있던 적도 있어 The Listening Pool을 결성하게 되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아마, 옛날부터의 팬에게도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현재의 OMD는 OMD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며,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트에 임한 그들은 92~93년과 곡만들기에 집중하여 동시에 The Listening Pool이라고 하는 새로운 밴드의 컨셉을 가져 수많은 레코드 회사를 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아티스트적인 컨트롤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레이블을 설립하였고, 그것이 Telegraph 레코드다. 그리고 거기에서 93년 7월 29일에 발표했던 것이 싱글 「Oil for the Lamps of China」였다. 싱글은 전영(全英)차트의 탑 100에 들었고 평론가로부터는 높은 평가가 주어졌지만 신흥 레이블의 힘없음이 화가 되었는지 3주만에 차트에서 탈락하였다. 그 직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 태어났던 것이 이 「Still Life」라고 하는 앨범이다.

그 타이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한 의미는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OMD로부터 떨어져 나왔어도 아직 그 생명이 그 맥과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 한 때의 OMD의 팬은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OMD의 일렉트릭인 부분을 깎아낸 것이 The Listening Pool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OMD 초기의 선율적인 터치도 느낄 수가 있다. 실제 밴드의 리더적인 존재인 Paul은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하고 있다.

“실제 우리들은 OMD의 3/4이니까 거기서 완성해 온 음악에 나타나 있던 개성이 없어져 버릴 것은 없다. 멜로디의 중요성이나 그런 노래의 배경으로 나오는 강렬한 느낌은 The Listening Pool의 음악에서도 역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유념하여 이 앨범을 들어 보면 혹시 이 앨범이 그들이 바라고 있던 OMD의 미래형인것 같기도 하다. 물론 OMD의 일렉트릭적인 면의 매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음악을 각색하기 위한 수단이며, 무엇보다도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노래의 퀄리티라 할 수 있고 The Listening Pool에는 그것이 있다. 게다가 그 매력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서 인지 의도적으로 일렉트릭적인 악기를 자제하고 있는듯도 하다. 예를 들면, 이 앨범의 오리지날쟈켓을 봐도 그렇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것은 벽에 기대어 세워 놓을 수 있었던 밴조와 마루에 놓여진 아코디언, 그리고 그 악기의 앞에는 악보가 놓여져 있다. 아마 유화라고 생각되지만 일찍이 OMD의 멤버였던 사람들이 만든 일렉트릭적이고 미래주의적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후기 OMD에 요구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하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말을 거는 것 같은 노래의 여러 가지 모습은 그야말로 필자에게는 음악의 매력과 같이 생각된다.

앨범의 크레디트를 보면 게스트·보컬로서 Thomas Lang 외에 The Stranglers의 Paul Roberts의 이름이 눈에 띈다. 리버풀에 사는 Thomas가 여기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경위로 Paul Roberts가 참여했는지, 또 아무리 Thomas의 보컬이 훌륭해도 그 외의 곡과 비교해 소리의 터치가 약간 다른 것도 확실하다. 그런데도 그를 선택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게다가 「Blue Africa」의 보컬에게 느껴지는 서아프리카 계의 스타일. 이것은 샘플링인가, 혹은 누군가가 녹음에 참가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척 많다.

실은 이 글을 끝낸 직후에 필자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 금년 마지막 해외 취재였다. 런던을 중심으로 취재를 할 생각이지만 할 수 있으면 리버풀을 방문해 그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필자가 영국에 있는 동안에 그들은 리버풀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싱글 발표를 위한 리믹스를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레이블 설립의 취지에 대해서 그들은 「재능 있는 뮤지션이 많이 존재하는데 메이저 레코드 회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작업을 이 레이블로 해 보고 싶다」라고 말하였다. 그들 외에 어떤 뮤지션을 컨택트하고 있는지, 아마 그런 것도 체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인터뷰의 결과는 또 어딘가의 잡지로 발표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선은 The Listening Pool의 데뷔앨범을 즐기기를 권한다. 수많은 뮤지션이 존재하면서도 활동을 계속하는 음악의 거리, 리버풀로에서 태어난 시심 가득한 작품이다. 이 앨범을 많은 사람들이 듣기를 기원하며 펜을 놓는다.

1994년 10월 4일 집필
written by Koichi Hanafusa, a freelance journalist & photographer
원글 : http://www.lovepeace.org/vos/liner/9410tlistening.html

Level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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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42-mark1” by Andwhatsnext, aka Nancy J Price – http://andwhatsnext.com/band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의 Manchester에서 1980년 결성된 Level42의 라인업은 Mark King(베이스, 보컬), Phil Gould(드럼), Boon Gould(기타), 그리고 Mike Lindup(키보드)였다. 1981년에 발매된 셀프타이틀 앨범은 영국 챠트 탑20에 진입하였다. 몇개의 싱글들이 마이너히트를 기록한뒤 1984년 The Sun Goes Down(Living It Up)이 탑10에 진입하는 등 크게 히트하였다. 1985년 발표된 앨범 World Machine은 그룹이 자국에서의 인기를 넘어선 전세계적인 인기밴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Something About You가 미국챠트에서 7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림으로써 그러한 성공이 가능케 되었다. 뒤이은 앨범 Running In Ths Family(1987)에서는 그들의 최고 명곡이라 할 수 있는 Lessons In Love가 영국챠트 1위에 오르게된다. 1988년 Staring At The Sun의 발매직전인 1987년 말 Gould 형제가 그룹을 떠났다. 그들의 빈 자리는 키타리스트 Alan Murphy와 드러머 Gary Husband가 메웠다. 아쉽게도 Murphy는 AIDS와 관련된 질병으로 1989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키타리스트는 꽤 알려진 휴전 키타리스트 Alan Holdsworth가 맡게 되었다. Level42는 그들이 집중적으로 활동하였던 시기탓에 흔히 뉴웨이브 계열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보다 정확하게는 Shakatak 등과 함께 영국의 째즈-훵크(jazz-funk)의 계보를 잇는 가장 성공적인 밴드 중 하나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1981 Level 42 Polydor
1981 Strategy Elite
1982 Pursuit of Accidents Polydor
1983 True Colours Polydor
1983 Standing in the Light Polydor
1985 Physical Presence, Pt. 1 [live] Polydor
1985 A Physical Presence [live] Polygram
1985 Physical Presence, Pt. 2 [live] Polydor
1985 World Machine Polydor
1987 Running in the Family Polydor
1988 Staring at the Sun Polydor
1991 Guaranteed RCA
1995 Forever Now [Resurgent] Griffin Music
1995 Forever Now [BMG International] BMG
1996 Live at Wembley World Famous
1998 Remixes Polygram
1998 Turn It On Polygram

링크

Official Site
Forever Now
Fan Page
Level42 Links
Mark King의 베이스플레이에 관한 글

Kon Kan

Barry Harris는 여러 스쿨밴드에서 키타와 베이스, 피아노를 연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1983년부터 1987년까지 Toronto의 댄쓰클럽에서 성공적인 DJ 캐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그만의 레코드를 가져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꿈은 그가 가끔 “재충전 시기”를 가지기 위해 머물곤 했던 포루투갈에서 실현되게 되는데 그는 여기서 컨츄리 싱어 Lynn Anderson의 1970년 히트작 Rose Garden을 변조한 노래를 만든다는 개념을 구체화시켰다. 캐나다로 돌아온 Harris는 해밀턴 스튜디오에 가서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I Beg Your Pardon의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Harris가 싱어 Kevin Wynne을 처음 만난건 바로 그 해밀턴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을 동안이었다. Wynne은 Harris가 찾고 있는 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Harris는 보컬리스트와 노래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름이 없었다. 이름은 Harris가 래디오 방송을 듣다 착안한 Kon Kan으로 정했다.

그들은 우선 I Beg Your Pardon의 12인치 싱글을 1988년 6월에 발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언더그라운드씬에서 히트했다. 이들은 그해 여름 휴가차 그곳에 들른 아틀랜틱 레코드사의 Marc Nathan는 그 노래를 듣고 가능성을 직감하였다. 미국에 돌아간 그는 앨범의 전세계 발매를 위해 그의 능력을 발휘했다. 드디어 이 곡은 전세계 챠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8년 Kon Kan은 아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 Move To Move를 발매하였다. I Beg Your Pardon은 계속하여 전세계 챠트를 누비고 있었다. 이어진 싱글 Harry Houdini, Puss N’ Boots(These Boots Are Made For Walking), 그리고 앨범의 타이틀곡이 래디오와 클럽을 통해 연주되었다.

1990년 캐나다의 Juno 어워드에서 I Beg You Pardon으로 신설된 Best Dance Recording부문을 수상하였다. 이후 Harris는 Kon Kan을 솔로프로젝트로 이끌어나가기로 결심하고 Wynne과 결별하였다. 두번째 앨범 Syntonic은 뉴욕과 런던에서 녹음되어 전세계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 Liberty가 히트했고 두번의 성공적인 남미 공연을 가졌다.

1993년 Harris는 캐나다의 Hypnotic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었다. Harris는 Kon Kan의 세번째 앨범 Vida를 녹음하였다. 앨범의 첫싱글 Sinful Wishes는 캐나다에서 히트했다. 이어진 싱글 S.O.L역시 챠트에 올랐으나 미국에서는 이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 1994년 Harris는 Kon Kan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디스코그래피

1989 Move to Move
1990 Syntonic
1993 Vida!

링크

Fan Page
Official & Unofficial Discography
Kon Kan Message Board
Lyrics

Kajagoog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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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orgioerriquezLIMAHLUploaded by tm, CC BY 2.0, Link

결성 : 1982년
해체 : 1985년
멤버 : Limahl, Steve Askew, Nick Beggs, Stuart Neale, Stuart Crawford

Kajagoogoo의 발란한 신쓰팝과 귀여운 용모는 MTV 초기시절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Limahl (본명 Chris Hamill)이 이끌던 이 그룹은 Steve Askew (guitar), Nick Beggs (vocals, bass), 그리고 Stuart Crawford (vocals, synthesizer)로 구성되었다. Duran Duran의 Nick Rhodes가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흥미있는 사실때문에 한때 제2의 Duran Duran으로 불리기도 하고 Duran Duran의 팬들로부터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Kajagoogoo의 데뷔 싱글 “Too Shy”는 1983년 초 영국에서 넘버원을 기록하였다. 또한 미국에서는 5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다. “Too Shy”와 이어서 나온 데뷔앨범 White Feathers는 그들의 음악이 Duran Duran 이나 Naked Eyes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특징이 없다고는 말못하겠는데 소위 버블검 싸운드의 씬쓰팝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후 “Ooh to Be Ah”와 “Hang on Now” 같은 곡들이 영국에서 히트를 하였지만 미국에서는 챠트에 오르지 못하였다. 결국 Limahl은 그룹을 떠나 솔로로 전향하였고 Kajagoogoo는 Nick Beggs가 리드싱어로 전환하면서 그룹활동을 계속해갔다.

1984년에는 2집 Islands를 발표하였지만 예전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반면 Limahl은 Neverending Story의 테마송을 부르는 등 대조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룹은 이름을 아예 Kaja로 바꿔버리고 Crazy People’s Right to Speak를 발표하였다. 판매는 극도로 저조했고 그룹은 이듬해 해산해버렸다. Limahl은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어갔으며 1992년 Love Is Blind를 앨범을 발표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3 White Feathers [One Way]
1984 Islands [EMI]
1993 Too Shy: The Singles…& More [EMI]
1993 Too Shy [ERG]

링크

kajagoogoo.com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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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band”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Jap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약간은 어설픈 glam-rock 밴드에서 스타일리쉬한 synth-pop 밴드로 변모한 Japan은 그들 시대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밴드이다. 1974년 런던에서 결성된 이들은 처음에 싱어쏭라이터인 David Sylvian, 베이시스트 Mick Karn, 키보디스트 Richard Barbieri, 드러머 Steve Jansen(David Sylvian의 동생), 그리고 키타리스트 Rob Dean, 이렇게 5인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Daivid Bowie나 New York Dolls 스타일의 glam-rock을 흉내냈다. Sylvian의 보컬은 Bryan Ferry를 연상시켰으며 Japan은 자주 Roxy Music과 비교되곤 했다.

레이블이 후원하는 한 콘테스트에서 우승한뒤 그들은 독일의 Ariola-Hansa 레코드사와 1977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Adolscent Sex와 Obscure Alternatives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청중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그룹명 잘 지어야겠죠?) 1979년 Quiet Life로 그들은 보다 세련된 스타일과 그들만의 영역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는 Smokey Robinson의 오리지널인 I Second That Emotion(예전에 영어강사에게 이 뜻을 물어봤는데 “동의합니다” 정도의 뜻이라 함)이 히트하였다.

1980년 Gentlemen Take Polaroids에서는 그들의 음악적 범위가 좀더 확대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만의 운치있는 싸운드에 이국적인 색채가 좀더 더해졌다. 1981년 Tin Drum이 그룹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Funk, 중국풍의 연주, 중동 지역의 리듬과 같은 다양한 쏘스들을 덧칠하여 팝에서 보다 실험적인 톤과 텍스춰로 승부하였다. 영국에서는 싱글 Ghosts가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Tin Drum이 그룹의 이별곡이 되고 말았다. 오랜동안 지속되어오던 그룹의 불화와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그룹은 결국 1982년 일본 나고야의 콘써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말았다. 개개인은 신속하게 그들만의 프로젝트 작업에 착수하였다. Sylvian은 솔로커리어를 시작하였고 Ryuichi Sakamoto, Holger Czukay, Robert Fripp와 같은 이들과 작업하기도 하였다. Karn은 1982년 솔로앨범을 발매하였다. 이어 Bauhaus출신의 Peter Murphy와 짧은 기간 듀오를 하기도 하였다. Jansen과 Barbieri는 Dolphin Brothers라는 이름으로 1986년 Worlds in a Small Room을 발표하였다.

1987년 Karn이 Sylvian과 Jansen의 도움을 받아 Dreams of Reason Produce Monsters를 발매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룹의 재결성에 대한 풍문이 나돌았고 결과적으로 1989년 4명의 주요멤버가 Rain Tree Crow라는 이름으로 다시 팀을 조직하였다. 1991년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선회하였다. Sylvian은 꾸준히 솔로활동을 펼치는 반면 Karn, Jansen, Barbieri는 솔로활동을 지속하면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디스코그래피

1978 Adolescent Sex
1978 Obscure Alternatives
1979 Quiet Life
1980 Live in Japan
1980 Gentlemen Take Polaroids
1981 Tin Drum
1982 Japan [Virgin]
1983 Oil on Canvas [live]

링크
David Sylvian 웹사이트

Information Society

Information Society, 2014: (from left to right) Kurt Harland, Jim Cassidy, Paul Robb
By KurtHLarsonOwn work, CC BY-SA 4.0, Link

‘정보사회’라는 촌스러운(그 당시에는 그런 쪽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는 꽤나 근사하게 들렸을지도 모르는) 이름을 들고 나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What’s On Your Mind?)’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이들은 1985년 미네아폴리스에서 결성되었다.

James Cassidy, Paul Robb, Kurt Harland, 그리고 Amanda Kramer 등 다섯 명으로 구성된 인퍼메이션쏘사이어티는 Tommy Boy라는 레벨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88년 single “What’s on Your Mind (Pure Energy)을 내놓아 80년대 초반의 휴먼리그를 연상시키는 전자음악을 선보여 팝챠트 3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이듬 해 “Walking Away”가 같은 앨범에서 히트하였고 앨범은 마침내 골드앨범에 올랐다.

그러나 Kramer가 그룹을 떠나 Golden Palominos, 10,000 Maniacs 등과 레코딩 작업을 시작했고 연이은 앨범들은 평론이나 인기면에서도 전작에 크게 못미쳐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사실 이후의 앨범들도 꽤 들을만하다.

디스코그래피
Information Society (1988)
Hack (1990)
Peace and Love, Inc. (1992)
Don’t Be Afraid (1997)
Synthesizer (2007)
Hello World (2014)
Orders of Magnitude (2016)
ODDfellows (2021)

링크
iMusic Info
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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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eague

Human leaguemk2.jpg
Human leaguemk2” by A&M Records 1982. Licensed under Wikipedia.

‘일렉트릭 아바’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단순한 멜로디와 신서사이저 등 전자 음향을 유합해 새로운 일렉트로닉 팝을 창출해냈던 Human League는 1970년대 후반 팝의 한 분야로 발전된 테크노 팝의 대표주자로 영국의 쉐필드에서 1977년 결성되었다. 그 곳 출신의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이언크레이그 머쉬와 마틴 웨어 두 사람이 필립 오키와 함께 손을 잡고 정식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팀 결성 직후인 1978년 3월, 이 그룹의 네번째 멤버가 된 에드리언 라이트를 가입시키면서 휴먼리그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데, 이 때부터 이들은 팝에 전자적인 요소를 가미함과 동시에 슬라이드 조작을 통한 시각적인 영상 창조에 주력했다.

쉐필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에딘버러에 있는 패스트 트로덕션의 제작사 밥 라스트를 만났고, 밥은 이 들의 진보적인 발상을 높이 평가, 드디어 레코드 취입을 제의하였다. 이 것을 계기로 버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이 들은 두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유럽 공연을 마친 후 2명의 멤버가 탈퇴해 버려 사실상 휴먼리그는 해체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은 두 명의 벰버는 당시 디스코 클럽에서 노래하던 17세의 조앤 캐더럴과 수전 설리를 참가시켜 새로운 출발을 꾀했다. 계속해서 이언 버든과 레질로스라는 지방 밴드의 리더 조 콜리스를 가입시켜 다시금 휴먼리그의 중흥을 꾀앴다.

한편 휴먼리그를 탈퇴한 두 명의 멤버는 Heaven17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했다.

혼성 6인조 테크노 팝 그룹으로 재기의 발돋움을 시작한 휴먼리그는 첫 앨범 Dare를 1982년 초에 발표했는데,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그 해 여름 싱글 Don’t You Want Me가 미국 팝챠트 1위에 오르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인 1983년 초에 싱글 Mirror Man과 Fascination을 다시 히트시켰다.

그러나 84년에 발표한 Hysteria는 Dare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들은 1990년에 Romantic?을 발표하고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5년후인 95년에 Octopus를 발표했다. 또한 2001년에는 신작 Secrets를 발표하여 All I Ever Wanted를 히트시켜 건재함을 과시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 Reproduction
1980 – Travelogue
1981 – Dare
1984 – Hysteria
1986 – Crash
1990 – Romantic?
1995 – Octopus
2001 – Secrets

링크

http://www.ozemail.com.au/~jjva/human.htm
Blind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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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 17

영국의 테크노-팝 트리오 Heaven 17의 역사는 Martyn Ware와 Ian Craig Marsh을 중심으로 1977년 The Dead Daughters란 이름의 듀오로 처음 결성한데서 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곧 Philip Oakey와 Adi Newton과 어울려 그들의 이름을 Human League로 바꿨다. 이 둘은 그룹에 1980년까지 머물렀다.

씬써싸이저를 새로운 표현도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Marsh와 Ware는 The British Electric Foundation이라는 프로덕션 프로젝트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에서 Tina Turner, Sandie Shaw, Gary Glitter와 같은 다양한 뮤지션과 함께 작업을 했다. 이 프로젝트의 데뷔앨범 1980’s Music of Quality and Distinction, Vol. 1 은 Ware와 Marsh가 Sheffield 드라마 센터에서 만난 전직 사진작가 Glenn Gregory도 참여하였다. 1981년 듀오는 Gregory와 Heaven 17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The British Electric Foundation은 처음이자 가장 성공적인 싸이드프로젝트였다. 데뷔 싱글 (We Don’t Need This) Fascist Groove Thang은 어느 정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앨범 Penthouse and Pavement가 그해에 발매되었다.

1983년 The Luxury Gap의 발매와 더불어 B.E.F는 한켠으로 밀려나고 Heaven 17이 주된 작업이 되었다. 싱글 Temptation, Come Live with Me, Crushed by the Wheels of Industry, Let Me Go 가 연이어 히트하였고 How Men Are가 영국내에서 히트하였다. 그룹은 한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1986년 다수의 게스트 뮤지션과 보컬리스트들이 참여한 Pleasure One이라는 앨범으로 복귀하였다.1988년 Teddy Bear, Duke & Psycho의 상업적 실패후 그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Ware는 Terence Trent D’Arby의 데뷔앨범작업에 포커스를 맞췄고 Marsh는 B.E.F 작업으로 돌아가 1991년 Music of Quality and Distinction, Vol. 2를 발매했다. 1996년 재결성된 Heaven 17이 Bigger Than America와 함께 돌아왔다.

디스코그래피
1981 Penthouse and Pavement Virgin
1982 Heaven 17 Arista
1983 The Luxury Gap Virgin
1984 How Men Are Virgin
1986 Endless Virgin
1986 Pleasure One Virgin
1988 Teddy Bear, Duke & Psycho Virgin
1996 Bigger Than America WEA
1999 Live at Last Heaven 17
2001 Temptation: Live in Concert Castle

링크
Fan Page
Penthouse and Pavement(300k mpeg audio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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