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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sh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Crush album cover.jpg
By http://www.discogs.com/image/R-766249-1173539286.jpeg, Fair use, Link

Crush를 감상하면서 위키피디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룹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레이블이 강요한 한정된 일정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로 인해 밴드의 의욕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프로듀서를 맡은 Stephen Hague1“매끈한 프로덕션(sleek produc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이유는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앨범에 대한 느낌을 바로 그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끈함’. 그것이 이 앨범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악의 단점일 것 같다.2

OMD는 일렉트로닉 계열에서도 나름대로 실험적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었다.(그중에서도 백미는 1981년 내놓은 Architecture & Morality) 그런데 이 앨범은 첫 트랙 So in Love는 슈가팝 스타일의 감미롭고 “매끈한” 도입부에서부터 그들의 기존의 음악노선에 결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음악은 Pretty in Pink의 삽입곡 If You Leave였기 때문에3 이러한 크루너(crooner) 스타일의 노래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실험적인 사운드에 익숙했을 그들의 오랜 팬은 조금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밴드의 창설 멤버 Paul Humphreys는 이 앨범을 만들 시기에 잠시 그룹을 떠나기까지 했었다고 하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앨범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앨범 작업을 마친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평에 동의한다. “실험보다는 춤추기 좋은 일렉트로팝을 강조한다. Crush는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우아함과 재치로 점차 유혹할 것이다.” OMD의 앨범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의 탑40에 오른 앨범이 되었다. So in Love는 빌보드핫100 차트에 25위까지 오르며 그룹의 첫 미국 시장 히트곡이 되었다.

Early-sunday-morning-edward-hopper-1930.jpg
By Edward Hopperhttps://www.edwardhopper.net/, Public Domain, Link

한편 커버아트를 보며 자꾸 어떤 작가가 어렴풋이 연상되었는데 위키피디어의 설명을 보니 그게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OMD는 애초에 에드워드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을 커버에 쓰려고 했었다고 한다. 앤디는 호퍼의 멜랑코리함이 앨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대신 폴슬레이터(Paul Slater)라는 작가에게 호퍼 스타일의 그림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호퍼의 Early Sunday Morning (1930)을 흉내내어 작품을 완성했다.

  1. 이 프로듀서의 다른 작업을 보니 Pet Shop Boys의 Please, New Order의 True Faith, Communards의 Red 등이 눈에 띈다. 대충 그의 성향이 짐작이 된다
  2. 이러한 상큼한 덕분에(!?) 앨범의 두번째 트랙 Secret은 80년대 당시 국내 한 비타민 영양제의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3. 그리고 많은 뮤지션을 파고들 때에 그러했지만, 음반을 거꾸로 후기에서 초기로 찾아듣는 시기를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