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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중반의 대중가요

Cho Yong-pil from acrofa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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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계의 제 3의 안정기와 수퍼스타 조용필

⑴ 가요계의 천하통일, 조용필

70년대는 포크의 등장으로 기존 가요계의 주된 흐름인 트로트와 스탠다드와는 분리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나가고, 70년대 후반 록이 거기에 또 하나의경향을 보태는 등 새로운 경향들이 어느 것 하나도 뚜렷한 주도성을 잡지 못한 채 솟아오르는 시기이다.
79년에 조용필은 이전까지의 가요의 성과를 종합하고 총괄함은 물론 그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수퍼스타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창 밖의 여자>, <비련>, <못찾겠다 꾀꼬리>, <촛불>, <물망초>, <꽃바람> 등 그의 재기를 성공시킨 노래들은 모든 계층에 고루 대중적이면서 선율적이며 느낌이 풍부한 단조스탠다드와 강한 리듬·음색의 록을 결합시킨 노래들이다. 또한 조용필은 다양한 쟝르의 곡을 통해 거의 전연령층·전계층에 호소력을 발휘한다. 조용필의 노래들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이 다양한 쟝르에걸쳐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록에 가까운 노래들 :
<단발머리>, <나는 너 좋아> 등
# 정통 스태다드 :
<돌아오지 않는 강>,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 등
# 정통 트로트 :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에야> 등
# 포크적·가곡적 분위기의 노래 : <친구여>
# 민요 :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등

이렇게 다양한 쟝르를 소화한 가수가 소화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스탠다드와 록을 결합한 노래들을 성공시킴으로써 80년대 전반 가요계의 판도를 결정지었고, 이러한 경향에 따라 김수철, 전영록, 윤시내, 이은하, 이선희 등 가요계의 대중적 히트곡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80년대 가요계는 70년대와는 달리 수퍼스타 조용필을 중심으로 일정한 안정기를 맞게 된다.

⑵ 최고의 상품으로서의 조용필

거의 전 연령층, 전 계층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구매자를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용필은 가요계에서 최대이윤을 창출하는 가장 우수한 상품이며, 그 상품적 우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작위적인 노력이 가해진다. 즉 계획적인 매니지먼트에 의해 그다양성이 유지된다. 한 가수가 한 시기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경향을 가지게되거나,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경향과 이미지가 최대 이윤창출이라는 원리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다.
다양한 경향의 노래가 동시에 실린 음반이 기획되고 (1집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3집 <고추잠자리>와 <물망초>, <미워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가 동시에 실림), 다양한 이미지로 부를 작품의 경향과 그 무대, 관객의 취향에 따라 의상 등을 선택하여 변신해가며 적재적소에 등장한다.
또한 대중가요의 경향 변화에 따라 작품의 경향을 바꾸어 나간다. 예를들어 장조트로트가 유행할 때에는 <허공>, 발라드가 유행할 때에는 <그대 발길이 머무는 것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유행할 때는 <꿈> 등을 발표한다.
팬클럽의 결성 등을 통해 인기의 조직적 관리를 시도하는 등 본격적인 가요산업의 시대를 열어나가게 된다. 그 뒤를 이어 전영록, 이선희가 나타난다.

⑶ 가요 수용층으로서의 10대

조용필의 등장이 확인시켜준 것은 10대 -대학생이 아닌 중고등학생 – 특히중학생이 매우 중요한 가요수용층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성스러운10대 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 (70년대 어니언스나 이수만에 대한 호응과는그 질이 다르다).- 10대가 가요의 주요 구매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소형 오디오의 대중적 보급과 경제적 여유로 10대의 음반 구매가 가능해졌다는 것과관련이 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80년대부터 텔레비젼을 중심으로 하는 가요계의 중심적흐름은 10대를 겨냥한 작품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속에서 10대들은 대중음악의 주요한 소비자, 음반 구매층이며, 팬클럽과 박수부대 등으로 ‘이것이 대세다’라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오피니언리더의 구실을 하는 계층이 된다.
가요계의 흐름이 이러한 경향을 나타내게 되면서 전영록, 구창모, 김수철,이선희 등 10대를 겨냥한 가수들의 대거 등장한다. 이시기 가사를 살펴보면 수용층인 10대를 겨냥하여 유아적 발상과 표현이많이 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을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아직은 사랑을 몰라 몰라’, ‘못 찾겠다 꾀꼬리’,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내 사랑 울보’, ‘만나 사랑한게 잘못이었나봐’, ‘그대 우나봐’,’…했잖아’,’…했어요’ 등

⑷ 록의 제2세대의 전성기와 록의 대중화

조용필의 등장은 록의 대중화를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대학가요제 출신을 비롯한 그룹사운드 출신들이 대거 등장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록의 제2세대가 전성기를 맞게 된다. – 당시 {영 11} 같은 청소년 쇼프로그램은 이들이 빠지면 이루어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송골배 <어쩌다 마주친 그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등
김수철 <못다핀 꽃 한송이>, <왜 모르시나>, <나두야 간다>, <젊은 그대>등

록의 대중화 시대의 인간형과 세계 인식

포크와는 달리 록은 반문화적 분위기를 가지고 출발하지 않고 처음부터 대중가요의 내용적 관행을 따르면서 대중적으로 시작하였다. 록의 제2세대에 이르러서도 록 특유의 세계인식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비극적 사랑노래의 내용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특히 가사를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는음악양식과 질감, 기법을 중심으로 노래를 발전시킨다.
록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절규’이다. 여태까지의 가요에서는 없었던 남성의 고음과 째지는 듯한 전자악기의 음향, 폭발적인 드럼, 강한 리듬들이 사용된다. 대개 고음부와 저음부가 나뉘며, 클라이맥스인 고음부는 맨 앞의 저음부보다는 완전히 한 옥타브 높은 음높이에서 진행된다. 김수철의 <못 다핀 꽃한송이>, <모르시나>,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 등을 보면 한 옥타브 위로의도발적인 절규와 같은 상승이 있다. 저음부와 고음부의 분리와 고음부의 절규는 이 시기부터는 대중화되어서 <잊혀진 계절> 같은 팝발라드 계열의 작품에서도 흔히 드러난다. 조용필의 <촛불>, <비련> 등은 아예 고음부의 절규부터시작하는 강렬함을 보인다.
이러한 노래들의 표현을 보면 이성적이지 않고, 머리보다는 몸으로 먼저 다가온다. 지적이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도볼 수 있다.
슬픔의 표현이 직설적이며 도발적이다. (직설적이라는 점에서는 트로트와일치하며 도발적이라는 점에서는 다름) 비극의 원인을 자신의 탓(운명이든 못난 탓이든 여자이기 때문이든)으로 돌리는 자학적 심리와, 그 비극으로 자신을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트로트와 흡사하다. 그러나 록의 인간형은 자폐적이며,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는 그것을 말해준다. 자신과 세계 사이에 일정한 벽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세계가 세상 전체보다도 중요하며 자신의내적 세계에 의해 세상 전체를 규정되고 좌지우지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록에서의 자신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것은 곧 세상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같은 극단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창밖의 여자>

그 파괴적이고 도발적이며 극단적 분위기의 절규는 자신을 가장 절절하게드러내는 것이며, 록의 아름다움의 핵심이 된다. 도저히 절규하지 않고서는견딜 수 없는 인간의 자기 회복, 인간성의 발현과 같은 것이기도 하며, 그것은 그만큼 이 세게가 절규하는 인간들을 만들어낼 정도로 어둡고 힘든 곳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성의 발현이 파괴적일 정도로 극단적이라는 것에 그 비극성과 불건강성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작품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가사에 드러나는 경우는 그리 흔치않고, 악곡과의 결합을 통한 정서, 질감으로 드러난다.
가사 내용은 복잡한 내면심리를 드러낸다. 특히 팝발라드의 산문적이고 서술적인 가사들에서 더욱 그러하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네가 떠나가서 슬프다’ 정도의 단순한 논리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랑이든 이별이든 사람의 움직임이나 외적 사물로의 정서의 응집 (가을의 풍경이라든지, 새의 울음이라든지)보다는 한 순간의 느낌이나 분위기,감각의 포착, 복잡한 내면 심리의 포착으로 기울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 어저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

내게 무슨 마음의 병 있는 것처럼 / 느낄 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외려 나를 점점 믿지 못하고 /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소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희나리>

(추제호 작사·작곡, 구창모 노래)

아직은 사랑을 몰라 몰라 / 그래도 우리는 좋아 좋아

알 수 없는 너의 고백이 / 내 마음을 뛰게 하지만

그런 것은 너무 어려워 싫어 (후략)

<나는 너 좋아>

(김순곤 작사, 조용필 작곡·노래)

이러한 경향은 80년대 말로 가면 갈수록 강화된다.
팝발라드, 댄스뮤직, 트로트의 세 양식의 태동

80년대 후반에 이르면 가요의 양식은 팝발라드, 댄스뮤직,트로트의 세 양식으로 정리·정립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80년대 초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80년대 중반에 이르면 그 정립이 거의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⑴ 팝발라드의 태동

스탠다드의 전쭷을 가지고 있으면서 포크와 블루스의 세련된 분위기를 수용하는 작품도 많다. 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화성을 구사하면서 주로 피아노가 주도하는 반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장조가 주도적이고, 가사는 체언으로 시상을 응축하기보다는 용언으로 서술적으로 마무리하여 말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는 경향이 주도한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로부터 시작하여(박건호,이범희 콤비의 신선함), 이선희 <J에게>, 최성수 <남남>, 이광조<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문세<난아직 모르잖아요>,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으로 이어진다.

⑵ 댄스뮤직의 본격화

가창력보다는 용모와 춤을 중심으로 하는 비디오형 가수가 등장하게 된다. 남자가수는 10대를 겨냥, 여자가수는 20대 이상 성인을 겨냥한다.
록의 대중화와 고고, 디스코로 이어지는 대중춤의 유행이 바탕이 된다.
나미 <빙글빙글>,<유혹하지 말아요>,<보이네> 등 건반주자 김명곤의 세련된편곡이 돋보임. 뒤를 이어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등의 등장.

⑶ 트로트의 유지와 장조 트로트의 부활

주로 여자 트로트가수가 주도한다. 정통 트로트 분위기의 김연자, 스탠다드와 결합한 특이한 창법의 김수희, 심수봉등이 등장하게 된다. 퇴행적 비극성을 보다 직설적인 어법으로 노래하면서 목이 메는 듯한 창법이나 휴성의 호흡을 심하게 섞어 간드러지면서도 애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창법으로 노래한다.
뒤를 이어 주현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같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다.
첫째, {쌍쌍파티}라는 뽕짝메들리의 대중적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뽕짝메들리는 익숙한 노래를 매우 단순하고 일률적인 기계적 편곡에 담아서, 동일한 템포의 리듬으로 끊임없이 들려주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노래 하나하나가 아니라 쉬지 않고 동일한 기계적 리듬의 노래가 흘러나와 시간을 채운다는 점이다. 주로 운전기사를 중심으로 하여 일을 하면서 노래를 듣는 성인층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성인용 춤곡의 구실도 한다.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부르는 ‘쌍쌍파티’라는 발상 자체가 이러한 성인용 춤곡의 분위기를 만들어 냄)
둘째, 장조 트로트의 부활.
{쌍쌍파티}의 성공으로 데뷔한 주현미의 첫 신곡 <비 내리는 영동교>를 통해 단조트로트가 주도한 흐름을 깨고 장조 트로트의 시대를 열고, 이러한 흐름은 <신사동 그 사람>, <잠깐만>으로 이어진다.
셋째, 나훈아식 창법을 계승한 꺽는 목을 남용하는 목소리를 트로트의 대표적 창법으로 굳히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현철, 문희옥 등으로 이어지면서 두드러진다.(김수희,심수봉을 거치면서 주현미에 이르기가지 트로트는 주로 과장된 창법, 목소리 사운드의 변화로 신선함을 유지함)
넷째, 이전의 트로트보다 단순해지고 표현은 유치해졌으며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 현철<사랑은 나비인가 봐>,문희옥의 {사투리 디스코}등), 훨씬 중년의 향락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문희옥<사랑의 거리> 등
즉, 이는 더이상 트로트에 진지한 삶의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요계의 다양화와 언더그라운드

텔레비젼에 연연하지 않고 한때의 인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면서,개성있는작품세계를 추구하는 대중음악인이 늘어난다. 70년대 초 포크와 록의 후예들이지만 70년대의 작품세계와 많이 다르다.
팝 세대가 40대에 이르면서 그만큼 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가요인들이 양적, 질적으로 축적되고, 수용층의 취향도 다양해진 것이다. 이들은 가요계의 중심적 흐름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콘서트와 음반판매를 통해 자신의음악세계를 고집하면서 소수의 고정수용층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한다.
혹은 한때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인기가수였으나 그 유행이 지나가버린 싱어송라이터들이 그 창작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계속 변화시키면서 언더그라운드로, 혹은 영화음악 등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⑴ 포크 계열

가사를 중시하는 특성 때문에 대개 이 계열의 언더그라운들들은 ‘음유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포크 계열의 언더그라운드는 80년대에 들어서서는이미 그 나이가 모두 30대를 넘어버렸기 때문에, 포크 특유의 지적이고 맑고순수한 세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70년대 초반과 같은 철없을 정도의 순수함은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으로 칩거하여 세상을 관조하는 소극적분위기를 풍기거나(입을 게으르게 움직이는 창법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거나 대중가요의 일반적 관행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하는 경향을 보인다.
* 조동진 : 72년 데뷔 후 7년만에 1집 음반을 냄. (79년) <작은 배>,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도시적 세련미와 사색적인 분위기.
* 정태춘 : <촛불>,<시인의 마을>이 실린 1집 이후에는 거의 음반으로만 활동을 해옴. 포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스탠다드를 많이 이어받고 있음. 투박함 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함.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서망부가> 등
* 해바라기 : 대중적 음악어법을 구사. 트로트적 분위기가 나는 스탠다드와결합한 <모두가 사랑이예요> 등으로부터 록의 분위기를 내는 <어서 말을 해>까지. 내용도 사랑노래가 주를 이루고 있다.
* 신형원 (한돌) : 민중가요권의 작곡자 한돌의 작품.88년 이전까지는 민중가요와의 관계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었고 그저 특색있는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로 알려져 있었음. <불씨>, <유리벽>, <개똥벌레>
* 송창식 : 대곡 분위기의 작품까지 소화했던 최전성기를 넘어서고, 80년대초 작곡자로서 <밀양 머슴 아리랑>, 김연자의 <당신은> 같은 대중적인 곡을만드는 경험을 하면서, 87년 <참새의 하루>,<담배가게 아가씨> 등에서 보통사람의 일상을 낙관적으로 긍정하는 작품을 발표. 국악에 대한 관심도 보임(진보성보다는 국악의 음색을 연구하는 정도).

⑵ 블루스, 록 계열, 록의 제 3세대

* 김창완 : 동요를 비롯하여 명랑하고 순진하면서도 참신한 작품을 발표.초기 산울림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파악한 듯 참신함을 강조하면서도 대중적임.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청춘>, <안녕>* 김수철의 영화음악, 춤음악. 국악과의 결합 시도
* 신촌블루스 : 이정선을 중심으로 함. 이정선은 포크4인조 해바라기로부터 시작하여 한영애를 데리고 블루스로 변화하였고,블루스를 중심으로한 그룹 풍선을 만들어서 이광조, 엄인호 등과 활동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정선, 한영애,김현식, 엄인호, 정서용, 60년대말 소울가수 박인수 등과 신촌블루스로 활동. 정통 블루스.
* 들국화 : 전인권을 중심으로함. 우리나라 록의 최고 단계를 보여줌 음악적 세련됨. 가사에서도 록적인 인식태도도 이미 체질화된 듯, 이전보다 강하게 록적인 세계인식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자폐적인 인간형, 주관적 세계의 절대화. <오후만 있던 일요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순간의 시간을 중시하는 상대적 시간관념 등.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난 세상을 모르나 봐 /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하지만 후횐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 그것만이 내세상

하지만 후횐 없지 찾아 헤맨 모든 꿈 / 그것만이 내세상 /

그것만이 내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원 작사·작곡)

기나긴 하루 지나고 대지 위에 어둠

이 오늘 오늘은 끝남을 말해주는데

오늘의 공허를 메우지 못해 또 내일로 미뤄야겠네 (후략)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조덕환 작사·작곡)

* 하드록·헤비메탈 그룹 : 백두산, 시나위, 부활, H2O등.

이들 언더그라운드는 우리나라 가요를 다양화하며 과감한 시도를 통해 가요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는 구실을 하지만, 반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가요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와 우리나라 대중의 음악적 감수성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미국문화 추종적인 분위기를 가장 짙게 가지고 있는 부류이기도 하다.

가요의 미국화 경향의 강화와 우리말 파괴

조용필에 이르러 기존의 가요의 흐름과 록의 결합이 안정적이며, 신촌블루스나 들국화에 이르면 미국의 이른바 정통 블루스, 정통 록의 정착과 재생산이 완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트로트에서 단조스탠다드로 내려왔던 한국가요티가 전혀 나지 않는 완전한 미국화가 이루어진다. 이들에 이르면 3화음체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미국식 재즈, 블루스,록에서 사용하는 불협류의 화음들이 자유자재로 구사된다. 또한 발음이 미국식 음운으로 교체되고, 우리말의 억양과는 다른 액센트와 우리말의 흐흡을 고려하지 않은 악곡을 많이 사용한다. 심지어 일부러 우리말 가사를 들이지 않게 발음하는 경우까지도 있다.
(혜은이의 <작은숙녀>)
이런 현상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이런 것을 쓰는 것이 오히려 세련된 것이라는 느낌까지 주기도 한다. (마치 영어나 독불어의 직역투 문장이 지적인 문장인 것같은 느낌을 주는 것처럼)
예) / 날 기억 / 하는 사람 / 들을 지금 모두
나중에는 아예 영어로 된 가사가 등장한다. 이러한 우리말 파괴는 비단 대중음악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80년대에 들어와서 미국음악과의 동질화가 진행될수록, 포크보다는 록이, 미국음악과 더욱 동질적인 세련된 언더그라운드일수록 더욱 심하다.

눈여겨볼 80년대 중반 가요의 흐름

글. 김영대( toojazzy@nownuri.net )


한가지 전제를 깔고 시작하자. 이 연재물은 ‘댄스 음악에도 음악성이 있음’과 같은 고귀한 목적이 없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댄스 뮤직은 그저 춤을 추기 위해 존재하는 enjoyable한 음악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댄스 뮤직이 무언가. 어찌 보면 대중음악이라는 본질의 극한에 닿아 있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장르일 것이다. 그저 들으면 되고 그저 춤을 추면 된다. 사실 이것이 본질이다. 물론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선 일방적으로 양산되는 댄스뮤직에 대해 헤게모니 운운하는 극단적 이분법이 적용되어, 록과는 화해할 수 없는 반대편에 위치하게 되었다. 대중 음악부문 중 가장 활발히 수출되어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기본적인 완성도를 논할 수준은 지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기도 하지만 예술을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한가지,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음악 그 자체를 뒤로한 사회적인 논쟁에 불과했다. 누가 더 많이 팔고, 누가 더 많이 차지하고 누가 더 많은 팬을 확보하느냐. 결국엔 그런 문제들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댄스 뮤직을 사회현상이 아닌 음악 그 자체로 받아들여본 시도는 있었던가. 물론 있기는 있었다. 소방차-서태지-HOT로 이어지는 지극히 단순한 계보들. 비록 방송국의 단골 메뉴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 사이사이에 빠진 다양한 음악적 흐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 연재물에서는 바로 그런 아쉬움들을 메워갈 것이다. 한국 음악사에서 빠질 수 없는 댄스 뮤직앨범들과 문제작들, 그리고 그것들에 영향을 끼친 음악적 흐름들과 뮤지션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무작정한 설명이 아닌 앨범을 따라가며 들어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뜻대로 잘 풀려 나갈지는 미지수이다. 아무쪼록 격려와 질책 부탁드린다.


[눈여겨볼 80년대 중반의 흐름-조용필,전영록,이문세,소방차,김완선,박남정]


필자는 한국 댄스 뮤직의 본격적인 시작을 89년에서 90년까지로 보고 있지만 그 실마리는 이미 80년대 중반에 제공이 되었다는 점을 우선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당시에는 ‘댄스 뮤직’이라는 개념은 오로지 미국의 팝음악에만 적용되는 듯한 인상이 강했고 흔히는 그저 ‘보통의 노래보다 빠른 정도의 신나는 음악’이라는 정도였다. 그나마 미디 등의 보급 이전으로 그룹사운드 위주로 음악이 편곡되다보니 오히려 댄스보다는 록에 가까운 음악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조용필의 노래들이 그랬고 유영선과 커넥션의 음악이 그랬다. 보통의 노래들보다 리듬이 빠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댄스곡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당시의 음악인들 중에는 최신조류에 가장 민감한 인물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전영록이었다.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등 지루한 구성을 탈피하여 가벼운 터치와 리듬, 단순한 멜로디속의 다이나믹한 전개가 특징이었던 전영록의 업템포 곡들은 상당부분 현재의 댄스 음악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발라드 음악의 대표주자로 여겨졌던 이문세 역시 간간이 댄스적인 느낌을 주는 곡들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붉은 노을>과 같은 곡은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템포를 가진 곡이었고 <이밤에>는 한창 유행하던 go-go풍의 전형적인 댄스곡이었다. 하지만 댄스 뮤직을 전면으로 내세운 팀들은 이후에 등장한다. 바로 소방차, 김완선 그리고 박남정. 이들이 이전의 뮤지션들과 전적으로 달랐던 것은 바로 가수가 아닌 댄서출신이었다는 점이었다. 전영록만 하더라도 발라드와 댄스를 넘나드는 싱어송 라이터였고 화려한 무대매너를 보여주긴 했지만 특별히 안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적어도 안무가 노래만큼 비중을 차지한다던가(소방차 <어젯밤 이야기>, <통화중>, <하얀바람>) 혹은 안무 때문에 음악이 히트하는 상황도 만들어졌다.(박남정 <널 그리며>, <사랑의 불시착>) 소방차의 쉬운 멜로디와 가벼운 동작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어서 인기가 높았고 김완선과 박남정은 외국의 그 어느 스타들 못지 않은 다양한 댄스 테크닉을 선보이며 젊은층을 열광시켰다. 이들은 내놓는 앨범마다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 80년대말까지 끊임없는 인기행진을 계속한다.



      
[JH] 김완선… 그 이름 오랜만에 듣네요.. 현대음률 속에서~ 순간속에 보이는… 이 노래 제목이 뭐였더라.. -08월08일-
[다시] 오늘밤에,,,오늘밤?? 그런 제목이었던듯한데요. 김완선은 들을수록 너무 좋더군요 ^^;;; -08월08일-
[moz] 리듬속에 그 춤을.. 이었던 것 같은데요. 예전에 학교 밴드의 보컬을 하던 친구와 이야기나눴던 주제가 김완선은 워낙에 뒤에서 받쳐주는 백업들이 빵빵해서 음악적 수준이 뛰어날 수 밖에 없었죠. 노래실력만 좀 더 좋고 눈만 좀 이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평가가 내려졌을지도… -08월08일-
[moz] 오늘 Kuwata Band의 Skipped Beat를 다운받아 들어봤는데 소방차의 G까페가 이노래를 표절한 거구만요. -08월08일-
[Willa] 김완선 그 노래는 리듬속의 그 춤을..이 맞아요. 87년 2집앨범에 들어 있죠. 이 앨범에선 나홀로 뜰앞에서라는 청승맞은 댄스곡도 히트했었죠…. -08월08일-
[Eva] 오늘밤은 김완선 데뷰곡이죠… -08월08일-
[moz] 당시 김완선의 앨범에서 키타는 신대철이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 앨범에 에디반헬런이 참여했던 케이스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08월09일-
[Faith] 김완선의 리듬속의 그춤을 이 노래를 신중현이 작곡했단 사실 아시는 분이 몇이나 될련지.. 1집땐 산울림의 김창훈이, 2집땐 신중현이, 3집땐 이장희가 나섰었죠.. -08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