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MI., Fair use, Link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Duran Duran의 신곡이라며 Notorious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때의 당혹감이다. 이전의 곡들과 무척 달라진, 즉 Seven and the Ragged Tiger 시절의 통통 튀는 사운드가 아닌 보다 절제되고 락비트가 강화된 듯한 곡진행이 상당히 낯설었던 느낌이다. 앨범 커버 역시 그들의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지만, 색도 흑백 톤으로 바뀌었고 옷차림도 수트 차림에 진중한 포즈였고 심지어 멤버도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 와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는 앨범이 발매될 당시 둘 다 탈퇴한 것이었다. 당시 로저의 탈퇴 이유는 연이은 일정 강행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고 앤디는 헤비한 락음악을 추구하는 본인의 음악적 노선과 그룹의 생각이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앨범의 프로듀싱에는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참여했다. 이는 그룹의 음악이 이전의 백인 스타일의 신스팝에서 좀 더 펑키한(funky)한 사운드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앨범 수록곡이 전반적으로 나일 로저스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먼 훗날 나일이 작업에 참여했던 다프트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와 비교해서 들어도 상당한 유사성이 느껴진다. 그러한 점에서는 듀란듀란은 확실히 틴팝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음악노선을 확립하고자 하는 목표를 나일 로저스 등 새로운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원활하게 달성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여섯 번째 트랙 Vertigo (Do the Demolition)는 그룹의 이러한 달라진 음악성이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생각된다. 5인조의 분열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의 이 노래에서는 펑키함이 강화된 리듬 파트와 여성 백보컬 등이 락이라기보다는 펑크 댄스에 가까운 장르의 곡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의 또 하나의 특징은 관악기의 전폭적인 채용인데 이런 특성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은 일곱 번째 트랙 So Misled다. 전주에서부터 화려한 관악기 파트가 참여하여 곡 전체에서 힘 있는 연주로 곡의 바탕을 다져주고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세 번째 트랙 Skin Trade다. 늘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가사로 되어 있는 듀란듀란의 노래에 무슨 불순한 의도를 읽었는지 앨범 발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었던 이 곡은 그런 비밀스럽고 불순함에 어울리는 주술을 읊조리는 듯 한 보컬과 센슈얼한 멜로디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