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a K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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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라 아니쿨라포 쿠티(Fela Aníkúlápó Kútì, 본명 Olufela Olusegun Oludotun Ransome-Kuti, 1938년 10월 15일 ~ 1997년 8월 2일)는 나이지리아의 음악가이자 정치 활동가였다. 그는 요루바 음악, 가나 음악의 영향, 미국 펑크(funk), 재즈를 결합한 나이지리아 음악 장르인 아프로비트(Afrobeat)1의 주요 혁신가로 여겨지고 있다. 찬송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리듬, 타악기에 초점을 맞춘 이 스타일은 쿠티의 뛰어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크게 유행했다. 서구권에서는 특히 브라이언 이노와 토킹헤즈 그의 음악(예를 들면 Afrodisiac)에 심취하고 영향받아 Remain in Light 등 아프로비트를 도입한 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드러머 크리스 프란츠는 학창 시절 우연히 아프리카 물건 들을 파는 가게에서 그의 앨범 Shakara를 듣고 반해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그의 앨범을 구입했다고 한다.2
쿠티는 나이지리아 여성 권리 운동가인 푼밀라요 랜섬-쿠티(Funmilayo Ransome-Kuti)3의 아들이다. 해외에서의 초기 경험 이후, 그와 그의 밴드 Africa ’70(드러머이자 음악 감독인 Tony Allen이 참여)은 1970년대 나이지리아에서 스타덤에 올랐고, 그 동안 그는 나이지리아 군사 정권의 노골적인 비평가이자 표적이 되었다. 1970년 그는 Kalakuta Republic 공동체를 설립하여 군부 통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공동체는 1978년 Kuti와 그의 어머니가 부상을 입은 공습으로 파괴되었다. 그는 1984년 모하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4 정부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20개월 후 풀려났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녹음과 공연을 계속했다. 1997년 사망한 이후로 그의 아들 Femi Kuti가 그의 음악 재발매와 편집을 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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