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트리비아

Nicky Wire가 뽑은 명반 10선

주) 지금은 문을 닫은 음악사이트 changgo.com에 올라왔던 글을 전재합니다.

Nicky Wire : Manic Street Preachers의 베이시스트

THE BEATLES
Revoler(Parlophone, 1966)

♬ 내가 비틀즈를 알게된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의 곡들은 멜로딕하고 꽤 괜찮다. 당신이 더 극단적인 사운드를
원하더라도, 그들의 다양성과 거침없는 가사에 대해 점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앨범이 이러한 장점을 완벽하게 모아놓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The White Album]도 사랑하지만 그것은 다소 과대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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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London Calling(CBS, 1979)

♬ 본 작품은 전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사운드 색은 이 앨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클래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그렇게 다양한 음악이 있고, 그렇게 잘 프로듀싱되었으며 환상적인 가사가
있다. 아트워크 또한 놀랍다. 그것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Exile On Main Street]
만큼이나 좋다. 하지만 우리가 [London Calling]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 앨범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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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DIVISION
Unknown Pleasures(Factory, 1979)

♬ 웨일즈에서 사는 것은 가장 끔찍한 일일 것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 꽤 고립된 곳. 그들의 전작을 살펴보면 꽤 파워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언 커티스(Ian Curtis)는 놀라운 뮤지션이다. 앨범의 가사는 내가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꽤 불안정하였다. 한계를 깨뜨리는 데 있어서 이언 커티스는 대부분의 락 싱어보다 훨씬 뛰어났다. 아트워크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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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
Fables Of The Reconstruction(IRS, 1985)

♬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앨범이다. 잊혀진 R.E.M의 시대. 인터뷰에서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정말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Driver 8’, ‘Maps And Legend’, ‘Green Grow The
Rushes’를 사랑한다. 다만 내가 자주 연주하는 것들. 사랑스런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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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Geffen, 1987)

♬ 퍼블릭 에너미, 건즈 앤 로지스는 모두 약 1988, 89년 정도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음악색을 띠고
있었지만 모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나는 마력적인 락큰롤을 하였던 건즈 앤 로지스를 사랑하였다. ‘Sweet Child
O’ Mine’, ‘Welcome To The Jungle’, ‘Paradise City’, ‘Rockeet Queen’….
그것들은 모두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워런트(Warrent), 포이즌(Poison), 머틀리 크루(Motley Crue)와
같은 소프트메틀 밴드들이 있던 미국에서 그들은 실제적인 락큰롤 밴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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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Silvertone, 1989)

♬ 이 앨범은 나의 지난 대학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이 밴드는 몇몇 공연을 가졌고 레코드 계약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앨범이 나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있었다! 이때에 놀라운 1960년대 사이키델릭 팝 앨범을 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미친 듯한 펑크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연주하였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것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목적의식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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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Fear Of A Black Planet(Def Jam, 1990)

♬ 제임스는 항상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을 사랑하였고 끊임없이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Fear Of A Black Planet’, ‘Who Stole The Soul’, 그리고 특별히
놀라운 곡들이라고 생각하는 [Burn Hollywood Burn] 만큼이나 그것에 빠져들진 않았다. 나는 이 두개의 앨범들이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과 함께 랩 역사상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떤 밴드의 곡을
카피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밴드가 아주 훌륭한 밴드라는 증거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퍼블릭 에너미를 카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음악은 랩뮤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환상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랩은 현재 꽤 엉성한 R&B로 변형되기도 하였고
매우 퇴폐적이 되었다. 70년대 락뮤직과 비슷하게 그것은 여자, 마약 돈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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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In Utero(Geffen, 1993)

♬ [Nevermind]가 나의 베스트로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In Utero]는 우리가 꽤 불안정한 어떤 것을 필요로
했던 때 우리의 삶의 한 때를 요약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바나의 사운드가 얼마나 놀라웠던가를 잊고 있다. 이 앨범에는 존
보남(John Bonham)이나 낼 수 있음직한 최고의 드럼사운드가 있다. ‘All Apologies’는 전생을 통틀은 나의
베스트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커트는 락의 신이고 너바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최고의 밴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만나본
적이 있냐구? 아니다. 솔직히 나는 실망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존경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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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FURRY ANIMALS
Fuzzy Logic(Creation, 1996)

♬ 나는 다만 이 앨범을 사랑한다. 내가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환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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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ATTACK
Mezzanine(Vergin, 1998)

♬ 매시브 어택은 댄스라는 장르로 다루기에는 꽤 다른 모습이다. 대신 그들은 모든 종류의 음악과 모든 종류의 스타일을 섞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Risingsun’은 가장 희귀한 곡이다. 많은 방면에서 1990년대의 대표급 밴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곡은 영국에서 진행되는 음악들을 절충하는 듯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곡들을 믹스하기도 하였고
블러(Blur)의 데이먼(Damon)도 그들과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다. 나는 그들이 다양한 영국문화의 환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땡땡 코믹스 : 색다른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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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sal2 5 edit1” by credits for w:ar:مستخدم:Jalal naimi. – Iraqi governers Book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o Commons by FunkMonk using CommonsHelper..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7월 14일 다리’ – 미대사관과 바그다드의 요새화된 그린존의 정부청사들로 가는 편한 경로 – 가 이라크의 마지막 왕 파이잘 2세가 살해되었던 1958년의 쿠데타를 기념하는 다리라는 것은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러나 살해당한 그 왕이 고전 땡땡의 코믹북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1958년 7월 14일 아침 막 23살이 된 파이잘 2세는 가족들과 함께 궁궐의 뜰로 나갔다. 여기에서 그들은 압둘 카림 카셈 준장이 진두지회하는 쿠데타의 리더 중 하나인 압둘 사타 아사바 대령의 명령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나 젊은 파이잘 2세는 세 살의 나이로(1939년 그의 아버지 가지 왕이 죽은 후에) 왕관을 넘겨받았을 때 – Herge란 필명으로 활동하던 땡땡의 창조자 레미를 비롯하여 – 서방의 상상력에 영감을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라크의 “소년 왕”의 삶은 타임, 라이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유명한 미국의 잡지들에 사진과 기사들을 통해 중계되었다. Herge는 그 일화들을 조용히 상상속의 왕국 케메드의 [그의 왕 파이잘 2세에게서 영감을 받은] 인기 캐릭터 압둘라 왕자로 그려나갔다. 짓궂은 아랍의 왕자 장난꾼은 ‘검은 황금의 땅(1950)’과 이후 ‘홍해의 상어들(1958)’에서 기자 땡땡과 그의 성미급한 친구 하독 선장을 화나게 하는 동시에 매료시켰다. 실제 파이잘 역시 장난기와 유머감각을 지녔었다.

덴마크 국적의 아동서적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프랭크 매드센은 “그 이야기들에서 Herge는 악당 뮬러 박사가 압둘라 왕자를 납치하게끔 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웅 땡땡이 그를 구하지만, Herge는 언제나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압둘라 왕자를 말썽꾸러기 아이로 캐릭터 화해서 땡땡이 그를 구출해주기를 원치 않는 것으로 그립니다.”

땡땡의 실제 삶에서의 이라크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이라크 십대들, 또는 그 이전 세대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Published in The Express Tribune, August 18th, 2011.

from

비닐락

이 블로그를 들르시는 분들이 아직도 모르시지는 않겠지만, 혹시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노파심에서 소개해 드리자면 비닐락은 그 유명한 Punk77의 바뀐 이름의 블로그로 1970~80년대 유명한 펑크/뉴웨이브 밴드들의 생생한 음악, 아름다운 커버디자인 등을 소개하는 곳이다. 여태 모르셨으면 즉각 RSS구독하시도록.

p.s. 어제 올라온 글을 보면 에릭클랩톤 이 아저씨, 아주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군.(또는 여전히?)

아티스트들의 재미있는 본명

1. 내 본명을 잊어다오
Alice Cooper – Vincent Furnier
Billie Holiday – Eleanora Harris
Billy Idol – William Michael Albert Broad
Billy Ocean – Leslie Sebastian Charles
Bob Dylan – Robert Zimmerman 많이들 아실 듯
Bonnie Tyler – Gaynor Hopkins
Bono (U2) – Paul David Hewson
Chubby Checker – Ernest Evans
Cliff Richard – Harry Webb
Dusty Springfield – Mary Isabel Catherine Bernadette O’Brien 길기도 하다 -_-;
Elton John – Reginald Kenneth Dwight
Elvis Costello – Declan Patrick McManus
Enya – Eithne Ni Bhraonain
F.R. David – Elli Robert Fitoussi
Falco – Johann Holzel
Freddie Mercury – Farrokh Bulsara 불사라…멋진데요.
Gazebo – Paul Mazzolini
Huey Lewis – Hugh Wilson Cregg III 오호라 3세…
Iggy Pop – James Newell Osterberg
Joe Strummer (Clash) – John Graham Mellor
Joey Tempest (Europe) – Joakim Larsson
Mike Reno (Loverboy) – Joseph Michael Rynoski
Moby – Richard Melville Hall
Richard Clayderman – Phillipe Pages
Ringo Starr – Richard Allen Starkey
Rockwell – Kenneth Gordy 예명보다 유명한 본명이죠.
Shania Twain – Eilleen Regina Edwards
Skeeter Davis – Mary Francis Penick
Slash (Guns N’ Roses) – Saul Hudson
Stevie Wonder – Stevland Morris
Sting – Gordon Sumner
Taylor Dayne – Leslie Wundermann 집안이 독일계인가 봅니다.
Vangelis – Evangelos Odyssey Papathanassiou 맙소사-_-

 

2. 성만 바꾼 경우
Barry Manilow – Barry Alan Pincus
Belinda Carlisle – Belinda Jo Kerzcheski
Brenda K. Starr – Brenda Kaplan
Carole King – Carole Klein
Chris DeBurgh – Chris Davison
Christopher Cross – Christopher Geppert
David Bowie – David Jones
David Essex – David Albert Cook
Diana Ross – Diane Earle
Donna Summer – Donna Gaines 잘 지은 이름.
Gary Numan – Gary Anthony James Webb
Joan Jett – Joan Larkin
Keith Sweat – Keith Crier
Kim Wilde – Kim Smith
Pat Benatar – Pat Andrejewski
Patti LaBelle – Patricia Louise Holte
Peter Wolf – Peter Blankfield 예명이나 본명이나 하나같이 특이한 ^^
Stacey Q – Stacy Swain
Steven Tyler (Aerosmith) – Steven Tallarico 어딘지 주술적인 이름인데요.

 

3. 이름만 바꾼 경우
Axl Rose (Guns ‘N Roses) – William Bruce Rose
Billy Joel – William Martin Joel
Bing Crosby – Harry Lillis Crosby
Bob Marley – Robert Nesta Marley
Bobby Brown – Robert Brown
Gilbert O’Sullivan – Raymond O’Sullivan 본명이 더 나은 듯
Jimi Hendrix – Johnny Allen Hendrix
Joe Cocker – John Robert Cocker
Leo Sayer – Gerard Sayer
Lou Reed – Lewis Allen Reed
Mick Jagger – Michael Philip Jagger
Ozzy Osbourne – John Michael Osbourne
Robert Palmer – Alan Palmer
Smokey Robinson – William Robinson
Steve Perry (Journey) – Stephen Ray Perry
Stevie Nicks (Fleetwood Mac) – Stephanie Lynn Nicks
Tori Amos – Myra Ellen Amos
Weird Al Yankovic – Alfred Matthew Yankovic

 

4. 애칭의 예명화
Art Garfunkel – Arthur Garfunkel
Dan Hill – Daniel Hill Jr.
Debbie Gibson – Deborah Gibson 몇년 전부터 다시 본명으로
Donny Osmond – Donald Clark Osmond
Jimmy Page (Led Zeppelin) – James Patrick Page
Kenny Loggins – Kenneth Clark Loggins
Kenny Rogers – Kenneth David Rogers
Rod Stewart – Roderick David Stewart

 

5. 이니셜의 정체
B.J. Thomas – Billy Joe Thomas
Kenny G – Kenneth Gorelick 바꾸길 잘했군요
R. Kelly – Robert Kelly
Sheila E. – Sheila Escovedo
Sophie B. Hawkins – Sophie Ballantine Hawkins
Warren G. – Warren Griffin III

 

6. 잘려진 앞부분
Anne Murray – Morna Anne Murray
Garth Brooks – Troyal Garth Brooks
Howard Jones – John Howard Jones
John Taylor (Duran Duran) – Nigel John Taylor
Julian Lennon – John Charles Julian Lennon
Justin Hayward (Moody Blues) – David Justin Hayward
Marie Fredriksson (Roxette) – Gun-Marie Fredriksson
Paul McCartney – James Paul McCartney
Peabo Bryson – Robert Beabo Bryson 오타가 아니라 원래 이름이 Beabo

 

7. 잘려진 뒷부분
Aaliyah – Aaliyah Dana Haughton
Beck – Bek David Campbell
Jewel – Jewel Kilcher
Madonna – Madonna Louise Veronica Ciccone 제법 인지도있는 본명이죠
Prince – Prince Rogers Nelson
Ray Charles – Ray Charles Robinson
Roland Orzabal (Tears For Fears) – Roland Orzabal de la Quintana
RuPaul – RuPaul Andre Charles
Tiffany – Tiffany Renee Darwisch
Vince Neil – Vince Neil Wharton

 

8. 알려지지 않은 미들네임
Alanis Morissette – Alanis Nadine Morissette
Bruce Springsteen – Bruce Frederick Springsteen
Chris Lowe (Pet Shop Boys) – Christopher Sean Lowe
Corey Hart – Corey Mitchelle Hart
Dan Fogelberg – Daniel Grayling Fogelberg
Elvis Presley – Elvis Aron Presley
Eric Clapton – Eric Patrick Clapton
John Lennon – John Winston Lennon
Kurt Cobain (Nirvana) – Kurt Donald Cobain 미들네임 참 뭐시기합니다.
Luther Vandross – Luther Ronzoni Vandross 이것도 만만치 않네요
Michael Hutchence (INXS) – Michael Kelland Frank Hutchence
Neil Tennant (Pet Shop Boys) – Neil Francis Tennant
Paul Simon – Paul Frederick Simon
Phil Collins – Philip David Charles Collins
Richard Marx – Richard Noel Marx
Roger Taylor (Duran Duran) – Roger Andrew Taylor
Roger Taylor (Queen) – Roger Meddows-Taylor
Whitney Houston – Whitney Elizabeth Houston

 

9. 기타 부분적인 편집 사례
Cyndi Lauper – Cynthia Anne Stephanie Lauper
Julio Iglesias – Julio Jose Iglesias de la Cueva
Marvin Gaye – Marvin Pentz Gay Jr.
Natalie Cole – Stephanie Natalie Maria Cole
Rick Springfield – Richard Lewis Springthorpe
Ricky Martin – Enrique Jose Martin Morales
Sade Adu (Sade) – Helen Folsade Adu 아프리카계…
Thomas Dolby – Thomas Morgan Dolby Robertson
Zakk Wylde – Zachary Philip Wylde

 

10. 돋보이는 작명 센스
Boy George – George Alan O’Dowd
Cher – Cherilyn Sarkasian LaPier 인디언계라네요.
Little Richard – Richard Wayne Penniman
Lou Gramm – Lou Grammatico 재미있는 본명이네요. ^^
Nat King Cole – Nathaniel Adams Coles
Seal – Sealhenry Samuel

 

11. 어감의 순화
Barbra Streisand – Barbara Joan Streisand
Celine Dion – Celine’ Dion 이름끝 e에 악센트
Daryl Hall – Daryl Franklin Hohl
Eddie Money – Edward Nelson Mahoney
George Gershwin – Jacob Gershowitz
George Michael – Georgious Panayatiou 얘는 그리스계 이름이랍니다.
Jon Secada – Juan Secada
Marc Anthony – Marco Antonio Muniz
Michael Bolton – Michael Bolotin
Rick Okasek (Cars) – Richard Otcasek

 

12. 결혼과 함께 이름을 바꾼 여성가수
Brenda Russell – Brenda Gordon
Gloria Estefan – Gloria Maria Milagrosa Fajardo
Sheena Easton – Sheena Shirley Orr
Tina Turner – Anna Mae Bullock

 

13. 그외 막가파
Babyface – Kenneth Edmonds 마음에 안 드는 예명
M. – Robin Scott
M.C. Hammer – Stanley Kirk Burrell
Meat Loaf – Marvin Lee Aday
Pebbles – Perri Alette McKissack
The Edge (U2) – David Evans

강변가요제 & 대학가요제

예전에 존재했던 통신서비스였던 유니텔에서 퍼온 글들을 다시 올리는 것입니다.

제 목 :[잡담] 강변가요제 & 대학가요제(1)

게 시 자 :crowded(배상태) 게시번호 :1194


게 시 일 :01/01/21 01:32:58 수 정 일 :


크 기 :5.5K 조회횟수 :63

80년대 가요계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이죠. 대학가요제는 1977년부터인가 시작되었는데 80년대를 관통하면서 가창력이 출중한 인기스타들을 배출하였고, 강변가요제 역시 80년대 초반부터 대학가요제와 쌍벽을 이루며 신인 등용문의 역을 톡톡히 수행했었습니다. 지금은 이 두 가요제가 열리는지조차 잘 모를 정도로
그 인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80년대 이 두가요제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죠.

지금이야 여기 저기 기획사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10대 청소년들도 맘만 먹으면 혹은 재능이 인정되면 가수로서의 길이 열려있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일반인이 가수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대학재학생’이라는 참가제한과 입상자들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일종의 유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수가 되고싶어하던 청소년들은 ‘꼭 대학에 들어
가서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에 출전하겠다’는 꿈을 안고 공부하는 경우도 꽤나 많았습니다. 대학생들도 대학 4년 재학기간동안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 연달아 출전, 8번 참가신청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암튼 그 때 그런 일들도 있었습니다.

‘학벌 위주의 가요제다’, ‘의식없는 대학생들의 잔치’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자하는 일종의 동기가 된다’는 교육적인 옹호론자도 있었고, 이 가요제에 출전한 가수들이 모두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해 왔던 예비가수들이라 가요계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주고 있다는 의견까지 비교적 긍정적인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이 두 가요제로 인해 MBC가 신인등용이라는 측면에서는 KBS를 80년대 내내 압도했었죠. KBS가 나중에 ‘대학가요축제’니 ‘청소년 가요제’ 등을 개최하여 경쟁을 시도했으나 초기에만 반짝하고 모두 사라졌었죠.

암튼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는 그 당시 대학생들의 의식과 유행을 조금은 반영하면서 많은 히트곡들과 스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지금은 잊혀진 가수도 있고,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이 두 가요제를 통해 등장한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이 두가요제를 통해 배출되었던 히트곡들을 떠올려볼까 합니다.

1. 도시의 그림자 – “이 어둠의 이 슬픔” (1986년 강변가요제 금상)
개인적으로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히트곡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곡이에요. 혼성 3인조로 구성된 이들은 특히나 메인 보컬을 맡고 있는 여성 멤버의 가창력이 아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죠. 김화란이라는 이 여성보컬은 1년뒤 솔로로 독립하여 “타인의 거리”(“타인의 계절”인지 헷갈리네요..)라는 출중한 가창력을 뽐낸 곡을 발표 잠시 인기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가사도 멋졌고, 늘어지듯 끊어지는 멜로디가 너무 좋은 곡.

2. 이상우 – “슬픈 그림 같은 사랑” (1988년 강변가요제 금상)
아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남자분들이 노래방 가시면 예전에 이 노래 많이 부르셨을 거에요. 이 곡과 비슷한 풍으로 노래방에서 사랑받는 곡이 몇 곡 있죠.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김민우의 “사랑일뿐야”,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등등. 저의 단골 레파토리..^^1988년 이상은이라는 대형 스타를 탄생시킨 해로 기억되는 이 때 탄탄한 가창력을 지닌 이상우도 아깝게 금상에 그치며 화려하게 가요계에 데뷔했는데 이상은의 “담다디”만큼이나 이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제가 보기엔 ‘담다디’보다 일시적인 인기에서는 뒤졌지만 오히려 훨씬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거 같아요. 이상우는 현재 탤런트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90년대 초반까지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등의 히트곡들을 터뜨리며 많은 가수로서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3. 박영미 – “이젠 모두 잊고 싶어요” (1989년 강변가요제 대상)
첨에 이 곡을 듣고는 단번에 ‘대상’탈 것이라고 직감했던 노래였습니다. 우선 가창력을 많이 참작하는 가요제에 박영미의 보컬을 정말 딱이었고, 노래풍 또한 가요제에 입상하기 딱 좋은 대형 스케일의 발라드곡이었기 때문에…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박영미를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으로 치켜세웠었죠. 그녀 자신도 대상 수상이후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가진 인터뷰에서 가요제 출전 이전에 학교에서도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으로 통했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휘트니 휴스턴이라고 여러 번 밝히기도 하였습니다(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여성참가자들의 90%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휘트니 휴스턴을 꼽았을 정도라는 군요). 이선희와 이상은을 잇는 대형가수로서 손색이 없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인기를 얻지는 못해서 아쉬웠던 가수. 박영미의 또 다른 히트곡 “꿈에서”도 아주 괜찮은 곡이었는데…

4. 조정희 – “참새와 허수아비” (1982년 대학가요제 대상)
아마 제가 대학가요제를 첨 봤던 게 이때부터인 것 같아요. 이 곡을 듣고는 대상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은상이상을 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대상을 받더라구요. 청바지에 청남방을 입고 나온 그녀는 자신이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이 곡을 불러서 대학가요제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었는데 구슬픈 멜로디가 쉽게 사랑받을 만한 소지가 다분했었습니다. 조정희의 지적인 분위기도 역시나 멋졌구요.

5. 우순실 – “잃어버린 우산” (1982년 대학가요제 동상)
대학가요제 입상곡 중에서 대상을 타지는 못했어도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곡들이 꽤 있죠. 이 곡도 그런 곡 중의 하나. 이 때 전 이 곡이 대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동상에 그치더라구요. ‘안개비가 하얗게~~”로 시작하는 이 곡은 애절한 우순실의 보컬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나중에 우순실은 80년대 중반 “그건 너”로 유명한 이장희에게 곡을 받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제목이 “꼬깃꼬깃해진 편지”…저 첨에 이 제목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제 목 :[잡담] 강변가요제 & 대학가요제(2)

게 시 자 :crowded(배상태) 게시번호 :1195


게 시 일 :01/01/21 02:12:57 수 정 일 :01/01/24 15:06:13


크 기 :4.3K 조회횟수 :47

6. 김학래 & ? – “내가” (1979년 대학가요제 대상)
이성미와 스캔들을 일으키며 이성미가 자살시도하게 만들어 80년대 후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김학래 아자씨도 바로 대학가요제 출신. 이 때 대상받을 때 김학래랑 이름 기억 안나는 한 분이 같이 듀오로 출전하였는데 이름이 도통 기억 안나네요. 전형적인 캠퍼스송 분위기의 곡이었죠. ‘내가 말없는 방랑자라면 이 세상에 돌이 되겠소’ 라는 가사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거에요. 김학래는 대상 수상이후 주춤하다가 1980년대 중반 “해야해야”라는 곡으로 빅히트를 기록, 가요톱텐에서 5주 1위의 영예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었는데 난데없이 이성미(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 개그우먼 아줌마)와의 스캔들(이성미와 은기라는 아이까지 낳았던 김학래가 변심)로 다시 인기 추락…물론 히트곡이 없었던 것이 큰 이유였겠지만…여담이지만 김학래의 “해야해야”를 생각하면 Olivia Mewton-John의 “Silvery Rain”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7. 높은음자리 – “바다에 누워” (1985년 대학가요제 대상)
대학가요제가 탄생시킨 빅히트곡 중의 하나. 이 노래는 나오자마자 박력있는 리듬과 쉬운 멜로디때문에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위에 김학래의 스캔들 얘기를 하다보니 바로 이 듀오가 생각나네요. 가요제에 출전할 때는 물론이고 대상 수상이후에도 이들은 사촌지간이라고 둘의 사이를 밝혔었는데 나중에 연인사이임이 들통났었죠.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둘의 다이내믹한 보컬솜씨가 인상적이었던 “새벽새”라는 히트곡도 배출하였지만 스캔들 이후 역시 잠잠.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이 곡의 가사가 모 시인의 시를 베꼈다는 것이 들통났었는데 MBC 측에서 자신들의 가요제 권위를 생각해서인지 ‘가사는 괜찮다’는 식의 의사를 표명해서 어영부영 넘어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이 곡이 빅히트를 친 후에 터졌던 일들이라 이 곡의 히트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었죠…’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8. 마음과 마음 – “그대 먼 곳에”(제목이 잘 기억 안나요, 1985년 강변가요제 대상)
이 곡도 대상 수상이후 참 말이 많았습니다. 가사 표절에서부터 곡 표절얘기까지…정말 착하게 생긴 남자멤버와 조금 퉁퉁한 김복희라는 여성멤버로 구성된 이 듀오는 고운 음색의 남자보컬과 허스키한 여성보컬의 조화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대상곡이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아서인지 그 이후로 활동이 없었죠. 김복희가 솔로로 나섰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별 반응이 없었고…’아~~~ 그대는 먼 곳에 있나요..’라는 김복희의 애절한 허스키 창법과 편안한 멜로디 진행으로 역시 큰 인기를 얻었던 곡입니다. 당시 ‘가슴앓이’, ‘갯바위’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얻은 한마음, 높은음자리와 함께 혼성듀오 붐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견도 있었지만 이들은 아마도 가요제 출전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9. 유미리 – “젊음의 노트” (1986년 강변가요제 대상)
유미리가 이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유미리는 이선희 이후 강변가요제가 낳은 최고의 가창력파 가수로 손꼽혔었습니다. 이선희보다 훨씬 매끄러운 창법을 선보인다고 해서 더 후한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암튼 이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죠. 이 곡은 시원스레 내지르는 유미리의 보컬이 역시나 매력이었던 곡.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리 둘 사랑의 이야기’..아마 유미리가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학생 신분으로 가요제에 출전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이후에 ‘첫인상’이라는 곡이 소폭의 히트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곤 ‘젊음의 노트’만큼의 대형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했었죠. 아까운 가수 한 명 잃어버린 셈.

10. 티삼스 – “매일매일 기다려” (1987년 강변가요제 동상)
이 곡은 아직까지 노래방 애청곡 순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히트곡이죠. 록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1980년대도 그랬지만 이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록음악이 음반시장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록음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 판매량이 미미) 현실에서 그들의 출현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독창적이었습니다. 강한 록사운드도 훌륭했고, 고음역을 구사하는 보컬,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멜로디 등 인기요소들을 적절히 가지고 있었던 곡이었습니다. 티삼스도 단발히트로 끝나긴 했지만… 티삼스는 티자, 삼각자, 스케일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그룹 이름. 발표당시 남자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던 곡. 멋졌죠…^^

제 목 :[잡담] 강변가요제 & 대학가요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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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시 일 :01/01/21 02:47:59 수 정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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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선희 – “J에게” (1984년 강변가요제 대상)
누가 뭐래도 강변가요제가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단연 써니 누나이겠죠.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강변가요제 입상곡들 가운데서도단연 이 곡은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곡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때 이선희 개인자격으로 출전한게 아니라 그룹의 일원으로 출전했었던 거 같은데 그 그룹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요. 이선희는 등장하자마자 당대 최고의 가창력을 지닌 가수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들으며 화려하게 활동을 시작했는데 대상 수상 직후 갑작스럽게 발표한 곡들 가운데 표절작품이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후 연이은 히트곡을 발표하여 1980년대 중반 최고 인기 여자가수를 차지하게 되었죠. “J 에게”는 초등학생까지 곡을 부르고 다닐 정도로 폭 넓은 지지를 받았던 곡이었는데 이 곡에 등장하는 J가 누구냐는 것으로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 “영”, “어둠은 걷히고”, “알고 싶어요”,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나 항상 그대를” 등도 모두 추억의 옛가요가 되었네요…작곡가이자 매니저였던 윤희중과 결혼하여 조금 놀래기도 했는데 그와 이혼, 이혼 후 남편 자살 등 그녀가 이토록 굴곡많은 삶을 살아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12. 유열 –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1986년 대학가요제 대상)
80년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대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여성 솔로가수들이 꽤나 많이 발견됩니다. 그에 비해 남성 솔로가수들이 대상을 차지하는 예는 극히 드물었죠. 그래서 유열의 대상 수상은 더욱 돋보일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유열은 아주 풍성한 성량의 보컬을 선보여 기성가수들에 못지 않다는 평을 들었는데 역시나 가창력이 출중한 가수이다보니 이후에도 여러 곡의 히트곡을 내며 롱런한 가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별이래”, “화려한 날은 가고”, “가을비” 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분주히 활동하고 있기도… 신효범과의 열애설이 종종 발표되기도…^^

13. 이정석 – “첫 눈이 온다구요” (1986년 대학가요제 금상)
유열만큼이나 출중한 보컬실력을 가지고 있던 가수가 1986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등장했었습니다. 바로 이정석. 이정석은 비록 가요제에서는 유열에게 대상을 넘겨주었지만 가요제 이후 인기면에서는 유열을 앞섰었죠. 그의 깔끔한 외모가 한 몫하기도…^^..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통해 대상이나 금상 등 큰 상을 받고 가요계에 입문한 가수들이 대부분 가요제 참가곡 이상의 히트곡들을 발표하지 못했던 일들도 많았는데 이정석은 가요제 참가곡보다 훨씬 빅히트를 기록한 곡을 1980년대 후반 발표하게 됩니다. 그 곡은 1980년대 후반 최고의 빅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바로 ‘사랑하기에’…이 곡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에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14. 박선주 – “귀로” (1989년 강변가요제 은상)
박선주는 대중적인 인기면에서는 다른 가요제 출신 가수들보다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아주 보물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가수들이 작곡에 참여하는 예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인데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 싱어 송 라이터를 발견하는 것이 더 쉽지는 않았죠. 박선주는 가요제 수상 이후 작곡 공부에 몰두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자신의 앨범에 실어 발표하는 재능을 선보이며 여성 가수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본선에서 박영미라는 화려한 가창력의 소유자 때문에 박선주의 가창력이 조금 빛을 잃었던게 사실이지만 박선주는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면서 박영미 못지 않은 넓은 음역의 보컬을 선보여 보컬실력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윤종신과 함께 부른 “우리 이렇게 스쳐보내면”이나 박선주의 솔로곡 “너”라는 곡을 꼭 들어보시길…). 대상을 놓쳤지만 이 곡 “귀로”는 그 해 강변가요제가 배출한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안녕이란 말은 해야지~~~~’…박선주 요새 왜 뜸한지 모르겠네요…아끼는 가수인데…

15. 무한궤도 – “그대에게”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
이 곡과 이 곡을 노래한 무한궤도라는 그룹이 가요제 이후 대단한 관심이 되었었죠. 그룹 멤버들 모두 일류대학의 재원들이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고, 자신들의 소유인 고가의 악기들을 동원,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며 노래까지 해서 많은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이들이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들에 대한 신상명세가 공개되었는데 여기에는 재벌그룹의 총수 아들까지 있어서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리기도…한마디로 있는 집 자식들의 곡…^^…또 하나 신해철이라는 아티스트를 탄생시킨 그룹이기도 하고 015B라는 그룹의 전신이었다고 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달라진 대학가요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곡. 전 이 곡이 대상곡으로 정해질 때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는데 제 의견과는 상관없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더라구요. 아티스트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노총각 신해철을 탄생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아야 하겠지만 암튼 전 이 곡은 별로…^^

제 목 :[잡담] 강변가요제 & 대학가요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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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시 일 :01/01/24 15:57:34 수 정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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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상은 – “담다디”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

강변가요제를 얘기할 때 이상은과 담다디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전 이 때 시상식을 거의 뒷 부분-이상우와 이상은이 대상후보에 나란히 나왔던 모습-만 봤었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오른 이상은과 이상우를 보고 둘 다 남자가수구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쎄 이상은이 여자가수더라구요. 얼마나 놀랐는지…껑충한 키에 짧은 머리 스타일, 거기에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까지…암튼 시상식 중간에는 담다디라는 곡을 들어보질 않아서 그 반응을 몰랐었는데 이상은이 대상으로 불리자 그 환호성이 대단하더군요. 앵콜송으로 이 곡을 부를 때 전 담다디를 처음 들어봤는데 쉬운 멜로디에 이상은 특유의 춤(몸짓에 가깝지만…^^)이 아주 인상적이라 뭐 인기 끌기에는 충분할 것 같더라구요. 암튼 이 곡 대상받고 나서 MBC에서 팍팍 밀어주고, 중성적인 매력 때문인지 단기간에 최고의 인기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인기를 끌면서 솔로데뷔 앨범 제작이 아주 초스피드로 이루어졌었는데 이 때 나온 곡이 강인원에게서 받은 곡들이 많았었죠. ‘사랑해 사랑해’, ‘Happy Birthday’ 같은 곡이 솔로 데뷔작에 실리면서 인기를 얻었었고, 뒤에 ‘사랑할거야’로 다시한번 인기를 얻었지만 담다디 열풍만큼은 아니었죠. 근데 나중에 ‘사랑할거야’가 표절곡으로 밝혀지면서 이상은은 상업적인 가요계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었습니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전위예술가 활동을 하면서 앨범도 간간히 발표했었는데 예전만큼 주목을 받진 못했죠. 이상은은 데뷔이후 자신의 음악활동이 자신의 주관적인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기획사의 상술에만 놀아났다는 것을 깨닫고 아티스트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곡들을 직접 작곡해서 앨범에 싣기 시작했고, ‘언젠가는’부터 그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요새는 이상은이 더욱 신비로워진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고, 이상은이라는 이름보다는 리체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기획사의 농간에 놀아나는 요즘 가수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해요.

17. 박미경 – “민들레 홀씨되어” (1985년 강변가요제 장려상)

박미경은 지금껏 언급한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 중에서 현재까지도 가수로서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있죠. 얼마전에도 ‘벌’이라는 무지막지한 곡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중인 것은 다들 잘 아실 듯… 박미경과 강변가요제를 연결시켜 생각하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얼굴 변신…이 당시 강변가요제에 참가했던 그녀의 얼굴을 본 저로서는 지금의 박미경의 모습이 놀라울 뿐…여성가수에게 미모라는 것이 얼마
나 중요한지는 박미경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KBS 대학가요축제가 배출한 ‘물안개’의 스타 석미경과 함께… 박미경의 이름을 떠올릴때 이 곡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아마도 그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94년 이후 그녀가 발표한 곡들이 거의 강한 댄스음악들이라 그런 것 같아요.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이 곡도 표절곡이랍니다…참 표절곡 많네요…)이후 주춤하던 그녀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 ‘아담의 심리’, ‘넌 그렇게 살지마’ 등의 소울풀한 가창력을 선보인 댄스곡들로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박미경이 댄스곡들로 인기를 얻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곡과 ‘기억속의 먼 그대’라는 발라드곡들이 더 좋더군요.

18. 여운 – “홀로된 사랑” (1987년 강변가요제 은상)

남자 둘(안현진, 고상우) 여자 하나(박순화)로 구성된 이 혼성 트리오는 경쾌한 이 곡으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멋지게 데뷔를 했는데 인기가 아주 높았었죠.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으나 묵직한 남성보컬과 비교되는 날카로운 여성보컬이 더 돋보인 점이 강점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 그룹은 이 곡을 히트시킨 이후에 ‘사랑이 떠나버리고’라는 발라드곡으로
연속적인 히트를 기록했는데 더 이상 히트곡들 터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이 당시 대상으로는 문희경의 “그리움은 빗물처럼”이 뽑혔었는데 이 곡보다는 여운의 이 곡과 동상을 수상한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가 더 큰 인기를 얻었죠.

19. 바다새 – “바다새” (1986년 강변가요제 동상)

이 곡은 비록 대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오랫동안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던 곡입니다. 남자 둘, 여자 하나로 구성된 이 트리오의 곡은 경쾌한 멜로디 진행과 밝은 분위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었는데 이 대회 때 유난히 출중한 가수들(유미리, 도시의 그림자)이 많아서 동상에 그치는 불운을 겪기도…얼마전에 코요테가 남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노래를 아주 망쳐놓더군요. 연습을 못했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신지의 가창력이나 나머지 두 명의 코러스 수준은 좀 심했더군요.

20. 심수봉 – “그 때 그 사람” (197?년 대학가요제 입상)

이 곡이 대학가요제 입상곡이라는 사실은 80년대 중반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구요, 심수봉이 10.26 사태의 쓰라린 과거의 현장에 있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꽤나 오랫동안 TV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죠. 심수봉 자신도 이 때의 일로 오랫동안 시달려왔고, 무척 고통스런 날들을 보냈다고 그러더군요. 이 곡은 심수봉이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심수봉의 조금은 청승맞은 창법때문에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히트가요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기억하는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입상곡들을 적어봤는데요, 주로 80년대 입상곡들이 많은 것 같군요. 90년대 들어서도 이 두 대회는 개최되긴 했지만 칼라, 소나기, 육각수, 주병선 등이 가수를 제외하곤 80년대만큼 뚜렷한 가수들을 배출하지 못했었죠. 이건 시대의 흐름에 많이 좌우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제가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가수들 중에서도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노사연, 배철수가 몸담았던 활주로, 조하문이 있었던 그룹으로 잘 알려진 마그마, 대상곡 하나내고 사라진 이유진, 본선참가로만 만족해야했던 귀뚜라미(고은희, 이정란), ‘한번만 더’의 박성신, ‘밤에 피는 장미’라는 인기곡을 배출한 어우러기, 영화배우로 성공한 한석규 등등이 두 가요제를 통해서 배출된 스타들은 참 많았습니다. 그 때가 그립네요.

synthpop.net

synthpop.net 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깔끔한 도메인네임에서 풍겨나듯 신쓰팝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다. 아니 사이트였다. 2007년 이후 3년째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사이트가 문을 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공사중이란다. 도메인도 버리지 않고 호스팅도 그대로인, 그러나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희한한 사이트가 되어버렸다. 하루 빨리 정상화되길.

The E-mu Drumulator

The E-mu Drumulator 는 1980년대 초 많은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사용한 샘플화된 퍼커션이었다. 이 제품은 그 회사의 획기적인 이뮬레이터 샘플링 키보드에 이은 작품이었다. 이 제품은 2년 동안의 판매기간 동안 1만개 정도가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초기 힙합의 아이콘 비슷하게 되어버린 SP-12 와 SP-1200 와 같은 후속작품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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