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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 Star

멕시코와 연접한 텍사스 주의 한 마을의 황야에서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이름 모를 이의 뼈가 발견된다. 죽은 이의 정체는 25년 전에 실종된 그 마을의 부패한 인종우월주의자 보안관 Charlie Wade. 이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신임 보안관 Sam Deeds 는 우연찮게도 Charlie 의 뒤를 이어 보안관직을 수행한 Buddy Deeds의 아들이다. Sam은 언제나 공정하고 명쾌한 업무 수행으로 그 마을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든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연루되었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비밀을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와중에 Sam 은 인종주의적 편견 때문에 맺어지지 못했던 멕시코계옛 애인 Pilar 와 재회한다.

영화는 이외에도 마을 술집 주인 Otis 와 육군 대령인 그의 아들 Delmore 와의 갈등, 역사교육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갈등(한때 멕시코의 영토였다가 지금은 미국의 영토가 되어 백인, 멕시코인, 흑인이 어울려 사는 이 동네에서는 몹시 심각한 갈등이다) 등의 에피소드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진행된다. 이러한 모든 갈등들은 역사적 콘텍스트와 개개인의 인생사가 꼬여 등장인물들의 몸과 마음의 주변에 낙인찍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같은 공간에서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연출솜씨 덕에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개개 사건들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다.

Matewan 등을 통해 근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를 솜씨 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꾼 John Sayles 가 1996년 만든 이 작품은 자칫 흥분에 들떠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뱉을법한 참기 힘든 유혹을 물리치고 관객 스스로에게 나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낮은 톤의 묵직한 화법을 통해 미국이라는 인종의 용광로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유려하게 펼쳐내고 있다.

Sam Deeds 역을 맡은 Chris Cooper 는 그 스스로가 Charlie 로 대표되는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이면서도 사회체제의 온존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건을 수사해야만 하는 보안관 역을 뛰어난 연기로 소화해냈다. 영화 제목인 Lone Star 는 알려져 있다시피 텍사스 주의 별명이다.

Pyrates(불타는 사랑)

흔히 사랑은 불에 비유되곤 한다. <불타는 사랑>, <사랑이 타올랐다>, <Hot Love> 등 에로스에 대한 상징물로써 불은 더할 수 없는 좋은 재료이다(반면에 사랑의 완성물로 착각되어지는 결혼은 불에 비유되기 어렵다. <불타는 결혼>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단순한 원리를 영상에 옮긴 영화가 Noah Stern 이 시나리오와 감독을 맡은 Pyrates 다. Sam(Kevin Bacon)와 Ari(Kyra Sedgwick)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클럽 뒤편으로 간 둘은 즉시 일을 벌인다. 우연히 호롱불을 걷어차 화재가 발생한다. 이후 이들이 일만 치를라치면 어김없이 화재가 발생한다. 시쳇말로 정말 <불타는 사랑>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 난 불은 언젠가는 꺼지는 법. 이들도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진 후 각자의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한번 이어진 인연의 끈이 그들을 다시 이어준다는 행복한 결말. 빤한 스토리지만 섹스와 화재를 연계시킨 발상이 발칙하고 명랑하다. 펑크락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펑크문화에 관한 대화에 쿨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올무비가이드에서 별 한 개 반이라는 처참한 평가를 내렸지만 이런 유의 영화를 즐기는 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 케빈베이컨과 카이라세드윅은1987년 Lemon Sky라는 TV영화에 같이 출연하여결혼한 실제 부부사이였다. 이둘은 <일급살인>, <The Woodsman>에서 함께 작업하였다.

p.s.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국내에 수입되어 출간되었다.

John Cusack

요즘 동안(童顔)이 유행인데 헐리웃을 대표하는 동안 배우를 뽑으라면 이 형님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존쿠작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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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usack Headshot” by John Cusack – Digital Media Management/Jamie Anderson.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6년 말띠이심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눈동자와 약간 작다 싶은 입술, 그리고 갸름한 얼굴형 덕분에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네 살 많은 누님 Joan Cusack 이 어느새 School Of Rock에서 교장선생님 역을 맡고 있는 요즘에도 아직 철없고 젊은 로맨틱 가이 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사실어릴 적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한그의 필르모그래피는 그의 나이 18세인(미국 나이로는 16세쯤 될까?) 1983년부터 시작된다. 데뷔작은 롭로우, 앤드류맥카시, 재클린비셋 등 당시의 청춘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Class. 본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올무비가이드 평점 한 개 반이라는 처참한 평가가 내려진 것을 보면 타임킬링용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나마 작품성있는 영화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것은 존 휴즈의 Sixteen Candles 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몰리링워드라는 청춘스타를 집중조명한 영화이기에 그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던 영화였다.

이렇게 80년대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그보다 더 잘 생기고 연기 잘하는 청춘스타들이 득실거렸다. 롭로우, 토마스하우웰, 패트릭스웨이즈, 탐크루즈, 맷딜런, 랄프마치오, 앤드류맥카시, 제임스스페이더 등등! 하다못해 그는 자신보다 못생긴 앤서니마이클홀에게도 밀릴 정도였다. 이런 청춘스타들의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가기에 또 하나의 난관은 요즘에야 장점이 되어버린 <너무 어려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롭로우가 그보다 불과 두 살이 위라는 사실을 아는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는 존재감 없이 잊혀져버릴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각고의 노력이었는지 또는 운이었는지(누구의 말에 따르면 운이라는 것도 강자의 전유물이라고 하지만) 80년대가 거의 끝날 무렵인 1989년 타고난 이야기꾼 Cameron Crowe 의 Say Anything에서 감수성 예민한 주인공 Lloyd Dobler 역을 멋지게 소화해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이후 필르모그래피가 수퍼스타 탐크루즈 처럼 흥행몰이의 귀재의 그것과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되었던 그 많은 청춘스타들이 자신의 재능을 영화 이외의 것에 탕진하며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을 때에도 묵묵히 나름 성심성의껏 연기를 계속 해나갔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 결과 우디알렌, 스티븐퓨리어스, 로버트알트만과 같은 훌륭한 감독들과의 만남이 이어졌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매니아용 러브스토리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을 통해 뒤늦은 로맨틱코미디의 단골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잭블랙의 노래솜씨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작)

이후 두어편의 로맨틱코미디에 더 출연한 후 꾸준히 출연작을 늘린 그의 2007년 최신작은 직접 제작자로 나선 Grace Is Gone 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영화인생. 배우로서의 단점인 동안을 꾸준히 유지해 나이 들어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거기에 댄디함까지 더한 배우. 초호화장정은 아니지만 그럭저럭듬직한 하드커버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의 그런 배우이다.

Silver Streak

Jim Carrey 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면 Gen Wilder 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멜브룩스, 우디알렌 등 당대의 코미디 대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Jim Carrey, 또는 다른 이전/이후의 코미디언보다도 행운아 내지는 실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Jim Carrey 도 생각 없는 코미디 몇 편을 찍은 후에는 The Truman Show, Man On The Moon 등을 통해 품격을 높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 곱슬머리에 엄청 큰 코, 그리고 토끼눈처럼 동그란 파란 눈동자의 이 사나이가 1976년 골라잡은 작품은 Love Story 의 감독 Arthur Hiller 가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블록버스터 Silver Streak 이다. 단지 지루해지고 싶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골라잡은 George Caldwell(Gene Wilder)은 뜻하지 않게 Hilly Burns(Jill Clayburgh)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창밖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지루했으면 했던’ 기차여행은 비행기 여행이 비할 바가 안 되는 익사이팅한 모험으로 변신한다. 같은 기차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밖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그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가 지닌 불굴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적당한 미스테리, 자못 심각한 스턴트액션, 그리고 진와일더 특유의 유머코드 등이 잘 결합되어 시간가는 것을 별로 못 느끼게 만드는 웰메이드 액션스릴러코미디물이다.

Klute

Alan J. Pakula 의 ‘패러노이아 삼부작’ 중 가장 이른 1971년 제작된 스릴러물. John Klute (Donald Sutherland)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친구 Tom Gruneman 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의 유일한 단서는 Tom 이 편지를 보내곤 했다던 뉴욕의 콜걸 Bree Daniels (Jane Fonda). 남성에게 적대적인 그녀를 설득하여 Tom 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져만 간다. 형식은 스릴러이지만 실제로는 무뚝뚝한 존과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브리와의 사랑이야기에 가깝다. 묘한 인연으로 만난 둘이지만 점차 서로를 아끼게 되는 전개과정이 제법 귀엽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과일가게로 둘이 쇼핑하러 간 장면에서의 제인폰다의 애틋한 표정연기와 존의 옷자락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극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이 시기 베트남전에 대해 소리 높여 비난했던 제인폰다는 반전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심볼로 부상되었고 극 중에서도 남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몸부림치는 도시여성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 덕분에 그녀는 그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A Shot in the Dark

어느 부유한 사업가의 저택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보고를 받는 경찰서의 고위간부 드레퓌스에게 보고자는 ‘재앙’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살인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재앙은 바로 그 사건의 담당 형사로 클루조 형사(피터 셀레스)가 배정되었다는 사실.

그들의 걱정대로 클루조 형사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분수에 빠지고 코트에 불을 내고 마침내 이층에서 떨어지는 등 온갖 사고를 몰고 다닌다. 때마침 도착한 드레퓌스는 그를 사건에서 제외시켜버리지만 고위층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다시 클루조가 사건을 담당한다.

같은 해 만들어진 유명한 코미디물 Pink Panther 를 통해 창조된 캐릭터 클루조 형사를 재활용한 일종의 속편 성격의 작품으로 전편에 버금가는 피터 셀레스의 완벽한 슬랩스틱 연기를 통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물론 피터 셀레스는 자신의 캐릭터가 이렇게 정형화되어 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Match Point

내가 우디 알렌에게 기대하는 두 가지 것, 즉 냉소적 유머와 뉴욕이 이 영화에는 없다. 그리고 영국식 악센트와 비극적인 사랑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이틀에 걸쳐 감상했다. 전반부는 흔해 빠진 삼각관계의 연애담이다. 성공을 갈망하는 야심찬 젊은이, 그의 매력에 반한 부잣집 아가씨, 바람둥이인 그녀의 오빠, 그리고 야심찬 젊은이의 뜨거운 눈길을 견뎌야 하는 미국에서 온 금발의 ‘그녀의 오빠’의 애인. 후반부를 봐야 하는 이틀째 이대로 영화가 계속 상투적으로 간다면 우디 알렌의 영화라 할지라도 끝까지 참고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영화를 감상하였다. 결국 예상대로 빗나간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침내 부잣집 아가씨 클로이와의 결혼하여 성공의 사다리를 타게 된 야심찬 젊은이 크리스는 사랑(love)과 욕망(lust)은 다른 것이라며 이미 남이 되어버린 ‘그녀의 오빠의 전(前)애인’ 노라 라이스와 육체적 유희에 빠져든다. 제어할 수 없는 심성의 소유자인 노라(그녀의 오빠의 애인)[스칼렛 요한슨]의 독기어린 이혼요구에 크리스는 드디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생각을 하게된다. 결말은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만약 내 예상대로 결말이 나지 않았더라면 대단히 실망스러웠을 뻔했다. 역시 우디 알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냉소’가 있어야 ‘우디 알렌 표 영화’라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테니스공과 반지, 그리고 마약중독자의 커넥션이 이어지는 순간. 그러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한 장면. 그가 나 빗속을 뛰쳐나간 노라와 이를 뒤쫓아 간 크리스가 보리밭에서 격정에 휩싸여 섹스를 하는 그 장면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다 진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락한 장소도 아닌 비오는 보리밭에서 비에 축축이 젖었을 그 청바지를 정성과 시간을 들여 벗고도 여전히 정욕이 남아 있을 만큼 그렇게 그 둘이 뜨거웠을까 하는 의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Jeremiah Johnson

Jeremiah Johnson(굳이 원음대로 읽자면 제레마이어존슨이지만 우리말 표기에 따르면 제레미아존슨 정도 되겠다)은 서부극이다. 하지만 일종의 수정주의 서부극이다. 종래의 명징한 선악구도의 남성적인 서부극이 아닌 보다 깊은 곳의 인간성에 주목하며, 인디언 등 토속인종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직군인 Jeremiah Johnson이 문명세계를 벗어나 산에 들어가 홀로 살기로 결정한 이후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룬 영화로 개봉된 해인 1972년의 최고흥행작이라고 한다. 주인공을 맡은 로버트레드포드의 인기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감독 시드니폴락의 박력 있는 연출과 장대한 풍경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야기의 정점은 어찌어찌해서 맺어진 이상한(?) 가족(마치 ‘가족의 탄생’처럼)이 제레미아의 부주의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그 순간이다. 고독했던 산사나이의 가슴을 녹여줬던 인디언 아내와 양아들이 다른 인디언 부족에게 살해된 현장과 맞닥뜨린 제레미아의 황망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Love Actually에서 동생과 정분이 나버린 애인을 두고 홀로 휴양지를 찾은 남자가(브리짓존스의 그 남자) 혼잣말처럼 “alone again naturally”라고 읊조리는데(잘 알다시피 Gilbert O’sullivan 의 히트곡 제목이다) 오히려 그런 사치스런 홀로됨보다 산에 또다시 홀로 남겨진 제레미아의 홀로됨이 훨씬 처연해 보인다. 그리하여 산사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친절함과 신중함을 지니고 있던 이 사나이는 드디어 맹수가 되고 만다.

고독을 선택했다가 고독에 고통 받는 한 서부 사나이의 서사기.

해변의 여인

홍상수의 영화는 마치 롤빵처럼 생긴 우리 인생에서 중간부분을 칼로 잘라내어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승전결에 주력하기보다는 일상사에서 우리가 편의적으로 생략해버리고 있는 우리의 가식과 위선, 그리고 모순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이 그의 주특기다. 그런 면에서 롤빵은 달콤하기보다는 쓴 맛이 강하다. 제법 실력을 인정받는 듯한 감독 김중래(김승우)과 그의 후배이자 팬(김태우), 그리고 그 팬의 여자 친구(고현정)가 서해안에 놀러간다. 천성이 껄떡쇠인 것으로 보이는 김중래가 후배의 여자 친구를 날름 잡수시고는 실존의 문제 운운하며 본질을 회피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여자 또한 사랑의 순수함이나 충실함을 요구해서라기보다는 자존심의 문제 때문에 김중래의 오입을 밝혀내려 안달한다. 결국 Love Actually 에서는 밝혀내지 못한 Love 의 간사함과 치졸함이 이 영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딱히 답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나머지 롤빵을 다 먹어야 해답이 있을까?

Love Actually

대강의 스토리만으로도 영화의 작위성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연시에는 뭔가 작위적이라도 가슴 따뜻한 영화를 봐줘야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오랜만에 런던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영국 악센트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르게 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애정의 방향이 어긋나 있었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비서를 사랑하게 된 수상,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을 사랑하게 된 작가,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남자 등등. 그리고 결과는 다들 예상하고 있다시피 해피엔딩이다. 극중 인물의 청혼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이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크리스마스니까’ 용서해줄 수밖에 없다. 왜 크리스마스에는 누군가를 용서해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