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싱글

Skin Trade

Cover of the original banned Skin Trade s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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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 Trade” 는 Duran Duran의 Notorious 앨범에서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1987년 1월 발매된 이 싱글은 영국 싱글 차트 22위까지 올랐고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는 39위까지 올랐다. 이 곡의 멜로디는 Simon LeBon이 가사를 완성하기 전에 만들어졌다. 노래제목은 앨범을 녹음하던 당시 John Taylor가 가지고 있던 Dylan Thomas의 책 Adventures in the Skin Trade에서 따왔다. 가사는 돈을 위해 몸을 파는 것으로 추측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Skin Trade가 암시하는 바가 그것이다. 이 싱글에서 밴드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Simon은 Prince와 같은 팔세토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고 The Borneo Horns가 연주한 관악기 섹션이 연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밴드는 이 싱글의 여러 단어를 그들이 비즈니스에 활용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출판 회사를 Skin Trade Music Ltd.라고 지었고 Notorious 앨범을 홍보하기 위한 순회공연을 가사 중에 등장하는 단어를 써서 Strange Behaviour Tour라 이름 붙였다. 또한 1987년의 리믹스 EP와 1999년의 더블 CD 의 리믹스 컬렉션도 Strange Behaviour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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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a Bourgeois Constr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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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Shop Boys – Electric” by iTunes Store UK. Licensed under Wikipedia.

요즘 Pet Shop Boys만큼 부지런한 80년대 팝 밴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1986년 Please로 데뷔한 이 듀오는 통산 열두 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냈는데, 특히 2012년과 2013년에는 연속하여 Elysium과 Electric을 발표하는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다. 이중 Electric은 “80s Kid”로 자라나 자신의 밴드 Zoot Woman을 이끌기도 하고 Madonna와 작업하는 등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한 Stuart Price의 프로듀싱으로 빌보드 차트와 영국 차트 등 각국 차트 상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을 거둔 성공작이 되었다.

“Love Is a Bourgeois Construct”는 이 앨범에서 가장 수려한 곡 중 하나다. 이 곡은 작곡가 Michael Nyman이 17세기 작곡가 Henry Purcell의 곡에 기초하여 만든, 영화 ‘제도사의 계약’에 삽입된 연주곡 Chasing Sheep Is Best Left to Shepherds의 멜로디에 기초하고 있다. “사랑은 부르주아의 구조물이다”라는 재밌는 제목의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은 부르주아의 구조물이다.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난 부르주아이기를 포기한다.”라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억지로 합리화하는 재밌는 상황을 연출한다.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2013년 9월 1일 디지털 다운로드의 형식으로 발매되었고 9월 30일 CD로 발매되었다. CD는 Little Boots, The Penelopes, Dave Audé의 믹스 버전 등과 함께 이전에 발표하지 않았던 B면 곡 “Entschuldigung!”과 “Get It Online”이 함께 수록되어 판매되었다. 차트 성적은 영국 싱글 차트 105위로 신통치 않았지만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The Guardian은 이 노래를 2013년의 베스트트랙 중 네 번째 곡으로 선정했다. Slant 매거진은 “2013년의 25개의 베스트 싱글” 중 18위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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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ring Me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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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ring me down ”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Jet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79년 7월 20일 Electric Light Orchestra의 “Don’t Bring Me Down”이 발매됐다. 밴드의 리드 싱어이자 기타를 맡은 Jeff Lynne이 쓴 이 곡은 영국 출신의 이 락밴드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Jeff Lynne은 앨범에서 시끄러운 곡이 너무 없어서 마지막 순간에 이 곡을 썼다고 증언했다. 이 곡의 드럼 트랙은 앨범의 다른 트랙 “On The Run”에서의 드럼 트랙을 일부 발췌하여 조금 더 느리게 반복한 트랙이다. 이 싱글의 홍보를 위한 광고에서, ELO는 이 노래를 지구 위를 맴돌다가 바로 며칠 전인 7월 11일 후주 서부에 추락하여 박살난 NASA의 스페이스 스테이션 Skylab에게 헌정한다. 밴드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Discover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1979년 9월 8일 빌보드 핫100 차트 4위까지 올랐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는 3위까지 올랐다. 이 성적은 밴드가 발표한 싱글 중에서 미국 차트에서는 최고의 성적, 영국 차트에서는 두 번째의 성적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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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View To A Kill

1985년 7월 13일 Duran Duran의 “A View To A Kill”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문다. Duran Duran과 John Barry가 만든 이 곡은 영국 버밍햄 출신의 이 밴드의 두 번째 미국 차트 정상곡이 되었다. Duran Duran은 그룹의 베이시스트 John Taylor가 한 파티에서 007의 프로듀서 Albert “Cubby” Broccoli를 만난 이후 Grace Jones가 본드걸로 출연하게 되는 열네 번째 James Bond 영화의 주제가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 우연한 만남이 양 측의 진지한 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Broccoli는 그룹에게 주제가를 같이 작곡하고 어레인지할 John Barry를 소개했다. John Barry는 영국 출신의 작곡가로 Born Free, The Ipcress File, Out Of Africa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만든 명장이었다. The Power Station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 Chic이 Bernard Edwards가 프로듀싱에 가세하였다. 트랙은 런던에 있는 CTS 스튜디오와 메종루즈에서 녹음됐다. John Barry는 Duran Duran의 연주에 덧입힐 60인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녹음하는 동안 밴드 멤버 간에 불화가 있었다.(특히 Nick Rhodes와 Andy Taylor 사이에) 밴드 멤버들은 결국 자신들의 파트를 별도로 추가 녹음하였다. 1985년 5월 6일 발매된 싱글은 그 달 18일 차트에 43위로 데뷔하여 8주 후 정상을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A View To A Kill”은 미국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유일한 본드 주제가가 되었다.1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날 Duran Duran은 필라델피아에서 Live Aid 공연에 참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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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곡 이전에 차트에 가장 높이 올라간 본드 주제가는 핫100 차트 2위까지 오른 Wings의 “Live And Let Die”와 Carly Simon의 “Nobody Does It Better”였다

Pop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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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PopLif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aisley Park.. Licensed under Wikipedia.

1985년 7월 10일 Prince & The Revolution의 “Pop Life”가 발매되었다. Prince가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Purple Rain”이후 내놓은 스튜디오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당초 이 곡은 “Purple Rain”이 완성되기도 전인 1984년 2월 19일 할리우드에 있는 선셋사운드에서 녹음됐다. Sheila E.가 연주한 드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악기는 Prince가 직접 연주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는 성난 군중이 “저 엉터리를 밖으로 내던져(throw the bum out)”라는 외침의 샘플이 담겨 있는데, 이 장면은 실제로 1981년 Prince가 Rolling Stones의 오프닝으로 무대에 섰을 때 관중들이 질렀던 함성이다. 미국에서 발매된 싱글의 B면에는 LP에 담기지 않은 “Hello”가 담겨져 있는데, 이 곡은 Prince가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에 대한 반응으로 쓴 곡이다.1 “Pop Life”는 1985년 9월 21일 빌보드 핫100 차트 7위까지 올랐고 R&B 싱글 차트에는 같은 해 9월 14일 8위까지 올랐다. Elvis Costello는 한때 이 곡을 가사만 바꿔서 커버하려 했었지만 Prince가 거절했다. Costello는 후에 이 곡의 코드를 빌려와 “The Bridge I Burned”란 곡을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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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re against hungry children. There’s just as much hunger here at home.” 이란 가사에서 의도는 분명히 읽힌다.

Every Breath You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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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21111985 06 700” by Helge Øverå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1983년 7월 9일 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8주간 머물렀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4주간 정상에 머물렀다. Sting이 만든 이 곡은 Sting이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미국 출신의 뉴웨이브/펑크락 밴드 The Police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으며, 또한 1983년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싱글이 되었다.

Sting은 이 곡을 그의 첫 아내인 배우 Frances Tomelty와 고통스럽게 이혼하는 과정 속에서 썼다. 간혹 달콤한 사랑노래라는 오해를 받는 이 곡은 모호한 가사 속에 보다 어두운 맥락을 담고 있다. 즉 前애인에게 집착하며 질투하는 화자의 시각은 특정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집착과 질투일 뿐이다.

“난 한밤중에 깨어났고 그 가사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30분 만에 곡을 만들었죠. 선율 자체는 포괄적인, 일종의 수많은 다른 선율을 합친 것이었어요. 하지만 가사는 흥미로웠죠. 편안한 사랑 노래처럼 들려요. 그때까지 가사가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어요. 내 생각에 빅브라더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와 통제.” Sting의 1993년 인터뷰 中에서

곡을 만드는 과정은 드럼과 퍼커션 파트에 대한 Sting의 집착 때문에 Sting 과 드러머 Stewart Copeland 간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둘은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주먹다짐까지 벌였고, 엔지니어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Hugh Padgham이 거의 프로젝트에서 빠질 뻔 했다. 결국 갈등은 회복됐고 트랙은 완성됐다.

싱글은 밴드의 다섯 번째 앨범 “Synchronicity”의 첫 싱글로 1983년 5월 20일 발매되었다. 팬들과 비평가는 동시에 이 곡을 “클래식”으로 간주하였다. 1983년 6월 4일 핫100 차트 36위로 데뷔한 이 곡은 불과 5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Kevin Godley와 Lol Creme이 감독한 흑백의 뮤직비디오도 음악의 강렬한 인상에 한몫했다.

“Every Breath You Take”는 2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Song of the Year’를 포함하여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곡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The Police는 1984년 해체되었다. Sting은 그의 솔로 앨범을 위해 “If Love Somebody Set Them Free”를 썼는데 이 곡은 “Every Breath You Take”의 반대되는 입장에서 쓴 후속곡의 성격을 띠고 있다.

롤링스톤誌는 1983년 이 곡을 ‘그 해의 노래’로 뽑았고 후에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84위에 선정했다. 이 성적은 뉴웨이브 곡으로는 가장 높은 순위에 속한다. 빌보드는 이 곡을 ‘Hot 100 All-Time Top Songs’에서 25위에 선정했다. 2010년 추산에 따르면 Sting의 음악 관련 수입 중 이 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1/4내지 1/3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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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ing Back The Years

Holding Back the Years by Simply Red UK 7-inch singl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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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12일 Simply Red의 “Holding Back The Years”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같은 날 R&B차트에서는 최고 순위인 29위까지 오른다. Mick Hucknall과 Neil Moss가 쓴 이 곡은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팝/쏘울 밴드 Simply Red에게는 첫 미국 차트 정상곡이 되었다. 리드싱어 Mick Hucknall는 후에 “Holding Back The Years”가 될 이곡을 열일곱 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작곡의 계기는 그의 어머니가 그가 세 살 때 가족을 떠났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Hucknall은 이 곡을 몇 년 후 The Frantic Elevators의 멤버로 있을 때 밴드 멤버인 Neil Moss와 함께 마무리한다. 밴드는 이 곡을 처음에 1982년 녹음했다. 하지만 큰 인기를 얻진 못한다. The Elevators가 해산하고 나서 Hucknall은 1985년 Simply Red를 결성하고 데뷔 앨범 “Picture Book”에 쓰기 위해 베테랑 프로듀서 Stewart Levine의 도움을 받아 이 곡을 다시 녹음했다. 이 곡은 영국에서 앨범의 세 번째 싱글로 발매됐고 차트 51위에 머물렀다. WEA는 굴하지 않고 1986년 봄 싱글을 재발매했고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영국에서 인기를 얻자 Elektra 레코드사는 미국에서 싱글을 발표했다. 1986년 4월 5일 88위로 차트에 데뷔한 “Holding Back The Years”는 14주 후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1 앨범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레코드 인증을 받았고 밴드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신인 부문을 포함 두 개의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05년 이 곡의 어쿠스틱 버전이 앨범 “Simplified”에 수록되어 발표되었고 째즈 라디오 방송국의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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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곡과 함께 미국 차트 정상을 차지한 Simply Red의 다른 곡은 리메이크 곡은 “If You Don’t Know Me by Now“다.

C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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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anCar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beggars.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79년 영국의 아티스트 Gary Numan은 그의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Cars”를 싱글로 내놓았다. 이 곡은 영국과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올랐다.1 이로써 이 곡은 시장에서나 뮤지션들 모두에게 신디싸이저를 이용한 뉴웨이브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곡이 되었다.

이 곡은 Numan이 싱글 네 개와 영국 차트에서 인기를 얻은 “Are ‘Friends’ Electric?”을 포함한 LP 두 개를 발표한 이전 밴드 Tubeway Army라는 이름을 버리고 처음 내놓은 곡이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이전의 곡들보다 더 밝아지고 보다 팝친화적이었다. Numan은 후에 이 곡을 만들 때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 때가 아마도 ‘이게 히트 싱글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첫 노래에요.”라고 말했다.

“Cars”의 제작에는 베이스와 드럼과 같은 리듬 섹션은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미니무그(Minimoog)와 폴리무그(Polymoog) 키보드 등의 아날로그 신디싸이저를 이용됐다. 간주 부분에는 탬보린이 쓰이기도 했다. Numan의 보컬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마치 로봇이 노래하는 듯한 톤으로 녹음되었다. Numan에 의하면 가사는 그가 직접 거리에서 겪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런던에서 트래픽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앞차의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죠. 그들은 나를 차에서 끌어내 때리려 했어요. 난 문을 잠그고 마침내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그들에게서 도망쳤죠. 그런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는 현대에서 당신이 차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당신의 모든 멘탈이 달라집니다. 그건 당신만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왕국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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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uman이 비록 영국에서는 몇 개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게 그의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

Com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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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artneyComingUp” by http://www.jpgr.co.uk/r6035.html. Licensed under Wikipedia.

1980년 6월 28일 Paul McCartney & Wings의 “Coming Up”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머문다. Paul McCartney가 작곡한 이 곡은 그가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일곱 번째 정상에 오른 곡이 되었다. Paul은 스코틀랜드 시골의 그의 별장에서 “McCartney II”를 녹음하던 1979년 여름 이 곡을 만들고 모든 연주파트와 대부분의 보컬을 스스로 녹음한다.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Paul은 이 곡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아이디어 없이 드럼 트랙에서부터 시작하여 기타, 베이스 등을 차례대로 붙여나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컬에는 다양한 스피드로 변주할 수 있는 피치콘트롤이 사용됐다.

싱글로 발매하기 몇 달 전에 Paul은 그의 밴드 Wings와 함께 짧은 영국 순회공연에서 이 곡을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1979년 12월 17일 Glasgow의 글래스고아폴로에서 가진 공연이 녹음됐다. 1980년 4월 이 곡의 스튜디오 버전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라이브 버전은 Wings의 1975년 앨범 “Venus And Mars” 시절의 트랙 “Lunchbox/Odd Sox”과 함께 스튜디오 버전의 B면에 수록되었다.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은 라이브 버전을 더 사랑했다. 이 때문에 처음에 미국의 콜롬비아 레코드사는 “McCartney II” 앨범에 라이브 버전을 포함시키고자 했지만 Paul은 이를 거절한다.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한 임원은 “미국인은 폴 매카트니의 진짜 목소리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타협점으로 찾은 것은 앨범의 첫 출시 때 홍보용의 라이브 버전 7인치 단면 싱글을 북미에서 보너스로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이 노래는 차트 2위에 올라 3주간 머문다. 미국에서는 1980년 4월 26일 73위로 핫100 차트에 등장한 이 곡은 9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한다. 빌보드는 비록 라이브 버전이 더 방송을 자주 탔음에도 처음에 핫100 차트에 A면 곡으로 차트에 1위에 머물러 있던 기간을 포함하여 12주 동안 등재해놓았다. 빌보드는 후반 아홉 주가 돼서야 차트에 B면으로 표시했다.

이 노래가 인기를 얻던 시기에 비슷한 순위에 머물러 있던 곡들은 Lipps Inc.의 Funky Town, Gary Numan의 Cars, Billy Joel의 It’s Still Rock N Roll To Me 등이었다. 70년대를 댄스뮤직의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디스코, 이제 막 인기 몰이를 하기 시작한 신쓰팝, 그리고 이들 트렌드 사이를 비집고 “여전히 록앤롤”이라고 외치던 음악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Coming Up은 이 와중에 한 위대한 뮤지션이 시대의 조류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뉴웨이브 스타일의 댄스락 넘버인 셈이다.

한편 이 노래는 Paul의 친구이자 또 다른 위대한 뮤지션인 John Lennon의 음악 역정에 한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전까지 5년째 음악계를 떠나 그의 아내 오노 요코와 시간을 보내고 있던 John은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게 됐다. 이 곡에서 자극을 받은 John은 1980년 11월 발매될 앨범 “Double Fantasy”를 구성하게 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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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 ‘Bout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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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man – Revolution” by 7″ gramophone picture sleeve. Licensed under Wikipedia.

“Talkin’ ‘Bout a Revolution“은 싱어송라이터 Tracy Chapman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에서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에는 75위에 머물러 전작 ”Fast Car“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빌보드의 다른 4개의 차트에 올라가는 등의 다양한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곡이 되었다. 특히 모던락 차트와 R&B/힙합 차트에 동시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 밖에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탑40에 오르는 사랑을 받았다. 정치적 각성에 대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또한 2011년 튀니지의 혁명 과정에서 라디오 방송국의 애청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G, C, Em, D.의 심플한 기타 코드가 곡 내내 계속되며 ”가난한 이들이 그들의 것이었던 것을 찾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노래인지라 프로파간다 송으로 매우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Living Colour, Reel Big Fish와 같은 얼터너티브락 밴드들이 즐겨 리메이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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