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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네 켄시, 건전한 자본주의자? 혹은 호전적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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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stOwn work, CC BY-SA 4.0, Link

<히로카네 켄시>라는 이름은 익숙하지 않겠지만 <시마 과장>하면 “아~”하며 다들 고개를 끄덕거릴 거다. 그는 <시마 코사쿠>라는 베이비붐 세대의 직장인의 성공 스토리 <시마 과장>을 사실적이고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어 스테디셀러로 만든 작가이다. 강직하고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낭인(浪人)이면서도 아슬아슬 조직생활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캐릭터였던 시마 과장은 일본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결과 원작은 영화화되기도 하였고 연달아 시마 사원, 시마 부장, 시마 이사, 시마 상무 시리즈로 거의 실시간으로 현재까지 연재가 되고 있다.

시마 코사쿠는 어쩌면 히로카네 켄시의 알터이고라 할 수 있다. 와세다 법대 출신인 작가는 특이하게도 재학 중 만화연구회 등의 활동을 통하여 그림 실력을 다진 뒤 마츠시다 전기의 광고선전부에서 4년간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마 역시 와세다 출신으로 하츠시바 산전의 광고관련 부서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다. 작가는 이후 직장생활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다만 그의 그림자 시마는 회사에 남겨두고 왔다. 이후 시마는 전공투 세대의 이념갈등, 일본기업의 동남아 진출, 80~90년대의 경제불황, 21세기의 중국으로의 진출 등 시대변화를 실시간으로 배경에 깔고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며 일본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연유로 시마 과장은 한편으로 일종의 경영학 지침, 또는 처세학 지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기업의 동남아 진출의 에피소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전범으로서의 일본과 전후 경제적 동물로까지 불릴 만큼 천박했던 일본(또는 일본인)에 대한 아시아인(특히 동남아인)의 시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연작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작품의 기획 의도는 (개인적으로 볼 때) 어디엔가 속하지 않고서는 존재가치를 찾지 못하는 일본인 특유의 귀소본능을 거부한 낭인이 성공한다는 역발상이었기 때문에 처세술하고는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또 양념처럼(때로는 본질처럼?) 등장하는 숱한 여성들과의 육체적 관계, 그 뒤에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보상들은 유난히 남성주의적인 시각이 정당화되어 있어서 경영학으로서도 부적합한 면이 있다.

숱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히로카네 켄시의 우익적 시각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냉정한 기업풍토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작품이라고까지 승화시킨 모 평론가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자본가가 원하는 직장인 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평론가의 시각은 일종의 비약이다. 즉, 회사 내 파벌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는 좋을지도 모르나 근본적으로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부패행위로 보는 시각, 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인자는 위선적인 사회주의자라는 시각(사원 시마에서 볼 수 있음)은 건전보수를 지향하고 있는 면은 없지 않지만 자본가가 꿈꾸는 완벽한 자본주의로의 이상향을 그대로 그리고 있을 따름이다.

히로카네가 시마 시리즈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보수적인 정치적 지향과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 군상들은 멀리 봉건시대 영주에 철저히 복종하는 수구적인 모습까지 띠고 있다. 특히 이들이 여성과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열 명중 아홉이 첩을 꿰차고 있으면서도 나름의 정당한 변명거리를 깔고 있음에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라 할만하다. 이와 반면에 다른 남자를 꿰찬 여성 캐릭터의 상당수는 – 모두는 아니더라도 – 파멸적인 종말로 치닫는다는 이중적인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더불어 그가 그리고 있는 좌익들은 십중팔구 위선자들이다. 사원 시절 그의 선배가 그러했고 임원 시절 중국의 공산당 관료들이 그러했다.

이렇게 시마 시리즈에서 은연중에 드러났던 히로카네의 보수적 시각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정치9단>에서는 보다 명확해진다. 정치가였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정치로 입문하는 <카지 류우스케>의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다룬 이 만화에서는 헌법9조의 개정, 이를 통한 해외파병을 정당화하고 있다. 작가는 호헌을 외치는 일본의 평화세력을 “평화에 중독된” 이상주의자들로 그리고 있어 일본 극우의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일본의 주적을 북한으로 상정하고 북한을 그지없이 호전적인 나쁜 이웃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중반 실제로 있었던 한반도의 위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이 저지르지도 않은 “민간인 유람선 난사사건”까지 연출한다. 이는 헐리웃 영화 <Rules Of Engagement>에서 예멘 국민들을 꼬마아이까지 미군에게 총질을 해대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로 묘사하여 미국의 응전을 정당화하였던 철저한 역사왜곡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

요컨대 히로카네의 세계관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마 시리즈에서 드러났던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보수성, 그리고 정치9단에서는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보수성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할 수 있다. 확실히 그도 일본인으로서 평균적인 일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전후 그들에게 부여된 자위권이라는 말이 모순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보편”을 놓치고 있다. 일본인이 아닌 세계인이 되고자 한다면 적어도 인접국이 공감할 만한 보편이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 없이 일본이 진정 아시아 평화에 기여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편”을 외면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적어도 일본만화의 또 하나의 걸작 <맛의 달인>(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 카리야 테츠)에서 작가들이 서술하는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일본의 책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야 한다.

Phantom of the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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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 of the Paradise movie poster“. Via Wikipedia.

Brian De Palma 는 Carrie, Scarface, Dressed To Kill 과 같은 공포/스릴러/액션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가끔 Home Movies 와 같은 어처구니없는(그러나 배꼽 빠지게 웃긴) 코미디를 만들기도 했고 이 작품과 같이 지극히 컬트스러운 락뮤지컬을 만들기도 했다. <컬트>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만든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보다 한 해 먼저 만들어졌고, 그 영화의 주요캐릭터로 전대미문의 컬트적 캐릭터인 Dr. Frank N. Furter 와 상당히 유사한 Beef 까지 등장하니만큼 컬트적 요소는 두루 갖추었으나 그 명성은 The Rocky 에 훨씬 미치지 못하니 이야말로 진정한(!) 컬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악계의 흥행사 Phil Spector 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되는 Swan 은 어느 날 자신이 직접 작곡한 Winslow 의 노래를 듣고는 그의 차기 프로젝트 Paradise 에 써먹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Winslow 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그의 악보를 훔치고 그를 감옥에 처넣어버린다. 앙심을 품고 감옥을 탈출한 Winslow 가 Swan 의 레코딩을 방해하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로 그의 얼굴만 망신창이가 된다.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Swan 을 찾아가는데 Swan 은 감언이설로 그를 속여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으로 그를 옭아맨다. 그리고 Winslow 가 맘에 들어 하던 여가수 Phoenix 가 노래를 하게 하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고 호들갑스러운 글램락 가수 Beef 가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를 안 Winslow 의 끔찍한 복수가 시작되고 이어 Swan 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대중음악계의 이면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파우스트, 오페라의 유령 등의 에피소드와 결합되면서 좌충우돌의 컬트적 락뮤지컬로 태어났다. 영화속의 락밴드 The Juicy Fruits 나 Phoenix, Winslow 등이 들려주는 락넘버가 시원시원하다. Beef 역의 Gerritt Graham 은 Palma 의 초기작에 자주 등장하였고 후에 1979년 그의 또 다른 컬트 무비 Home Movies에서 완고하고 어이없는 청년 역으로 열연하였다.

The Four Feathers

A.E.W Mason 이라는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1939년 Zoltan Korda 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원작을 영화화한 네 번째 사례이자, 유성영화로는 첫 번째 만들어진 사례이다. 이후로도 TV 시리즈로 한번, 극장개봉작으로 또 한 번 영화화되었으니 총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비록 A.E.W Mason 이 헤밍웨이에 필적하는 훌륭한 소설가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소설이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의 어떠한 매력요소가 이토록 영상작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것은 영국의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활동이 극에 달하는 1800년대 말에 대해 영국인들 – 또는 서구인들 – 이 느끼는 강한 향수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 시기는 서구열강의 지도자로서의 영국이라는 위치, 이를 대변하는 영국인들의 강한 자긍심, 식민지 아프리카의 광대한 평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감 등 모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상이 추구하여야 할 매력요소가 이 시기에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병대 장교이기도 했던 감독 Zoltan Korda 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마흐디(Mahdi는 구원자 또는 영웅을 의미하며 실제 이름은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이끄는 반란군(?) 간에 벌어졌던 실제전투을 실제 전투 장소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양쪽의 병사까지 일부 써가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연출하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기법은 이후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답습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네 개의 깃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깃털은 겁쟁이를 상징한다. 주인공 Harry Faversham 은 영국군 장교로 수단으로의 파견을 얼마 두지 않은 시점에 불쑥 군을 떠나고 만다. 남은 친구 셋은 그를 겁쟁이로 간주하고 그에게 깃털 세 개를 보낸다. 남은 하나는 그의 약혼녀의 불신을 상징한다(1939년 작에는 약혼녀가 그에게 깃털을 주지 않았지만 2002년 작에서는 직접 준다). 바로 이 대목이 영화가 드라마의 형식으로써 가져야 할 기본갈등을 이루고 있다.

39년 작을 보면 Faversham 은 어릴 적부터 시를 읽기 즐겨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군인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억지로 군에 입대했을 뿐이다. 수단파견의 시점에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미련 없이 군을 관두고 만다. 반면 2002년 작에서는 집안의 강요는 동일한 설정이되 Faversham 의 아버지도 사망하지 않았고 다만 주인공은 약혼녀와의 결혼, 그리고 정말 수단파견이 겁이 나서 군을 그만두는 설정이다. 결과적으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39년 작이 보다 설득력이 있고 2002년 작은 이후의 어설픈 드라마 전개의 원죄로 작용한다.

영화가 계속 이어지려면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겁쟁이라는 비난에 반응하여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원작의 가장 어설픈 설정일 수도 있는데) Faversham 은 비난을 무시하는 대신 한 맺힌 깃털 세 개를 들고 수단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는 전쟁 중에 눈이 먼 그의 친구 John 과 감옥에 수감된 나머지 친구들을 구하고 결국에는 카르툼 요새를 수복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참 의아한 게 결국 친구들이 그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가 수단으로 갔어야 할 의의가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가다보니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고 그래서 영웅이 된 빈약한 개연성의 설정이다. 특히 2002년 작에는 Faversham 을 돕는 원주민이 등장하는데 그를 돕는 이유가 다만 신의 뜻이라고 말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이상에서 간단히 알아본 극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작을 포함한 이 영화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1930년 작) 에 등장하는 국수주의 부르주아들처럼 조국을 위해 몸 바치라는 허세에 반감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반전(反戰)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깃털 세 개의 치욕을 씻기 위해 군인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으로 제국주의 영국의 명예(?)를 수호한다.

에르제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땡땡이 콩고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열등민족에 대한 보호자적 지배를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명백한 한계이다. 때문에 언제까지 제국주의적 관점을 당연시할 수 없었던 2002년 작은 어설프게도 John 의 연설을 통해 Faversham 의 행동이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정을 위해 그러했노라고 변명을 한다. 어쩌면 여전히 이슬람을 적으로 몰아세워 난도질을 하는 다이하드 유의 액션물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Power of One 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백인 선지자의 역할은 놓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 작품이 또다시 영화화될 적에는 또 어떠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Lone Star

멕시코와 연접한 텍사스 주의 한 마을의 황야에서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이름 모를 이의 뼈가 발견된다. 죽은 이의 정체는 25년 전에 실종된 그 마을의 부패한 인종우월주의자 보안관 Charlie Wade. 이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신임 보안관 Sam Deeds 는 우연찮게도 Charlie 의 뒤를 이어 보안관직을 수행한 Buddy Deeds의 아들이다. Sam은 언제나 공정하고 명쾌한 업무 수행으로 그 마을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아버지가 어떤 식으로든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연루되었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비밀을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와중에 Sam 은 인종주의적 편견 때문에 맺어지지 못했던 멕시코계옛 애인 Pilar 와 재회한다.

영화는 이외에도 마을 술집 주인 Otis 와 육군 대령인 그의 아들 Delmore 와의 갈등, 역사교육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갈등(한때 멕시코의 영토였다가 지금은 미국의 영토가 되어 백인, 멕시코인, 흑인이 어울려 사는 이 동네에서는 몹시 심각한 갈등이다) 등의 에피소드가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진행된다. 이러한 모든 갈등들은 역사적 콘텍스트와 개개인의 인생사가 꼬여 등장인물들의 몸과 마음의 주변에 낙인찍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같은 공간에서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연출솜씨 덕에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개개 사건들은 초현실적으로 그려진다.

Matewan 등을 통해 근접하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를 솜씨 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꾼 John Sayles 가 1996년 만든 이 작품은 자칫 흥분에 들떠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뱉을법한 참기 힘든 유혹을 물리치고 관객 스스로에게 나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낮은 톤의 묵직한 화법을 통해 미국이라는 인종의 용광로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유려하게 펼쳐내고 있다.

Sam Deeds 역을 맡은 Chris Cooper 는 그 스스로가 Charlie 로 대표되는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이면서도 사회체제의 온존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건을 수사해야만 하는 보안관 역을 뛰어난 연기로 소화해냈다. 영화 제목인 Lone Star 는 알려져 있다시피 텍사스 주의 별명이다.

Pyrates(불타는 사랑)

흔히 사랑은 불에 비유되곤 한다. <불타는 사랑>, <사랑이 타올랐다>, <Hot Love> 등 에로스에 대한 상징물로써 불은 더할 수 없는 좋은 재료이다(반면에 사랑의 완성물로 착각되어지는 결혼은 불에 비유되기 어렵다. <불타는 결혼>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단순한 원리를 영상에 옮긴 영화가 Noah Stern 이 시나리오와 감독을 맡은 Pyrates 다. Sam(Kevin Bacon)와 Ari(Kyra Sedgwick)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클럽 뒤편으로 간 둘은 즉시 일을 벌인다. 우연히 호롱불을 걷어차 화재가 발생한다. 이후 이들이 일만 치를라치면 어김없이 화재가 발생한다. 시쳇말로 정말 <불타는 사랑>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 난 불은 언젠가는 꺼지는 법. 이들도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진 후 각자의 새로운 짝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한번 이어진 인연의 끈이 그들을 다시 이어준다는 행복한 결말. 빤한 스토리지만 섹스와 화재를 연계시킨 발상이 발칙하고 명랑하다. 펑크락 문화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펑크문화에 관한 대화에 쿨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올무비가이드에서 별 한 개 반이라는 처참한 평가를 내렸지만 이런 유의 영화를 즐기는 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된다. 케빈베이컨과 카이라세드윅은1987년 Lemon Sky라는 TV영화에 같이 출연하여결혼한 실제 부부사이였다. 이둘은 <일급살인>, <The Woodsman>에서 함께 작업하였다.

p.s.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국내에 수입되어 출간되었다.

Carrie

소름끼치는 틴에이저 공포물 Carrie 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펄프픽션의 대가 Stephen King 의 원작을 바탕으로 Brian De Palma 가 만든 작품이다. 펄프픽션의 대가와 B급 영화의 귀재가 만났으니 그 결과물은 당연히 기대를 충족시켜줄만한 양질의 공포영화로 귀결되었다. 거기에 Sissy Spacek 의 소름끼치는 연기는 영화의 시너지를 극대화시켰다.

Stephen King 의 자전적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이 원작의 탄생비화가 소개되고 있다. 애초 King 자신이 너무 진부한 소재라 생각하여 쓰레기통으로 처넣은 스크립트를 아내가 꺼내어보고 좋은 소재라며 격려해주었고 이에 분발하여 장편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또한 캐리의 캐릭터를 구상하는데 도움(?)을 준 이들이 소개되는데 King 은 그의 고교시절 왕따를 당했던 두 소녀를 모델로 하였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른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King 역시 희대의 살인자 Ed Gein 을 모델로 하지 않았는가 생각했었다. Ed Gein 은 어릴 적부터 광신적인 기독교도였던 어머니의 틀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살아오다 가족들이 모두 죽은 후 여자시체의 살갗으로 옷을 해 입으며 여성이 되고자 했던 그야말로 초엽기적인 인물이었다. 그 인생이 너무나 드라마틱하기에 그의 인생의 파편들이 각각 텍사스전기톱살인사건, 싸이코, 양들의 침묵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Carrie 를 보면 Ed Gein 의 경우와 상당히 일치하는 가정환경임을 알 수 있다. Carrie 의 어머니 역시 Ed Gein 의 어머니가 그러했을 것처럼 딸에게 극단적으로 섹스에 대한 혐오감을 강요한다. 이는 결국 Carrie 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걸림돌 으로 작용하고 왕따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극단이 또 하나의 극단을 낳게 만든 꼴이 되고 만 것이다. King 에 따르면 그가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동급생의 어머니에게서 그러한 종교적 보수성을 느꼈다고 하니 Ed 의 어머니가 극단적이었을 따름으로 상상외로 이러한 꼴통적인 가정환경이 극히 드문 현상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감탄할만한 점은 초경의 공포과 돼지 피라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두 소재가 ‘빨간 색’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교집합으로 형성하면서 관객들에게 ‘끔찍했던 학창시절’을 상기시키는 극대화된 공포를 경험하게 만드는 연출솜씨이다. Amy Irving, William Katt 등 조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John Cusack

요즘 동안(童顔)이 유행인데 헐리웃을 대표하는 동안 배우를 뽑으라면 이 형님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존쿠작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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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usack Headshot” by John Cusack – Digital Media Management/Jamie Anderson.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6년 말띠이심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눈동자와 약간 작다 싶은 입술, 그리고 갸름한 얼굴형 덕분에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네 살 많은 누님 Joan Cusack 이 어느새 School Of Rock에서 교장선생님 역을 맡고 있는 요즘에도 아직 철없고 젊은 로맨틱 가이 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사실어릴 적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한그의 필르모그래피는 그의 나이 18세인(미국 나이로는 16세쯤 될까?) 1983년부터 시작된다. 데뷔작은 롭로우, 앤드류맥카시, 재클린비셋 등 당시의 청춘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Class. 본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올무비가이드 평점 한 개 반이라는 처참한 평가가 내려진 것을 보면 타임킬링용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나마 작품성있는 영화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것은 존 휴즈의 Sixteen Candles 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 역시 몰리링워드라는 청춘스타를 집중조명한 영화이기에 그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던 영화였다.

이렇게 80년대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경력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그보다 더 잘 생기고 연기 잘하는 청춘스타들이 득실거렸다. 롭로우, 토마스하우웰, 패트릭스웨이즈, 탐크루즈, 맷딜런, 랄프마치오, 앤드류맥카시, 제임스스페이더 등등! 하다못해 그는 자신보다 못생긴 앤서니마이클홀에게도 밀릴 정도였다. 이런 청춘스타들의 험난한 바다를 헤쳐 나가기에 또 하나의 난관은 요즘에야 장점이 되어버린 <너무 어려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롭로우가 그보다 불과 두 살이 위라는 사실을 아는가?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는 존재감 없이 잊혀져버릴 배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각고의 노력이었는지 또는 운이었는지(누구의 말에 따르면 운이라는 것도 강자의 전유물이라고 하지만) 80년대가 거의 끝날 무렵인 1989년 타고난 이야기꾼 Cameron Crowe 의 Say Anything에서 감수성 예민한 주인공 Lloyd Dobler 역을 멋지게 소화해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이후 필르모그래피가 수퍼스타 탐크루즈 처럼 흥행몰이의 귀재의 그것과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되었던 그 많은 청춘스타들이 자신의 재능을 영화 이외의 것에 탕진하며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을 때에도 묵묵히 나름 성심성의껏 연기를 계속 해나갔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 결과 우디알렌, 스티븐퓨리어스, 로버트알트만과 같은 훌륭한 감독들과의 만남이 이어졌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매니아용 러브스토리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을 통해 뒤늦은 로맨틱코미디의 단골배우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잭블랙의 노래솜씨를 감상하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작)

이후 두어편의 로맨틱코미디에 더 출연한 후 꾸준히 출연작을 늘린 그의 2007년 최신작은 직접 제작자로 나선 Grace Is Gone 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영화인생. 배우로서의 단점인 동안을 꾸준히 유지해 나이 들어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거기에 댄디함까지 더한 배우. 초호화장정은 아니지만 그럭저럭듬직한 하드커버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의 그런 배우이다.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 But Were Afraid to Ask

어떨 때는 유태인 음모집단이 유태인의 영악함을 감추기 위해 우디 알렌을 세상에 내보내 유약하고 열등감 많은 유태인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유난히 편집증적인 동시에 유난히 자신이 유태인임을 강조한다. 즉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유태인은 똑똑하긴 하지만 콤플렉스 덩어리에 배포도 없구나” 라고 생각해버릴 것이고, 이는 유태인 음모집단에게 더없이 좋은 가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사실 우디 알렌의 필르모그래피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뉴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같은 유태인이었던 프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섹스다. 온통 혼란스럽고 어느 것 하나 맘먹은대로 되지 않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디 알렌, 또는 그의 페르소나가 택한 안식처는 섹스(한 가지 덧붙이자면 째즈 정도)인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섹스에 대해 언제나 알고 싶어 했지만 묻기는 두려웠던 모든 것”이라는 긴 이름의 이 작품에서 우디는 섹스를 조리고, 볶고, 굽고, 끓이고, 쪄서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다양한 코스의 섹스 요리라 할 수 있다. 어떤 요리가 맛있는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려있다.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장식된 이 작품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왕비를 사랑하는 광대의 이야기다. 욕정에 사로잡힌 광대가 감히 왕비의 침실로 숨어들어 사랑의 묘약으로 왕비를 유혹하지만 하필 왕이 왕비를 찾아오는 바람에 곤란을 겪는다는 에피소드이다. 이후 여러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진와일더가 양과 사랑에 빠진 의사 역을 맡은 에피소드다. 압권은 양과 사랑에 빠졌다는 농부의 말에 황당해하는 진와일더의 표정연기인데 친구들과 이 장면을 보고 약 3분 정도 정신없이 웃었다.

요컨대 ‘섹스’를 기본재료로 한 일종의 코스요리인 이 작품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불편해하던 ‘섹스’라는 소재를 가지고 우디 알렌이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낸 웰메이드 코미디이다. 어쨌든 우리는 일상적으로 섹스에 노출되어 있다. 하드코어이든 은밀한 은유이든 간에 말이다. 아무리 ‘도덕적’인 사회가‘원죄’를 들먹이며 ‘섹스’를 억누르려 해도 그것은 마치 풍선처럼 어느 방향으로든 튀어나오고 마는 생물의 엣센스 중 하나이다(안 그러면 인류는 멸망하겠지).이처럼 “우리가 좋아하면서도 공유하기 두려워하는 섹스”를 주제로한 이 영화의 미덕은“나름” 고급코미디임을 내세워 도덕의 뭇매를 맞지 않고서도 처음 대하는 이성(異姓)과도 대화주제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중용을 걷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나저나 우디 알렌은 프리메이슨일까?

Silver Streak

Jim Carrey 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면 Gen Wilder 는 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자리매김하여도 어색하지 않다. 멜브룩스, 우디알렌 등 당대의 코미디 대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점에서 Jim Carrey, 또는 다른 이전/이후의 코미디언보다도 행운아 내지는 실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Jim Carrey 도 생각 없는 코미디 몇 편을 찍은 후에는 The Truman Show, Man On The Moon 등을 통해 품격을 높이고 있지만). 여하튼 이 곱슬머리에 엄청 큰 코, 그리고 토끼눈처럼 동그란 파란 눈동자의 이 사나이가 1976년 골라잡은 작품은 Love Story 의 감독 Arthur Hiller 가 메가폰을 잡은 코미디 블록버스터 Silver Streak 이다. 단지 지루해지고 싶어서 비행기 대신 기차를 골라잡은 George Caldwell(Gene Wilder)은 뜻하지 않게 Hilly Burns(Jill Clayburgh)과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한참 무드가 무르익을 무렵 창밖으로 떨어지는 시체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지루했으면 했던’ 기차여행은 비행기 여행이 비할 바가 안 되는 익사이팅한 모험으로 변신한다. 같은 기차에서 무려 세 번이나 밖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겪지만 굴하지 않고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그의 모습은 제임스 본드가 지닌 불굴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적당한 미스테리, 자못 심각한 스턴트액션, 그리고 진와일더 특유의 유머코드 등이 잘 결합되어 시간가는 것을 별로 못 느끼게 만드는 웰메이드 액션스릴러코미디물이다.

Hearts And Minds

영화는 태생부터 꿈의 공장인 동시에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아무리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하여도 그것은 그 주장 자체가 또 하나의 프로파간다가 되고 마는 순환 고리에 걸려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레닌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영화를 신생 경제/정치체제의 선전매체로 적극 활용하였다. 나찌나 자본주의자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특히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 대한 국가이데올로기의 선전은 때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집단최면극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라는 매체는 칼이다. 화려한 칼춤으로 대중을 현혹시키기도 하고 서투른 칼부림으로 대중을 협박하기도 한다. 칼을 쥐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또는 요리사든 살인자든 솜씨 좋게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력이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히 좋은 칼을 가진 요리사에 속하는 작품이다. 미국 전체가 광기에 휩싸여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1970년대 감독과 시나리오를 담당한 Peter Davis 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사이공 거리에서부터 백악관의 참전군인 파티, 심지어 군인들과 베트남 여인들의 매매춘 장면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파생되는 갖가지 풍경들을 소상히 담아낸다. 미시적인 개인사에서부터 거시적인 국가정책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을 둘러싼 서로의 입장들, 모순된 이데올로기, 뒤늦은 후회의 모습 등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적절하게 편집된 미식축구 장면과 미당국의 선전필름 들은 전쟁의 발발원인과 전개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바다로 둘러싸일 것이라고 주장하던 미행정부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탄생한 미국이 왜 우리의 독립을 저지하느냐고 항변하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각종 군상들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이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재탕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