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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z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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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orgioerriquezGAZEBOUploaded by tm, CC BY 2.0, Link

본명이 폴 마쪼리니인 가제보는 1960년 베이루트에서 이태리 외교관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물을 접할 수 있었던 가제보는 10세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키타 솜씨가 좋은 한 소녀의 영향으로 음악에 눈을 떠 음악적인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아들의 재능을 파악한 가수 출신의 어머니는 오린 폴을 파리의 음악 학교에 입학시켰고 정상적인 음악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순수 음악보다는 록뮤직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의 가족이 로마로 이사를 하게 되어 로마에서 학교 친구들과 록그룹을 결성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하드록을 연주하며 활동하던 어느 날 그의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에 끌린 프로듀서 파올로 미치오니로부터 음반을 낼 것을 권유받아 1981년 가제보란 예명으로 데뷔곡 Give Me를 발표했다. 그 곡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1982년 무성영화 시대의 헐리웃 스타 이야기를 그린 Masterpiece을 발표하고부터 유럽과 미국 그리고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곡으로 일약 유명해진 가제보는 1983년 후반 전자악기를 주축으로 한 뉴웨이브계열의 음반 I Like Chopin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 싱글 커팅된 타이틀곡은 전 유럽의 챠트를 석권하는 빅히트를 기록하였다. 가제보는 여세를 몰아 Lunatic을 커트하여 다시 유럽 챠트의 상위에 올려놓았다.

디스코그래피

1983 Gazebo
1991 I Like Chopin [Import]
1994 Portrait
1994 Portrait 94
1994 Master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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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홈페이지

Flock of Seagulls

희한한 헤어스타일의 소유자인 미용사 Mike Score(리드보컬, 키타)는 그의 동생이 Ali(드럼)과 동료 미용사인 Frank Maudsley(베이스)와 함께 1980년 A Flock of Seagulls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몇달후 키타에 Paul Reynolds를 보강하였다. 1981년 그룹은 Cocteau 레코드사에서 데뷔 EP를 발매했지만 챠트에 오르는데는 실패했다. 싱글 Telecommunication은 유럽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그해말 메이저레이블인 Jive와 계약을 맺은 그들은 1982년 봄 데뷔앨범을 발표하였다. 첫싱글 “I Ran (So Far Away)”는 그 특이한 비데오클립때문에 MTV의 단골곡으로 떠올랐고 미국챠트 10위안에 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는 “I Ran”이 큰 주목을 끌지 못한 반면 “Wishing (If I Had a Photograph of You)”(이 곡은 그들의 두번째 앨범 Listen에 수록되어 있다)가 10위까지 올랐다. 한편 이 앨범에서는 “Space Age Love Song”(예전에 김형준 DJ의 FM Pops의 인트로로 쓰였던 곡)도 크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성공이 순식간에 찾아온 것처럼 쇠락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984년 세번째 앨범 The Story of a Young Heart는 히트싱글을 내는데 실패했고 Reynolds는 그룹을 떠났다. 1986년 Dream Come True를 위해 멤버가 대폭 교체되었지만 역시 챠트진입은 실패했다. 그래서 밴드는 해체되었다. Mike Score는 1989년 그룹을 새롭게 결성하여 싱글 “Magic”을 발매하고 미국 순회공연에 들어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1995년 The Light at the End of the World를 발매했다.

디스코그래피

1982 A Flock of Seagulls Jive
1983 Listen Jive
1984 The Story of a Young Heart Jive/Arista
1986 Dream Come True Jive
1995 Telecommunications Elite
1996 Light at the End of the World S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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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Fiction Factory

Kevin Patterson(vocal), Chic Medley (guitars), Graham McGregor (bass), Eddie Jordan (keyboards), and Mike Ogletree (drums, percussion)

영국 출신의 Fiction Factory는 Depeche Mode 스타일의 싱글 “(Feels Like) Heaven”로 가장 널리 알려졌던 밴드이다. 이들은 춤추기 알맞은 신디싸이저 리듬과 훵키한 베이스라인을 바탕으로 쏘울풀하고 멜랑코리한 팝송을 만들어내는데 재주가 있었다. 특히 Heaven 17과 같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Kevin Patterson의 깊고 그윽한 보컬은 선배의 곡을 표절하는 것을 넘어서서 Fiction Factory 자신들만의 개성을 부여해주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였다.

Fiction Factory는 1984년 데뷔앨범 Throw the Warped Wheel Out을 발매했다. 그들은 이기간 동안 Paul Young, O.M.D 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The Ghost of Love” 가 앨범의 첫 싱글이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성공은 이어진 싱글 “(Feels Like) Heaven”에서 실현되었다. 이 곡은 1984년초 영국 차트 10위 안에 진입하였고 또한 미국과 필리핀 등지의 뉴웨이브 래디오 방송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이들에 의해 러브송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사실 이 노래는 가슴아픈 이별에 관한 노래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Ghost Of Love”가 싱글로 재발매되었지만 영국 차트 64위에 오르는데 그치고 만다. 급기야 소속 레이블과 결별한 후 1985년 발표한 2집 Another Story은 레이블과 배급사의 영세성으로 말미암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들은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4 Throw the Warped Wheel Out [Sony]
1985 Another Story [Found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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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graphy
Lyrics

Euryth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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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ythmics 06101986 02 270” by Helge Øverå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2.5 via Wikimedia Commons.

유리스믹스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누린 뉴 웨이브 음악의 핵심인 신스 팝(Synth/Pop) 밴드중 하나로 듀란 듀란, 컬처 클럽, 야주, 디페쉬 모드 등의 다른 영국 밴드들과 함께 미국 재침공의 선봉에 섰었다. 1989년 앨범 WE ARE TOO ONE을 마지막으로 팝 음악계에서 사라진 유리스믹스(‘우리 역시 하나’란 앨범 제목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 동안 여성 멤버 애니 레녹스는 DIVA(’92), MEDUSA(’95) 등 두 장의 앨범을 내놓고 미국 시장에서 각각 200만 장과 100만 장의 앨범 판매를 기록하는 등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했으며 남성 멤버 데이브 스튜어트 역시 등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는가 하면 밴드 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으며 프로듀서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대부분의 혼성 듀오가 대개 그러하듯이 이들 역시 보컬을 맡고 있는 여성 멤버 쪽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남장에 소위 ‘스포츠 머리’ 스타일의 중성적 이미지로 눈길을 끈 애니 레녹스에 비해 데이브 스튜어트는 그저 뒤에서 기타 연주나 해주는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도 했지만 이들의 음악은 두 사람이 공평하게 함께 만들어낸 것이었다. 보컬 이외에 키보드와 플루트 등의 연주에도 참여하고 있는 애니 레녹스, 그리고 기타와 키보드 신서사이저 등의 연주를 해주고 있는 데이브 스튜어트 두 사람은 거의 모든 곡의 작사/작곡을 분담하며 유리스믹스의 음악을 반분하고 있었다.

흔히 혼성 밴드의 멤버들은 연인 관계이거나 더 나아가 부부 사이로 발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런 ‘관계’의 파탄은 곧바로 그룹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이들은 연인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새로 그룹 유리스믹스를 결성해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음악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 특이한 경우기도 하다.

1977년 투어리스츠(Tourists)란 그룹에서 함께 활동한 두 사람은 로열티 문제로 레이블측과 법정 싸움까지 벌이던 중 그룹이 해체되자 두 사람만으로 유리스믹스를 결성하게 되는데 데뷔 앨범 IN THE GARDEN(1981)의 프로듀싱을 맡은 인물은 전자 음악의 시조격인 크라프트베르크의 앨범을 작업했던 거물 코니 프랭크. 그 후 미국 시장 데뷔 앨범 SWEET DREAMS(ARE MADE OF THIS)에서 타이틀 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킨 이들은 이어 2집(영국 시장 데뷔작 IN THE GARDEN까지 치면 3집) TOUCH에서도 Here comes the rain again(4위) 등의 싱글 히트곡을 터뜨리며 인기를 이어간다. 1984년 리처드 버튼과 존 허트 주연 영화 <1984년>의 음악을 담은 동명 앨범 [1984]를 냈고 1985년 록 사운드를 가미한 앨범 BE YOURSELF TONIGHT을, 1986년 REVENGE, 1987년 SAVAGE 등의 앨범을 냈으나 결국 ’89년 WE ARE TOO ONE을 끝으로 결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디스코그래피
In the Garden(1981)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1983)
Touch(1983)
Touch Dance(1984)
1984 (For the Love of Big Brother)(1984)
Be Yourself Tonight(1985)
Revenge(1986)
Savage(1987)
We Too Are One(1989)
Greatest Hits(1991)
Live 1983-1989(1993/12/7)
Peace(1999)
17 AGAIN(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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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싸이트의 유리드믹스 소개

Er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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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sure-andy-vince-wolfgangs-np” by Nancy J Price, Andwhatsnext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부드럽고 경쾌하게 시작되는 이레이저의 사운드는, 그 이름에서 주는 느낌과 실제 성향과는 약간 다르다!? 우선 신서사이저를 사용했다는 자체에서(밴드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나중의 문제로 남겨두자), 이미 우리에게 입력된 고정관념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물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신스팝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이레이저라는 그룹은(물론 밴드가 아닌 듀오다) 테크노 밴드 일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에 차있었고, 신서사이저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디페시 모드의 빈스 클락이라는 선입견을 대입시켜 또 다른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레이저는 (디페시 모드와는 다른) 신스팝을 지향하고 있으며, 팝이라는 단어를 더 크게 써 넣어야 할 것 같은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듀오였다. 펫 샵 보이즈라는 듀오는 알아도, 이레이저라는 이름을 댈 경우 머리를 도리질 칠 사람은 적어도 전자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레이저는 그만큼 대중적으로 확실하게 알려진 듀오는 아니다. 그렇다고 저 구석에서 먼지 털듯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벌써 디스코그래피를 길게 열거해야 될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1985년 그룹 야주(Yazoo)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송라이터 빈스 클락(Vince Clarke)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레이저 전에 빈스가 생각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앨범은 10명의 싱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빈스 클락이 지휘하는 컴필레이션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10명이나 되는 싱어를 항상 거느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곧 오디션을 거쳐 앤디 벨(Andy Bell)을 영입했다.

물론 저 유명한 뉴 로맨스 최고의 권위자 디페시 모드의 빈스 클락에 의해 결성되어졌다는 데서 어느 정도 주위의 관심을 끌었겠지만, 이 듀오는 데뷔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Sometimes’ 같은 경우는 UK차트에 입성하자마자 2위에 오르는 쾌거를 낳았을 정도였다. ‘Drama!’, ‘Blue Savannah’, ‘Chorus’, ‘Love To Hate You’, 그리고 ‘Breath Of Life’와 같은 노래는 당시 유명한 보컬/신서사이저 듀오 펫 샵 보이즈와 나란히 라이벌 관계를 성립시키기도 했다.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며, 앞날은 뻥 뚫린 고속도로였다. 1992년에 정규앨범이 아닌 EP [Abba-esque]마저 굉장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이레이저라는 듀오가 내뿜는 매력은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력이 된다고 쳐도 이들의 그칠 줄 모르는 승승장구에는 지독스런 운도 따랐던 것이 틀림없으리라….

1995년 드디어 변화는 찾아왔다. 빈스와 앤디의 실험적인 앨범 [Erasure]가 그것이었는데, 이 앨범은, 팬들은 둘째치고라도 이레이저 본인들에게도 놀라움을 가져다준 앨범이었다. 바로 70분 짜리 아트락 컨셉트 앨범으로, 어둡고 대담한 사운드 그리고 이들 듀오의 무형의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트락이라니! 당혹스러운 것은 당연했으나, 이전 상황에 비해 자신들도 의외라고 생각할 만큼의 플러스로 작용할 뿐이었다. 한번쯤의 외도는 신선한 것인가.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매번 그 방향성에 있어서 어디로 튈지 몰랐다면 이레이저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물론 앨범발매를 목전에 둔 당시 상황에서는, 항상 관심의 대상으로서, 늘 새로움의 추구/발전의 양상을 꾀한다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본인들 스스로에게 있어 부담감은 얼마나 컸을 것이며, 중심을 이루는 잣대는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또 얼마만큼의 생각을 했어야 될 것인가. 결국 방향성에 있어 주체적인 잣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한번쯤의 전환도 필요하고 또 신선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막 이레이저는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만 보고서도 대충 짐작은 했었다. [Loveboat]라…. 강한 팝적 성향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선에서는 특유의 사운드를 흘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번 앨범의 초점이다. 매력을 끼워 맞추자니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이하 중략, 핫뮤직 2000년 12월호 참조.

디스코그래피

1986 Wonderland (Sire)
1987 The Circus (Sire)
1988 The Innocents (Sire)
1989 Wild! (Sire)
1991 Chorus (Sire)
1992 Club (Mute)
1994 I Say I Say I Say (Mute/Elektra)
1995 Erasure (Elektra)
1997 Cowboy [US] (Elektra)
2000 Cowboy [Import Bonus Tracks] (EMI)
2000 Loveboat (M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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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com
Fan Site
Erasure : Love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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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넷의 이레이줘 카페
Erasure Links

Electr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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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nic band” by Johnny_Marr.jpg: shokophoto
Bernard-sumner-berkeley-1987.png: Andwhatsnext
derivative work: JD554 (talk) – Johnny_Marr.jpg
Bernard-sumner-berkeley-1987.png.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사실 현지인들(?)조차 이 다소 이질적인 만남에 대해 의아스럽게 생각하였다. Burnard Sumner가 몸담고 있던 New Order는 Dance Pop의 선두주자로 주로 댄쓰플로워를 달구고 있던 밴드였고 Johnny Marr가 키타를 담당하고 있던 The Smiths는 자폐적이고(?) 지적인 팬층을 주로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브릿팝이란 광범위한 테두리안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서로의 장점을 취한 고감도의 음악을 생산해내어 이 수퍼밴드의 멤버들간의 이질성을 염려하고 있던 사람들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었다.

이 듀오는 1989년 “Getting Away with It”이라는 싱글을 발표하였다. 보컬은 Pet Shop Boys의 뛰어난 싱어 Neil Tenant가 함께 해주었다. 이 싱글은 영국에서 탑텐을 기록하였으나 Electronic의 멤버들은 다시 자기만의 활동영역으로 복귀하였다. Sumner와 Tenant는 자신들의 그룹으로 돌아갔고 Marr는 The The, Billy Bragg 등과 작업을 하였다.

1991년 4월 그들은 다시 “Get the Message”라는 두번째 싱글을 가지고 돌아왔다. 6월에는 달리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그들의 데뷔앨범이 발매되었다. 앨범에 수록되지 않은 싱글 “Disappointed”가 이듬해 발매되었고 Sumner는 다시 New Order의 통산 여섯번째 앨범 Republic의 작업을 위해 팀에 복귀한다. Marr는 The The와 The Pretenders의 싸이드맨으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듀오는 또다시 레코드 작업을 위해 뭉쳤는데 이번에는 Kraftwerk의 멤버였던 Koch Label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1996년 7월 Raise the Pressure가 탄생하였다. 4년후 Electronic은 그들의 세번째 앨범 Twisted Tenderness를 발표하였다. 이 후 또다시 Sumner는 New Order의 신작을 위해 팀에 복귀하였고 Marr는 Healers란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중이다. 한편 재밌는 사실은 Synth-pop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한때 그들의 노래가 의외의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이는 한 커피 CF에서 그들의 싱글 Reality(Richard Sanderson의 곡과 동명이곡)의 인트로가 쓰였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씬디싸이저의 연주로 시작되는 이 곡때문에 그들은 국내에서 잠깐 아주 잠깐 주목을 받을 뻔 했었다.

디스코그래피
1991 Electronic [Warner]
1996 Raise the Pressure [Warner]
1999 Twisted Tenderness [Parlo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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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Page
Vivid

Duran Duran

Duran Duran 2011.jpg
Duran Duran 2011” by Jason PersseFlickr: Duran Dur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60년대의 컬트 공상과학 영화 Barbarella에서 밴드의 이름을 따온 Duran Duran은 일련의 감각적인 synth-pop 스타일의 음악과 비주얼한 이미지, 그리고 많은 공을 들인 뮤직비디오 – MTV의 취향에 더없이 잘 매치되는 – 를 이용해 ’8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영국 밴드이다. 좋은 의미에서 이들은 뮤직비디오의 덕을 톡톡히 본 밴드인데 그들의 패션모델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외모와 이국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없었더라면 그들의 pop-funk – 소위 Sex Pistols와 Chic의 조우라고 일컫어졌던 – 는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밴드의 오리지날 라인업은 보컬 Simon Le Bon (1958년 10월 27일생), 키보드 Nick Rhodes (본명 Nicholas James Bates, 1962년 6월 8일생), 키타 Andy Taylor (1961년 2월 16일생), 베이스 John Taylor (본명 Nigel John Taylor, 1960년 6월 20일생), 그리고 드럼 Roger Taylor (1960년 4월 26일생)으로 구성되었다.

1978년 Rhodes와 John Taylor에 의해 구성된 초기 라인업에는 베이스와 클라리넷을 맡은 Simon Colley, 보컬 Stephen ‘Tin Tin’ Duffy (1960년 5월 30일생), 보컬 Andy Wickett, 키타 Alan Curtis (guitar), 그리고 Jeff Thompson 등이 참여했었다. 그들은 버밍햄에 있는 The Rum Runner라는 클럽 – 이 클럽의 주인 Michael Berrow와 Paul Berrow는 그룹의 첫 매니저이기도 했다 – 에서 수습기간을 마친후 1980년 후반 Hazel O’Connor와 함께 순회공연을 치뤘고 곧 EMI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New Romantics의 선두주자로써 그들은 이듬해 데뷔싱글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를 영국 차트에 올려놓는 성공을 만끽하였다. 이어진 싱글 “Girls On Film”은 누드모델을 등장시킨 무척이나 야한 비디오 등의 지원을 받아 밴드 활동중 처음으로 영국 차트 5위안에 드는 괴력을 과시했다. 곧이어 “‘Hungry Like The Wolf”, “Save A Prayer”, “Rio” 등이 연속적으로 발매되었다. 1983년까지 그들은 미국차트에 세번 진입하면서 미국시장에 초석을 다졌다.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라는 캐치한 노래가 영국 차트 1위에 오를 즈음 그들은 탄탄한 팬층을 다지게 된다.

이제 Duran Duran은 의심할바없이 영국 최고의 틴아이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Union Of The Snake”, “New Moon On Monday”, “The Reflex” (영미차트 1위), “The Wild Boys”, “A View To A Kill” 등이 영미 대륙을 아우르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정상의 인기속에서 그들은 돌연 또다른 프로젝트 – Power StationArcadia – 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 Le Bon은 ’86년 요트 사고로 거의 죽을 뻔 하여 전세계 팬들의 가슴을 애태우기도 했다.

Roger Taylor와 Andy Taylor를 빼놓은채 Nile Rodgers의 프로듀싱으로 녹음된 Notorious는 타이틀트랙 “Notorious”가 크게 히트하는 등 그들의 변함없는 인기를 확인하는 앨범이 되었지만 상당수의 오리지날 팬들이 그들 곁을 떠난 상태였다. 이어진 싱글 “Skin Trade”와 “Meet El Presidente”는 빼어난 세련미에도 불구하고 영미차트 공히 탑20 진입에 실패하였다. 남은 셋은 밴드활동을 지속하였으나 그룹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였다.

1989년 6월 Notorious에서부터 참여하여 왔던 키타리스트 Warren Cuccurullo (Missing Persons의 멤버였던)과 Sterling Campbell이 그룹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 Sterling은 2년후 Cyndi Lauper와 David Bowie 등과의 작업을 위해 그룹을 떠났다.

1993년 “Ordinary World”가 발표되자 그룹은 또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이어진 싱글 “Come Undone”은 미국 차트 7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일련의 작품들로 그들은 비평가들로부터도 기존의 편향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95년 밴드의 음악에 영향을 준 선배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커버한 Thank You가 발매되었다. 2년후 John이 그룹을 떠났고 Le Bon과 Rhodes는 Cucuurullo와 함께 계속 작업을 해나갔다. 이 즈음 밴드의 EMI와의 계약은 만료가 되었고 레코드사는 ’80년대 음악의 리바이벌 붐과 함께 그들의 히트곡 모음집이 인기리에 팔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의 새앨범(Medazzaland)의 발매를 거부하였다. Pop Trash가 Hollywood 레이블에서 발매되었고 Le Bon과 Rhodes는 이 앨범에서 오늘의 그들이 있게 해준 팝튠을 의도적으로 벗어나고자 하였다.

21세기가 시작된 2001년 예전의 멤버들이 – Andy Taylor 제외 – 다시 뭉쳐 새앨범을 작업하고 있어 그들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1 Duran Duran Capitol
1982 Rio Capitol
1983 Seven and the Ragged Tiger Capitol
1984 Arena [live] Capitol
1986 Notorious Capitol
1988 Big Thing Capitol
1990 Liberty Capitol
1993 Wedding Album [Japan] Alex
1993 Duran Duran [The Wedding Album] Capitol
1995 Thank You Capitol
1997 Medazzaland Capitol
2000 Pop Trash Hollywood
2000 Playing with Uranium, Vol. 1 Edel Germany
2000 Playing with Uranium, Vol. 2 Edel Germany
2001 Last Day on Earth Avex Japan
2004 Astronaut Epic
2007 Red Carpet Massacre
2011 All You Need Is Now
2012 A Diamond in the Mind: Live 2011
2015 Paper Gods
2021 Future Past
2023 nse Macabre

관련링크
official website
http://www.duran2.net/
그들의 인터뷰
존테일러의 인터뷰
Top Ten of Everything from Simon LeBon

Dolby, Thomas

Thomas Dolby at TED.jpg
Thomas Dolby at TED” by Erik Charlton from Menlo Park, USA – Blinded by Science.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Thomas Dolby는 70년대 말 독일의 Kraftwerk로 시작되어 80년대 들어 절정을 이루었던 일렉트릭 사운드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이집트 출신 아티스트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신서사이저 주자, 작편곡자로서 명성을 날리던 그는 1983년 She Blinded Me With Science, Europa And The Private Twins를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면서 화려한 데뷔를 장식, 이듬해인 1984년 Hyperactive를 히트시키면서 아티스토서의 기반을 다진 가수이다.

영국인 고고학자를 아버지로 둔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970년대 중반 영국의 조그만 보아 레스트로아에서 재즈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977년에서 1980년까지 영국의 펑크 뉴웨이브 밴드들의 투어에 동참하여 키보드를 연주하는 한편, 싸운드 엔지니어로서의 캐리어도 쌓았다.

1981년 자신의 레이블인 Venice In Peril Records를 설립하여 솔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첫싱글 Urges/Leipzing을 발매하여 평론가들의 관심을 끈 돌비는 포리너의 앨범 4와 Joan Amatrading의 Walk Inder Ladders에서 신서사이저 연주를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1983년 마침내 그의 데뷔앨범 The Golden Age Of Wireless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워드존스와 함께 원맨밴드의 시초라 불릴만한 그의 싸운드는 신서사이저, 컴퓨터 뮤직으로 대변되는 80년대 초반 일렉트로닉 뮤직의 과학적인 낭만주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음악은 이후 소위 테크노 싸운드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그의 헤어스타일과 건반악기를 걸머진채 무대를 뛰어다니던 그의 무대 매너 역시 80년대식 미래파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3 The Golden Age of Wireless (Capitol)
1984 The Flat Earth (Capitol)
1987 Gothic Soundtrack (Virgin)
1988 Aliens Ate My Buick (EMI-Manhattan)
1992 Astronauts & Heretics (Giant)
1994 Gate to the Mind’s Eye (Giant)
1999 Hyperactive [EMI] (EMI)
1999 Hyperactive [Disky] (Disky)

Devo

Devo, Atlanta, Ga., Dec. 27, 1978 Agora Ballroom.jpg
By Malcolm RivieraOwn work, CC BY-SA 3.0, Link

디보(Devo)는 72년 결성된 가장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뉴 웨이브 밴드 중의 하나이다. 제리 케세일(Jerry Casale), 마크 마더스보(Mark Mothersbaugh), 밥 케세일(Bob Casale), 밥 마더스보(Bob Mothersbaugh), 그리고 앨런 마이어스(Alan Myers)의 라인업으로 결성된 이들은, 인류는 진보 대신 계속적으로 퇴보해 왔다는 생각으로 de-evolution의 개념에서 그룹명을 따왔다고 한다. 전위적인 개척자였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후원 아래 78년 데뷔 앨범 [Q: Are We Not Men? A: We Are Devo!]를 발매하였다. 비디오, 복장 등의 시각적 효과에도 상당한 신경을 쓴 이들은 이내 고정 팬들을 확보하였다. [Duty Now for The Future] 앨범으로 또다시 팬들의 인상에 강하게 각인된 이들은 히트작 `Whip It’을 수록한 [Freedom of Choice](80) 앨범으로 메인스트림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은 그리 길지 않아 좀더 어둡고 심각한 사운드를 들려준 다음 앨범 [New Traditionalists](81)는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Oh, No! It’s Devo] 앨범에서 아이디어가 고갈되었음을 보여준 이들은 이후 실망스러운 작품들을 내놓다가 90년대 초 활동을 중단하였다. changgo.com

디스코그래피
Q:Are We Not Men? A: We Are Devo! 1978/07/
uty Now For The Future 1979/07/
Freedom Of Choice 1980/07/
New Traditionalists 1981/
Oh, No! It’S Devo 1982/
Shout 1984/
E-Z Listening Disc 1987/
Total Devo 1988/
Now It Can Be Told (Devo At The Palace 12/9/88) 1989/
Smooth Noodle Maps 1990/06/

링크
팬페이지
DEVO FAQ
Fan Page

Dead Or Alive

The band posing for a black-and-white photo
By Source, Fair use, Link

예쁜 남자 Pete Burns가 이끄는 Dead Or Alive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82년이었다. 그룹의 첫 무대는 리버풀의 로열코트 극장에서 열린 푸트라마 페스티벌이었고 이 들은 이 무대를 통하여 그룹의 주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Some Of That을 담은 미니 싱글 The Stranger를 발매한 1982년 9월이었다.

7인치 싱글로 발매된 이 앨범은 곧바로 레코드 제작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급기야 에픽사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행운과 연결되었다. 에픽사는 그룹의 공식 데뷔 싱글 Misty Circles를 발매해, 1983년 5월에 영국 챠트 상위권에 진입시켰다. 주로 댄스 클럽가에서 얻는 이들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10장의 싱글 발매와 연결되었다.

댄스 그룹으로 이미지를 굳힌 그룹의 데뷔 앨범 Sophisticated Boom Boom이 발표된 것은 1984년 4월이었고, 2집 Youthquake가 발매된 것은 1985년 6월이었다. 이들은 이 앨범에서 My Heart Goes Bang, You Spin Me Round, Love Come Back 등을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1987년 1월에 발매된 3집 Mad, Bad And Dangerous에서는 Brand New Lover가 넘버 1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 앨범은 댄스/디스코 챠트 역사상 9주 연속 넘버 1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는 쾌거를 이루었다.

디스코그래피
SOPHISTICATED BOOM BOOM (1984)
YOUTHQUAKE (1985)
MAD,BAD AND DANGEROUS TO KNOW (1987)
RIP IT UP (1987)
NUDE (1988)
NUDE -remade remodelled- (1989)
FAN THE FLAME (PART 1) (1990)
STAR BOX (1993)
NUKLEOPATRA (1995)
FRAGILE (2000)

링크

http://www.deadoralive-japan.com
Dead Or Alive Boudoir Noir
Carlo(The Italian Maniac F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