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 Jackson이 그래미상 시상식을 휩쓸던 1984년 2월 28일 The Jacksons가 출연한 펩시 광고가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Beat It”, “Say, Say, Say”를 감독한 바 있는 Bob Giraldi가 감독을 맡은 이 광고는 1984년 1월 27일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움(Shrine Auditorium)에서 촬영됐다. 이 촬영에서는 사고가 있었는데 발광탄이 잘못 작동하는 바람에 Michael Jackson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수송되었고 2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펩시는 Jackson가 합의를 통해 1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고 Jackson은 이 돈을 그의 부상을 치료했던 브롯맨(Brotman) 의료센터에 기부했다. 당시 그 광고의 제작을 맡은 광고기획사의 임원이었던 Phil Dusenberry는 2005년의 저작 Then We Set His Hair on Fire: Insights and Accidents from a Hall of Fame Career in Advertising에 이 사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Kyrie
“Mr. Mist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6년 3월 1일 미국의 팝/락밴드 Mr. Mister가 부른 “Kyrie”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1985년 말 발매된 이 싱글은 밴드의 대표 앨범 Welcome to the Real World의 수록곡이다. 이 곡은 또한 빌보드 락 차트 정상에 1주간 머물렀고 영국 차트에는 1986년 4월 11위까지 올랐다. “Kyrie”의 가사는 작사가 John Lang이 썼다. 작곡은 Richard Page와 Steve George의 합작의 결과물인데. 이들이 Adam Ant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는 도중에 만든 작품이다.
“Kýrie, eléison, down the road that I must travel
Kýrie, eléison, through the darkness of the night”
후렴구에 등장하는 Kýrie, eléison은 ‘신이시여 자비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기독교의 많은 예배 의식에 쓰이는 문구다. 이런 후렴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Page에 따르면 곡 자체가 하나의 기도라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싱어이자 작곡가인 Richard Page가 불의의 공격을 받아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에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작사가 John Lang은 그런 공격을 받은 이는 자신이고 그 공격과 노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였다.
謹弔 Steve Strange
“Visage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olydor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0년대 Synth Pop 의 초석을 다진 팝그룹 Visage의 리드싱어이자 프론트맨이었던 Steve Strange가 최근 유명을 달리하셨다. 최근 이집트의 샴엘쉐이크(Sharm el-Sheikh)에서 머물렀던 그는 지난 2월 12일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만에 사망하였다. 그의 레코드 회사였던 오거스트데이 레코딩스의 레이블 매니저인 Marc Green이 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트위터에서는 Boy George, Billy Idol, Samantha Fox, Ultravox, Matyn Ware, Holly Johnson, Marc Almond, Pet Shop Boys 등 수많은 팝스타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트윗을 남겼다. 특히 Spandau Ballet은 “그가 없었다면 자신들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라며 트윗을 하는 날 예정된 “공연을 Steve Strange에게 헌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신보 Shameless Fashion을 내놓으며 화려했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신세대에 선보였고 트위터에서도 재기 넘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던 그인지라 더욱 아쉬움을 더하는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영면하시길.
Visage 의 대표곡 Fade To Grey
Straight Outta Compton
Straight Outta Compton은 미국의 힙합 그룹 N.W.A,의 첫 스튜디오 앨범으로 1988년 8월 8일, 그룹의 멤버인 Eazy-E의 레코드 레이블인 Ruthless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타이틀의 Compton은 그룹 멤버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Compton시를 의미한다. 프러덕션은 Dr. Dre이 DJ Yella와 Arabian Prince 등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1 이 앨범은 지극히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2 점철되어 있는, 소위 “갱스터랩”의 선구적인 앨범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웨스트코스트힙합(West Coast hip hop)의 특징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러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운 제약조건에도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이 앨범은 방송의 도움이 없이도 – 방송에 나갈 처지가 안 되니.. 가사를 죄다 삑~ 처리할 수도 없고 – 300만장 이상이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공은 사실 FBI가 앨범 트랙 중 하나인 “Fuck tha Police”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담은 편지를 레코드사에 보낸 사실 등이 오히려 광고가 된 측면도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흑인의 흑인에 대한 범죄를 미화한 측면이 있는 평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흑인들의 도시 생활의 현실을 풍자했다는 평가도 우세하다. 앨범은 돈만 밝히는 여성에 대한 비난도 있는가 하면 – 물론 성차별적인 뉘앙스도 있다 – , 앞에서는 “노 드럭”을 외치며 쇼가 끝나면 마약을 찾는 위선적인 뮤지션에 대한 풍자, 방송국의 검열로 인한 뮤지션들의 어려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들은 중 가장 뛰어난 랩 레코드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왜 가사에 불쾌함을 느끼는지 알아요. 하지만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요.” Sinéad O’Connor
Graham Parker and the Rumour – Squeezing Out Sparks(1979)
“Squeezing out sparks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Squeezing Out Sparks는 Graham Parker and the Rumour가 1979년 내놓은 그들의 네 번째 공식 앨범이다. The Rumour는 사실상 Graham Parker의 백업 밴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사실상의 Graham의 솔로앨범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Graham Parker는 Elvis Costello, Joe Jackson 등과 함께 뉴웨이브 운동의 초기 주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지명도는 마이너인 Elvis Costello 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초기 뉴웨이브 뮤직의 정수를 관통하고 있는 이 앨범은 롤링스톤誌가 선정한 ‘500개의 위대한 앨범’에서 335위에 선정될 정도로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앨범은 락앤롤의 단순함의 미학을 잘 구현한 앨범이다. 타이틀곡 Discovering Japan을 비롯하여 이어지는 Local Girls, 그리고 Protection 등의 앨범 트랙들은 심오한 멜로디나 현학적인 연주가 없이도 락앤롤을 감칠 맛나게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70년대의 다소는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버린 락앤롤의 두터운 양념을 제거시켜 오히려 락앤롤의 본질을 맛보게 해주는 단순함의 미학이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순화는 Graham Parker 자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구현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즉, 당초 Graham Parker의 음악은 쏘울 뮤직의 영향이 강했던 지라 관악기 섹션이 풍부하게 가미되었었지만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Jack Nitzsche 는 보다 원초적인 소리를 선호했다. 우연히도 당시의 인기 펑크 밴드인 The Clash는 그들의 사운드를 보다 풍부하게 하려는 등 반대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그래서 The Rumour의 리듬앤블루스 섹션의 연주자들은 The Clash의 세 번째 앨범 London Calling의 녹음에 가세하게 되었다. 두 명반의 조금은 다른 길이 흥미롭게 교차되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2001년 이 앨범은 두 개의 라이브 트랙과 함께 – 그 중 하나는 Jackson 5의 I Want You Back의 리메이크 – 영국에서 재발매 되었다.
(I’ve Had) The Time Of My Life
“Bill Medley & Jennifer Warnes – (I’ve Had) The Time of My Life alternate single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7년 11월 28일 Bill Medley와 Jennifer Warnes가 함께 부른 “(I’ve Had) The Time Of My Life”가 빌보드 핫100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어덜트컨템포러리 차트에는 간은 해 11월 21일 1위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Franke Previte, John DeNicola, Donald Markowitz가 함께 만든 이 곡은 영화 “Dirty Dancing”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곡이 되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Jimmy Ienner는 예전에 자신이 수하에 두고 있었던 락밴드 Franke & The Knockouts의 리더 Franke Previte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처음에 Previte는 밴드의 레코드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거절했는데 Ienner의 지속적인 요구에 마침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는 역시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Hungry Eyes”를 비롯한 몇 곡을 작곡하였다. 노래를 만든 후 Previte는 어떻게 하모니가 이루어지는지를 선보이기 위해 자신과 Rachele Capeli가 함께 부른 데모를 만들었다. 후에 이 곡을 부르는 이들로 Donna Summer와 Joe Esposito가 지목되었지만 그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최종 가수는 Bill Medley와 Jennifer Warnes로 정해졌다. 한편 이 곡이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 것은 안무가 Kenny Ortega와 Miranda Garrison의 결정이었다. 1987년 9월 싱글로 발매된 후 이 곡은 빠르게 차트에 진입하였다. 9월 26일 핫100 차트 73위에 데뷔한 이후 9주 만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영화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3천2백만 장이 넘게 팔렸다. “(I’ve Had) The Time Of My Life”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오리지널송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영화제 관련 상을 수상하였다.
Dirty Loops 내한 공연 後記
12월 첫날인 오늘 한해의 마지막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서울 한복판에 짧은 폭설이 쏟아졌지만, 11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 Dirty Loops의 공연이 있었던 홍대 앞에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공연장인 V홀은 홍대의 중심가 상가의 지하3층에 위치해있었다.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장소였다(한국인 특유의 안전 불감증으로 이내 이런 불안감은 사라졌다). 공연장을 중심으로 좁고 길게 스테이지, 스탠딩, 좌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스탠딩 티켓은 구매 순서대로 입장을 시키겠다는 것이 당초의 약속이었으나 이런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공연장 도착도 공연시간인 6시에 겨우 30분 전인지라 이미 앞쪽은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들려오는 음악은 예열 음악은 Steely Dan. 역시 째즈-휴전 계열의 뮤지션의 공연이란 것을 감안한 것일까? 기다리는 와중에 들려오는 두 백인 청년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를 닮은 친구가 Dirty Loops를 모르는 듯한 청년에게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다. 저커버그는 밴드의 싱어가 “젊은 프레디 머큐리”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친구가 “프레디 머큐리가 누구냐”고 반문했고 놀란 저커버그는 “퀴이이인~~”하고 면박을 주었다. 각설하고 Tenacious D의 내한 공연 소식 등이 스크린에 몇 개 소개된 후, 공연은 거의 정확히 6시에 시작되었다. 밴드의 등장음악은 좀 생뚱맞게 80년대 액션 드라마 맥가이버의 테마 음악. 무대에는 3인조 이외에 추가적으로 신디싸이저 연주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시작된 공연은 잠깐 동안의 멤버의 인사말과 농담들을 제외하고는 – 보컬 조나 닐슨의 소개에 의하면 어제의 서울 공연이 그들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고 한다 –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빽빽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데뷔 앨범 Loopified를 중심으로 한 선곡에 새로운 프로젝트의 신곡도 섞여 있었다. 사운드는 베이스가 강조되는 와중에 간간히 벙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보컬이 간혹 묻히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맘에 들었다. 연주와 보컬은 스튜디오 앨범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물론 이런 상황은 이제는 프로그래밍이라고 표현하며 정당화되는 신디싸이저 등을 활용한 사전녹음도 한몫 할 것이지만).
간간히 들려주는 각각의 멤버들의 즉흥 연주는 역시 세션맨 출신이라는 경력에 어울리게 신기에 가까운 연주들이었다. 애초에 이들의 공연을 기다리며 기대한 즉흥 연주는 Hit Me 뮤직비디오에서 6현의 베이스를 자유자재로 놀려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베이스 주자 헨릭 린더의 연주였으나 – 물론 그의 현란한 베이스 연주는 아주 맘에 들었다 – 정말 맘에 들었던 즉흥 연주는 드러머 아론 멜러가드의 드럼 연주였다. 통상의 배치와 달리 무대 오른 쪽 상단에 위치한 드럼 키트를 거의 다 박살내버리겠다는 듯이 두드려대는 신명나는 드러밍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역시 드럼머쉰보다는 이러한 드러밍이 더욱 음악을 신명나게 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장면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이어진 것에는 당연히 보컬의 역할이 컸다. 키보드와 보컬을 맡은 조나 닐슨은 이번 서울 공연이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막힘없는 놀라운 보컬 실력을 공연 내내 유지했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의 특기로 유명한 돌고래 소리를 거의 어려움 없이 계속 뽑아낼 정도로 인상적인 성대의 소유자였다(지난 번 머라이어 캐리의 공연에 실망했던 이들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한 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 내려간 이들은 관중의 앵콜 연호에 크게 애태우지 않고 1분여 만에 바로 올라와 앵콜곡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은 예상대로 그들의 최대 히트곡 Hit Me.
오늘은 당초 어제로 예정되었던 CHVRCHES의 공연이 있을 예정인 만큼 시절이 좋아져서 데뷔 앨범을 내놓은 밴드들이 실시간으로 단독 내한 공연을 가지게 되고 외국에서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밴드 구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 물론 이럴 수 있는 것은 신디싸이저의 덕택도 크지만 – 한국의 음악 구매력이 어느 정도는 해외 공급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쨌든 당초 처치스와 더티룹스와의 공연 스케줄이 겹칠 때 잠시 고민하다가 더티룹스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의 라이브가 더 박력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2집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밴드 중 하나다.
예상대로 누군가 어제 공연의 비디오를 찍어 이미 유투브에 올렸다(신인이라 그런지 비디오 촬영을 전혀 말리지 않았다).
Steve McQueen
“Stevemcqueen“. Licensed under Wikipedia.
Steve McQueen 은 영국의 팝밴드 Prefab Sprout이 1985년 6월 내놓은 그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의 제목은 미국에서는 법적분쟁의 이슈로 인해 Two Wheels Good 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스티브 맥퀸’이라는 이름이 훨씬 근사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앨범 커버에는 스티브 맥퀸이 사랑하던 Triumph 모터사이클을 – 1963년 그가 주연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서도 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 타고 있는 멤버들이 등장한다.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는 21위, 빌보드200 에서는 180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비평적으로는 앨범의 진가를 더욱 인정받았다 할 수 있는데 NME가 1985년 말 실시한 최고의 앨범 투표 Pazz & Jop 투표에서는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The Times가 1993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47위, Mojo가 1995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90위, The Guardian이 1997년 실시한 투표에서는 61위에 선정되는 등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들어보아도 히트 싱글 When Love Breaks Down을 비롯한 수록곡 모두가 빼어난 멜로디에 – 작곡은 모두 밴드의 리더 Paddy McAloon이 맡았다 – 고급스럽게 프로듀스된 – 프로듀서는 Thomas Dolby가 맡았다 – 소피스티팝(Sophisti Pop)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팬들의 – 특히 영국팬 – 애정이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Loopified
By Dirty Loops – Amazon.com, Fair use, Link
Dirty Loops(공식 홈페이지)는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의 3인조 밴드다. 보컬과 피아노를 맡고 있는 Jonah Nilsson은 클래식 이론을 전공하였고 베이스의 Henrik Linder와 드럼 Aron Mellergårdh은 째즈를 공부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배워왔고 전문학교에서의 수업을 통한 탄탄한 이론적 배경을 가진 이들은 올해 첫 앨범 Loopified를 냈지만 이미 2008년에 결성된 고참 밴드다. 밴드 결성 이후 스웨덴에서 활동하다가 미국시장으로의 접근에 나선 밴드가 2012년 저명한 프로듀서인 David Foster를 만나고 유니버살 뮤직의 계열사인 Verve와 계약을 맺으며 스웨덴을 벗어났다. 이후 David Foster와 함께 “David Foster & Friends Tour”라는 이름으로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돌며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John은 Chaka Khan과 듀엣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앨범의 면면을 들어보면 신인의 앨범이라기보다는 이미 앨범을 한 서너 장 낸 분위기가 풀풀 풍긴다. – 물론 이런 존잘 밴드야 많습니다만 – 복잡한 코드진행의 째즈퓨전을 구사하면서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현란한 강렬한 락연주가 매력적인 이 앨범에서는 Hit Me(뮤직비디오 : 여유있게 앉아서 온갖 현란한 연주를 해대는 베이스를 보는 맛이 일품), It Hurts 등이 두드러진 트랙이다. 상업적으로는 스웨덴 차트에서 19위, 미국 차트에서는 86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올해 4월 16일 최초로 일본에서 발매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발매하면서 트랙리스팅은 부분적으로 다르다.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꽂힌 곡은 Sayonara Love(뮤직비디오). 무손실 음원을 들을 수 있는 기기를 가지신 분이라면 네이버 뮤직에서 고음질의 음원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11월 30일 내한공연도 내정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었나
The Lexicon of Love라는 신쓰팝의 명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ABC의 멤버인 당사자들이 쓴 글을 삼번함(원문보기)
“ABC-Lexico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Martin Fry, 싱어송라이터
1982년에 디스코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Chic 앨범의 선율들을, 그리고 Earth, Wind &Fire의 모든 음악세계를 사랑했다. The Cure와 Joy Division과 같은 이들과 융화한 것은 우리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 우리 기타리스트였던 Mark White는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의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매우 극장과 같은 분위기의 표지에 끝내주는 고전 영화인 The Red Shoes의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다. 실제보다 더 강렬하고 감정적이었다. The Lexicon of Love는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난 팔세토 창법을 많이 썼다. 부분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의 롤러코스터 탑승을 – 우쭐함과 절망 –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의 첫 싱글 Tears Are Not Enough는 1981년에 탑20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앨범은 보다 다듬어졌다. Dollar’s의 파노라마와 같은 넓은 화면과 같은 사운드인 Hand Held in Black and White를 듣고, 우리는 프로듀서 Trevor Horn과 접촉하였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려던 것을 즉시 이해했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락앤롤을 바꿀 수 있으리라 – 셰필드에서 실직수당을 받으며 노래를 막 시작한 이에게는 매우 야심 찬 – 생각했다.
가사적으로 나는 Gary Numan과 OMD의 것을 사랑했었지만, 내 노래들을 Rodgers and Hammerstein이나 Cole Porter의 라인처럼 보다 감정적으로 고양시키고 싶었다. 그 당시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에 관한 노래가 드물었다. 펑크는 매우 중독적임에도 여성들은 그들의 존재감을 Lexicon에서 부각시켰다. 선율을 그렇게 두드러지게 특징 지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Cilla Black이나 Cliff Richard가 아니라면 말이다. 4위까지 오른 The Look of Love는 무그 베이스라인에 모든 피치카토 어레인지먼트가 담겨 있었다. 반면 All of My Heart (No 5)는 매우 Bridge Over Troubled Water 스러웠다.
이미지적 관점에서 황금색 라메 수트와 디너 재킷은 우리를 펑크와 달리 보이게 했다. 야심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James Bond와 같은 요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나는 이 노래들을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왔다. 나는 내 삶을 살아왔고 이제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All of My Heart로 돌아가는 것은 – 그리고 소년답게 라기보다는 남자답게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Anne Dudley, 키보드, 어레인저
ABC는 키보드 연주자가 없었다. 그래서 Trevor Horn이 영입했다. The Look of Love를 녹음하는 도중에 그는 진짜 현악과 관악 부문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젊은이의 확신으로 경험은 일천했지만 내가 어레인지먼트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우리가 애비로드에서 30개의 현악 섹션을 녹음했을 때, 나는 종종 그 방에서 가장 어렸다. 나는 Gamble and Huff의 디스코 클래식 The Sound of Philadelphia에서의 오케스트라의 풍부함을 언제나 사랑했었다. 이게 주된 영감이 되었고 또한 Bee Gees의 날아오르는 듯 하지만 단순한 현악 라인이 보태졌고 심지어 거기에는 Vaughan Williams도 약간 가미되었다.
The Look of Love의 믹스를 듣고 Trevor가 얼마나 시끄럽게 현악을 만들어냈는지를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ABC의 색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안해할 것도 없이 호사스럽고 서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많은 트랙들에 현악을 가미할 것이었고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를 개발해 나갈 것이었다. – 최신의 기술,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실제 악기의 조화. 그 이후로 내가 추구해오던 조합이다.
솔직히 난 All of My Heart가 처음엔 좀 약하다고 생각했다. Trevor가 “all of my heart”의 가사를 부르기 전에 드라마틱한 멈춤과 코러스로의 결말을 첨가할 때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팀파니를 조금 더 넣었다. 반면 페이드아웃은 내게 영국의 목가적인 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결론적으로 그건 아마도 Martin의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진 곡이 되었다. 그러나 트랙들은 모두 두드러졌다. Martin의 재치 있고 쉬운 가사는 젊은 사랑의 시도를 요약하고 있다. The Lexicon of Love는 1위를 기록했고 난 이 앨범이 30년간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관해 즐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젊은 날의 노력이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