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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감상한 멋진 곡

Nazia Hassan in an interview with Dhanak TV, c. 1990s
By DhanakTV USAYouTube, CC BY 3.0, Link

HAZAN: Dreamer Devane (EMI)
Nazia와 Zoheb은 인도에서1 매우 유명하며, 이 노래는 무려 13개월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도 디스코 음악을 혼자서 만들어냈습니다. 영국에서 발매된 이 노래는 Sal Solo가 다소 까다롭게 재녹음했고, 현재로서는 Hazan이 잠재적인 차트 경쟁자라기보다는 현상으로서 더 흥미로운 듯합니다.

Nazia and Zoheb are Very Famous Indeed in India where this song was Number One for a staggering 13 months and singlehandedly created a kind of Indian disco music which hadn’t existed before. For UK release the song has been rather fussily rerecorded by Sal Solo and, for the moment, Hazan seem to be more interesting as a phenomenon than as potential chart conte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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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키피디어를 보니 사실 이들은 파키스탄 뮤지션이다. 그렇지만 영국인에게 인도와 파키스탄의 구분은 무의미했겠지

I Like Chopin

Gazebo - I Like Chopi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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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Gazebo가 그의 이름으로 내놓은 첫 번째 스튜디오앨범의 수록곡이자 같은 해 싱글로 발매된 I Like Chopin은 명실상부한 뮤지션의 최고의 히트곡이다. 이곡은 영미권 차트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본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아시아에서도 인기를 얻었는데 일본에서는 오리콘차트 9위까지 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유행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공인된 팝차트가 없었기에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1

‘스테레오 음악의 특징이란 이런 것이란다’라고 설명이라도 하듯이 좌우로 엇갈려 들려주는 캐치한 신디싸이저 연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노래 제목에서도 익히 알 수 있듯이 가장 유명한 클래식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 프레데리크 쇼팽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제보의 2004년 이탈로디스코와의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 쇼팽의 작품과는 상관이 없어요. 쇼팽을 제목으로 취한 것은 쇼팽과 그의 연인 조르쥬 상드2와의 기이하고 고통스런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런 겁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상드의 헌신적인 간호에 쇼팽은 차차 회복했다. 그리고 그동안 준비해 왔던 24개의 전주곡을 마침내 완성했으며, 폴로네이즈 제4번 op.40-2, 스케르초 3번 op.39, 마주르카 등 많은 곡을 이곳에서 만들었다. 특히 빗방울 전주곡의 탄생은 유명하다. 상드가 식료품을 사기 위해 시내를 나갔다가 폭우를 만났다. 둑이 무너지고 다리가 떠내려갔다. 상드가 탄 마차가 수렁에 빠지자 마부는 달아났고, 장장 12킬로를 6시간 걸어서 맨발이 피투성이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상드가 집에 도착했을 때 쇼팽은 눈물을 흘리며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고, 상드를 본 쇼팽의 첫마디는 “죽은 줄 알았어. 죽은 줄…….”[쇼팽 옆에 상드가 있었다, ‘빗방울 전주곡’의 주인공]

한편 이곡의 작곡은 피에루이지 지옴비니(Pierluigi Giombini)라는 작곡가가 담당했고 가사는 가제보 자신이 직접 썼다. 앞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가제보는 이곡에 대해 “10대 때부터 저와 함께 작업한 피에루이지와 팀을 이뤄 만든 곡이예요. [중략] 너무 좋아서 첫 앨범에 넣겠다고 90%는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히트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역시 천재들은 10대 시절부터 그 싹이 트나보다.

이곡은 여러나라의 뮤지션이 커버하기도 했다. 1984년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인 아사미 고바야시(小林麻美)는 ‘빗소리는 쇼팽의 음악(雨音はショパンの調べ)’이라는 제목으로 이 곡을 일본어로 커버하기도 했었다. 가사는 유명한 시티팝 뮤지션 마츠토야 유미(松任谷 由実)가 써주었다고 한다. 곡은 일본에서 오리콘차트 1위에 3주간 머무르는 등 오리지널보다 더 인기를 얻었다. 특이하게도 1985년에는 Serg Minaev라는 소련 뮤지션이 커버하기도 했었다.


  1. 8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팝음악은 특이하게도 영미권 팝과 더불어 Joy의 Touch By Touch랄지 Modern Talking의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등 유로댄스 장르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곡 역시 그러한 영향을 받아 인기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2. 조르주 상드(프랑스어: George Sand, 문화어: 죠르쥬 쌍드, 1804년 7월 1일 ~ 1876년 6월 7일)는 자유 분방한 연애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아망틴 뤼실 오로르 뒤팽(Amantine Lucile Aurore Dupin)이다

Jermaine Jackson – Dynam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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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에게 ‘다이너마이트라는 노래 알아?’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BTS의 곡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물론 같은 이름의 다른 곡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Jermaine Jackson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는 잭슨패밀리의 일원으로 가족 그룹에서 동생 Michael에 이어 두 번째 보컬을 맡았다고 한다. 다이너마이트는 1984년 발표된 스튜디오 앨범 Jermaine Jackson에서 싱글 커트되어 그해 빌보드 핫100차트 15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뮤직비디오는 여성들이 간수인 교도소의 죄수로 갇혀 있는 Jermaine 이 교도소를 탈출한다는 내용인데 안무랄지 분위기가 Michael Jackson의 이런저런 뮤직비디오에서 빌려오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닮아 있다.

Rock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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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5일 Michael Jackson의 “Rock With You”가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또한 같은 해 1월 19일에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Rod Temperton이 만든 이 곡은 Michael Jackson의 솔로로서의 세 번째 정상곡이 되었다. 마이클이 그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Off The Wall”을 작업하는 동안인 1978년 후반, 프로듀서 Quincy Jones는 작곡가 Rod Temperton에게 곡을 의뢰했다. 그의 밴드 Heatwave를 위해 “Rock With You”를 작곡했던 Temperton는 밴드의 리드싱어 Johnnie Wilder가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자 곡을 마이클에게 줬다. 마이클은 1979년 초 이 곡의 기본 보컬과 백그라운드 보컬을 여섯 시간에 걸쳐 녹음했다. 1979년 후반 앨범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후 이 곡은 라디오와 클럽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빌보드는 이 노래가 1980년 전 기간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 중 4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 면에서 이 노래는 이른바 “디스코 시대”의 마지막 히트곡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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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오해를 산 곡 : Bruce Springsteen의 Born in the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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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를 탓하라. :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 트랙인 Bruce SpringsteenBorn in the USA는(30년전 6월 4일에 발매된) 이 싱어의 노래중 가장 사랑받는 곡이다. 또한 가장 오해를 사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적어도 스프링스틴도 부분적으로 공범이다.

앨범 커버에서의 성조기 배경이나 스프링스틴과 E스트리트 밴드의 전 세계를 순회하는 공연에서 연주되는 이 곡에 대한 주먹질을 부르는 에너지 덕분에, 많은 팬들은 Born in the USA를 듣기에 좋고 애국주의적인 곡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한 팬들 중 하나가 보수적 컬럼니스트 George Will이었는데, 그는 그 곡을 미국에 관한 모든 좋을 것들에 관한 “즐거운 확신”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였다. Will의 친구인, 당시에 우연히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Ronald Reagan은 재선 캠페인 당시 스프링스틴과 그의 “희망”에 찬 노래를 언급하였다.

Will과 Reagan과 셀수 없는 많은 다른 이들은 이 노래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사기를 드높이는 노골적인 코러스를 피할 의지가 결코 없었다. 국가주의적인 자부심에 대한 선언이라고 하기 어려운 Born in the USA는 어메리칸 드림에 대한 공허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곡은 노동계급은 총알받이쯤으로 여기는 시골에 돌아온 베트남 참전용사를 묘사하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벌어지게 했던 경기 침체라는 배경 하에 의기소침한 가사는 코러스의 공허한 슬로건을 조롱하고 있다.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면밀하게 읽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록 스프링스틴이 10년 후 솔로 공연에서 Born in the USA를 비통하고 블루스적인 만가로 공연할 때 그 진짜 메시지를 강조하며 확인해주긴 했지만, 이 가수 역시 그의 히트곡이 청중에 의해 잘못 이해된 첫 고전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전문보기)

Chariots Of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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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8일 Vangelis의 “Chariots Of Fir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Vangeli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Evangelos Papathanassiou가 만든 이 곡은 그리스 출신의 이 뮤지션에 있어 최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 곡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는 두 명의 영국 달리기선수에 관한 영화의 오프닝 음악으로 쓰였다. 그래서 사운드트랙에는 “Titles”로 되어 있으나 “Chariots Of Fire”라는 이름으로 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1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이 영화의 감독 Hugh Hudson이 음악을 담당할 이로 Vangelis를 직접 지명했는데, Vangelis는 이 작품의 작곡에서부터 피아노, 신디싸이저 등 모든 연주를 직접 소화해냈다. 1981년 말 싱글로 발매된 이후 그해 12월 12일 핫100 차트 94위에 진입한 이 곡은 20주 후에 정상에 등극했다. 사운드트랙도 큰 인기를 끌어 1982년 4월 17일 탑200 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Vangelis는 이 곡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이 음악은 많은 뮤지션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숱한 스포츠 행사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다.

뮤직비디오

  1. 빌보드 차트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Titles”로 차트에 올라갔다가 중간에 “Chariots Of Fire”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Nothing Compares 2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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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21일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 U”가 빌보드 핫100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Prince가 만든 이 곡은 빡빡 깎은 머리 스타일로 유명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그래미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의 성공 이후 Sinead는 1989년 2집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매니저였던 Fachtna O’Ceallaigh는 Sinead에게 Prince가 만든 발라드 한 곡을 추천했다. 이 곡은 당초에는 The Family라는 Prince의 사이드프로젝트 밴드가 그들의 1985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위해 녹음했지만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었다. 하지만 1989년 발매된 2집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수록곡으로 녹음되었고 1990년 2월 11일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Nothing Compares 2 U”는 그 해 3월 17일 핫100 차트에 63위로 데뷔한 후 불과 5주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O’Connor의 본국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수많은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John Maybury가 감독한 뮤직비디오에서 O’Connor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는데 당초 이 장면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고 가수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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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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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21일 Phil Collins의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여 3주간 머물렀다. Phil Collins가 직접 만든 이 곡은 영국 밴드 The Genesis 드러머 출신이었다가 솔로로 전향한 이 가수의 최초의 정상곡이 되었다. 1983년 11월 The Genesis의 시카고 공연을 본 Taylor Hackford는 Collins를 만나 그가 감독할 Jeff Bridges 주연의 “Against All Odds”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어 줄 것을 의뢰했다. Collins는 그의 첫 솔로 앨범 “Face Value”의 작업 중에 만들어두었던 곡 중 사용하지 않기로 한 곡 하나를 꺼내들었는데 당시의 곡명은 “How Can You Just Sit There?”였다. Collins는 Chaka Khan, Carly Simon, Bee Gees 등과 함께 일한 프로듀서 Arif Mardin와 함께 작업하여 이 곡을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라는 이름의 세련된 노래로 변신시켰다. Collins는 The Genesis의 공연 중간에 휴가를 내어 뉴욕과 로스엔젤리스 등에서 보컬과 드럼을 녹음했다. 1984년 2월 초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2월 25일 핫 100 차트 67위에 데뷔한 후 8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Against All Odds”는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메일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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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Glass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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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1977” by Private Stock Records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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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까지 Blondie는 컬트팬들에 둘러 쌓인 펑크밴드였을 뿐이다. 히트 앨범에 목마른 밴드의 레이블 Chrysalis는 Suzi Quatro와 Sweet과 같은 다운타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녹음하여 성공한 창조적인 프로듀서 Michael Chapman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가 Blondie의 세 번째 앨범 “Parallel Lines”와 싱글 “Heart of Glass”였다. 1979년 초 발매된 이후 이 곡은 Blondie의 첫 빌보드 히트곡으로써 1979년 4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이 곡은 신쓰팝과 일렉트로닉 댄쓰뮤직의 길을 닦았다.

Mike Chapman: 처음 Chris와 Debbie를 뉴욕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앨범에 담을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요. 음악은 대단했죠. 그러나 난 그 노래를 진정한 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다른 곡은 없는지 물었죠. 그들은 “음. 우리가 ‘그 디스코 곡’이라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를 틀었는데 정말 근사했죠. 하지만 아직 100%에 다다르지는 않았어요.

Mr. Stein: 애초 그 노래의 Debbie의 두 번째 줄 가사는 “Soon turned out, he was a pain in the ass.”였어요. Mike는 이게 라디오 친화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구절을 생각해냈죠. “heart of glass”. 다들 좋아했어요. Debbie는 작업을 해서 “Soon turned out, had a heart of glass.”로 고쳤죠.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이틀로 쓴 것이고요.

Mr. Chapman: Debbie에게 음악 비즈니스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녀는 “Donna Summer”를 좋아하고 특히 “I Feel Love”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전혀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죠. 난 그녀와 Chris에게 말했어요. “이 노래를 Giorgio Moroder 느낌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Giorgio는 Donna의 명반들을 프로듀스 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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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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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 – Call 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Call Me”는 음악 스타일에 있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절묘하게 걸친 느낌의 곡이다. 이는 아마도 그 곡에서 전형적인 디스코 리듬과 뉴웨이브적인 멜로디가 함께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히트한 시기도 정확히 1980년이다. 펑크밴드에서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밴드로 거듭난 Blondie가 부른 이 곡은 1980년 4월 19일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Heart Of Glass라는 메가히트급의 댄스넘버를 히트시킨 바 있는 Blondie의 두 번째 차트 정상곡이다. 70년대 유로피언 디스코의 대가 Giorgio Moroder와 Blondie의 여성 싱어 Deborah Harry가 만든 이 곡은 Richard Gere 주연의 “American Gigolo”1의 주제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Moroder는 이 곡의 공동작업자로 처음에는 Fleetwood Mac의 Stevie Nicks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레코드 레이블인 모던 레코드사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그 기회는 Harry에게 돌아갔다. Harry는 가사를 썼고 스튜디오에서 보컬을 녹음했다. 처음에 “Man Machine”이라는 가제로 이 곡의 데모를 받은 Harry는 가사와 곡 일부분을 작업하면서 “캘리포니아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오프닝씬을 연상했다”고 술회했는데, 실제로 영화의 오프닝씬이 그렇게 연출되었다. 1980년 2월초 싱글로 발매된 후 그 달 16일 바로 차트 80위에 데뷔한 이 곡은 9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1980년 빌보드 잡지의 연말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Rolling Stone은 “역대 가장 위대한 500곡”에서 이 노래를 289위에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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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하의 바람둥이 리처드 기어의 엽색행각을 다룬 영화 자체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