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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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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leaguemk2” by A&M Records 1982. Licensed under Wikipedia.

‘일렉트릭 아바’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단순한 멜로디와 신서사이저 등 전자 음향을 유합해 새로운 일렉트로닉 팝을 창출해냈던 Human League는 1970년대 후반 팝의 한 분야로 발전된 테크노 팝의 대표주자로 영국의 쉐필드에서 1977년 결성되었다. 그 곳 출신의 컴퓨터 엔지니어였던 이언크레이그 머쉬와 마틴 웨어 두 사람이 필립 오키와 함께 손을 잡고 정식으로 그룹을 결성했다. 팀 결성 직후인 1978년 3월, 이 그룹의 네번째 멤버가 된 에드리언 라이트를 가입시키면서 휴먼리그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데, 이 때부터 이들은 팝에 전자적인 요소를 가미함과 동시에 슬라이드 조작을 통한 시각적인 영상 창조에 주력했다.

쉐필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에딘버러에 있는 패스트 트로덕션의 제작사 밥 라스트를 만났고, 밥은 이 들의 진보적인 발상을 높이 평가, 드디어 레코드 취입을 제의하였다. 이 것을 계기로 버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이 들은 두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두 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유럽 공연을 마친 후 2명의 멤버가 탈퇴해 버려 사실상 휴먼리그는 해체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은 두 명의 벰버는 당시 디스코 클럽에서 노래하던 17세의 조앤 캐더럴과 수전 설리를 참가시켜 새로운 출발을 꾀했다. 계속해서 이언 버든과 레질로스라는 지방 밴드의 리더 조 콜리스를 가입시켜 다시금 휴먼리그의 중흥을 꾀앴다.

한편 휴먼리그를 탈퇴한 두 명의 멤버는 Heaven17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결성했다.

혼성 6인조 테크노 팝 그룹으로 재기의 발돋움을 시작한 휴먼리그는 첫 앨범 Dare를 1982년 초에 발표했는데,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그 해 여름 싱글 Don’t You Want Me가 미국 팝챠트 1위에 오르면서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듬해인 1983년 초에 싱글 Mirror Man과 Fascination을 다시 히트시켰다.

그러나 84년에 발표한 Hysteria는 Dare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들은 1990년에 Romantic?을 발표하고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5년후인 95년에 Octopus를 발표했다. 또한 2001년에는 신작 Secrets를 발표하여 All I Ever Wanted를 히트시켜 건재함을 과시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 Reproduction
1980 – Travelogue
1981 – Dare
1984 – Hysteria
1986 – Crash
1990 – Romantic?
1995 – Octopus
2001 – Secrets

링크

http://www.ozemail.com.au/~jjva/human.htm
Blind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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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martins, The

’80년대 후반 The Smiths가 떠나버린 빈 자리를 채우며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가장 성공적이었던 밴드중 하나인 The Housemartins는 전형적인 쟁글 키타 싸운드와 Catchy한 멜로디로 영국내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이들이다(미국에서는 거의 인지도를 얻지못했다). 그들은 거의 메인스트림으로 완벽히 안착하기 직전인 1988년 해체하였다. 그룹의 리드 쏭라이터 Paul Heaton은 이듬해 The Beautiful South를 결성하여 ’9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다.

Paul Heaton (보컬, 키타) formed the Housemartins with Ted Key (키타), Stan Cullimore (베이스), Hugh Whitaker (드럼)은 1984년 독특한 영국적 이미지에 정치적으로는 좌익적인 시니컬한 유머감각을 뒤섞은 사운드를 시도하는 The Housemartins를 조직하였다. 1985년 Go!Discs와 계약을 맺었고, 이 즈음 Key가 그룹을 떠났으며 빈 자리는 Norman Cook이 메꿨다. 그들의 세번째 싱글 “Happy Hour”는 1986년 여름 그룹의 첫히트곡이 되었다. 데뷔앨범 Hull 4, London 0 이 이어서 발매되었고 영국차트 10위안에 들었다. 그해 말 “Caravan of Love” 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86년의 성공으로 The Housemartins는 BPI 시상식에서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하였다. 2집을 발매하기 전에 Hugh Whitaker가 밴드를 떠났고 Dave Hemmingway가 빈 자리를 채웠다. 2집 The People Who Grinned Themselves to Death에서는 “Five Get Over Excited”, “Me and the Farmer” 등이 히트하였다. 그들이 인기가 더욱 고조될 무렵인 1988년 여름 그룹은 돌연 자신들은 애초에 3년동안만 밴드를 유지시키려 했다면서 해체를 선언하였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창작력의 고갈로 인한 고통과 멤버들간의 음악적인 견해차이로 보인다. Cook은 Beats International을 결성했다고 ’90년대 중반 Fatboy Slim이라는 프로젝트로 테크노계를 강타했다. Heaton은 드러머 Hemmingway와 함께 The Beautiful South를 결성했다.

디스코그래피

1986 London 0 Hull 4 Go! Discs
1987 The People Who
Grinned Themselves to Death Go! Dis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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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drippers, The

The Honeydrippers - The Honeydrippers, Volume One.jpg
The Honeydrippers – The Honeydrippers, Volume On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s Paranza/Atlantic Records /..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Honeydrippers는 Led Zeppelin의 싱어였던 Robert Plant가 주축이 되어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로 그들이 어릴때 들었던 노래들을 커버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들이 발매한 앨범은 EP Volume One이 유일하다. 그러나 Sea Of Love는 챠트에 오르는 좋은 반응을 거두었다. 그들은 이외에도 Ray Charles, Phil Specter 등 R&B와 라카빌리의 거장들의 작품을 리메이크하였다.

디스코그래피
Volume One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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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 17

영국의 테크노-팝 트리오 Heaven 17의 역사는 Martyn Ware와 Ian Craig Marsh을 중심으로 1977년 The Dead Daughters란 이름의 듀오로 처음 결성한데서 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곧 Philip Oakey와 Adi Newton과 어울려 그들의 이름을 Human League로 바꿨다. 이 둘은 그룹에 1980년까지 머물렀다.

씬써싸이저를 새로운 표현도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Marsh와 Ware는 The British Electric Foundation이라는 프로덕션 프로젝트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에서 Tina Turner, Sandie Shaw, Gary Glitter와 같은 다양한 뮤지션과 함께 작업을 했다. 이 프로젝트의 데뷔앨범 1980’s Music of Quality and Distinction, Vol. 1 은 Ware와 Marsh가 Sheffield 드라마 센터에서 만난 전직 사진작가 Glenn Gregory도 참여하였다. 1981년 듀오는 Gregory와 Heaven 17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The British Electric Foundation은 처음이자 가장 성공적인 싸이드프로젝트였다. 데뷔 싱글 (We Don’t Need This) Fascist Groove Thang은 어느 정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앨범 Penthouse and Pavement가 그해에 발매되었다.

1983년 The Luxury Gap의 발매와 더불어 B.E.F는 한켠으로 밀려나고 Heaven 17이 주된 작업이 되었다. 싱글 Temptation, Come Live with Me, Crushed by the Wheels of Industry, Let Me Go 가 연이어 히트하였고 How Men Are가 영국내에서 히트하였다. 그룹은 한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1986년 다수의 게스트 뮤지션과 보컬리스트들이 참여한 Pleasure One이라는 앨범으로 복귀하였다.1988년 Teddy Bear, Duke & Psycho의 상업적 실패후 그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Ware는 Terence Trent D’Arby의 데뷔앨범작업에 포커스를 맞췄고 Marsh는 B.E.F 작업으로 돌아가 1991년 Music of Quality and Distinction, Vol. 2를 발매했다. 1996년 재결성된 Heaven 17이 Bigger Than America와 함께 돌아왔다.

디스코그래피
1981 Penthouse and Pavement Virgin
1982 Heaven 17 Arista
1983 The Luxury Gap Virgin
1984 How Men Are Virgin
1986 Endless Virgin
1986 Pleasure One Virgin
1988 Teddy Bear, Duke & Psycho Virgin
1996 Bigger Than America WEA
1999 Live at Last Heaven 17
2001 Temptation: Live in Concert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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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thouse and Pavement(300k mpeg audio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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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t, Corey

80년대 중반 데뷔싱글 “Sunglasses At night” – 이 곡은 여러모로 80년대 팝의 전형으로 자리잡을만 하다. 인상적인 키보드리프, 곡 중간중간 이어지는 강렬한 기타솔로, 거기에다 80년대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신디싸이저에 기반을 둔 락스타일의 곡이라는 형태를 통해 80년대 음악적 특징을 골고루 배합한 별식같은 느낌이다 – 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Corey Hart는 캐나다가 전세계에 내놓은 몇안되는 남자싱어 중 한명이다.

물론 Bryan Adams보다는 상업적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미치지 못했고 때로 “Sunglasses At night”의 단발히트 가수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1984년 – 미국에서의 발매연도로 캐나다에서는 1983년 – 데뷔앨범 First Offense 이후 꾸준히 앨범을 내며 “Never Surrender”와 같은 준척을 건지기도 하는 등 9개의 빌보드 탑40 히트곡을 내며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온 가수이다.

Corey Hart performing in Toronto.jpg
Corey Hart performing in Toronto” by Marc Lostracco – Email.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2년 5월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Corey Hart는 가수가 되고자 한 캐나다의 한 레코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큰 결실을 보지 못한 그는 뉴욕으로 가서 잠시 활동하다 캐나다로 다시 복귀하여 Aquarius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레코드사는 그의 반항적인듯 하면서도 준수한 외모를 활용하기로 하였고 그를 십대의 섹스심볼로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는지 흥미롭게도 그의 사진은 언제나 얼굴을 약간 숙인 채 눈을 반항적으로 치켜 뜬 모습이 대부분이다.

어찌 됐든 캐치하고 대중적인 락댄쓰곡과 준수한 외모에 힘입어 데뷔앨범 이후 연속된 두장의 앨범은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로써 바야흐로 캐나다 출신 월드스타로써의 입지를 다지는 듯 했으나 이후 발표된 두장의 앨범들은 그에게 상업적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이쯤 되자 그는 타개책으로 Columbia 등과 함께 작업을 펼치기도 하였으나 이전과 같은 명예로운 나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Corey Hart는 이에 굴하지 않고 – 생긴게 의외로 성실해보임 – 바하마로 근거지를 옮겨 90년대 말까지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디스코그래피

1984 First Offense EMI America
1985 Boy in the Box EMI America
1986 Fields of Fire EMI America
1987 Bang! EMI America
1989 Young Man Running EMI America
1992 Attitude & Virtue Sire
1996 Corey Hart Sony
1998 Part One Aquarius
1998 Jade Sony

Happy Mondays

결성 : 1985년 영국 맨처스터
해체 : 1992년
멤버 : Paul Davis, Paul Ryder, Shaun Ryder, Gary Whelan, Mark “Cow” Day, Bez

스톤 로우지즈와 함께 해피 먼데이즈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매드체스터 씬의 댄스클럽에 영향력을 행사한 선두주자였고1992년 씬이 쇠약해지고 난후에도 잠시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햇었다. 스톤 로우지즈가 60년대 팝을 기반으로 하는 동안 해피 먼데이즈는 댄스 음악적 요소를 가미함으로 클럽과 레이브 문화에 열중하게 되었고 곧 환각적인 씬의 가장 인정받는 밴드가 되었다. 해피 먼데이즈의 음악은 사운드의 헤비함과 하우스 뮤직의 리듬에 바탕을 두고 70년대 소울적 삽입장식음과 60년대 싸이키델릭을 섞어 넣었다. 그래서 귀에 속속 들어오는 노래들로 밝고 컬러풀한 음악이 되었다.

무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해피 먼데이즈는레이브 문화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다. 그들은 악한 존재였지만 순수했으며 단순하였다. 즉 어떠한 약물문화의 표면에 잠재된 폭력성을 차용했고 이것은 심지어 영국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레이브 씬에 외관상으로는 일조하였다. 보컬리스트 Shaun Ryder의 리더쉽아래 그룹의 사운드와 활동들은 마치 평화를 사랑하는 그들의 동료 스톤 로우지즈와는 대조적으로 갱(Gang)같았다. Ryder의 가사는 기괴한 팝문화의 영향과 험악한 섹슈얼리티를 더해 뒤틀리고 초현실주의적 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적당하게 타장르의 음악을 섞어 사용하였다. 그래서 힙합테크닉을 접목시킨 최초의 록 밴드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즉 샘플링은 하지 않았지만 곡의 진행과정에서 멜로디와 가사를 차용했다. 그들의 거칠고 과도한 모습들의 추구는 약물의 효과에 적절히 희석되었지만 놀랍게도 케미컬 브라더스에서 부터 오아시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88년 그들의 앨범 BUMMED는 해피 먼데이즈나 리더싱어 Shaun Ryder를 영국에서 수퍼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90년에 발매된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가장 창조적이였고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미국 앨범차트 Top100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국만큼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그후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YES PLEASE가 발매되었고 매드체스터 사운드는 대중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비록 그들의 앨범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하더라도 앨범 발매후 2년동안은 상압적 타협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중의 관심도 떨어졌으며 Shaun Ryder는 헤로인에 중독되게 되었고 밴드로 부터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Hight – Level레코드와 계약후 Shaun Ryder는 헤로인으로 밴드를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룹도 해체되었다. Shaun Ryder와 해피 먼데이즈의 전속댄스인 BEZ는 90년대 중반 Black Grape로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밴드는 평론가들로 부터 호평을 받은 데뷰앨범 IT’S GREAT WHEN YOU’RE STRAIGHT….YEAH!를 95년 늦여름에 발매하였다. Black Grape의 사운드는 해피 먼데이즈와 비슷한 방향을 추구했다. 단지 사운드와 가사에 있어서 조금 강렬해지고 거칠어졌을 뿐이었다.

디스코그래피
1987 Squirrell & G Man Twenty-Four Hour Party…
1988 Bummed
1990 Pills ‘n’ Thrills & Bellyaches
1991 Live
1991 Baby Big Head Bootleg Album
1992 Yes, Please
1999 Pills ‘n’ Thrills & Bellyaches [Japan]

Hall & O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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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 Oates” by Gary HarrisFlickr: Hall & Oate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홀 앤 오츠는 60년대 말 결성된 미국 출신의 듀오이다. 대릴 홀(Daryl Hall)과 존 오츠(John Oates)의 성을 딴 이름으로 부드럽고 쉬운 멜로디를 내세워 74년 첫 번째 히트 이후로 80년대에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소울의 전통에 뉴 웨이브와 하드 록을 접목시킨 이들의 음악은 매우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67년 대학에서 처음 만난 홀과 오츠는 이내 같이 연주를 시작하였다. 68년 오츠가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잠시 헤어졌던 이들은 이듬해인 69년 오츠가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오면서 재결합했고 홀이 작곡한 포크에 바탕을 둔 음악을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Whole Oates](72), [Abandoned Luncheonette](73), [War Babies](74) 앨범을 통해 자신들만의 음악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한 이들은 아리프 마딘(Arif Mardin), 토드 룬드그렌(Todd Rundgren) 등의 프로듀서와 함께 일하면서 바탕이 되었던 포크적인 색채를 배제하였다.74년 봄 ‘She’s Gone’이 차트 60위에 올랐다. RCA로 옮긴 75년 이후 이들은 소울과 팝, 록을 혼합한 스타일의 곡 ‘Sara Smile’을 10위 권에 올려놓았다. 이 곡의 성공과 함께 ‘She’s Gone’이 재발매되어 역시 10위 권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76년 발매된 [Bigger Than The Both of Us](76)에서는 ‘Rich Girl’이 정상을 차지했다.

이후 80년까지 4년간 이들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좀더 도전적으로 록의 요소를 음악에 도입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거두어 [Voices](80) 앨범은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이들 최고의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라이쳐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커버곡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이 차트 12위에 올랐고 후속곡 ‘Kiss on My List’는 두 번째로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재빨리 발표한 [Private Eyes](81)에는 차트 정상을 차지한 두 곡인 ‘Private Eyes’와 ‘I Can’t Go for That (No Can Do)’가 수록되어 있다.

다음해에 발매된 [H2O](82)는 이들의 최대 히트곡인 ‘Maneater’를 배출하며 전작들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2년만에 발표한 [Big Bam Boom](84)에서는 ‘Out of Touch’가 이들의 1위 행진을 이어갔다. 라이브 앨범을 발매한 후 휴식기에 들어간 이들은 88년 다시 모여 [Ooh Yeah!](88)을 발표했으며 ‘Everything Your Heart Desires’가 차트 3위까지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Change of Season](90)은 이제 이들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앨범이었고 이들은 또다시 휴식기에 들어갔다.7년만에 발매한 [Marigold Sky](97)는 어정쩡한 소울 음악 혼합물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을 뿐이었다. 백인이 구사하는 소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던 이들은 소울적인 감성을 잘 살려내었던 많지 않은 백인 뮤지션들로 인정받고 있다.

changgo.com

디스코그래피
1972 Whole Oates
1973 Abandoned Luncheonette
1974 War Babies
1976 Daryl Hall & John Oates
1977 Bigger than the Both of Us
1977 No Goodbyes
1977 Beauty on a Back Street
1977 Past Time Behind
1978 Livetime
1978 Along the Red Ledge
1979 X-Static
1980 Voices
1981 Private Eyes review
1982 H2O
1984 Big Bam Boom
1985 Live at the Apollo
1988 Ooh Yeah!
1990 Change of Season
1997 Marigold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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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Haircut 100

Haircut 100 Live.jpg
Haircut 100 Live” by ChrisFJM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키타리스트 Graham Jones, 키타/베이스 플레이어 Les Names 그리고 싱어 Nick Heyward 가 Haircut 100을 결성하던 1980년 그들은 모두 19살이었다. 당시에는 자기네들끼리 즐긴다는 단순한 생각이었고 음악에는 60년대의 쾌활함과 80년대의 댄쓰비트를 섞어놓은 스타일이었다. 1981년 그들의 첫싱글 “Favourite Shirts (Boy Meets Girl)”은 영국챠트에 4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인기에는 Heyward의 미소년적인 외모도 한몫거들었다. 이듬해초 데뷔앨범 Pelican West를 발매하였다. 이어진 히트싱글은 Love Plus One이었는데 그룹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그러나 Heyward는 솔로활동을 위해 83년 그룹을 떠나고 만다. 나머지 멤버들은 기존의 이름을 고수한채 드러머 Mark Fox를 새로운 싱어로 내세웠지만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편 Heyward는 83년 North Of a Miracle이라는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에피소드1 : 어릴적 몇번 들었었던 Love plus one의 멜로디는 학창시절 내내 가끔씩 입가에 맴돌았었는데 누가 부르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웬지 “Bow Wow Wow가 불렀던 노래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뒤에야 이른바 mp3가 등장하고 나서야 오랜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의문이 풀렸다.

디스코그래피
1982 Pelican West Arista
1983 Paint & Paint Polydor
1993 Pelican West Pluse [Bonus Tracks] A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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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en, Nina

Nina Hagen의 이력은 좀 색다르다. 1955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그곳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락싱어로 활동하는 등 음악경력을 쌓고 있었다. 그 후 1976년 그녀는 반체제 시인이었던 계부 Wold Biermann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했다. 망명한 그녀는 런던에서 펑크계열의 곡을 녹음하였고 서독으로 돌아와서 Nina Hagen Band를 조직하고 CBS 레코드사와 계약하였다. 1978년 데뷔앨범 Nina Hagen Band를 내놓은 밴드는 곧 특유의 날카롭고 기괴스러운 댄쓰뮤직으로 명성을 떨쳤다. Hagen의 미국 데뷔는 독일에서의 작업에서 골라낸 4곡으로 구성된 EP였다. 그녀는 곧 뉴욕으로 옮겨 1982년 영어로 된 첫 LP Nunsexmonkrock 를 발표하였다. 이듬해 Giorgio Moroder가 프로듀스한 Fearless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은 챠트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New York New York”이 댄쓰클럽에서 히트하였다. 그러나 Hagen은 Nina Hagen in Ekstacy (1985)를 내놓은 후 CBS와 결별하였다. 1988년 그녀는 Punk Wedding이란 EP를 내놓아 그녀의 결혼을 자축하였다. 1989년 그녀는 독일시장으로 복귀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9 Nina Hagen Band Baktabak
1980 Unbehagen CBS
1982 Nunsexmonkrock CBS
1982 Nunsexmonkrock/Nina Hagen Band Columbia
1983 Angstlos CBS
1983 Fearless Columbia
1985 In Ekstasy Baktabak
1987 Love Baktabak
1989 X Love Columbia
1989 Nina Hagen Mercury
1991 Street Polydor
1994 Revolution Ballroom European
1995 freuD euch RCA
1996 BeeHappy RCA
2000 Return of the Mother BMG
2000 Sweet Lord Concept Album 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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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Homepage
New York New York(300k mpeg audio 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