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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Anxiety

한 유명한 정신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멜부룩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를 그린 코미디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레드히치콕의 작품들을 여러 개 패러디했는데 대표적으로 –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 Vertigo 가 있고 이외에 Psycho, The Birds 등도 멜브룩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정신병원은 요지경 세상이다.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남부러울 것 없는 치료를 받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의료진들 자체가 이미 정신병자이거나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부당이득을 위해 이미 치료가 끝난 환자들마저도 계속 병원에 가둬놓고 있다. 그런 병원에 원장으로 취임한 쏜다이크 박사는 이미 기득권 세력들에게 눈의 가시 같은 이였고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멜브룩스는 이 영화로 1978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Tron

On the center of a circle, a man releasing a disc upwards into the air, with a woman standing next to him. A beam of light descends upon the disk with another light coming out from the background. A caption reads: "A world inside the computer where man has never been. Never before now."
By Copied from http://impawards.com/1982/tron.html web site, and intellectual property owned by Buena Vista Pictures., Fair use, Link

소위 사이버스페이스와 전자오락을 소재로 한 선구자적인 영화. 제프브리지스 Jeff Bridges 가 자신이 프로그래밍한 게임 속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운다는 현실감은 없지만 눈요기는 되는 작품이다. 선악의 구도는 너무 명확하여 유치할 정도이다.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이 혼재하여 갈등구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The Matrix 와 같은 비슷한 장르의 영화의 선구자격으로 영감을 주었고, 픽셀과 네온빛의 그래픽 역시 이후 유사한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80년대 막 전자오락이 사람들의 여가활용의 한 방법으로 등장하였던 시기에 시의적절하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영화이지만 정작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한다. 포스터의 인물은 당시 TV 스타로 이름 날리던 브르스박스라이트너 Bruce Boxleitner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

로마, 무방비 도시(Roma, Città Aperta / Open City)

로베르토로셀리니의 1945년 작품인 이 영화는 마치 에릭홉스봄의 20세기 역사를 다룬 명저 ‘극단의 시대’를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시즘과 나찌즘이 극에 달하던 시기 로마에서 저항운동을 펼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식의 사회주의 네오리얼리즘의 큰 축을 이룬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음>

극의 줄거리는 크게 반독 항쟁을 벌이고 있는 공산주의자 만프레디, 저항활동을 후원하는 돈피에트로 신부 –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보수적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둘 모두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집단윤리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친화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사제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감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것이다 – , 그리고 만프레디를 사랑하는 배우 마리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928년에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결코 그녀와 살지 않았다.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혁명가의 철칙이다.” – 칼파나 두트

마치 사제서품을 눈앞에 둔 성직자의 각오를 연상케 하는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에서 언급되는 혁명가의 연애관은 만프레디와 마리나의 연인관계는 만프레디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투사도 인간일진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혁명과 욕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화해할 수 없었나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이 영화는 이후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과 함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3대 전쟁 영화이기도 하다.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Peeping Tom

고디바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주의 어린 부인이었다. 그녀는 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을 시정해달라고 남편에게 간청하였다. 남편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했다. 부인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정말 나체가 된 채로 말을 타고 시장을 돌았고 부인의 갸륵한 마음을 하는 주민들은 창밖으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탐이라는 친구만은 그녀를 몰래 보았고 이에 천벌을 받았는지 후에 맹인이 되었다. 이것이 관음증을 가리키는 Peeping Tom 이라는 표현의 기원이 되었다.

마이클 파웰 Michael Powell 의 1960년작 Peeping Tom 은 너무나 유명한 이 표현을 제목으로 앞세워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내세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냉정한 과학자 아버지 아래에서 일종의 실험표본의 취급을 받으며 성장한 마크가 관음증적 증상에 시달리며 급기야 자신이 살인하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취미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한 그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여인이 나타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악취미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회복불능의 경지까지 타락해 있었다.

같은 해 만들어진 알프레드히치콕의 Psycho 에 필적할 만큼 왜곡된 성장배경으로 인하여 삐뚤어진 삶을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인물을 그려낸 스릴러의 걸작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소재의 선정성에 집착한 평단으로부터 차가운 몰매를 맞아야 했다. Psycho 가 실제로 어머니의 편향된 보육으로 인해 살인마가 된 Ed Gein 을 모델로 한만큼 마크라는 변태적 인물의 현존 가능성도 얼마든지 개연성이 있는 문제이지만 오히려 평단이 그러한 리얼리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리라.

The Thing (From Another World)

몇몇 에스에프나 공포영화는 흔히 그 사회의 계층 간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조지로메로의 ‘죽음의 날’ 이나 웨스크레이븐의 ‘공포의 계단’, 그리고 로버트와이즈의 ‘The DayThe Earth Stood Still’과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The Big Sleep 의 감독 크리스찬나이비 Christian Nyby 가 1951년 선보인 The Thing 역시 외계인의 출몰로 인해 갈등하는 각 계층의 모습을 통해 지적쾌락을 선사하는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직업군은 ‘죽음의 날’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좀비의 지구정복으로 인해 고립된 생존자들 중 과학자, 군인, 민간인 등의 갈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군인은 생존자들의 권력을 쥐고 흔들려는 또 다른 적(敵)으로 묘사된다. 반면 The Thing 에서는 현존하는 분명한 위협인 가공할 괴력의 외계인을 상대로 냉정을 지키며 인간을 보호하려는 무리로 묘사된다. 반면 과학자 부류는 위험에는 아랑곳없이 외계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욕 때문에 사태를 호도하는 부류로 묘사된다.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혁신과 보수의 갈등에서 누구에게 상대적 도덕성을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사태해결 방안이 어느 관점에서 옳으냐에 대한 주관적 서술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감독은 군인을 택했다. 그들은 호기심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 직업이 아니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나쁜’ 괴물 외계인에게는 군인들의 보수성이 더 유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계인이 보다 우호적이었다면 명백히 군인들의 보수성이나 공격성은 호의적이지 않게 묘사되었을 것이다. 동시대 영화인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이 바로 그 정반대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지구에 평화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러 온 Klaatu 를 적대적으로 공격한 것은 바로 군인이었다. 또한 정치인들은 그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이에 반해 과학자들은 Klaatu 의 지적능력에 공감하여 그의 경고메시지를 받아들인다. 결국 어느 사회나 위험을 받아들이느냐, 위험을 배척하느냐 하는 문제는 흑백논리로 명쾌하게 구분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군인이 과학자보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 무리로 묘사되었다 하여 이 영화를 보수적이거나 반(反)진보적인 영화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외계인이 ‘악(惡)’한 캐릭터라는 기본상수를 깔고 들어갔으니 만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나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 군사적 대응이 인디펜던스데이만큼 유치하지는 않으니까.

Desperate Living

추잡한 영화의 달인 John Waters 의 1977년 작이다. 핑크플라밍고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어이없음’이 일관되게 되풀이되는 영화이다. 흑인하녀의 엉덩이에 깔려죽는 남자, 용의자의 팬티를 뺏어 입고는 오르가즘에 몸부림치는 경찰, 여자 친구를 위해 성전환 수술을 했다가 여자 친구가 실망하자 가위로 성기를 잘라버리는 레즈비언, 흑인하녀와 동성애에 빠지는 여인 등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들이 총집합하여 맥락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한판 해프닝을 벌인다. 다만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옷을 거꾸로 입고 거꾸로 걸어다니라는 둥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여왕의부당한 압제에 맞서 변혁을 꿈꾸는 레즈비언 들의 혁명영화(?)로 해석될 수도 있다.중상류 계급 출신이지만 어릴 적부터 괴상한 취미에 맛을 들여 그의 전 영화인생을 이런 ‘뻘쭘한’ 영화 만들기에 전력을 쏟은 John Waters 의 악취미는 확실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 – 기껏해야 보다 얌전한(?) 스타일로 데이빗크로넨버그가 접근했다고 해야 할까? – 일 것이다.

영화소개

Poltergeist

1974년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The Texas Chainsaw Massacre)’으로 단숨에 공포영화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토브후퍼(Tobe Hooper)가 스티븐스필버그와 손잡고 만든 공포영화. 평화로운 한 중산층 공동주택 단지에 살던 가족에게 찾아 온 믿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이로 인한 가족의 고통을 다룬 영화. 그들 가족이 고통 받은 이유는 그 공동주택단지의 터가 원래 공동묘지였고 개발업자가 시체들은 이장을 해주지 않아서 그 유령들이 소동을 피운다는 다소 동양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다.

개발업자야 이장비용으로 인해 사업타당성에 악영향을 미쳤을 테니 그런 짓을 했을 테고 유령들은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괴롭혔는지 영화를 다 보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롭히지 않고 잘 달래야 개발업자를 찾아가 이장을 해달라고 하든지 뭐라도 소원수리를 할 것 아닌가?

여하튼 영화는 꽤 흥행에 성공했고 속편이 3편까지 만들어졌다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 출연한 큰 딸 역의 도미니크 던이나 작은 딸 역의 헤더오르크가 어린 나이에 죽는 등 영화의 출연자들의 의문의 죽음이 꼬리를 물어 ‘폴터가이스트의 저주’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Match Factory Girl

아키카우리마스키(Aki Kaurismäki)의 유머감각은 그의 고향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며 빈둥거리며 세월을 죽이는 그의 부모를 공양하는 불쌍한 소녀가장도 욕정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예쁜 옷을 부모 몰래 사서 술집에 가서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차라리 유치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하여, 외모가 보잘 것 없다하여 그의 이성에 대한 낭만적 사랑의 열망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꼬부랑 노인에게도 성욕은 당연한 권리이듯이). 그럼에도 그에게 접근하여 하루를 보낸 남자는 그를 하룻밤 여흥으로 치부해버리고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대사가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적막감이 흐르는 영화다. 핀란드/스웨덴 공동작업으로 1989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