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봤는데 흑인 판 왕자웨이(王家衛)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직접적으로 생각나는 영화는 해피투게더였고 그 외 이런저런 부분이 왕자웨이식 미장센이 연상되었다. 모든 배우가 흑인이었고 공간적 배경도 마약을 거래하는 정말 찐위험한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흑인이나 마약 관련 영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은, 심하게 말해서는 파스텔 톤의 느낌의 영화였다. 어린 샤이론(Chiron)을 돌봐주던 후안이 마약상이었고 성인이 된 샤이론이 마약상이 됐음에도 그들에게서는 악인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이건 이를테면 유색인종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정당성 부여 기제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영화를 계속 그런 톤으로 끌고 온 연출 의도에 따른 느낌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나의 몸에 손댄 것은 너뿐’이라는 샤이론의 고백도 그가 소년원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젊은 여성 혼자 살면서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느낌과 유사했다. 샤이론 연기는 청소년 시절의 샤이론 배우의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카에타노 벨로소(Caetano Veloso)의 노래가 나와서 반가웠다.
일요일 아침에 데릭 자먼(Derek Jarman) 감독의 1987년작 ‘영국의 최후(The Last of England)‘를 보았다. 보았다기보다는 그냥 틀어놓고 딴짓을 했다. 그렇게 해도 감상에 지장이 없을 만큼 스토리라인이 복잡하지 않은 영화다. 이를 “시적인(詩的)”인 영화라고 표현한다. 내용은 넓게 보아 마가렛 대처 정부에서의 숨 막히는 상황을 – 특히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 등등 – 비판하는, 이를 “영국의 최후”라고까지 표현하는 내용이다. 영상들은 굉장히 퇴폐적이고 노골적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한 소년이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작품(물론 복사본이겠지만) Amor Vincit Omnia에서의 큐비드를 강간하는 장면이다. 영화 소개에서는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영화 후반에 신부로 등장하는 정도다. 주인공이라는 것도 의미 없다.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 정도였을 것이다.
퇴근길에 Faith를 버스 안에서 들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이건 그냥 George Michael 베스트 모음집인데?”였다. 수록곡 한곡 한곡이 이미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멜로디인데다 각각의 장르도 다양하여 어떤 댄스 듀오에서 막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가수의 데뷔 앨범이라기보다는 관록을 쌓은 거장 뮤지션의 베스트 앨범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뛰어난 상업적 성과와 전반적인 음악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음악에 대해 엄숙함을 추구하는 비평가의 평가절하에 질린 나머지 그 다음 앨범의 제목을 Listen Without Prejudice라고 정할 만큼 편견에 시달렸던 조지마이클은 이미 왬 시절에도 솔로 시절에도 그렇게 완성형 뮤지션이었던 것이다.
1987년 11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사실 내게는 아직도 80년대 앨범이라기보다는 90년대 앨범의 느낌이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초부터 인기를 얻었던 블루아이드쏘울, 빠른 템포의 R&B, 심지어 New Jack Swing의 분위기가 이미 이 앨범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도 이 앨범은 시대를 앞서 90년대 음악 조류를 예언한 앨범이라는 느낌도 든다. 특히 패션에 있어서도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조지의 청바지 패션은 80년대의 그것이라기보다는 90년대를 지향하는 패션에 – 80년대말 슈퍼밴드 Bros의 패션과 유사한 느낌 –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80년대를 마무리하고 90년대를 예언하는 앨범의 느낌이다.
조지는 앨범의 모든 곡을 – David Austin과 공동으로 작업한 Look at Your Hands를 제외하고는 – 혼자서 작곡하고 프로듀스했다. 또한 다양한 악기도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곡들의 느낌은 왬 시절의 유쾌함과 캐치함을 유지하면서도 앞서 언급했듯이 R&B, 훵크(funk), 쏘울 장르가 가미되면서 왬과의 차별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앨범에서는 Faith를 비롯해 무려 네 개의 빌보드핫100 1위곡이 배출되었다.(그러니 베스트앨범일 수밖에) I Want Your Sex는 비록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 차트 2위 기록 – 당시 그 노골적인 제목과 섹시한 뮤직비디오 덕분에 많은 화제를 뿌린 곡이다.(그리고 JYP가 이 아우라를 따라하려했다)
넷플릭스에는 왬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올라와 있다. 그때 누구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 역시도 “왜 조지는 계속 앤드류와 그룹 활동을 이어갈까”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그 다큐를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끊임없이 음악적 평가절하에 시달렸고 결정적으로 동성애적 성향을 숨긴 채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조지에게 음악적으로나 –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이었지만 – 우정으로 기댈 수 있었던 기둥이 앤드류였다. 유일하게 앤드류에게 고백했던 그의 동성애 성향은 솔로 시절에도 감춰야 했고 오히려 이 앨범에서 마초적 이성애 남성의 성향을 더 드러냈다는 점이 그 시절 조지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저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얼마 전 열린 2011년 토니어워즈(Tony Awards)에서 사회를 본 닐 패트릭 해리스(Neil Patrick Harris)의 오프닝공연 Tonys are not just for gays anymore!. 스스로가 커밍아웃 동성애자인 닐이 유난히 동성애자가 많을 쇼비즈니스계가 이젠 더 이상 동성애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어쩌면 미국에서조차 가치전복적인 코믹송을 선보이고, 관객들은 포복절도한다. 미국 쇼비즈니스의 화려함과 유연함(?)을 잘 보여주는 작품.
이 영화는 진지하고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춘기의 아픔과 성장을 거침없이 표현한 영화이다. 역시 프랑스산으로 Sophie Marceau를 내세워 인기를 얻었던 La Boum 이 아름다운 십대 소녀 사춘기에 설탕을 입혀 곱게 포장해 내놓은 청춘멜로물이었으며, 당시 미국에서도 유난히 Endless Love, Paradise 등 십대의 모습이 과장되어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취향의 작품이 유행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과감성과 용기가 더욱 돋보인다.
Charlotte Gainsbourg 는 철물점을 운영하는 편부 슬하에서 십대소녀가 가질법한 존재론적 고민에 시달리는 시골소녀이다. 무엇이든 불만에 차있는 이 소녀는 어느 날 동갑내기 천재 피아니스트 소녀를 우연히 만나면서 그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를 통해 현실탈피를 꿈꾸지만 그것은 결국 도달할 수 없는 꿈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서로간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 고통 받지만 딱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성격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이후 성장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어렴풋한, 또는 노골적인 선악구도에 비해 그 심리관찰이 더 진일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탁월한 관찰능력을 보여준 영화는 이 후 Thora Birch와 Scarlett Johansson 이 주연한 Ghost World 정도일 것이다.
스티븐 퓨리어스가 파키스탄 이민 2세인 작가 하니프 쿠레이쉬(Hanif Kureishi)의 각본을 바탕으로 파키스탄 이민자 2세대인 오마르와 그 가족들이 과거의 식민제국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첨병인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영화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비뚤어져 있다. 자신의 이상주의적 가치관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시체처럼 살아가는 오마르의 아버지, 인종적 차별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오마르의 삼촌 나세르와 샬림, 오마르와 어릴 적 친구였으면서도 파시스트 청년들과 몰려다니는 조니, 그리고 다시 만난 조니를 고용인으로 부리면서 –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관계에 빠지면서도 – 전도된 만족감을 얻으려는 오마르.
인종, 계급, 동성애, 가부장 등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이 뒤섞여 있다. 마치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탁기 안의 빨래처럼. 그것들은 때로 색깔진한 빨래가 다른 빨래에 물을 들이듯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전도된 계급관계에 희열을 느끼는 경우처럼 변태적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불륜이면서도 나름대로는 인종을 뛰어넘는 구식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답은 없다. 그저 매캐한 영국의 매연과 흐린 하늘처럼 늘 우리 옆에 존재할 뿐이다.
오마르는 나름대로 세탁소 같은 ‘깨끗한’ 사업으로 성공하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인종과 성적 편견을 뛰어넘는 조니와의 사랑도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 마지막의 애정 어린 물장구가 둘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을 암시할 뿐이다.
p.s. 사무실 밖에 있는 조니가 사무실의 오마르를 창너머로 바라보는 얼굴로 오마르의 얼굴이 반사되는 장면은 둘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한 참 ‘영리하게’ 연출된 장면이었다.
p.s.2 물방울이 보글거리는 듯한 음향효과의 주제음악과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시각효과의 타이틀시퀀스도 인상적이다.
‘행복’이라는 인간본연의 철학적 주제에 해당하는 거창한 제목의 이 영화는 과연 그 제목에 걸맞게 행복의 에센스를 파고들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엉뚱한 것들을 붙잡고 행복이라고 우기고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디알렌의 ‘한나와 그 자매들’을 연상시키는 세 자매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그녀들의 부모, 남편과 애인,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을 차례로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첫째 언니의 남편이 지니고 있던 아동에 대한 동성애적 감정을 다소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개봉 당시 격론에 휘말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 변태적 성욕을 지닌 아버지와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는 열한 살짜리 어린 아들 역을 맡은 소년의 연기였다. 그에 반해 허영의식에 찌들어 살던 그의 아내의 감정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결국 막판에 이 소년은 자위행위를 통한 오르가즘을 통해 ‘행복’에 도달하는데 보는 내 입장에선 약간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론 소년의 잘못이 아니고 감독의 잘못이다. 그럴 거면 제목이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다.
초기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등을 감독했던 James Whale 의 말년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전기 영화.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채 철망에 걸린 상황을 트라우마로 간직한 이 노감독은 몸이 쇠약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색을 밝히고 15년을 함께 해온 신앙심 깊은 가정부를 이를 끔찍하게 혐오한다. 그 와중에 근육질의 정원사가 새로 고용되고 James 는 그에게 또다시 눈독을 들인다. 스스로 게이인 Ian McKellen 이 참 맛깔스럽게 James Whale 을 연기하고 있다. 엄청난 마초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동성애자를 이해해가는 정원사 역으로 딱 어울리게 둔탁하게 생긴 Brendan Fraser 가 맡고 있다. 노년의 성, 그것도 동성애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흔하지 않은 소재이긴 한데 비슷한 소재로는 일본영화 ‘메종드히미코’가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J.D. Salinger 의 The Catcher In The Rye. 철없는 문학교수 Grady Tripp (Michael Douglas) 의 좌충우돌 행보에서는 Holder Caulfield 의 치기어린 행동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 문득 ‘작문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Holden 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대신 작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Grady 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나 홀로 해보았다. 제법 근사했다. 비록 뛰어난 작품을 한 권 냈고 교수도 되었지만 Grady 는 – 나이 든 Holden 은 – 여전히 수시로 대마초를 펴댈 만큼 –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제자 James Leer(Tobey Maguire)에게도 권할 만큼 –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의 에피소드 들 역시 하나 하나 쪼개보면 절망적이면서도 결국 실낱같은 그 어느 희망으로 수렴해가는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물론 원작자 Michael Chabon 이 들으면 기분나빠하겠지만 – 그가 이글을 볼 리도 없지만 – 적어도 내게 있어 이 영화(또는 원작 소설)는 The Catcher In The Rye 에 대한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Steve Martin 주연의 Planes, Trains and Automobiles 를 연상시킨다. Grady 는 앞서의 영화에서 Steve Martin 이 그러했던 것처럼 짧은 시간에 온갖 수난을 다 당한다. 아내는 집을 떠나고, 정부(情婦)는 임신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개한테 물리고, 제자는 그 개를 죽이는가 하면 마릴린 몬로의 재킷을 훔친다. 비록 이 작품이 보다 지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주인공 재난 영화’의 계보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도 행복한 가족을 얻었다는 헐리웃 공식을 추가시킨 것도 비슷한 점이다(개인적으로는 더 망가뜨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혹자는 21세기 최초의 걸작이라고도 평했다는데 적어도 21세기에 보기 흔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력파 배우들의 나름 귀여운 연기를 이끌어낸 커티스 핸슨의 역량도 맘에 들고 사운드트랙도 사랑스럽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하니같은 여자(사실은 남자) 패트리샤 키튼의 삶에 관한 영화다. 정치적 상황을 성적 정체성과 묶어놓기를 은근히 즐기는 닐 조단이 2004년 내놓았으나 국내에서는 이제야 단 한 개의 개봉관에서 개봉되었다. ‘28일 후’ 등에서 씩씩한 사나이 상을 보여주었던 킬리언 머피가 온갖 끼를 다 떠는 게이 패트리샤를 연기해 놀라운 변신 능력을 선보였다. 영연방의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대표주자 배우가 될것이 확실하다. 주드 로보다 머리숱도 많지 않은가. 훵키한 음악들도 훌륭하다. 아~ 브라이언 페리가 깜짝 출연하는데 아주 지저분한 역으로 등장한다. 노래도 흥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