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자율화

 내가 보기에, 80년대 복고풍은 한국에는 불어올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한국인은 80년대에 대해 가질 향수가 없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기에 전세계를 휩쓴 70년대 복고풍의 열풍은 이제 많은 변주를 거쳐 서구에서는 80년대 복고가 상당한 기세를 보이고 있다. 늘 패션과 같이 가길 주저치 않는 음악에서는 벌써부터 80년대 팝, 신스팝이 강력하게 돌아오고 있다. 난 지금 지구 위의 테크노 열풍의 이면에는 분명 80년대 신스팝의 향수가 깔려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80년대 복고풍 패션 또한 돌아와야 할텐데?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은 80년대의 시대정신에 대해 공감할 것이 전혀 없다. 왜냐면 80년대는 보수와 반동의 시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청년들이 모두 체제 내에 흡수되어 여피족이 되어가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회고하기에는 아직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엄청난 혁명, 컴퓨터 혁명 혹은 인터넷 혁명, 유전자공학 혁명, 등등이기에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전망엔 나의 사사로운 감정도 얼마쯤은 포함된 것이다. 그것이 돌아오기를, 나는 절대 원하지 않는다.

80년대의 패션은 기본적으로 성숙한 여자, 크고 건강한 체형에 매니쉬한 특성까지 고루 갖춘, 서양의 미인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요즘과 비교하자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악한 어깨뻥을 특징으로 하며, 어깨가 크고 밑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아마도 소양인 체질이라고 할만한 체형을 미의 기준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70년대의 패션과 비교를 하자면, 한마디로 말해 캐주얼 입고 놀기보다는 정장 입고 직장에 나가는 여성의 이미지다.

한국에서라면 얘기는 조금 다르다. 그 시절, 레이건 시대랑은 비교도 안 되는 전두환 시대를 보내고 있던 한국엔 미니스커트란 것도 없었으니까. 우리가 흔히 ‘미니스커트’라고 하는 것이 60년대 말 이후로 다시 등장한 것은 90년대 상반기에 들어서의 일이다.

한국에서 80년대 복고풍이 떫더름한 반응을 보일 또 하나의 기본적인 원인은 한국인의 체형이다. 높은 허리선은 엉덩이가 큰 동양인 체형엔 절대 안 어울린다. 똑같이 가장 잘록한 허리선에 맞추더라도 엉덩이 길이가 길기 때문에 엉덩이가 한정없이 커져버린다. 거기에 넓다란 벨트로 강조를 하는 것 또한 엉덩이 크기를 무지하게 강조한다.

70년대 복고풍이 골반 바지에서부터 불어온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골반이나 반골반의 분할선은 확실히 엉덩이를 작아보이게 한다. 높은 허리선은 다리가 길어보이게 한다기보다는 불룩 나온 배를 강조해 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되려 낮은 허리선으로 짧아진 다리길이를 통굽으로 커버해줌으로써 날씬하고 길어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복고풍 유행이 진행되다보니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짧은 7부 바지 내지 9부 바지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인들이라면 모를까 한국인의 체형에서는 도무지 멋이 날 리가 없는 위험한 패션이라는 점을 많이들 무시하는것 같다.

그렇다해도, 롱다리에 엉덩이가 서양인처럼 작은 일부 신세대들은 입을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복고풍도 물론, 입을 수야 있다. 그런 아줌마쉬한 옷으로 자기를 표현하고픈 생각이 든다면 말이다. 그래서 내가 80년대 복고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표하는 것이다. 80년대의 젊은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금의 젊은이들을 전혀 갖고있지 못하다. 여기서는 기껏해야 유한마담의 패션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은 젊은이의 패션과 유한마담의 패션이 전연 상관없는 곳이다. 서로의 삶도 상관없다.

나의 기억으로는, 80년대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스텔톤의 유행, 그리고 형광색의 스포츠웨어였다. 먼저 여자들이 파스텔톤을 입고, 남자들의 와이셔츠가 색깔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렸다. 80년대의 파스텔톤 물결은 의외로 imf로 인해 일찍부터 (98, 99년) 돌아왔지만, 벌써부터 (2000년) 시들하다. 파스텔톤은 물질적 안정과 번영을 두르고픈 중산층의 색이지 모험과 자극을 원하는 젊은 능력자들의 색은 아니다. 따라서 젊은이 패션에서는 그닥 큰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복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스포츠룩이다. 한동안 나이키 신발을 신은 자와 프로스펙스를 신은 자 사이의 계급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 워크맨과 함께 모든 청소년들의 또 어린이들의 패션의 중심에 놓인 것이 스포츠웨어 패션이었으니까, 이들이 지금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입장에서 다시 그 아이템을 불러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옛날에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씽씽이’를 세련된 외장으로 다듬어 새로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밀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 가능성을 한번 가늠해 보게 된다.

80년대는 풍요의 시대였고, 또한 정치적 억압과 반동의 시대였다. 80년대를 풍요의 시기로 만끽한 젊은이들과의 관계를 설정할 수 없는 곳에서, 80년대의 복고를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설혹 사대주의나 유행의 힘에 의해 어느 정도의 바람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헛바람일 것이라는게 나의 소견이다.  

역시 죽은 링크의 글을 올려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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