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란듀란 공연 맛있었다

명색이 80년대 팝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블로그인데도 듀란듀란의 공연 후기가 뒷북성이다. 뭐 사실 시급을 다투는 일도 아니고 꼭 이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이도 없을 것이고 이 블로그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


여하튼 듀란듀란은 80년대 음악을 들었다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속된 말로 ‘로망’이라 할 수 있다. 그날 공연장에서 10년 만에 만난 음악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이자.. 뭐 다양한 삶을 살고 계신 조모씨는 겉으로는 메탈키드의 행세를 하였으나 집에서 몰래 듀란듀란을 듣고 전율했다고 하셨듯이 사실 허다한 여성팬들만큼은 못하겠지만 남성팬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는 어떤 편이었냐 하면 이 블로그 대가리에 떡하니 불법 이미지를 장식한 모양새에 알 수 있듯이 대놓고 듀란듀란 팬이었다. 그 대신 메탈을 안 들었지. 한 20년간 나름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이유가 둘 다 듀란듀란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그 녀석 홍콩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듀란듀란 공연 못 볼뻔 했는데 홍콩에서도 공연한다고 신나했다.


서론 길었는데 여하간에 이러한 배경설명이 다소는 필요한 공연이었기에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은 작년 런던에서 열린 Pet Shop Boys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과 감동을 서울로 옮겨놓은 공연이었다. 둘 모두 칭송하고 존경하고 아껴오던 팀들이고 비록 21세기부터는 다소 챙겨주지 못한 면이 있으나 그 전까지는 한때 B면의 곡까지 챙겨들었던지라 테이프, LP, CD, mp3로나 듣던 곡들을 그렇게 큰 사운드로 듣는 것도 감지덕지할 판에 육성으로 듣다니! 그것도 내 앞에서 그 보컬의 주인공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말이다.


스탠딩에 자리 잡고 이리저리 공연풍경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에서 보던 추억을 먹고사는 아줌마 팬들의 모습이 압도적이다.(나는 다소 생뚱맞은 아저씨 팬일 테고) 예의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한 백인은 그의 양복 속에 불가사의할 정도로 많은 캔 맥주를 사와서는 동료랑 몰래 나눠 마시고 있었다. 라틴계 애인이랑 같이 온듯한 흑인청년이 있었는데 공연 내내 ‘니들이 음악을 알어?’라는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뭥미?


듀란듀란 멤버들은 오랜만에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서인지(물론 다른 곳에서도 그런 반응을 얻었겠지만 대형 공연에 많이 목말라 있는 우리나라 청중들의 반응은 그보다는 좀 더 오버하는 것 같고 그래서 공연자들이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이몬르봉이나 존테일러가 ‘멋지다’는 소리를 연발해가며 공연을 했다. 이런 모양새는 좀 보기 좋은 것으로 공연자와 청중이 궁합이 맞으면 공연이 스무드하고 윤기 좔좔 흐르며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바로 그날의 공연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뻑간 포인트는 역시 오리지널만큼이나 리믹스 버전도 유명한 The Reflex를 바로 그 리믹스 버전으로 부른 때였다. 물론 그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곡이 폭포수처럼 계속 쏟아져 공연 내내 정신이 혼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물론 조모씨가 말 한대로 오프닝 곡으로 조명 확 켜지며 ‘Please please tell me now’하고 외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여하튼 최근 비욕이나 마룬파이브 등 내가 왜 이런 내한공연이 있는 것에 신경도 안쓰고 있었을까 하는 공연을 몇 개 놓쳤는데 다 못 봐도 아쉬울 것이 없는 공연이었다. 생각같아서는 그들의 공연을 ‘앨범별 공연’, ‘B면곡 공연’. ‘언플러그드 공연’ 등으로 쪼개서 듣고 싶다. 그렇게 해줄 리는 없지만..


아리가또 듀란듀란

10 thoughts on “듀란듀란 공연 맛있었다

  1. Punk77

    역시 계셨군요.. 전성기 히트곡 어지간한거 다 연주한것 같아 기뻤습니다. 저도 스탠딩이었는데 어디 계셨는지.. 정말 오랜만에 공연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지막 기회 같아 모든 악조건 무릎쓰고 왔는데 3년후에 오면 감동은 좀 덜할것 같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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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니케

    저 아는 사람도 갔었는데, 너무너무 좋았던 나머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고 하더군요…
    부럽사와요. 주말에만 했어도 갈 수 있었을텐데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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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ikstipe

    STICKY님도 그 자리에 계셨군요…^^;; 조모씨는 아무래도 왕년 하이텔 80팝 동호회의 창립자였던 조.w.h.씨를 두고 말씀하시는 듯하구요….하긴.. 그 분도 이 자리에 빠지셨을리가 없겠죠…^^;

    저도 스탠딩 A구역에서 (존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위치에서) 얼마나 목놓아 그들 노래를 따라 불렀는지 모릅니다. 생애 가장 흥겹고 즐거운 공연을 봤음에도 마누라 몰래 표 사서 보러간 바람에 후기도 못 올리는 불쌍한 신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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