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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팝(synth pop)의 역사

□ 신디사이저(synthesizer)

이미 1870년대에 몇몇 사람들은 전기적으로 생산되는 음악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50년이 되어서야 보다 진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퀼른에 오직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만 세워진 스튜디오가 있었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1955년 미국 RCA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초기의 신디사이저는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려웠다. 1960년대에 진정으로 유용한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Don Buchla 와 Bob Moog 가 만든 것들이 그 예이다. Bog Moog 는 신스팝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사용된 미니무그(MiniMoog)나 그 밖의 작품과 같은 신디사이저 제작자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신디사이저의 생산은 대규모로 성장하였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아날로그였다. 모든 사운드는 신디사이저의 버튼이나 바(bar)와 같은 움직이는 컨트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로, 그리고 컴퓨터와 연결되는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MIDI 라고 불리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했다. MIDI 는 음질이나 박자 등에 관한 정보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사운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운드를 표현하는 숫자들을 보낸다. MIDI 는 이제 대부분의 퍼스널컴퓨터에 있다. 현대 신디사이저를 위한 가장 일상적인 사운드 소스는 샘플링이다. 예로 진짜 사운드의 디지털 녹음. 대부분 그것은 평범한 음악 악기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 추출된다. 때로는 상이한 기술이 섞이기도 한다.

□ 신스팝(synthpop)

1960년대 말 이미 유명한 뮤지션들은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Beach Boys 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음악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다. 1968년 최초의 신디사이저로만 연주된 레코드가 발매되었는데 Wendy Carlos 의 “Switched On Bach” 가 그것이다. 그것은 Moog 신디사이저로 바흐를 연주한 음악이었다. 독일에서는 Organisation 과 같은 실험적인 밴드가 1968년 조직되었다. 그들은 1970년 Kraftwerk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 당시 그들은 불협화음이지만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 독일에서 세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좀 더 리드미컬해지고 보다 이해하기 쉽게 변해갔다. 1974년 그들은 국제무대의 데뷔작인 “Autobahn”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와 음향효과가 결합된 20분 길이의 카드라이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 일곱 개의 앨범을 내놓는다. 그들은 신스팝의 스타일을 정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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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Michel Jarre 2008” by Jean michel jarre from flickr user littleO2.jpg: Daniele Dalledonne
derivative work: HekeruiJean michel jarre from flickr user littleO2.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8년 프랑스의 Jean-Michel Jarre 가 역시 일렉트로닉 음악을 시작했다. 예로 그는 오페라를 신디사이저와 결합하였고 이것이 1972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앨범 “Oxygene”은 1976년 발매되었다. 그는 클래식과 실험음악에 영향 받아 연주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대부분의 앨범은 통상적인 신스팝과 같은 튠을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그는 중국에서 공연을 가진 최초의 서방 음악가가 되었다. 1984년 앨범 ”Zoolook”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는 전 세계 30가지 언어가 샘플링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그는 우주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최초로 녹음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비행사이자 색스폰 연주자인 Ron McNair 가 우주선 챌린저를 타고가 우주에서 그와 함께 연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챌린저가 출발 후에 바로 폭발해버렸고 그의 녹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Jarre 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백만의 관중 앞에서 장대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열 장 이상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밖에 신디사이저를 초기에 많이 다룬 뮤지션으로 Brian Eno, Mike Oldfield, Pink Floyd, Tangerine Dream, Vangelis 등이 있다.

1970년대 말 특히 영국에서 신디사이저를 주된 악기로 쓰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Gary Numan, Ultravox, OMD, Human League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Kraftwerk 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Depeche Mode 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Vince Clarke 이 밴드를 떠나 Yazoo(미국에서는 Yaz라 불림)를 결성하고 후에 Erasure 를 결성한기 전까지는 1981년의 그들의 힛싱글 “Just Can’t Get Enough” 과 같은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신스팝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보다 멜랑콜릭해지고 어두워졌다. 다른 영국 밴드가 1981년 레코드를 내놓았는데 Duran Duran, Eurythmics, Tears For Fears, Thompson Twins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스팝의 일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악기도 사용했다. 캐나다에서 Rational Youth 나 스웨덴의 Adolphson-Falk 가 이와 같은 밴드들이었다. 1984년 Howard Jones, Nik Kershaw, 그리고 독일 밴드 Alphaville 과 같은 신스팝 아티스트들이 나타났다. 1980년대의 다른 신스팝 밴드로는 A-ha, Bronski Beat, New Order, Soft Cell, Visage, Yello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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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talking” by CHR!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4년 유로디스코라 불리는 팝음악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 특히 Scotch와 같은 이탈리아 밴드와 Modern Talking 과 같은 독일 밴드가 많았다. 유로디스코는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두었기에 신스팝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Pet Shop Boys 의 음악도 유로디스코로 불렸다. 1986년 신스팝의 기반이 약화되었고 이후 오직 신디사이저에 상당 정도 의지하여 만들어진 음악만 신스팝이라 불렸다. 신디사이저는 계속해서 팝음악의 주요한 악기로 자리잡았다. 유로디스코가 영국에 와서 Stock/Aitken/Waterman라는 팀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Kylie Minogue, Rick Astley, Bananarama, Dead Or Alive 와 같은 많은 아티스트를 위해 레코드를 프로듀스했다.  1987년 하우스 뮤직이 영국에 선을 보였다. 이 음악은 본래 시카고에서 출생하였다.(예로 Frankie Knuckles) 하우스는 신디사이저에 기반하여 모노톤과 음향효과가 가미된 댄스음악이었다.

1991년 테크노 음악이 벨지움과 네델란드에 선을 보였다. 이 장르는 본래 1980년대 중반 이후 연주되기 시작한(예로 Derrick May) 디트로이트가 출생지이다. 테크노 역시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댄스음악이지만 하우스보다 무겁고 어둡다. 독일에는 U96과 같은 아티스트가 있었다. 1992년 유로디스코가 독일로 돌아온다. 스타일은 좀 더 터프하게 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로듀서가 생산한 전형적인 유로디스코 밴드는 흑인 래퍼와 여성 싱어였다. 음악은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래핑, 그리고 심플한 코러스로 구성되었다. 유로디스코는 이제 가끔 ‘댄스’로만 불리울 뿐이었다.

Page, S.P.O.C.K, Sista Mannen Pa Jorden, This Fish Needs A Bike 가 유명한 스웨덴 신스팝 밴드다. Elegant Machinery, Daily Planet, Daybehavior, Encounter, Saft 등이 기타 신스팝 밴드이다. 보다 새로운 스타일의 신스팝 밴드는 미국의 Anything Box, 영국의 Mesh, 독일의 And One 등이 있다. Electronic, Saint Etienne, Kim Wilde 가 신스팝에 가까운 영국 아티스트이다. Melody Club, Kamera, Bobby 등은 신스팝에 가까운 신세대 스웨덴 아티스트이다.

http://www.synt.nu/history/

Ultra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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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ge April84” by Ohconfuciu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울트라복스(Ultravox)는 80년 초반 영국의 일렉트로-팝(Electro-pop) 음악의 물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그룹 중 하나이다. 74년에 결성된 이들은 초기에 보컬인 존 폭스(John Foxx), 기타의 스티브 쉬어즈(Steve Shears), 드럼의 워렌 캔(Warren Can), 베이스의 크리스 크로스(Chris Cross), 키보드, 신디사이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빌리 커리(Billy Currie)로 구성되었다.

76년 레코드사와 계약 후 첫 앨범을 발표했는데,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프로듀싱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미미하였으나, 영국 팝 역사에 끼친 영향은 후대에 인정을 받게 된다. 기타의 자리가 로빈 사이먼(Robin Simon)으로 교체된 후 발표한 앨범 [Systems of Romance]는 실망스런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소속 레코드사와의 계약은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폭스과 사이먼이 솔로 활동을 모색하던 중 남은 멤버들은 갈팡질팡했고 결국 그룹은 해체되었다. 한편 Midge Ure라는 인물을 우연히 만나게 된 커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전 멤버들과 함께 4인조의 울트라복스를 재건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의 시도는 ‘Sleepwalk’와 ‘Passing Strangers’의 미약한 성공을 시작으로 하여 ‘Vienna’가 발표되면서 비로소 성공을 맛보게 되었다. 수수께끼 같은 영상과 함께 발매된 이 곡은 음울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차트 2위까지 올랐다.

81년 ‘All Stood Still’, 82년 ‘Reap The Wild Wind’, 84년 ‘Dancing with Tears in My Eyes’ 등 이후 3년 동안 이들은 차트 20위 안에 연속적인 히트곡을 올려놓았다. 동시대의 듀란 듀란(Duran Duran)이나 스팬도 발레(Spandau Ballet)와 함께 로맨틱한 스타일을 들려주던 이들은 유럽 전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지만,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의 인기 수준을 확보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Ure의 솔로 활동은 성공적이었으나 그룹의 결속력은 약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앨범 [U-Vox](86) 발매 이후 이들은 5년 이상의 공백기간을 깨고 [Revelation](93) 앨범을 발표했으나 많은 이들의 외면을 당했다. 2년 후 [Ingenuity](95) 앨범을 발표하였다.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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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유어 전화인터뷰

신스 팝 그룹 ‘울트라복스’ 출신의 전천후 뮤지션

요즘 팝 팬들에겐 생소한 이름일 수밖에 없는 뮤지션이다, 미지 유어는. 그러나 80년대에 팝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세대에게 미지 유어는 그룹 울트라복스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로 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울트라복스 외에도 많은 그룹을 거쳤으며 밥 겔도프와 함께 그 유명한 프로젝트 그룹 ‘밴드 에이드’를 결성했고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를 주도했으며 몇 편의 뮤직 비디오의 감독까지 맡은 바 있는, 전천후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4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선보였던 미지 유어가 무려 4년 만에 솔로 앨범 MOVE ME를 발표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고수하면서도 일반 팬들이 듣기에도 부담이 없는 노래들을 담고 있는 앨범 MOVE ME 이야기, 이제까지의 음악 활동과 최신 근황 등을 미지 유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낱낱이 알아보았다.

– 먼저 새 앨범의 발매를 축하드립니다. 옛날 이야기부터 좀 시작하죠. ‘Salvation’이라는 밴드에서 처음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처음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또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좀 말해주세요.

프로페셔널한 음악을 시작한 것은 18세 때 ‘Salvation’에 들어가면서였지만 늘 음악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기타리스트로 들어갔지만 곧 보컬이 탈퇴하면서 제가 보컬을 맡게 되었지요.

– ‘Salvation’이란 밴드가 ‘Slik’이라는 밴드로 바뀌었고 밴드의 음악적 성격이 바뀌게 되자 이에 반발해서 탈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Sex Pistols’의 베이시스트인 글렌 매틀록이 이끌던 ‘Rich Kids’란 밴드에서 활동을 했는데 이 그룹에 가담하게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Slik’는 10대 지향적인 그룹이었고 넘버 원 음악을 갖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Rich Kids에 가담하게 된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이루어졌어요. 제가 글래스고에 있는데 런던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런던에 도착하자 그 자리에서 3곡을 녹음하고 그 날 밤 공연에 나갔지요. 심지어는 공연 중 불까지 나서 우리들은, 불로 축복받은 그룹이라고 느끼기도 했어요.

– 그룹 ‘Visage’를 거쳐 ‘Ultravox’에 가담했는데 당신의 음악 인생에 있어 ‘Ultravox’가 차지하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울트라복스는 정말 뛰어난 밴드였고 좋은 기억만 남아 있지요. 울트라복스??? 당시 최초로 전통 악기들과 드럼 머신 같은 일렉트로닉 기술을 가미해서 ‘원더풀 사운드’를 만들어냈어요. 그 때 음악은 정말 특별한 음악이었어요.

– 당신이 가장 음악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물은 누구입니까?

시기 별로 바뀌는데, 초기에는 60년대 밴드인 ‘Small Faces’가 있었고 그 다움은 데이빗 보위, 그리고 제가 기타에 관심을 쏟던 당시에는 지미 페이지와 에릭 클랩튼, 그리고 요즘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신서사이저에 푹 빠져 있어요.

http://music.kbsweb.co.kr/03_inter/ic0001152.htm#

디스코그래피
Vienna 1980
Rage In Eden 1981
Quartet 1982
Lament 1984
Rare, Vol. 1 1994
Rare, Vol. 2 1994
Future Picture 1995
Ingenuity 1996
Systems Of Romance 1997
Ultravox! 1999

링크
Official Site
Midge 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