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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Everything Counts 리메이크

Depeche Mode의 초기 히트곡 중 하나인 Everything Counts를 애들이 부른다면 어떨까?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비디오를 소개한다. 귀엽고 기발하고 그럴듯한 리메이크.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선 여자아이가 손담비 노래를 부른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시비가 붙었지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데, 이 비디오는 지적재산권에 문제가 없나 걱정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리메이크

Depeche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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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Hanks from Austin, Texas, USA – Depeche Mode, CC BY 2.0, Link

인구 20만명에 극장이라고 하나 밖에 없던 변두리마을에서 데뷔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을 작곡한 빈스가 디페쉬모드를 나가겠다고 하자 주변사람들은 혹시 그룹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지만 그 는 “나보다 더 뛰어난 송라이터 마틴이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필요가 없다”고 우려를 잠재웠다.사실 그의 말대로 디페쉬 모드는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빈스는 이후에 1982년 Yazoo를 결성하여 활동 하다가 1983년 다시 해산,1985년도에 오늘날의 Erasure란 그룹을 탄생시켜서 활동중에 있다.

앤디가 그룹을 탈퇴하고 나온후 디페쉬모드의 음악은 마틴의 독특한 작곡법 덕분으로 오늘날까지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디페쉬모드는 곧 새 키보드플레이어 앨런와일더(Alan Wilder)를 영입하여 다시금 진용을 갖춘다.당시만 해도 앨런와일더는 임시 멤버같은 처지였지만 이후 그가 리코일 (Recoil)이란 프로젝트 활동을 하기 위해 잠시 탈퇴한 것을 빼면 최근까지 세 멤버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해오게된다.

팝적인 단순미를 선호하는 빈스 클락의 취향과과는 현격히 차이를 보이는 앨런 와일더의 셈세한 감각은 1982년의 두번째 앨범’A broken Frame’과 다음해 발표한 세번째 앨범 ‘Construction Time Again’그리고 “People are People”의 세계적인 히트로 유명해진 앨범 ‘Some Great Reward'(review)에 이르기 까지 마틴 고어의 드라마틱한 작곡이나 데이빗 간의 깊고 어두운 목소리와 함께 신스 팝의 새로운 지 평을 얻었다.특히 ‘Some Great Reward’는 “People are People”외에도 “Blasphemous Rumours”, “Master And Servant”등의 싱글들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연이은 앨범들 즉 ‘Black Celebration’,’Music For The Masses’는 디페쉬 모드의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들 이다.

1986년에 발표된’Black Celebration’은 그다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마치 한편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멋진 구성미를 갖추어 그들의 프로그레시브한 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다. 이듬해의 ”Music For The Masses’는 그때까지 가장 커다란 상업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었다. 초창기 앨범들의 곡을 썼던 빈스의 활발한 댄스음악적 스타일에 비해 마틴이 맡게 된 디페쉬 모드 의 사운드는 진지하고 엄숙해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디페쉬모드의 음악적 개성이 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매년 1장씩 꾸준히 전개되었던 이들의 사운드는 나날이 발전해 가는 새로운 기종의 신서사이저 덕으로 보다 커진 스케일의 새로운 곡들을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표현법으로 선보여왔다. 이들의 계속되는 실험적인 전자사운드는 많은 비판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노리는 음악으로까지 평가절하 되기도 하였는데 90년 초에 발표한 역작 ‘Violator’는 그런 이미지를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

다니엘 밀러 대신 플러드(Flood)와 함께 제작했던 ‘Violator’에서는 “Policy Of Truth”, “Personal Jesus”, “Enjoy the Silence”, “World In My Eyes”등이 싱글로 사랑을 받았다. 예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색다른,세련되고 어두운 분위기와 뉴 웨이브 모델로 새로운 팬들을 끌어 들이기도 한 ‘Violator’의 세계적인 성공은 이후 1993년 발표한’Songs of Faith & Devotion’ 을 발매 첫주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I Feel You”, “Walking In My Shoes”,”In Your Room”등의 메가 히트로 ‘Songs Of Faith & Devotion’은 비틀즈의 첫번째 앤솔로지 앨범이 나오기 이전까지 1993년 유일하게 미국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영국앨범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성공뒤에 그들은 몇가지 위기를 겪게 되는데, 1993년에서 다음해로 이어지는 ‘Devotion Tour’로 고어와 플레처는 지칠대로 지쳤고 임시 멤버로 들어와 눌러앉아서는 그들과 13년간 이나 함께 생활해 온 앨런 와일더는 탈퇴를 선언했다. 데이빗 간 역시 정서적으로 문제가 심각해져서 자해를 하거나 약물과다복용으로 경찰에 연행되는 등 안좋은 일들은 연달아 일어난다라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악재가 이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96년 데이빗 간이 약물에서 벗어났다는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그들은 새앨범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통산 12번째 앨범인 ‘Ultra’는 4년간의 스튜 디오 작업의 결과물이다. 프로듀서는 또한번 바뀌 었는데, 수년간 디페쉬 모드의 곡들을 리믹스해왔던 밤 더 베이스(BAMB THE BASS)의 배후세력 팀 심논(Tim Simenon)이 바로 그이다. 힙합 리듬을 차용하여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첫 싱 글 “Barrel Of A Gun”에서 특히 팀의 역량은 십분 드러난다. 기발매된 이 싱글의 리믹스들 중 두개는 언더월드(UNDERWORLD)에 의해 만들어지기도했다.사근사근한 댄스 비트에 드라마를 싣고 있는 “It’s No Good”이나, 신비로운 흐름을 가진 “Uselink” 와 “Useless” 의 연결, 그리고 페달 스틸 기타가 한껏 애수를 느끼게 하는 “The Bottom Line”, “Home”, “Free- state”, “Insight”등 지금까지 토탈3천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베테랑답게 이번 앨범에서도 그들은 그 어둡고 깊은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펼쳐내고 있다.

이들의 히트곡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인기있는 수많은 그룹들에 의해서 다시 리메이크되어서 Tribute Album형태로 나오기도 했는 데 이앨범에 참가한 그룹들을 보면,Smashing Pumpkins,The Cure,Rammstein등의 소위 잘나가고 있는 쟁쟁한 그룹들이 참가하였고 인터뷰에서도 DM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98년10월에 이들의 3번째 베스트 앨범격이 되는 ’86-98 싱글베스트’ 앨범을 내놓고 다시 새 로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발표한 이 베스트 앨범에선 그야말로 히트중의 히트곡만을 모아 놓은듯하며 여태까지 DM의 앨범을 단 한장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앨범 한장이면 충분할것으로 보 일만큼 팬들에게 만족스런 앨범이 될것이다.

2001년 Exciter와 함께 돌아온 그들이 이제는 어느새 거장의 소리를 듣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디스코그래피
1981 Speak and Spell Sire
1982 A Broken Frame Sire
1983 Construction Time Again Sire
1984 People Are People [US] Sire
1984 Some Great Reward Sire
1985 The Singles 81 ~ 85
1986 Black Celebration Sire
1987 Music for the Masses Sire
1990 Violator Sire
1991 We Just Can’t Get Enough [live] MTT
1993 Songs of Faith & Devotion Sire
1993 Songs of Faith and Devotion Live Sire
1995 Depeche Mode Mute
1997 Ultra Reprise
1998 Speak & Spell [Germany] EMI
2001 Exciter Warner
2005 Playing The Angel Sire/Reprise/Mute
2006 Touring the Angel: Live in Milan [CD/DVD] Reprise / Wea
A Broken Frame [10 Tracks] Mute
2009 Sounds of the Universe Capitol
2013 Delta Machine
2017 Spirit
2023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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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ouf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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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ouflage 2011” by JeanNeef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독일의 synth-pop 트리오 Camouflage는 1984년 보컬 Marcus Meyn와 키보디스트/프로그래머 Heiko Maile, Oliver Kreyssig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룹은 1986년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송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첫앨범이 발매되기도 전에 싱글 “The Great Commandment”가 차트를 누비고 다녔다. 첫앨범 Voices and Images는 1988년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그들이 Depeche Mode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뚜렷이 알 수 있다. 1989년 발매된 Methods of Silence을 통하여 싸운드의 칼라가 보다 넓어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DM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긴다. 이후 Oliver Kreyssig가 그룹을 떠났다. 남은 둘은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고용하여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1991년 Meanwhile을 발표한 그들은 그런지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컬리지 래디오에서 호응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93년 Bodega Bohemia는 씬쓰싸이저에 보다 집착하면서도 이전 작업에 비해 더욱 어두어진 음악을 선보인다. 1995년에 발표한 Spice Crackers에는 아예 앨범 대부분을 인스트루멘탈로 채워버렸다. 2006년 신보 Relocated를 내놓았다.

디스코그래피
1988 Voices and Images
1989 Methods of Silence
1991 Meanwhile
1993 Bodega Bohemia
1995 Spice Crackers
2003 Sensor
2006 Motif Sky
2006 Relo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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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eche Mode 트리뷰트 앨범

Depeche Mode 팬들이 모여서 “MODEified by 7″라는 트리뷰트 앨범을 만들었다. 거의 만들었다고 한다. 2월 초에 발매될 예정이고 관련 웹사이트( http://www.commline.com/MODEified/m7/ )에서도 무료로 다운로드가 가능할 것 같다.


  • Fuckware – Stories of Old
  • Cliché – Rumores Blasfemos (Blasphemous Rumors)
  • Myra Hope Graber – Freelove
  • Dossiers Secrets – But Not Tonight
  • Darkly Dreaming – Love In Itself
  • Brave New World – Strangelove
  • Das Overman Projekt – It Doesn’t Matter Two
  • Micah Stupak – Now This Is Fun / In Your Memory
  • Phase Theory – Policy of Truth / Clean
  • Endless Comes Later – Things You Said
  • The Echoing Green – Here is the House
  • Delobbo – Home
  • Louis Guidone – Photographic / Ice Machine
  • Storybox – Lie To Me
  • Blind Before Dawn – The Sun and The Rainfall / Rush
  • A New January – Two Minute Warning
  • Lakeside X – Nothings Impossible /
  • Love|less – Television Set / It’s No Good
  • James D. Stark – Higher Love
  • Jason Coy – Barrel of a Gun / Only When I Lose Myself / Something To Do
  • Star 5 (Alex Reed) – Sun and The Rainfall / Sea Of Sin / Lie To Me / I Am You
  • Terminal Bliss – World In My Eyes
  • Color Theory – I Am You (MODEified Mix)
  • Solar Plexus a.k.a Sekta77 – Lillian (In the forest, running barefoot mix)
  • The Encomium Effect – Here Is The House
  • Perihelion + Dasein – Suffer Well
  • Bobby/Synthetik FM Featuring Purveyor (Gary Fisher) – Any Second Now
  • CoveInsight – Stripped Instrumental / I Feel Loved (Factory Mix)
  • Rafi Kharman – Happiest Girl
  • Fuzzy Monsters – Sweetest Perfection / Question of Time
  • Glezpik – Tora! Tora! Tora! / New Dress / Lillian / Sea of Sin / Sometimes
  • Interferencia – Enjoy the silence / Things You Said / Insight
  • osc1 – Precious
  • Benthic – Kaleid
  • Envy The Machine – But Not Tonight
  • DeVo – Fly On The Windscreen / Stjarna

숫자가 들어간 노래제목?

Stray Cats – (She’s) Sexy & 17

외국에서는 17세를 가장 아름다운 나이로 보는 모양이죠?(청소년 성매매??!!) 그래서 유난히 열일곱살을 강조하는 노래가 몇몇 있는거 같은데… “17! 17! But she’s sexy~”라는 후렴구를 외치던 노래도 기억나네요.

Janis Ian – At Seventeen

여기서 17은 앞곡과는 달리 소년기의 우울함을 주제로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음.. 질풍노도의 시기죠.

Steely Dan – Hey Nineteen

뛰어난 음악성을 과시하던 스틸리댄의 83년도 곡입니다. 그들의 노래는 묘한게 쉽게 꺼내듣지는 못하지만 일단 플레이를 하면 음악에 빠져들어 쉽게 중지시킬 수 없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여담이지만 스틸리댄은 딜도의 슬랭이라죠.

Depeche Mode – Route 66

미국에 실재로 존재하는 66번 도로를 주제로 한 노래로 컨트리풍의 오리지날을 디페쉬모드가 씬쓰팝 스타일로 리메이크했죠. 한때 미국학부모협회인가 뭔가 하는 데서 이 노래에 6이 두번이나 반복되었다고 악마적 성향이 있는 노래라고 규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테트리스의 긴 막대기가 성기를 연상시킨다며 테트리스 게임이 외설적 게임이라던 울 나라 시민단체 아줌마들과 한번 계모임이라도 해야 할텐데 말이죠.(조리퐁은 왜 파나 몰라?)

Paul Hardcastle – 19

테크노인스트루멘탈로 사회부조리를 고발했던 특이한 노래입니다. 얼마전에 보드 어디선가 어떤 분도 설명해주셨다시피 19는 1차대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의 평균연령이라죠. 슬픈 일입니다.

Prince – 1999

1999라는 숫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제 친구중에 그때 세상망한다고 엘란을 산 녀석이 있습니다)과 밀레니엄이라는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666과 함께 상당히 악마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숫자입니다. 그런 1999가 프린스를 만나면서 에로틱한 숫자로 바뀌었습니다.(그를 만나면 뭐든 안그러겠습니까만은…)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인트로에서 “1999년 20년뒤~ 20년뒤~”라는 가사가 나와서 노래가 발표된 해는 확실히 기억시켜주는 노래죠.

Prince – I would die 4 u

여기서 4는 사실 숫자라기 보다는 For의 발음이 4와 같다는데서 착안한 글자장난이라고 할 수 있죠. U도 마찬가지이고… 이때부터 이름을 그렇게 요상하게 바꾸리라는 것을 알아봤어야 되는데…

[다시] Billy Idol의 Sweet sixteen (서양도 이팔청춘주의아닌가 싶은데). Skid Row의 18 & life, Proclaimers의 500 miles, (666얘기가 나와서)Helloween신보 Dark Ride에 Escalation 666이.Suzanne Vega의 화씨99.9도 있네요. -09월06일-
[lupin]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은 세상을 너무 일찍 혹은 늦게안 ugly duckling 소녀에 관한 이야기 노래 시작이 이렇게 되조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 that love was meant for beauty queen..’ -09월06일-
[moz] 우리나라에도 낭랑18세라는 불후의 명곡이 있군요. 90년대 초인가 어떤 여가수가 톡톡 튀는 보컬로 리메이크한적이 있었죠.. 그 노래 그때 자주 들었는데.. 그런 반짝스타들의 근황이 참 궁금할때가 있어요.(주로 일하기 싫을때) -09월06일-
[moz] Bryan Adams의 Summer of ’69 도 있군요. 1969년은 여러모로 서양사람들에게 애틋한 연도인 모양입니다. -09월06일-
[다시] 많은 사람들이 불른 one도 있군요. -09월07일-

originally posted at 2003.12.20

80년대 음악과 가수에 대한 사소한 사실들

Flock of Seagulls
Flock of Seagulls은 익조틱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룹의 리드싱어는 그룹을 조직하기 전에 헤어드레서였다.


Sting
스팅은 Dire Stratits의 Money For Nothing에서 “I want my Mtv” 부분을 불렀다.


Bow Wow Wow
그들은 멤버 한명을 그룹에서 떠나줄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직설적이었고 그룹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Boy George이다.


Johnny Hates Jazz
리드싱어 Phil Thomalley는 The Cure의 초기멤버였다.


Icehouse
그들의 히트곡 Electric Blue는 John Oates가 공동작곡했다.


Wham
그들의 히트곡 The Edge Of Heaven의 피아노는 Elton John이 담당했다.


U2
그들의 최고 히트앨범 The Joshua Tree는 원래 The Two Americas로 이름지으려 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내쇼날파크에서 여호수아 나무의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의 맘을 바꿨다.


Chaka Kahn
그녀의 최고의 히트싱글 I Feel For You는 Prince가 작곡하였다. 또한 이 곡의 하모니카 솔로는 Stevie Wonder가 소화해냈다.


Madonna
그녀는 1982년 The Breakfast Club이란 밴드의 리드싱어였다.


Robert Palmer
그의 히트싱글 Addicted to Love는 원래 Chaka Kahn과의 듀엣곡이었다.


New Order
그들의 싱글 Don’t Do It의 끝부분에 영화 엑소시스트의 대사 일부분을 백워드하여 삽입하였다.


The Cure
큐어의 키보디스트인 Roger는 한때 Thompson Twins에 몸담았다.


The Police
교사에서 가수로 전업한 스팅이 처음 몸담은 그룹 이름은 Last Exite였다.


Janet Jackson
무명시절 그녀는 “페임” TV 씨리즈에서 댄써였다.


Siouxie and the Banshees
큐어의 로버트스미쓰는 때때로 이 밴드의 드럼을 맡았다.


Depeche Mode
프랑스어로 Depeche Mode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패션잡지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뜻은 ‘빠른 패션(?)(fast fashion)’이다.


Art of Noise
1989년에 Tom Jones와 팀을 이룬 Art Of Noise는 Prince의 Kiss를 리메이크했다. 역시 1990년에는 Nothing Compares To You를 리메이크했고 커버버젼이 오리지날보다 더 팔렸다.


Heaven 17
Heaven 17은 1980년 결성되었는데 처음 그들의 이름은 A Clockwork Orange였다.


B52’s
그들의 이름은 B52라 불리우는 벌집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따왔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원래 밴드 이름은 Hollycaust였는데 곧 Frank Sinatra의 영화 인생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Spandau Ballet
Spandau Ballet가 1990년 해산한 뒤, Gary Kemp는 배우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는데 The Bodyguard, The Larry Sanders Show, Embrace of the Vampire 등에 출연하였다.


Duran Duran
Duran Duran이 공연을 하기 시작한 클럽 이름은 Barbarella였다. 클럽의 이름은 Duran Duran 이 그룹의 이름을 따온 바로 그 영화의 이름과 똑같다.


Freddie Mercury 와 Thriller
Freddie Mercury가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위해 한 트랙을 녹음했다는 설이 많았지만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Beat It 의 키타리스트
Michael Jackson의 Beat It 의 키타를 담당했던 사람은 Eddy Van Halen이다.


Kim Wilde
Kim Wilde의 본명은 Kim Smith이다.


Johnny Cougar
John Mellencamp는 예명을 ‘Johnny Cougar’로 바꾼데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이름을 본명으로 바꾼 뒤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John Cougar Mellencamp라고 바꿨다.


Bananarama/Shakespear’s Sister
1987년에 Bananarama의 전멤버였던 Siobhan Fahey는 Dave Stewart (Eurythmics)와 결혼했다. 뒤에 그녀는Marcella Detroit와 함께 Shakespear’s Sister를 결성했다

신스팝(synth pop)의 역사

□ 신디사이저(synthesizer)

이미 1870년대에 몇몇 사람들은 전기적으로 생산되는 음악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50년이 되어서야 보다 진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퀼른에 오직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만 세워진 스튜디오가 있었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1955년 미국 RCA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초기의 신디사이저는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려웠다. 1960년대에 진정으로 유용한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Don Buchla 와 Bob Moog 가 만든 것들이 그 예이다. Bog Moog 는 신스팝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사용된 미니무그(MiniMoog)나 그 밖의 작품과 같은 신디사이저 제작자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신디사이저의 생산은 대규모로 성장하였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아날로그였다. 모든 사운드는 신디사이저의 버튼이나 바(bar)와 같은 움직이는 컨트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로, 그리고 컴퓨터와 연결되는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MIDI 라고 불리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했다. MIDI 는 음질이나 박자 등에 관한 정보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사운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운드를 표현하는 숫자들을 보낸다. MIDI 는 이제 대부분의 퍼스널컴퓨터에 있다. 현대 신디사이저를 위한 가장 일상적인 사운드 소스는 샘플링이다. 예로 진짜 사운드의 디지털 녹음. 대부분 그것은 평범한 음악 악기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 추출된다. 때로는 상이한 기술이 섞이기도 한다.

□ 신스팝(synthpop)

1960년대 말 이미 유명한 뮤지션들은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Beach Boys 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음악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다. 1968년 최초의 신디사이저로만 연주된 레코드가 발매되었는데 Wendy Carlos 의 “Switched On Bach” 가 그것이다. 그것은 Moog 신디사이저로 바흐를 연주한 음악이었다. 독일에서는 Organisation 과 같은 실험적인 밴드가 1968년 조직되었다. 그들은 1970년 Kraftwerk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 당시 그들은 불협화음이지만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 독일에서 세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좀 더 리드미컬해지고 보다 이해하기 쉽게 변해갔다. 1974년 그들은 국제무대의 데뷔작인 “Autobahn”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와 음향효과가 결합된 20분 길이의 카드라이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 일곱 개의 앨범을 내놓는다. 그들은 신스팝의 스타일을 정형화시켰다.

Jean Michel Jarre 2008.jpg
Jean Michel Jarre 2008” by Jean michel jarre from flickr user littleO2.jpg: Daniele Dalledonne
derivative work: HekeruiJean michel jarre from flickr user littleO2.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68년 프랑스의 Jean-Michel Jarre 가 역시 일렉트로닉 음악을 시작했다. 예로 그는 오페라를 신디사이저와 결합하였고 이것이 1972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앨범 “Oxygene”은 1976년 발매되었다. 그는 클래식과 실험음악에 영향 받아 연주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대부분의 앨범은 통상적인 신스팝과 같은 튠을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그는 중국에서 공연을 가진 최초의 서방 음악가가 되었다. 1984년 앨범 ”Zoolook”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는 전 세계 30가지 언어가 샘플링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그는 우주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최초로 녹음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비행사이자 색스폰 연주자인 Ron McNair 가 우주선 챌린저를 타고가 우주에서 그와 함께 연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챌린저가 출발 후에 바로 폭발해버렸고 그의 녹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Jarre 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백만의 관중 앞에서 장대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열 장 이상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밖에 신디사이저를 초기에 많이 다룬 뮤지션으로 Brian Eno, Mike Oldfield, Pink Floyd, Tangerine Dream, Vangelis 등이 있다.

1970년대 말 특히 영국에서 신디사이저를 주된 악기로 쓰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Gary Numan, Ultravox, OMD, Human League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Kraftwerk 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Depeche Mode 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Vince Clarke 이 밴드를 떠나 Yazoo(미국에서는 Yaz라 불림)를 결성하고 후에 Erasure 를 결성한기 전까지는 1981년의 그들의 힛싱글 “Just Can’t Get Enough” 과 같은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신스팝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보다 멜랑콜릭해지고 어두워졌다. 다른 영국 밴드가 1981년 레코드를 내놓았는데 Duran Duran, Eurythmics, Tears For Fears, Thompson Twins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스팝의 일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악기도 사용했다. 캐나다에서 Rational Youth 나 스웨덴의 Adolphson-Falk 가 이와 같은 밴드들이었다. 1984년 Howard Jones, Nik Kershaw, 그리고 독일 밴드 Alphaville 과 같은 신스팝 아티스트들이 나타났다. 1980년대의 다른 신스팝 밴드로는 A-ha, Bronski Beat, New Order, Soft Cell, Visage, Yello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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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talking” by CHR!S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4년 유로디스코라 불리는 팝음악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 특히 Scotch와 같은 이탈리아 밴드와 Modern Talking 과 같은 독일 밴드가 많았다. 유로디스코는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두었기에 신스팝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Pet Shop Boys 의 음악도 유로디스코로 불렸다. 1986년 신스팝의 기반이 약화되었고 이후 오직 신디사이저에 상당 정도 의지하여 만들어진 음악만 신스팝이라 불렸다. 신디사이저는 계속해서 팝음악의 주요한 악기로 자리잡았다. 유로디스코가 영국에 와서 Stock/Aitken/Waterman라는 팀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Kylie Minogue, Rick Astley, Bananarama, Dead Or Alive 와 같은 많은 아티스트를 위해 레코드를 프로듀스했다.  1987년 하우스 뮤직이 영국에 선을 보였다. 이 음악은 본래 시카고에서 출생하였다.(예로 Frankie Knuckles) 하우스는 신디사이저에 기반하여 모노톤과 음향효과가 가미된 댄스음악이었다.

1991년 테크노 음악이 벨지움과 네델란드에 선을 보였다. 이 장르는 본래 1980년대 중반 이후 연주되기 시작한(예로 Derrick May) 디트로이트가 출생지이다. 테크노 역시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댄스음악이지만 하우스보다 무겁고 어둡다. 독일에는 U96과 같은 아티스트가 있었다. 1992년 유로디스코가 독일로 돌아온다. 스타일은 좀 더 터프하게 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로듀서가 생산한 전형적인 유로디스코 밴드는 흑인 래퍼와 여성 싱어였다. 음악은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래핑, 그리고 심플한 코러스로 구성되었다. 유로디스코는 이제 가끔 ‘댄스’로만 불리울 뿐이었다.

Page, S.P.O.C.K, Sista Mannen Pa Jorden, This Fish Needs A Bike 가 유명한 스웨덴 신스팝 밴드다. Elegant Machinery, Daily Planet, Daybehavior, Encounter, Saft 등이 기타 신스팝 밴드이다. 보다 새로운 스타일의 신스팝 밴드는 미국의 Anything Box, 영국의 Mesh, 독일의 And One 등이 있다. Electronic, Saint Etienne, Kim Wilde 가 신스팝에 가까운 영국 아티스트이다. Melody Club, Kamera, Bobby 등은 신스팝에 가까운 신세대 스웨덴 아티스트이다.

http://www.synt.nu/history/

Depeche Mode / The Singles 81 ~ 85

Depeche Mode - The Singles 81-8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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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앨범 “The Single 81 ~ 85″는 모두 13곡(이중 “Master & Servant”는 국내발매 당시 금지곡)의 싱글을 발매순으로 엮은, 그들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앨범이다. 다음은 “No. 1 Chronicles”란 곳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기사로 예음에서 발매된 국내음반 내지에 실린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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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ing Of Me(1981년 2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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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노래가 발표될 무렵에 우리는 18세 내지 19세였습니다. 이 음악을 만들면서 우리는 커다란 기대나 흥분은 없었습니다. 차트에 오르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만 레코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이 곡을 만든 후 “Scamps”라는 클럽에서 틀었을때 우리 친구들은 최고의 작품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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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Life(1981년 6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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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을 만들면서 우리는 이 곡이 차트에 랭크되는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Martin : “Dreaming Of Me”의 예상외의 성공에 저희도 놀랐으며 저희들의 작업에 자신을 가졌습니다.
Dave : 출판업자로부터 우리 모두가 계약금을 받을 땐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이 돈을 받고 우리는 우습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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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Can’t Get Enough(1981년 9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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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이 당시에 당신들이 뉴로맨틱(New Romantics)계열에 속했다고 봅니까?
Dave : 우리는 미래파였어요. 왜냐하면 항상 개성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곧 미래파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뉴로맨틱이란 말로 표현된 모든 사람들은 같은 것을 찾고 있었어요. 뜨거운 열망으로 …. 미래파들은 모두 펑크(Punk)의 범주에 속했어요. 그 당시 우리가 추구한 바로 그것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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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You(1981년 1월)
Martin Gore, A Broken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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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 이 곡이 내가 쓴 첫번 싱글곡입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내가 이곡을 쓸때가 17살이었어요. 돌이켜보니 빈스(Vince Clarke : 이 팀을 떠나 Yazoo를 결성했음)가 우리 팀을 떠난 것이 우리에게 훌륭한 싱글곡 하나를 만들게 해준 것이 됐어요.
No. 1 : 이것은 슬픈 내용을 노래하고 있던데?
Dave :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노래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슬프게 전달되었어요.
No. 1 :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댄쓰음악을 기대해 왔는데요.
Martin : 우리는 항상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 곡은 유달랐던 것 같습니다.
Dave : 이 당시 우리는 이 곡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Martin :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형태는 절대 계속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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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 In Silence(1982년 8월)
Martin Gore, A Broken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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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왜 이당시 당신들의 싱글 재킷에 당신들의 사진을 싣지 않았나요?
Andy : 우리는 얼굴을 앞세운 그룹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로 사람들이 우리의 이미지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음악을 찾아 주길 바랬습니다. 예를 들어 듀란듀란의 첫앨범 재킷을 예로 들어 그들은 그런 것에 반드시 후회를 할겁니다.
Dave :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재킷이었어.
No. 1 : 그렇다면 왜 당신은 비디오에 얼굴을 비쳤나요?
Andy : 우리가 비디오를 제작한 것은 단지 우리의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필히 비쳐야 한다는 요청때문에…
Dave : 모호한 말같지만 그것은 Duran Duran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No. 1 : “Leave In Silence”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Dave : 그것은 싱글로서는 독특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는 음악중 하나일뿐입니다. “A Broken Frame”이란 앨범은 전체적으로 매우 어두운 분위기로 엮어져 있지요. 특히 “Leave In Silence”란 곡에는 멜로디, 음향, 무드 등 많은 것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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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Counts(1983년 7월)
Martin Gore, Constructi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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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 이 곡은 우리들에게 또다른 의도의 싱글곡입니다.
Andy : 우리가 이전에 실험적인 의도로 가능한한 다양하고 새로운 음향의 모색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와 유사한 그룹이 많아져 이 곡에서는 또 다른 사운드의 영역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Alan : 우리는 또한 우리 모두들의 극히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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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Itself(1983년)
Martin Gore, Constructi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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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에서의 보컬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개인적으론 불만도 많이 있는 곡이기도 하죠. 좀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곡이었는데…
Andy : 이 곡을 만들때 우리들의 장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부드러운 사운드만 담았어요. 조금 무거운 분위기도 표현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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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The Balance Right(1983년 1월)
Alan Wi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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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알란, 이 곡은 이 팀에서 당신이 쓴 첫번째 싱글곡인데 당신은 어떤 새로운 점을 표현하려 했나요?
Alan : 예. 이 곡은 첫싱글 곡입니다만 제 생각엔 커다란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선의 작품이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Martin : 사실 이 곡은 우리들 곡중에 가장 약한 곡일겁니다.
Andy : 우리들에겐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요. 준비없이 일을 벌려 놓은 것 같은 그런 문제들이…
Alan : 나는 일년여 이 곡에 열중했지만 제가 차분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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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re People(1984년)
Martin Gore, Some Great R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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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 이 곡을 만들땐 매우 기대가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베를린으로 가서 그곳 스튜디오의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는 새삼스럽게 이 곡이 춤곡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다른 춤곡과는 또다른 독특한 사운드를 연출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곡을 강한 사운드와 함께 진정한 소울을 겸비하려 애썼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작업은 우리에게 귀중한 시간이었고 또한 좋은 결과도 보았죠.
Dave : 이 곡이 미국에서의 첫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유럽에 비해 매우 늦게 미국에 소개되었지만 미국에서도 놀랄만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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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sphemous Romours(1984년)
Martin Gore, Some Great R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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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 우리가 미국에 갔을때 이 곡의 노랫말이 좋다는 편지를 무척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선 전혀 상반된 편지를 많이 받았죠.
Alan : 유럽에선 그런 이유가 그들은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Martin : 노래 제목에 “Blasphemous(신을 모독하는)”이란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연합(Christian Association)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우리가 무었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한다는 응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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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 The Disease(1985년)
Martin G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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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먼저의 몇몇 히트곡들을 제작할때 우리는 그 곡에만 전념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순회공연을 하면서 제작도 병행하였었죠. 그러나 이 곡에는 다른 일없이 우리 모두 전념할 수 있었어요.
Alan : 이 곡은 훌륭한 곡입니다. 히트가 되든 안되든 우리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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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Called A Heart(1985년)
Martin G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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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은 우리들의 최신곡입니다. 우리가 다른 많은 곡들을 만들 때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보충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No. 1 : 왜 싱글곡들의 모음집을 만드셨나요?
Dave : 일단 우리의 음악의 일단락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앨범 제작에 열중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sticky)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png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ute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영국 Essex 출신의 Martin Gore는 교환유학생으로 독일의 Schleswing Holstein의 농가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적이 있어서 그가 독일을 선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Martin은 200파운드로 야마하의 신디사이저를 구입하고, Andrew Fletcher, Vince Clarke와 셋이서 신디사이저 1대, 기타 2대를 가지고 밴드를 결성했었다. Andrew는 Martin과 학교 동급생이었고(Yazoo의 Alison Moyet도 동급생이었다) 그가 최초로 참가했던 밴드는 No Romance In China라고 하는 Vince가 있던 것이었다. 또 다른 듀오 French Look 이후 Composition Of Sound란 이름으로 Martin의 야마하 신디사이저를 믿고 결성되었던 밴드는 오디션에 의해 David Gahan을 받아들여 4인조가 된다. 깡마른 펑크소년 David은 이 오디션에서 David Bowie의 Heroes를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Southend Art College의 학생이었던 David이 가지고 왔던 프랑스 패션잡지 Depeche Mode(Fast Fashion이라는 뜻)를 그룹명으로 쓰면서 보컬과 3인의 신디사이저라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다. 그들의 레코드 데뷰는 Some Bizarre 레코드에서 나왔던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Photographic이었다. 그리고 Fad Gadget를 서포트하며 클럽을 순회하다가 Mute 레코드의 사장과 만나게 된다. 그가 Daniel Miller로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하다(Depeche Mode와 Gareth Jones가 함께 한다) 첫번째 싱글에 Dreaming Of Me가 결정되었고 인디 차트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Mute에 남기로 한 그들은 초기 레코드를 홍보하기 위해 투어를 많이 다녔다. 그러자 대부분의 곡을 썼고 스튜디오 작업을 좋아하던 Vince는 그룹을 떠나게 된다(그는 Yazoo와 Assembly, Erasure로 활동하게 된다) Martin Gore가 대신 곡을 쓰고 Alan Wilder가 참여하면서 비로소 정규 멤버를 구성하게 된 Depeche Mode는 몇장의 앨범을 내지만 ’84년 앨범 Some Great Reward로 미국차트 상위에도 진출하여 명실상부하게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의 하나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내용도 담은 앨범은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로도 나왔었지만 Master And Servant 같은 것은 금지곡으로 삭제당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인더스트리얼의 느낌이 강하고, 독일 베를린의 Hansa Mischraum에서 녹음과 믹스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CD에서는 모르겠지만 LP 뒷면 사진에는 작게 ‘The world we live in and life in general’이라고 쓰여 있다. 참고로 그들의 인기에 힘입어 후에 앨범 People Are People, Catching Up With Depeche Mode와 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지만 만족도가 떨어지는 베스트 앨범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

From Nubeat

Yazoo

Vince Clarke and Alison Moyet of Yazoo (1982).jpg
Vince Clarke and Alison Moyet of Yazoo (1982)” by http://www.yazooinfo.com/photos.html.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영국에서 결성된 Yazoo는 Vince Clark과 Alison Moyet으로 구성된 2인조 혼성 듀엣이다. 빈스클락은 야주를 결성하기 전에 Depeche Mode에서 리더로 활동하던 뮤지션이다. 그는 이 그룹에서 많은 히트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공 분야가 컴퓨터였으므로 자신의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활용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룹을 탈퇴하고 앨리슨모엣과 함께 야주를 만들어 그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갔다.

Alison Moyet은 학창 시절부터 리듬앤블루스에 심취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London College Of Furniture에 입학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정립시켰던 맹렬 여성이었다. 이와 같이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사람이지만 1982년 데뷔앨범 Upstairs At Eric’s를 발표하여 유럽 최고의 일렉트로닉 팝 그룹으로 명성을 쌓았다. 개성있는 듀오로 출발하여 환호를 받은 이들은 1982년 유럽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로 Alison Moyet이 선정되었다. 또한 데뷔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Don’t Go는 유럽 챠트에서 넘버 1을 차지했던 최고의 히트 싱글이었다.

미주 지역에서는 1982년 9월부터 이들이 소개되기 시작해서 Situation이 빌보드 챠트에 랭크되어 미국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Yaz로 소개되었는데 미시시피 주에 있는 리듬앤블루스 음반을 제작하는 Yazoo라는 작은 레이블과 이름이 같아 상표권 문제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3년 3월 9일자 빌보드 챠트에 Only You가 67위에 등장하여 한 장의 앨범에서 세 곡이 히트되는 쾌거를 거두었고 앨범 또한 앨범 부문에서도 30주 이상 챠트에 머무르면서 성공의 기쁨을 한 껏 누렸다. 이들은 1983년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You & Me Both를 발표한 후에 이들은 해체되었다.

디스코그래피
Upstairs At Eric’S 1982
You & Me Both 1983

링크
팬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