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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ed To 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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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ensed to ill”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7년 3월 7일 Beastie Boys의 데뷔 앨범 “Licensed To Ill”이 빌보드 탑200 차트 정상에 올라 7주간 머물렀다. 1986년 11월 15일 발매된 이 앨범은 최초로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랩LP로써 빌보드 R&B 차트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Rick Rubin과 Beastie Boy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5년 초에서 1986년 말까지 뉴욕에 있는 Chung King House Of Metal에서 녹음됐다. 이 앨범은 당시 막 인기를 얻고 있던 힙합, 랩 등과 락음악의 샘플링을 혼합하여 이 서브장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어 첫 2주 동안 백만 장이 팔려나간 이 앨범에서는 많은 히트곡이 쏟아져 나왔는데 “(You Gotta) Fight For Your Right (To Party)”과 “Brass Monkey” 등이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No Sleep To Brooklyn”에서는 Slayer의 Kerry King이 가세하여 리드기타를 연주하였고 뮤직비디오에서도 글램메탈을 패러디하는 식으로 등장한다. 이 제목은 Motörhead의 “No Sleep ‘til Hammersmith” 앨범에 대한 조롱이다. King이 이 곡에 참여한 것은 당시 Rick Rubin이 Slayer의 앨범도 프로듀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원래 이 앨범의 제목을 “Don’t Be A Faggot”으로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컬럼비아 레코드사는 이 제목이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후에 밴드의 멤버 Adam Horovitz는 그 제목에 대해 사과했다). 앨범의 유명한 커버는 David Gambale (aka “World B. Omes”)의 작품인데 산허리에 추락하고 있는 보잉 727 제트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실제로 1986년 3월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 산에서 보잉 727 추락사고가 있었다) 비행기의 끝부분에 등록번호 “3MTA3”이 적혀 있는데, 이는 사실 트릭으로 거울에 비추어 보면 “EAT ME”를 의미하는 일종의 암호다.

트위터와 80년대 팝스타들

트위터(twitter)라는 마이크로블로그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당연히 나도 가입하여 재밌게 놀고 있다. 140바이트 이내의 짧은 글을 적으면서 서로 소통하는 이 간단한 이치의 서비스가 현재와 같은 인기를 얻은 데에는 애스톤 커셔,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스타들의 입소문이 단단히 한몫했다. 사람들은 그토록 먼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별들이 자기 옆으로 내가 따르고(following), 재수가 좋으면 그들이 날 따라주기도 하고(followers), 같이 이야기를 나누니 마치 내가 스타의 친구라도 된 것인 양 으쓱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쾌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트위터의 한 측면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계기로 트위터에 가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내 트위터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이전의 다른 서비스들(예를 들면 블로그, 메타블로그, 기타 커뮤니티 등)에서 알고 있던 이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의 관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일체감이 서비스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게 된 측면도 매우 크다고 본다. 또한 트위터의 개방성은 여타 관련 서비스들이(예를 들면 사진 올리는 사이트나 인기 트위터러 랭킹을 보여주는 사이트랄지) 같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마침내는 트위터의 정치적 프로패건더 기능, 비즈니스 기능의 가능성까지 제시되어 그야말로 지구적 커뮤니티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스타의 트위터 가입에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과연 이 블로그의 주제인 ‘80년대 팝음악’의 관점에서 볼 때 트위터는 얼마나 80년대 팝음악 친화적(?)일까? 과연 얼마나 많은 80년대 팝스타들이 이 서비스에 가입하여 팬들과 소통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내가 열심히 찾아본 결과로 트위터에 가입한 80년대 팝스타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가끔 가짜도 있지만 진짜 원조 80년대 팝스타라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은 Pet Shop Boys, Depeche Mode, Duran Duran, Beastie Boys 정도다. 이외에 얼마전 Michael Jackson 죽음에 크게 슬퍼한 Lenny Kravitz, 레트로 일렉트로닉을 추구하는 Ladytron, Royksopp 정도가 트위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는 Pet Shop Boys다. 이들은 그들의 공연지에 대한 정보나 그들의 주변일, 심지어 이란 사태에 대한 정치적 입장 등을 트위터 뿐만 아니라 각종 사진정보까지 활용하여 세세하게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Duran Duran도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으나 왠지 그들 스스로 올린다기보다는 매니저 혹은 홍보 담당이 글을 올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스타들도 간간히 글을 올린다.

80년대 팝음악 팬으로서 당연히 더 많은 80년대 팝스타들의 얼굴을 트위터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다. 개인적으로는 ABC의 Martin Fry, Devo, Talking Heads의 David Byrne(이 이름도 다른 이가 쓰고 있으며 아예 Bio에 not a talking head라고 써있다), Morrissey(이 이름은 수염난 엉뚱한 아저씨가 쓰고 있다. 물론 지 이름도 Morrissey라고 우기겠지만) 등을 트위터에서 보고 싶다. 이들의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함께 소통하면 더더욱 트위터의 재미가 배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이 블로그 오른 쪽 하단의 Stars on Twitter 메뉴에서 그들의 트위터 활동이 업데이트되므로 참고하시도록~

Beastie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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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tie Boys Compo” by WikiLaurent – Composition based on File:Adam Horovitz.jpg, File:Adam Yauch 2.jpg and File:Michael Diamond 1.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 음악적 비중에 비해 상당히 소개가 늦은 감이 없지 않은 Beastie Boys는 오늘날 Rap과 Hip Hop이 메인스트림의 한축을 담당하는데 있어 사실상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골수 힙합팬들에게는 그들은 흑인문화의 날강도 정도로 비쳐질지 모르겠으나 이들 흰둥이 3인조 – 뉴욕의 중산층 유태인 가정 출신이었던 그들은 Rap을 한다는 이유때문에 프에르토리코 출신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다 – 가 Rap을 하지 않았더라면 Hip Hop은 여전히 거리의 음악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고, 이러한 사실은 “백인 얼굴에 흑인 음악”이 메인스트림의 정언명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1981년 하드코어 펑크 그룹으로 음악인생의 첫발을 내딛은 그들은 소위 DIY(do-it-yourself) 정신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Rap을 포스트펑크의 한 분야로 생각했었다. 그룹 초기 시절 내놓은 펑크 싱글의 연이은 실패에 실망한 그들은 ’83년 “Cookie Puss”라는 랩싱글을 내놓았고 뉴욕 언더그라운드씬에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다. ’84년 그들은 펑크를 버리고 랩으로 개종하게 된다. 이해 그들은 Def Jam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했다. 백인이 흑인랩을 가장 근사하게 베낀 최초의 작품중 하나인 Lisence To Ill(1986년 발매)은 – 물론 이전에 Blondie 등이 랩을 시도하였으나 이는 일종의 양념구실에 불과했다 – 평론가들로부터는 생각없는 파티음악 쯤으로 치부되었던 이 앨범은 그러나 메탈의 키타리프와 비트, 마초적인 행동과 가사, 그리고 수많은 레코드에서 베낀 운율을 뒤섞어 하드코어 힙합에 익숙하지 않은 비(非)흑인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어 Hip Hop앨범으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였다.

흑인 힙합 평론가들로부터는 자신들의 음악을 훔쳐갔다는 비난을 받는 한편,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불경스럽고 성차별주의적인 가사, 그리고 직설적인 성적 은유로 가득찬 공연으로 맹비난을 받았다. 1987년 공연 내내 그들은 체포와 법정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법정소송에 시달렸던 Beastie Boys는 마침내 그들의 근거지를 캘리포니아로 옮기고 소속사도 Capitol로 옮겨버리고 만다. 이 와중에 만난 Dust Brothers – Chemical Brothers가 존경해마지않는 테크노 인스트루멘틀 듀오, Beck의 음악을 맡기도 하였음 – 가 프로듀스한 2집 Paul’s Boutique는 발매당시에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외면당하였지만 이전의 치기어리고 유머러스하기만 한 그들의 음악이 단명하지 않고 ’90년대까지 이어질 수 있게 만든 가교역할을 하였다.

여하튼 전편의 상업적 실패에 굴하지 않고 그들만의 레이블인 Grand Royal을 설립한 Beastie Boys는 1992년 Check Your Head를 발표하면서 직접 연주를 맡는 등 정성을 쏟았다. 올드스쿨 힙합과 하드코어 펑크가 뒤섞인 이 앨범은 그들에게 또다시 차트의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안겨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90년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Members : Mike D (b. Mike Diamond, November 20, 1966), MCA (b. Adam Yauch, August 5, 1965), Ad-Rock (b. Adam Horovitz, October 31, 1967)

디스코그래피
1986 Licensed to Ill Def Jam
1989 Paul’s Boutique Capitol
1992 Check Your Head Grand
1994 Ill Communication Grand
1998 Hello Nasty G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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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