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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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havent found cover“. Via Wikipedia.

1987년 8월 8일 U2의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이 이 락밴드에게 두 번째 정상곡이 되었다. 이 곡은 드러머 Larry Mullen, Jr.의 드럼 패턴에서 발전한 데모 레코딩을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개인적인 신념과 정신적인 깨우침을 강조하는 가사는 당시 Bono가 듣고 있던 가스펠 음악에서 영향 받았다. The Joshua Tree의 수록곡인 이 곡은 당초 싱글로 발매될 계획이 없었다. 밴드는 “With Or Without You” 다음으로 “Red Hill Mining Town”을 싱글로 내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Red Hill Mining Town”의 뮤직비디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Bono가 순회공연 연습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어려움을 겪자 그들은 마음을 바꿨다. “I Still Haven’t Found”의 비디오는 라스베가스에서의 콘서트 후인 1987년 4월 12일 오후 라스베가스의 프레몬트 거리에서 잽싸게 만들어졌다.1 싱글은 1987년 5월 발매되었다. 빌보드 차트에는 1987년 6월 13일 51위로 데뷔해서 8주후 정상을 차지한다. 이 곡은 198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그 해의 레코드’와 ‘그 해의 곡’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뮤직비디오

  1. 지금 보니 급조한 느낌이 역력하다. 밴드는 라스베가스 거리에서 전도를 하는 이들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Beat It

“Beat It”은 Michael Jackson의 가수 경력을 통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적이었던 앨범 Thriller에서 커팅되어 1983년 2월 3일 세 번째로 싱글로 출시된 곡으로 Billie Jean과 함께 Jackson의 싱글 중 가장 인지도 높은 곡으로 남게 되었다. 롤링스톤은 이 곡을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500곡’ 중 344위에 선정하여 음악적 중요성 역시 인정을 받았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1984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남성 락보컬 퍼포먼스’를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는데, 바로 Eddie Van Halen이 간주에서 유명한 기타 솔로를 선보인 덕이 크다.

“Beat It”은 Michael Jackson이 작곡하고 Quincy Jones가 프로듀스를 맡은 곡이다. Jackson은 이 곡의 장르 성격에 대해 이전에 언급하지 않았으나 Jones는 이 곡을 The Knack의 “My Sharona”와 같은 락음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Jones는 Eddie Van Halen에게 기타 솔로를 부탁한다. 놀랍게도 Halen은 밴드의 다른 멤버 등 다른 사람들이 다들 어이없어 했는데도 무보수로 기타를 쳐줬다. 곡의 유명한 인트로는 Synclavier의 메이커가 1981년 내놓은 “The Incredible Sounds of Synclavier II”라는 데모LP에서 빌어 왔다.

에픽 레코드사의 부사장인 Frank DiLeo는 “The Girl Is Mine”과 “Billie Jean”의 성공을 보고 “Beat It”의 성공을 확신한다. 그의 예감대로 “Beat It”은 “Billie Jean”과 동시에 탑5에 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7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Billie Jean”이 The Dexys Midnight Runners의 “Come On Eileen”에 의해 1위 자리를 뺏겼지만 1주 후 “Beat It”이 바로 그 자리를 다시 차지하여 3주간 정상에 머물렀다. 이 곡은 또한 빌보드 R&B 싱글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한다. 이 곡의 장르는 락이자 R&B인 셈이다.

“Beat It”의 가사는 패배와 용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don’t be a macho man”이란 부분은 Jackson이 얼마나 폭력을 싫어하는지를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유명한 뮤직비디오에서 더욱 명확히 전달되고 있다. Bob Giraldi가 감독한 이 작품에서 Jackson은 칼로 승부를 내려는 갱단 사이를 화해시키고 군무를 추는 장면으로 평화를 노래한다. 한편으로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연상시키는 이 뮤직비디오는 Jackson의 Billie Jean 비디오와 함께 흑인 음악이 MTV에서 뿌리를 내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뮤직비디오
The Incredible Sounds of Synclavier II 의 인트로 원음 듣기

M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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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Logo” by MTV – Transferred from pt.wikipedia; transfer was stated to be made by User:Samvsca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81년 8월 1일 새벽 12시 1 분 24시간 방송하는 케이블 뮤직 네트웍 MTV가 런칭되었다. 워너 커뮤니케이션과 어메리칸익스프레스가 조인트벤처로 시작한 이 방송은 뮤직비디오와 공연을 보여줄 목적으로 시작하였다. 최초의 VJ는 J.J. Jackson, Mark Goodman, Alan Hunter, Nina Blackwood, Martha Quinn 이 맡았다. 이 방송은 음악을 상업화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MTV가 방송을 개시하던 날의 방송 일부

Jessie’s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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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ie’s Girl” by Personal scan from my collection. Licensed under Wikipedia.

1981년 8월 1일 호주 출신의 락싱어 Rick Springfield(본명 Richard Lewis Springthorpe)의 앨범 Working Class Dog의 수록곡 “Jessie’s Girl”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싱어가 직접 쓴 이 곡은 그의 최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Rick은 이 곡을 실제로 그의 가까운 친구 Gary의 여자친구에 대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은 후에 썼다. Rick은 처음에 실제 이름으로 곡을 쓰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한편 호주 출신의 Rick은 이 곡을 통해 1970년대 초부터 음악인으로 생활하는 등의 오랜 동안의 연예계 활동에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었다. 1980년 RCA와 계약을 체결한 그는 또한 “General Hospital”이라는 소프오페라에서 Noah Drake라는 의사 역을 맡게 된다. 이 곡의 프로듀서 Producer Keith Olsen은 이 곡을 Pat Benatar 밴드의 기타리스트 Neil Giraldo에게 가져가 기타와 베이스를 치게 한다. 1981년 싱글로 발매된 후 그 해 3월 28일 핫100 차트 81위로 데뷔했다. 이 곡 덕분에 Rick은 1982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락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다.

뮤직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의 도래에 따른 레이블과 뮤지션들의 명암

축음기와 라디오가 발명되고 보급된 이래 대중음악은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녹음기술이 발전하고, 비닐 레코드가 표준화되고, 뮤지컬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고, MTV가 개국하고, 십대들이 음악잡지를 사고, 대규모 락콘서트가 열리고, mp3 플레이어가 보급되고, p2p로 mp3를 교환하고, YouTube가 인기를 얻고, 애플이 플랫폼에서 음악파일을 팔고, Spotify가 라디오를 대신하는 등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산업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Q. Spotify가 레코드 레이블들과 요율을 협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마도 아직 이익이 나지 않는 사기업입니다.
A. 당신이 이윤을 낼 필요가 없을 경우 당신의 경쟁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네. 스트리밍 회사는 레이블들과 “협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대형) 레이블들은 투자자인데, 이건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죠. Spotify가 상장되면 이 레이블들은 많은 현금을 거머쥘 것입니다. 아마도 스트리밍을 통해 여태 얻는 극미한 수수료보다 훨씬 많겠죠. 그래서 레이블들은 스트리밍 회사를 거칠게 대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매우, 매우 영리한 거죠. 이는 단기적인 생각으로 여겨집니다.[David Byrne Talks Artists’ Rights, Spotify & Touring]

빌보드의 이 인터뷰는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저작과 미술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David Byrne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생각이다. 현재 주로 모빌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이에 연계된 각종 음악 서비스는 앨범 판매 등의 기존 수익모델이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일구어줄 사업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약 4천 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potify는 그 중에서도 Pandora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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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of Talking Heads”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젊은 시절의 David Byrne

David Byrne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Spotify의 경쟁력은 경쟁자를 무력하게 만들만큼 싼 이용료일 것이다. Spotify는 이러한 놀라운 원가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 것일까? 바로 메이저 레이블에게 스트리밍에 대한 수수료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레이블이 수수료를 낮추게 만든다는 것이 Byrne의 생각이다. 사실 레이블들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도 수수료를 더 받아야하는데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 될 지분 획득을 대가로 싼 수수료를 용인한다는 것이 Byrne의 또 다른 짐작이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광고만으로도(어떤 때는 몇 시간을 로긴하고 있음에도 전혀 광고를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티스트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중략] 내가 대화를 나눴던 주요 레코드 레이블들은 –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인디 레이블들 – Spotify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그들이 두둑한 몫을 지불받든지 그리고/또는 회사의 주식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도 나의 의심은 몇 주후 확인됐는데 메이저들이 Spotify 주식의 18%를 받았다고 보도됐을 때였다.[Behind the music : The real reason why the major labels love Spotify]

Byrne의 발언을 확인시켜주는 가디언의 2009년 기사다. 물론 레이블들은 싼 수수료와 넉넉한 지분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레이블들이 현재도 20% 가량의 Spotify 지분을 -“공짜로” – 얻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의 경이적인 성공에 크게 고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Byrne이 예상하는 상장보다는 대형 통신사 등에 장외에서 지분을 넘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1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뮤지션들이 끼어들 몫은 없다.

복수의 정보원에 따르면 메이저 레이블들은 현재 20% 가량 되는 Spotify에 대한 공동소유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략] 예전 모델에서 레이블은 그들의 가치있는 카탈로그를 사용하는 권리에 대한 대로 비싼 선불 개런티에 보다 집중했다. [중략] 그러나 이런 거래에 익숙한 몇몇 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이런 상황이 상당히 변했다고 한다. “[대형 레코드 레이블들은] 수수료보다는 주식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취득에 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죠.” 한 정보원의 말이다. [중략] 한 정보원은 Spotify가 한 목표가는 과거에 10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매우 달콤한 보상이라고 지적했다.[The Major Labels Are Trying To Sell Spotify for $10 Billion, Sourses Say]

진보적인 뮤지션인 Billy Bragg은 현재 뮤지션들이 대형 레이블들로부터 받고 있는 스트리밍 요율을 더 높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뮤지션이 받고 있는 수수료의 요율은 극히 일부의 레이블이나 대형 가수를 제외하고는 전체 수입의 8~1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레이블들이 주식 대박의 꿈 때문에 수수료를 낮게 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뮤지션들의 몫은 더 적다는 것이 Bragg 의 불만인 것이다. 이미 Radiohead의 Thom Yorke나 프로듀서 Nigel Godrich와 같은 이는 행동에 나섰다.

Bragg이 오늘 말했다. “이 스트리밍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계약으로 묶여있다는 것인데, 그때는 레코드 회사들이 실물의 생산과 배급의 모든 부담을 졌을 때죠. 그래서 아티스트들은 평균적으로 8~15%의 로얄티만 받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진 그 비율이 왜 아티스트들이 Spotify로부터 그렇게 형편없는 소득을 얻는지를 설명해줍니다.”[Spotify royalties : ‘Problem lies with labels – not streaming services’, says Billy Bragg]

요약하자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현재 Spotify와 같은 저항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서비스로부터 불공정한 요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 Byrne이나 Bragg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요율은 아날로그 시대에 적용된 요율이 그대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Byrne은 특히 이러한 상황이 대형 레이블들의 지분확보를 대가로 한 싼 수수료에 기인하며 이는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형 레이블들의 적응력은 너무 뛰어난 것 같다.

Talking Heads의 “거칠고 거친 인생”을 듣도록 하겠다.

Madonna – Madonna(1983)

Madonna's image with her right hand placed on her right cheek and with the left hand, she holds on to a number of chains wound on her n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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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27일 Madonna의 데뷔 앨범 Madonna가 Sire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싱어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던 Madonna는 Sire 레코드사의 사장 Seymour Stein을 만나며 음악경력에 있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Everybody”를 들은 Stein은 그녀와 계약을 체결했고 앨범 발매를 계획하게 된다. Reggie Lucas, John “Jellybean” Benitez, Mark Kamins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82년 5월에서 1983년 4월까지 뉴욕에 있는 시그마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싱글 “Everybody”와 “Burning Up”이 진행되는 동안 Madonna는 펑크/쏘울 그룹 Mtume의 기타리스트 Reggie Lucas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둘 간의 음악에 대한 관점 차이가 커지고 Lucas는 돌연 프로젝트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Madonna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클럽 DJ이자 프로듀서인 “Jellybean” Benitez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그녀를 도와 믹싱과 레코딩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업비트의 디스코 풍의 곡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인 린드럼머쉰, 무그 베이스 등이 쓰였고 Madonna는 밝고 소녀스러운 목소리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노래했다. 앨범이 발매됐지만 반응이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83년 9월 Holiday가 싱글로 발매되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16위까지, R&B 차트 25위까지 올랐다. “Borderline” (#10 Pop)과 “Lucky Star” (#4 Pop)도 큰 인기를 끌었다.

Everybody 뮤직비디오
Burning Up 뮤직비디오

Unbeliev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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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believable (EMF song)“. Via Wikipedia.

Jesus Jones 등과 함께 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댄스 씬을 선도했던 영국밴드 EMF가 그들의 데뷔 앨범 Schubert Dip에 수록하여 발표한 “Unbelievable”이 1991년 7월 20일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1주간 머문다. 영국에서는 이미 1990년 싱글로 발매되어 그해 12월 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이 곡은 미국의 코미디언 Andrew “Dice” Clay의 발언 샘플과 – 예를 들면 노래가 시작할 때 들리는 “오~!”하는 감탄사나 곡 중간에 등장하는 “you’re unbelievable”이라는 말 등 – The Soul Searcher의 펑크(funk) 클래식 “Ashley’s Roachclip”의 드럼 샘플 등을 재치 있게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밴드는 프로페셔널의 길을 걷기로 한 이후 단 네 번의 공연만을 가진 채 EMI와 계약을 체결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이니셜로 구성된 듯 한 밴드의 이름은 “Epson Mad Funkers”의 이니셜이라 알려져 있는데, 한편으로는 “Ecstasy Mother F***ker”의 이니셜이라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후자의 주장이 꽤 설득력있는 것이 이 곡 “Unbelievable”의 싱글 B면에 실린 EMF라는 곡에 –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곡이다 – 바로 “E! Ecstasy! M! M***ker, m***ker! F! From us to you….”라는 가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Unbelievable”은 또 다른 보컬 샘플에 “what the f**k was that?”이라는 가사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검열당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전파를 타고 있다. 1991년 4월 13일 87위로 빌보드 차트에 등장한 이 곡은 14주 후 정상을 차지한다. EMF는 이 노래이외에도 “I Believe” (#6 UK), “Children” (#19 UK), “Lies” (#19 UK, #18 US Pop)를 차트에 진입시킨다. 밴드는 이후에 두 개의 앨범을 더 낸 후 1995년 해산했다가 2001년 재결합한다. 이번에는 베이스를 맡은 Zac Foley가 약물과용으로 사망하여 다시 해산한다. 그 후 2007년과 2012년 또 재결합했다.

뮤직비디오

My Aim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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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im isTru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tiff / Columbia / Demon/Rykodisc / Rhino / Hip-O.. Licensed under Wikipedia.

1977년 7월 22일 Elvis Costello(본명 Declan MacManus)의 데뷔 앨범 “My Aim Is True”가 발매되었다.(미국에서는 1978년 3월) Nick Lowe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1976년 말에서 1977년 초까지 런던에 있는 패쓰웨이(Pathway)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그의 동네인 리버풀의 펍이나 클럽에서 육 년여 동안 공연을 했던 Costello는 1976년 그가 녹음한 데모테잎을 Stiff 레코드사에 보냈다. 처음에 이 레이블은 그를 Dave Edmunds를 위한 작곡가로 쓸 생각을 했었지만 Edmunds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회사는 Costello에게 몇 곡을 녹음할 기회는 주고는 Costello에게 레코딩 아티스트를 포기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결과물이 꽤 괜찮았기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이제 회사는 Wreckless Eric과 데뷔 앨범을 공유할 것을 제안했지만 Costello는 이미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노래를 작곡해놓았다. 이 앨범은 몇 주에 걸쳐 Clover라는 밴드의 멤버와 함께 여섯 번의 4시간 씩 총 24시간 동안 녹음을 마쳤다. 당시 낮에 데이터 입력 일을 하고 있던 Costello는 병가를 내가며 연습과 녹음을 마쳐야 했다. 처음의 두 싱글 “Less Than Zero”와 “Alison”이 나올 때까지 Costello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마침내 레이블은 1977년 여름 앨범을 내놓을 것을 결정하고서 Costello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나서라고 권유했다. Stiff 레코드사는 그에게 월급을 주고 선금으로 150파운드와 앰프 하나, 그리고 테이프 녹음기를 줬다. Costello는 이 상황을 “7년 이후의 하룻밤의 성공”이라고 묘사했다. 이 앨범에서는 고전이 된 “Alison”와 “(The Angels Want To Wear My) Red Shoes”가 인기를 끌었고 차트에서는 “My Aim Is True” 등이 성공했다. VH1은 2003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에서 80위에 선정했다. 롤링스톤은 2004년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168위에 선정했다.

Who’s That Girl –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1987년 7월 21일 “Who’s That Girl –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이 Sire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1986년 12월부터 1987년 3월까지 녹음된 이 앨범은 Madonna의 세 번째 영화 출연작(최초에는 “Slammer”라 이름 붙여진)의 사운드트랙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앨범에는 Madonna를 비롯해서 Club Nouveau, Scritti Politti, Coati Mundi, Michael Davidson, Duncan Faure 등이 참여하였다. 영화 자체의 평이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사운드트랙 앨범도 비평은 신통치 않았으나 상업적으로는 인기를 얻었다. Madonna의 “Causing A Commotion”은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진출했고 “Who’s That Girl”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 7위까지 올랐다.

1. “Who’s That Girl” (performed by Madonna) 3:58
2. “Causing a Commotion” (performed by Madonna) 4:20
3. “The Look of Love” (performed by Madonna) 4:03
4. “24 Hours” (performed by Duncan Faure) 3:38
5. “Step by Step” (performed by Club Nouveau) 4:43
6. “Turn It Up” (performed by Michael Davidson) 3:56
7. “Best Thing Ever” (performed by Scritti Politti) 3:51
8. “Can’t Stop” (performed by Madonna) 4:45
9. “El Coco Loco (So So Bad)” (performed by Coati Mundi) 6:22

80년대에 커버된 히트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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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Idol“.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I Think We’re Alone Now

Ritchie Cordell이 만든 “I Think We’re Alone Now“는 원래 1967년 Tommy James and the Shondells이 발표하여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 4위까지 오른 곡이다. 이 곡은 그 뒤 여러 번 커버 버전이 나왔는데 가장 유명한 버전은 1987년 Tiffany가 부른 버전이다. 이 곡은 당시 차트 1위까지 올라 Tiffany의 최대의 히트곡이 되었다. 당초 Tiffany 측이 내세운 곡은 첫 싱글 Danny였지만 라디오DJ는 이 곡을 선택했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Mony Mony

Tommy James and the Shondells의 오리지널을 커버한 I Think We’re Alone Now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동안 그 뒤를 잇는 곡이 Billy Idol이 발표한 이 곡이었다. 희한하게도 이 곡의 오리지널 역시 Tommy James and the Shondells다. Tommy James는 이 곡을 1968년 발표하여 영국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다. Billy는 이미 이 노래를 1981년에 한 차례 커버한 바 있으며 1987년 버전은 라이브 버전이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Puttin’ On the Ritz

이 곡은 Irving Berlin이 1927년 작곡하여 1929년 발표한 곡이다. 이 곡은 1930년 개봉한 같은 이름으로 뮤지컬 영화에서 온전히 전파를 탔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맵시 있게 옷을 차려입는다는 의미이며 유명한 리츠 호텔에서 영감 받아 쓰이는 표현이라고 한다. 독일의 가수 Taco는 이 노래를 신디싸이저를 사용하여 커버한다. 1983년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4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서 가장 유명한 원히트원더 중 하나가 된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Everytime You Go Away

이 곡은 Hall & Oates의 활동으로 유명한 Daryl Hall이 만든 곡이다. Hall은 이 곡을 듀오의 1980년 앨범 Voices에 싣는다. 하지만 싱글로 발매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신예가수 Paul Young이 이 곡을 1985년 다시 불러 그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Secret of Association에 수록하고 싱글로 발매하였다. 이 곡은 1985년 7월 27일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 곡은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Der Kommissar

이 곡은 오스트리아 가수 Falco가 1981년 녹음한 노래다. Robert Ponger와 Falco가 만든 이 노래는 이후 1982년에는 영국 그룹 After The Fire가, 1983년에는 미국 가수 Laura Branigan이 커버 버전을 내놓았다. 독일어로 부른 Falco 버전은 여러 독일어권 국가 등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영어로 부른 After The Fire 버전은 빌보드 핫100 차트 5위까지 올랐다. 한편 Branigan은 이 노래를 Deep in the Dark이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Laura Branigan 버전

Don’t Leave Me This Way

이 곡은 Kenneth Gamble, Leon Huff, 그리고 Cary Gilbert가 만든 R&B/soul/disco song 넘버다. Harold Melvin & the Blue Notes가 이 노래를 발표하여 1975년 빌보드 디스코 차트 5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Bronski Beat 출신의 Jimmy Somerville과 Richard Coles가 듀엣을 이룬 The Communards가 1986년 이 곡을 Hi-NRG 버전으로 다시 불렀다. 이 버전은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빌보드 핫100 차트 40위에 올랐다.

오리지널 버전
커버 버전

If You Don’t Know Me by Now

Harold Melvin & the Blue Notes의 곡 중 또 한곡이 80년대에 커버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발표당시인 1972년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이 곡은 당초 Kenny Gamble과 Leon Huff가 Patti LaBelle이 이끌던 트리오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가 Harold Melvin에게 준 곡이다. 빨간 머리 싱어 Mick Hucknall이 이끄는 Simply Red는 1989년 이 곡을 다시 불러 빌보드 핫100 차트 1위, 영국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오리지널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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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kytown

이 곡은 디스코 밴드 Lipps Inc.가 그들의 1979년 데뷔 앨범에 수록하여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된 넘버다. 1980년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르며 사그라져가는 디스코 열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 되었다. 1986년 호주의 락밴드 Pseudo Echo가 이렇게 한물간 디스코곡을 락버전으로 재창조하였다. 이 곡은 호주에서 7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6위에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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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Keep Me Hanging On

이 곡은 Holland-Dozier-Holland가 만들고 The Supremes가 모타운 레이블에서 처음 녹음한 곡이다. 이 곡은 1966년 11월 13일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 노래는 Rod Stewart, Vanilla Fudge 등을 포함한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렸다. 1986년 영국의 팝싱어 Kim Wilde가 그녀의 새 앨범 Another Step의 두 번째 싱글로 이 곡을 내놓는다. 강렬한 파워팝/hi-NRG으로 재무장한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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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Hurry Love

또 하나의 The Supremes의 히트곡이 80년대에 인기를 얻었는데 바로 이 곡이다. 역시 1966년 발표된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 영국 싱글 차트 3위에 오른다. 여름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이 쾌활한 댄쓰곡은 Genesis 출신의 가수 Phil Collins에 의해 다시 탄생했다. 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Hello, I Must Be Going!에 수록된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0위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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