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코미디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

Hannah and Her Sisters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우에 버금가는 주요배역으로 격상시킨 우디알렌이 애니홀과 맨하탄 등에 이어 또 한 번 뉴욕과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하였다. 서로가 물고물리는 애정관계는 때로는 유치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서로를 구속하고 서로를 애태우고 또 서로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가족이라는 뗄 수 없는 유대관계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반복한다. 누가 도덕적으로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도덕적 판단기준은 이 영화에서 주된 포인트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우디알렌에게 닥친 시련 – 일종의 반전? – 은 “사랑이란 원래 그렇게 허무한 것이야” 라고 가벼운 충고 한마디로 치유 가능한 것일까? 마이클케인이 우유부단한 한나의 남편 역을 잘 소화해주었고 대배우 맥스폰시도우 Max von Sydow 가 자존심강한 화가 역으로 출연한다.

Desperate Living

추잡한 영화의 달인 John Waters 의 1977년 작이다. 핑크플라밍고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어이없음’이 일관되게 되풀이되는 영화이다. 흑인하녀의 엉덩이에 깔려죽는 남자, 용의자의 팬티를 뺏어 입고는 오르가즘에 몸부림치는 경찰, 여자 친구를 위해 성전환 수술을 했다가 여자 친구가 실망하자 가위로 성기를 잘라버리는 레즈비언, 흑인하녀와 동성애에 빠지는 여인 등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들이 총집합하여 맥락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한판 해프닝을 벌인다. 다만 이야기 흐름상으로는 옷을 거꾸로 입고 거꾸로 걸어다니라는 둥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여왕의부당한 압제에 맞서 변혁을 꿈꾸는 레즈비언 들의 혁명영화(?)로 해석될 수도 있다.중상류 계급 출신이지만 어릴 적부터 괴상한 취미에 맛을 들여 그의 전 영화인생을 이런 ‘뻘쭘한’ 영화 만들기에 전력을 쏟은 John Waters 의 악취미는 확실히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던 영역 – 기껏해야 보다 얌전한(?) 스타일로 데이빗크로넨버그가 접근했다고 해야 할까? – 일 것이다.

영화소개

Match Factory Girl

아키카우리마스키(Aki Kaurismäki)의 유머감각은 그의 고향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냉소적이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며 빈둥거리며 세월을 죽이는 그의 부모를 공양하는 불쌍한 소녀가장도 욕정은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예쁜 옷을 부모 몰래 사서 술집에 가서 남자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연민보다는 차라리 유치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하여, 외모가 보잘 것 없다하여 그의 이성에 대한 낭만적 사랑의 열망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꼬부랑 노인에게도 성욕은 당연한 권리이듯이). 그럼에도 그에게 접근하여 하루를 보낸 남자는 그를 하룻밤 여흥으로 치부해버리고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대사가 하도 띄엄띄엄 있어서 적막감이 흐르는 영화다. 핀란드/스웨덴 공동작업으로 1989년 작.

The Adventures of Buckaroo Banzai Across the 8th Dim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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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심상치 않고 의외의 호화배역들이 – 피터웰러, 존리스고, 엘렌버킨, 제프골드브럼 등!! – 좌충우돌하는 스토리상에서 우왕좌왕하는 꼴이 영락없이 컬트의 반열에 오르리라 기대되었고 당연하다는 듯이 컬트무비의 자격을 획득한 작품이다. 이 출연진들을 가지고 첫개봉시 1984년 LA 올림픽 와중에 단 일주일 상영하고 막을 내렸다니 망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락가수, 무술의 고수, 신경외과의사, 물리학자, 그리고 비밀첩보원까지(!) 호화찬란한 배경을 깔고 있는 버칼루반자이(피터웰러)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에밀리오리자도 박사(존리스고)사이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큰 줄기이긴 한데 밴드공연 와중에 자살을 시도하는 여자(엘렌버킨)의 이야기, 난데없이 등장하는 외계인 등 시종일관 결말을 가늠할 수 없는 좌충우돌 모험극이다.

결론은. 재밌다.

The Life and Death of Peter Sellers(2004)

배우는 배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까? 다른 이의 인생을 위해 배우 자신을 죽여야 하는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게리올드만은 후자의 뉘앙스로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Peter Sellers 는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는 영국영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 배우로 칭송되는 피터셀레스 Peter Sellers 에 관한 전기영화다. 래디오쇼의 인기성우로 활약하다 영화계에 데뷔한 피터셀레스의 영화인생과 개인적인 삶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는 이 영화에서 감독은 피터셀레스가 마치 질 좋은 캔버스처럼 영화 속 캐릭터의 전달에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반면 피터셀레스라는 개인의 모습은 공란으로 남겨버리는 그런 배우로 묘사하고 있다.(실제로 우리는 핑크팬더에서의 피터셀레스와 닥터스트레인지러브에서의 다중적인 피터셀레스 간에 피터셀레스라는 배우의 독특한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영화에서는 피터셀레스 자신도 그러한 자신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국 그가 빼어들은 야심작은 말년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등장하는 Being There 였다. 위대한 코미디언이었지만 위대한 배우로 기억되고 싶었던 피터셀레스는 1980년 7월 24일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영국, 미국 합작으로 Stephen Hopkins 의 2004년작

Local Hero(1973)

다국적석유기업이 스코틀랜드의 어느 어촌에 직원 맥맥캔타이어를 파견시킨다. 목적은 석유기지 건설을 위해 어촌 전체를 매입하는 건. 한편 그룹의 회장 펠릭스하퍼(버트랭카스터)는 맥캔타이어에게 하늘을 잘 살피라는 이상한 주문을 한다. 현지에서 어수룩한 회사동료 대니올슨과 함께 찾은 마을은 대도시의 휘황찬란함과는 거리가 먼 고요한 마을이었다. 그렇게 조용하던 동네가 맥캔타이어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지고 모두들 한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장애물이 등장하게 된다. 영화는 분명히 장르는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딱히 웃음을 억지로 유발시키고자 하는 장치 없이 차분하게 진행된다. 덕분에 영화를 감상하며 짓게 되는 웃음은 파안대소가 아니라 엷은 미소이다. 특별한 반전이랄 것도 없고 큰 감정의 고저 없이 진행되면서도 단단한 바위처럼 탄탄한 진행을 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마크노플러의 사운드트랙도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휴그랜트의 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 과 비교하여 봐도 좋을 듯

Spaceballs

멜브룩스가 한번 웃어보자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스타워즈를 자근자근 씹으며 패러디한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다스베이더를 흉내낸 다크헬멧(릭모라니스)이다. 자그마한 키에 어울리지도 않게 엄청나게 큰 헬멧을 쓰고 다니면서도 광선을 쏘아대는 반지로 부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그러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인형놀이에 광분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이외에도 스타워즈의 각각의 캐릭터가 멜브룩스의 천재적인 영도력(!)하에 재탄생하여 그렇지 않아도 코미디인 스타워즈를 한층 폭소도가니로 만들어놓은 멜브룩스판 스타워즈, 스페이스볼스가 탄생하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영화의 원작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 악마로 불린 패션잡지 편집장이 실제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 등 이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을 모른 채 감상하였다. 애초에 패션 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영화속잡지 이름이 제법 즐겨보았던 리얼리티쇼 ‘프로젝트 런웨이’와 같다는 점, 프라다의 창업주 이하 그 가문이 전통적으로 공산당 지지자라는 곁가지 가십거리만을 안 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자체는 킬링타임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악마와 순진한 소녀라는 설정은 고전동화에서 익숙한 설정이었고 워커홀릭과 그 배우자와의 갈등은 젠더가 전도되었을 뿐 통상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구도였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소결론을 짐작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도 없었고 역시나 예상했던 바대로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또 여주인공 앤헤더웨이의 처진 눈매가 그녀의 패션과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도 영화를 흥겹게 볼 수 있는 매력포인트였다.

다만 군데군데 감상의 흐름을 막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눈에 거슬렸는데 특히나 결국 패션업계가 속물 부르주아지의 사행심을 갉아먹고 사는 산업일 뿐이라는 결말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편집장 머랜더도 일갈하였듯이 패션업계의 선구자들이 갈고닦아놓은 미적감각이 결국 패션 문외한의 취사선택에 일조하였고 기왕에 옷을 입을 바에야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당초의 앤헤더웨이의 촌스런 패션보다 나중에 입은 패션들이 훨씬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사실인데, 단순히 패션계 한 거장의 추한 모습 때문에 패션계 전체가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고 결말이 이러할 영화에 패션업체들이 왜 옷을 협찬했을까 등의 의문점이 남았다. 결국은 그녀가 선택하는 언론계 역시 양아치도 많고 속물도 많은 세상 아닌가? 언론계에 입문한다고 다시 촌스러운 패션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는가?

요컨대 이 영화에서 나름 펼치려 했던 ‘정치적 올바름’ 철학이 남자 배우자에게의 사과라는 남존여비적인 화해 – 차라리 이 남자배우의 혐오스러운 헤어스타일과 구리구리한 티셔츠가 더 짜증난다 – , 패션계에서 일했던 나름의 노하우에 대한 철저한 부정으로 굳이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공감이 되질 않았다.

차라리 머랜다를 떠나서 자신만의 패션레이블을 만든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동대문에 점포라도 하나 내서 새로 시작하는 결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A Hard Day’s Night

한 시대의 팝아이콘이 되어버린 비틀즈에 관한 영화중 대표적인 수작. 비틀즈의 TV쇼 공연 중에 일어나는 해프닝을 비틀즈 멤버들을 직접 출연시켜 점프컷, 뮤직비디오적인 편집 등을 통하여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곳곳에 배치된 에피소드들에서 인기있는 뮤지션으로서의 나름의 고충, 매니저와 뮤지션의 긴장감 등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산업의 이면도 살짝 건드리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이 비틀즈 멤버들간에 암묵적인 세력관계랄지 각 멤버들의 성향 등도 은근히 드러나고 있다. 비틀즈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될 영화고 그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