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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Topo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은유와 상징으로 인해 소위 지적인 관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도입부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El Topo(우리말로 두더지를 의미하며 감독 Alejandro Jodorowsky가 배역을 맡았다)는 벌거숭이 아들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다가 한 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한 여인 Mara를 괴롭히고 있는 무법자들을 처치한다. 뱀과 같은 유혹의 혀를 가진 그 여인의 꾐에 빠진 El Topo 는 아들을 수도사에게 맡긴 채 사막에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을 하여 최고의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모든 무림 고수들을 처단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 Mara 는 그를 배신한다.

총상을 입은 El Topo 는 수년이 흐른 어느 날 동굴 속의 현자로 부활하고 그 동굴 속에는 영화 Freaks 의 흉측한 장애자들을 연상시키는 주민들로 가득 차있었다. 난쟁이 여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오랜 기간의 근친상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El Topo 는 수도승의 복장을 한 채 마을주민들을 구원할 터널을 파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주인공 이름이 ‘두더지’일지도 모르겠다). 마을로 가서 터널을 팔 돈을 버는 과정에서 El Topo 와 난쟁이 여인은 마을이 도덕적으로 파탄했음을 알게 된다.

난쟁이 여인은 이런 마을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지 의문을 품지만 El Topo 는 공명심에 이 충고를 무시한다. 우연히 그 마을에는 El Topo 가 버린 아들이 신부가 되어 돌아와 그들을 만나게 되고 복수심에 불탄 아들은 El Topo 가 터널을 다 판 그 순간 죽일 것을 결심한다. 터널을 다 판 후 아들은 도덕적 갈등으로 복수를 포기한다. 동굴 속의 주민들이 마을로 내려갔지만 마을 주민들은 혐오감을 나타내며 그들을 살육한다. 분노에 찬 El Topo 는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살라버린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하는 이 작품에 담긴 기독교적, 불교적 메타포는 관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이 작품은 그러한 메타포에 앞서 – 감독이 의도하였던 하지 않았던지 간에 – 이른바 ‘남성성’의 어리석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영화 초반부 El Topo는 여인의 꾐에 빠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화 후반 이번에는 여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헌신과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마저 실패하자 자기 성질 못 이기고 자살을 택한다. 결국 어느 길이든 순리를 역류한 그의 삶은 파탄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택하자면 그는 Let It Be 의 자세를 택하여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John Lennon 이 이 영화의 팬으로 판권을 샀다고 한다).

1971년 당시로서는 생경한 심야영화로 개봉되어 컬트팬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던 작품으로 영화산업의 볼모지인 멕시코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작이다. Alejandro Jodorowsky는 이후 그래픽노블의 대가 뫼비우스와 함께 종교적 SF ‘잉칼’을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Jeremiah Johnson

Jeremiah Johnson(굳이 원음대로 읽자면 제레마이어존슨이지만 우리말 표기에 따르면 제레미아존슨 정도 되겠다)은 서부극이다. 하지만 일종의 수정주의 서부극이다. 종래의 명징한 선악구도의 남성적인 서부극이 아닌 보다 깊은 곳의 인간성에 주목하며, 인디언 등 토속인종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전직군인 Jeremiah Johnson이 문명세계를 벗어나 산에 들어가 홀로 살기로 결정한 이후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룬 영화로 개봉된 해인 1972년의 최고흥행작이라고 한다. 주인공을 맡은 로버트레드포드의 인기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감독 시드니폴락의 박력 있는 연출과 장대한 풍경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야기의 정점은 어찌어찌해서 맺어진 이상한(?) 가족(마치 ‘가족의 탄생’처럼)이 제레미아의 부주의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지는 그 순간이다. 고독했던 산사나이의 가슴을 녹여줬던 인디언 아내와 양아들이 다른 인디언 부족에게 살해된 현장과 맞닥뜨린 제레미아의 황망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Love Actually에서 동생과 정분이 나버린 애인을 두고 홀로 휴양지를 찾은 남자가(브리짓존스의 그 남자) 혼잣말처럼 “alone again naturally”라고 읊조리는데(잘 알다시피 Gilbert O’sullivan 의 히트곡 제목이다) 오히려 그런 사치스런 홀로됨보다 산에 또다시 홀로 남겨진 제레미아의 홀로됨이 훨씬 처연해 보인다. 그리하여 산사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친절함과 신중함을 지니고 있던 이 사나이는 드디어 맹수가 되고 만다.

고독을 선택했다가 고독에 고통 받는 한 서부 사나이의 서사기.

The Wild Bunch

샘페킨파의 “수정주의”적인 웨스턴 와일드번치는 어쩌면 자본가나 총잡이나 다 한통속으로 협잡질을 주무기로 돈을 벌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 오히려 정통극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철도회사의 돈을 가로채려는 강도 일당과 그들을 막기 위해 회사가 고용한 그들의 전 동료간의 추격전이 이 영화의 고갱이를 차지하고 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추격전에서 일승일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강도 일당은 강도가 가져서는 안 되는 우정과 인간성이라는 덕목으로 말미암아 그런 덕목은 애초에 갖고 있지도 않던 멕시코의 반란군 장군 일당과의 끝을 보는 총격전으로 몰살당하고 만다. 주인공들의 덧없는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보니와 클라이드”를 닮았고 철도회사와의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는 맬부룩스의 코미디 “불타는 말안장”과 비교해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