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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m!의 중국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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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mfantastic”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85년 4월 7일 중국 본토에서는 낯선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날은 Wham!이 서방의 팝 뮤지션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진 날이다. 듀오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져가던 시기에 듀오의 매니저 Simon Napier-Bell는 이 나라에서의 공연을 위해 중국 당국과 18개월간 동안 협상했다. 그는 Queen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결국 중국 당국은 락음악에 다소 현란한 이미지의 Queen 대신 단정한 이미지의 팝음악을 구사하는 Wham!을 선택했다. Napier-Bell이 후에 고백하기를 중국 당국의 이런 결정에는 그의 교묘한 협상전략이 주효한 측면도 있다. 그는 두 개의 중국 당국을 위해 두 개의 브로셔를 만들었는데, 중산층의 젊은이들인 팬과 함께 있는 Wham!의 브로셔와 전형적인 화려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Queen의 보컬리스트 Freddie Mercury의 모습이 담긴 브로셔가 그것이었다. 공연은 열흘에 걸쳐 진행되었고 베이징에 있는 노동자 체육관에서 15,000 명의 관중 앞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성공적인 중국 입성을 마무리했다. 당시 입장권 가격은 무료 카세트테잎을 포함하여 7달러 정도였다. 공연은 “Wham! In China: Foreign Skies”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는데 CBS/Fox에서 홈비디오로 1986년 출시했다.

Paul Weller와 Johnny Marr가 한 무대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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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Weller at the No Cactus Festival in Belgium” by Marcelo Costahttp://www.flickr.com/photos/maccosta/3711789229.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Paul WellerJohnny Marr가 지난 3월 27일 한 무대에 서서 공연을 펼쳤다는 소식이다. 런던의 로얄알버트홀에서 열린 이 공연은 암에 걸린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마련을 취지로 하는 2015 Teenage Cancer Trust shows의 일부분이었다. 새 앨범의 신곡들도 몇 곡 선보였던 Paul Weller는 Johnny Marr를 소개하면서 “X나 대단하거나 재앙이 될 것이다(This will be either be fucking great or a disaster)”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다. 함께 무대에 선 두 거장이 연주한 곡은 Junior Walker & The Allstars’‘(I’m A) Roadrunner’. Johnny Marr는 이 날 공연에서 The Smiths, Electronic, 그리고 솔로 시절의 곡들을 팬들에게 선사하였다고 한다. 보다 자세한 소식은 여기로.

MTV Decade

MTV가 1989년 12월 방영한 1980년대의 회고 다큐멘터리다. 존 레논의 죽음, 레이건의 집권, 소련의 붕괴, 물신주의 풍조 등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한 주요 사건을 데이빗 번, 돈 헨리, 스파이크 리, 존 쿠거 멜렌캠프 등 셀럽 등의 증언으로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MTV답게 짧게 짧게 편집한 장면을 적절한 80년대 음악으로 연결하여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뮤직비디오 보기.

“Reagan had the bedside manner for a dying nation. Everything is great, kids, right on. Of course it wasn’t true.” – Don Henry

Johnny Marr, I Feel You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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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Marr University of Salford 2012 crop” by University of Salford Press Office – Derived from File:Johnny Marr University of Salford 2012.jpg (cropped and straightened), original source Flickr: Johnny Marr 9.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The Smiths의 기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Depeche Mode의 히트곡 I Feel You을 커버하여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는 소식을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 알려왔다. 풀 동영상은 곧 올릴 계획이라고.

Video for Johnny’s Record Store Day cover of Depeche Mode’s “I Feel You” coming soon…(출처)

Michael Jackson의 머리카락이 불붙었던 사고

Michael Jackson이 그래미상 시상식을 휩쓸던 1984년 2월 28일 The Jacksons가 출연한 펩시 광고가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Beat It”, “Say, Say, Say”를 감독한 바 있는 Bob Giraldi가 감독을 맡은 이 광고는 1984년 1월 27일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움(Shrine Auditorium)에서 촬영됐다. 이 촬영에서는 사고가 있었는데 발광탄이 잘못 작동하는 바람에 Michael Jackson의 머리카락에 불이 붙었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수송되었고 2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펩시는 Jackson가 합의를 통해 15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고 Jackson은 이 돈을 그의 부상을 치료했던 브롯맨(Brotman) 의료센터에 기부했다. 당시 그 광고의 제작을 맡은 광고기획사의 임원이었던 Phil Dusenberry는 2005년의 저작 Then We Set His Hair on Fire: Insights and Accidents from a Hall of Fame Career in Advertising에 이 사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謹弔 Stev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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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age cover”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olydor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0년대 Synth Pop 의 초석을 다진 팝그룹 Visage의 리드싱어이자 프론트맨이었던 Steve Strange가 최근 유명을 달리하셨다. 최근 이집트의 샴엘쉐이크(Sharm el-Sheikh)에서 머물렀던 그는 지난 2월 12일 심장마비 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만에 사망하였다. 그의 레코드 회사였던 오거스트데이 레코딩스의 레이블 매니저인 Marc Green이 그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트위터에서는 Boy George, Billy Idol, Samantha Fox, Ultravox, Matyn Ware, Holly Johnson, Marc Almond, Pet Shop Boys 등 수많은 팝스타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트윗을 남겼다. 특히 Spandau Ballet은 “그가 없었다면 자신들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라며 트윗을 하는 날 예정된 “공연을 Steve Strange에게 헌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신보 Shameless Fashion을 내놓으며 화려했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신세대에 선보였고 트위터에서도 재기 넘치는 트윗을 남기기도 했던 그인지라 더욱 아쉬움을 더하는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영면하시길.

The Guardian의 애도 칼럼


Visage 의 대표곡 Fade To Grey

Dirty Loops 내한 공연 後記

12월 첫날인 오늘 한해의 마지막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서울 한복판에 짧은 폭설이 쏟아졌지만, 11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 Dirty Loops의 공연이 있었던 홍대 앞에는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공연장인 V홀은 홍대의 중심가 상가의 지하3층에 위치해있었다.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장소였다(한국인 특유의 안전 불감증으로 이내 이런 불안감은 사라졌다). 공연장을 중심으로 좁고 길게 스테이지, 스탠딩, 좌석 등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스탠딩 티켓은 구매 순서대로 입장을 시키겠다는 것이 당초의 약속이었으나 이런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공연장 도착도 공연시간인 6시에 겨우 30분 전인지라 이미 앞쪽은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들려오는 음악은 예열 음악은 Steely Dan. 역시 째즈-휴전 계열의 뮤지션의 공연이란 것을 감안한 것일까? 기다리는 와중에 들려오는 두 백인 청년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를 닮은 친구가 Dirty Loops를 모르는 듯한 청년에게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다. 저커버그는 밴드의 싱어가 “젊은 프레디 머큐리”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친구가 “프레디 머큐리가 누구냐”고 반문했고 놀란 저커버그는 “퀴이이인~~”하고 면박을 주었다. 각설하고 Tenacious D의 내한 공연 소식 등이 스크린에 몇 개 소개된 후, 공연은 거의 정확히 6시에 시작되었다. 밴드의 등장음악은 좀 생뚱맞게 80년대 액션 드라마 맥가이버의 테마 음악. 무대에는 3인조 이외에 추가적으로 신디싸이저 연주자 한 명이 더 있었다.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시작된 공연은 잠깐 동안의 멤버의 인사말과 농담들을 제외하고는 – 보컬 조나 닐슨의 소개에 의하면 어제의 서울 공연이 그들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고 한다 – 한 시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빽빽하게 이어졌다. 그들의 데뷔 앨범 Loopified를 중심으로 한 선곡에 새로운 프로젝트의 신곡도 섞여 있었다. 사운드는 베이스가 강조되는 와중에 간간히 벙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보컬이 간혹 묻히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맘에 들었다. 연주와 보컬은 스튜디오 앨범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물론 이런 상황은 이제는 프로그래밍이라고 표현하며 정당화되는 신디싸이저 등을 활용한 사전녹음도 한몫 할 것이지만).

간간히 들려주는 각각의 멤버들의 즉흥 연주는 역시 세션맨 출신이라는 경력에 어울리게 신기에 가까운 연주들이었다. 애초에 이들의 공연을 기다리며 기대한 즉흥 연주는 Hit Me 뮤직비디오에서 6현의 베이스를 자유자재로 놀려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베이스 주자 헨릭 린더의 연주였으나 – 물론 그의 현란한 베이스 연주는 아주 맘에 들었다 – 정말 맘에 들었던 즉흥 연주는 드러머 아론 멜러가드의 드럼 연주였다. 통상의 배치와 달리 무대 오른 쪽 상단에 위치한 드럼 키트를 거의 다 박살내버리겠다는 듯이 두드려대는 신명나는 드러밍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역시 드럼머쉰보다는 이러한 드러밍이 더욱 음악을 신명나게 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장면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이어진 것에는 당연히 보컬의 역할이 컸다. 키보드와 보컬을 맡은 조나 닐슨은 이번 서울 공연이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막힘없는 놀라운 보컬 실력을 공연 내내 유지했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의 특기로 유명한 돌고래 소리를 거의 어려움 없이 계속 뽑아낼 정도로 인상적인 성대의 소유자였다(지난 번 머라이어 캐리의 공연에 실망했던 이들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한 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 내려간 이들은 관중의 앵콜 연호에 크게 애태우지 않고 1분여 만에 바로 올라와 앵콜곡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은 예상대로 그들의 최대 히트곡 Hit Me.

오늘은 당초 어제로 예정되었던 CHVRCHES의 공연이 있을 예정인 만큼 시절이 좋아져서 데뷔 앨범을 내놓은 밴드들이 실시간으로 단독 내한 공연을 가지게 되고 외국에서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밴드 구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 물론 이럴 수 있는 것은 신디싸이저의 덕택도 크지만 – 한국의 음악 구매력이 어느 정도는 해외 공급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어쨌든 당초 처치스와 더티룹스와의 공연 스케줄이 겹칠 때 잠시 고민하다가 더티룹스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의 라이브가 더 박력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2집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밴드 중 하나다.


예상대로 누군가 어제 공연의 비디오를 찍어 이미 유투브에 올렸다(신인이라 그런지 비디오 촬영을 전혀 말리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었나

The Lexicon of Love라는 신쓰팝의 명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ABC의 멤버인 당사자들이 쓴 글을 삼번함(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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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Lexicon”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Martin Fry, 싱어송라이터

1982년에 디스코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난 Chic 앨범의 선율들을, 그리고 Earth, Wind &Fire의 모든 음악세계를 사랑했다. The Cure와 Joy Division과 같은 이들과 융화한 것은 우리가 추구했던 것이었다. – 우리 기타리스트였던 Mark White는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의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매우 극장과 같은 분위기의 표지에 끝내주는 고전 영화인 The Red Shoes의 터치를 가미하기도 했다. 실제보다 더 강렬하고 감정적이었다. The Lexicon of Love는 어느 정도는 그러했다. 난 팔세토 창법을 많이 썼다. 부분적으로 사랑에 빠진 것의 롤러코스터 탑승을 – 우쭐함과 절망 –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의 첫 싱글 Tears Are Not Enough는 1981년에 탑20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앨범은 보다 다듬어졌다. Dollar’s의 파노라마와 같은 넓은 화면과 같은 사운드인 Hand Held in Black and White를 듣고, 우리는 프로듀서 Trevor Horn과 접촉하였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려던 것을 즉시 이해했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가득했고 락앤롤을 바꿀 수 있으리라 – 셰필드에서 실직수당을 받으며 노래를 막 시작한 이에게는 매우 야심 찬 – 생각했다.

가사적으로 나는 Gary Numan과 OMD의 것을 사랑했었지만, 내 노래들을 Rodgers and Hammerstein이나 Cole Porter의 라인처럼 보다 감정적으로 고양시키고 싶었다. 그 당시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에 관한 노래가 드물었다. 펑크는 매우 중독적임에도 여성들은 그들의 존재감을 Lexicon에서 부각시켰다. 선율을 그렇게 두드러지게 특징 지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Cilla Black이나 Cliff Richard가 아니라면 말이다. 4위까지 오른 The Look of Love는 무그 베이스라인에 모든 피치카토 어레인지먼트가 담겨 있었다. 반면 All of My Heart (No 5)는 매우 Bridge Over Troubled Water 스러웠다.

이미지적 관점에서 황금색 라메 수트와 디너 재킷은 우리를 펑크와 달리 보이게 했다. 야심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James Bond와 같은 요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30년에 걸쳐 나는 이 노래들을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왔다. 나는 내 삶을 살아왔고 이제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All of My Heart로 돌아가는 것은 – 그리고 소년답게 라기보다는 남자답게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Anne Dudley, 키보드, 어레인저

ABC는 키보드 연주자가 없었다. 그래서 Trevor Horn이 영입했다. The Look of Love를 녹음하는 도중에 그는 진짜 현악과 관악 부문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젊은이의 확신으로 경험은 일천했지만 내가 어레인지먼트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우리가 애비로드에서 30개의 현악 섹션을 녹음했을 때, 나는 종종 그 방에서 가장 어렸다. 나는 Gamble and Huff의 디스코 클래식 The Sound of Philadelphia에서의 오케스트라의 풍부함을 언제나 사랑했었다. 이게 주된 영감이 되었고 또한 Bee Gees의 날아오르는 듯 하지만 단순한 현악 라인이 보태졌고 심지어 거기에는 Vaughan Williams도 약간 가미되었다.

The Look of Love의 믹스를 듣고 Trevor가 얼마나 시끄럽게 현악을 만들어냈는지를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ABC의 색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미안해할 것도 없이 호사스럽고 서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많은 트랙들에 현악을 가미할 것이었고 앨범의 독특한 사운드를 개발해 나갈 것이었다. – 최신의 기술,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실제 악기의 조화. 그 이후로 내가 추구해오던 조합이다.

솔직히 난 All of My Heart가 처음엔 좀 약하다고 생각했다. Trevor가 “all of my heart”의 가사를 부르기 전에 드라마틱한 멈춤과 코러스로의 결말을 첨가할 때까지 말이다. 우리는 그 다음에 팀파니를 조금 더 넣었다. 반면 페이드아웃은 내게 영국의 목가적인 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결론적으로 그건 아마도 Martin의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드러진 곡이 되었다. 그러나 트랙들은 모두 두드러졌다. Martin의 재치 있고 쉬운 가사는 젊은 사랑의 시도를 요약하고 있다. The Lexicon of Love는 1위를 기록했고 난 이 앨범이 30년간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관해 즐거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젊은 날의 노력이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