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discogs
ヴィジターズ(비지터스, Visitors)는 1984년 5월 21일에 EPIC·소니에서 발매한 사노 모토하루(佐野元春)의 4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미 3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일본에서 이른바 AOR(Adult-oriented rock)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1 사노는 좀더 본격적으로 서구적인 음악을 시도하고 싶어서였는지 이 앨범의 작업을 위해 1984년 5월부터 1년간 뉴욕에 체류하면서 현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고, 이 과정에서 뉴욕문화 및 미국음악의 요소를 이 앨범에 많이 포함시켜 완성하였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앨범이 두 개가 있다. 바로 Joe Jackson이 1982년 발표한 Night and Day, Talking Heads가 1980년 발표한 Remain In Light. 사노의 비지터스는 이방인이 뉴욕에 방문하여 음악에 뉴욕이라는 도시를 담았다는 점에서 전자를2, 흑인이 아닌 인종이 – 서구음악을 빨리 수입하는 일본마저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 랩, 힙합 등 흑인음악을 받아들여 절충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후자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세 앨범 모두가 공간적 배경은 뉴욕이다.3 뉴욕은 공간이자 영감이었던 것이다.
첫 트랙 Complication Shakedown에서 사노는 곧바로 본격적인 랩을 시도하면서 앨범의 청자에게 신선한 느낌을 안겨준다. 이어진 곡 Tonight은 뉴욕 거리를 배회하는 화자의 입을 통해 뉴욕이라는 도시를 찬양하는데 Joe Jackson의 Steppin’ Out에서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 번째 트랙 Wild On The Street에서 사노는 다시 랩을 시도하는데 R&B적인 감성까지 가미되어 후배 쿠보타 토시노부(久保田 利伸)의 원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네 번째 트랙 Sunday Morning Blue는 존 레논(John Lennon)의 죽음을 소재로 한 노래다.4 비틀즈 풍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다섯 번째 트랙 Visitors는 앨범명과 동일한 트랙. 이 곡에서는 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술(spoken word)’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한층 토킹헤즈가 발표한 앞서 언급한 앨범 중에서의 트랙 Listening Wind를 연상케 한다. 가사 중에 ‘クロスワードパズル解きながら 今夜もストレンジャー(크로스워드 퍼즐 풀면서 오늘밤도 이방인)’이라는 부분이 공감가는 대목이다. 여섯 번째 트랙 Shame은 또다시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편안한 멜로디가 특징인 곡이다. 일곱 번째 Come Shining은 전주가 맘에 드는데 80년대를 풍미한 뉴웨이브/신스팝에서의 경쾌하고 캐치한 멜로디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트랙 New Age도 랩이 주조를 이루는 트랙이다. 긴장감 있는 베이스 연주가 맘에 든다.
사노 자신이 말하길 이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순수한 팝아트” 또는 “가장 언어적인” 앨범이다. 어쨌든 어찌 보면 당시 일본의 대중음악계에서도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발매 당시 오리콘 차트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연간 24위를 기록하는 등의 준수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제26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도 ‘우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음악 전문 잡지 뮤직 매거진에서 2019년 4월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일본 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에서는 28위로 선정됐다. 과문하지만 일본음악계에서도 이러한 전폭적인 서구적인 흑인음악의 채택으로 크게 성공한 경우는 이후 90년대 우타다 히카루(宇多田 ヒカル)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5
- 그럼에도 아직까지 노래는 일본 가요풍의 멜로디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히트 앨범 썸데이(サムデイ)만 해도 아직까지는 일본 가요풍의 팝 요소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
- 조잭슨은 영국의 펑크락 뮤지션이다 ↩
- 토킹헤즈의 음반은 바하마에서 녹음했지만, 이 밴드야말로 뉴욕 토박이들이고 그들의 음악적 특성에서 뉴욕을 떼어놓을 수 없다. ↩
- Off Course(オフ・コース)가 1982년 발표한 I Love You에서도 존 레논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
- 공교롭게도 히카루의 퍼스트러브의 곡들도 그가 뉴욕에 머물면서 쓴 곡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