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영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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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cogs, Fair use, Link

Sting만큼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에서 모두 엄청난 음악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도 그리 많지 않다. 레게에 기초한 펑크락 밴드 The Police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내놓은 음반 하나하나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고 1983년 Synchronicity를 내놓으며 그룹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그는 슬슬 솔로 활동을 예열하더니 1985년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를 내놓으며 밴드 리더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그뒤 2025년 현재까지 열다섯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는 등 – 분량이 밴드 활동 시기의 세배! –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작 활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솔로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그의 솔로 2집 Nothing Like the Sun의 세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뉴올리언스 출신의 째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쓸쓸한 소프라노색서폰 연주가 곡 전면에 깔리는 ‘뉴욕에서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 을 꼽을 것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 BTS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스팅이 강조하고 있었다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스토리는 곡의 매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 같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고 푸념하는 스팅이 오만하다는 투의 트윗을 해서 다른 이들의 어그로를 끈 적이 있는데 – 지금은 그 트윗을 지웠는지 안보임 – 트위터에서 몇몇이 지적했다시피 이 노래는 스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기도 하지만 – 그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영국인 이야기다.

In New York City, 1992
By Ross B. Lewis – Private correspondence, CC BY-SA 4.0, Link

그의 이름은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 본명 Denis Charles Pratt)로 아티스트의 모델 등으로 활동한 저술가/예술가이자 커밍아웃한 게이다. 1908년 생인 그는 환갑의 나이가 다 된 1968년 자서전 The Naked Civil Servant1 를 내놓는다. 1964년 입담이 좋았던 쿠엔틴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누드모델, 책 디자이너, 성매매 노동자 등으로 일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영국의 Jonathan Cape라는 출판사의 임원이 이 인터뷰를 듣고 책으로 낼 것을 제안했고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꽤 인기를 얻게 된다.

1978년 당시 만담가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공연을 위해 떠났다가 아예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도 저예산으로 제작된 햄릿(1976년)의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5년 The Bride라는 이름의 고딕로맨스 영화에 잴허스(Zalhus)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데2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프랑켄슈타인 남작 역을 맡은 스팅이었다. 쿠엔틴의 재치있는 입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스팅은 1987년 쿠엔틴에 관한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을 발표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곡의 주인공은 뉴욕에 와서도 영국식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영국식 액센트도 그대로이고,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걷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뉘앙스만 약간 풍길 뿐이다. 쿠엔틴은 생전에도 게이 해방운동을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인 영국에서 그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냉소주의를 택한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하기에 노래는 이방인(지역 혹은 성적정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한 독특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Quentin’s a friend of mine and someone I admire greatly because I think he’s one of the most courageous people I’ve ever met. He has lived his life in an individual way in a society that is vicious and malevolent. But he is a hero in a feminine way. So that’s a song about the feminine qualities than can exist in man without being negative.”
“쿠엔틴은 제 친구이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사람인데,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악의적인 사회에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이지 않고도 남성에게 존재할 수 있는 여성적인 특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 Timeout, 1987년 10월

스팅의 타임아웃과의 인터뷰 중 쿠엔틴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인터뷰에서 스팅은 “게이인 것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그는 화려한(flamboyantly) 게이였고 가장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혼란과 위험성에 대한 극복 수단은 유머(혹은 냉소)였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스팅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구분짓지 않기 또한 중요한 태도인데, 이러한 자세가 필요함은 전에 소개한, (역시) 뉴욕에서의 한 게이바의 군무를 묘사한 조잭슨의 Real Men이란 곡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See the nice boys dancing in pairs
Golden earring, golden tan, and blow wave in their hair
Sure, they’re all straight, straight as a line3
All the gays are macho, can’t you see the leather shine?

멋진 남자들이 짝을 지어 춤추는 걸 보세요
금빛 귀걸이, 황금빛 태닝, 그리고 머리카락에 불어오는 웨이브
물론, 그들은 모두 스트레이트합니다. 일직선 춤라인처럼요
게이들은 모두 마초예요, 가죽이 빛나는 걸 못 보나요?

뮤직비디오는 완연한 째즈 풍의 곡에 맞게 뉴욕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4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의 스팅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인공 쿠엔틴 크리스프가 등장하고, 브랜포드 등 연주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다들 뉴욕을 배회하는 이방인들일 뿐이다.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브랜포드는 쓸쓸히 홀로 길을 걸어간다.5 이러한 흑백화면의 비디오가 80년대말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영상의 트렌드로 쓰였는데 언뜻 생각나는 것은 펫숍보이스마돈나다. 이 비디오도 모두 화려하다(flamboyant).

누가 뭐라든 내 자신이 되라”…….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다.

  1. 그는 한 예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했고 급료는 교육부가 지불하여서 결국 자신도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쿠엔틴이 비꼬는 투로 표현한 것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2. 이 영화에는 또한 Flashdance를 통해 1980년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러나 이후의 인상적인 필르모그래피를 이어가지 못한 제니퍼 빌즈(Jennifer Beals)가 출연한다고 한다
  3. 조잭슨은 “그래 그들은 다 똑바르지(straight). 줄만큼이나.”에서는 straight의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
  4. 감독은 그 유명한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5. 흥미로운 것은 스팅이 뿌연 창밖으로 보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에 지금은 없어진 쌍둥이 빌딩의 실루엣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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