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 몇 편의 短評

Doubt
최근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긴 여운이 남았던 작품. 카톨릭 학교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둘러싸고 교장 수녀와 사제가 겪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등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의 열연으로 긴장감이 화면에 꽉 차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역으로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10분 정도의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한다. 최근 ‘사건의 전후가 데칼코마니처럼 접히는 그런 스릴러를 만들면 재밌겠다’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이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잘 포개진다.

Brokeback Mountain
이안 감독의 명성을 높였던 또 하나의 수작. 거친 서부의 사나이들이지만 동성애 관계에 휘말린(말 그대로) 두 남자의 인생을 다룬 작품. 아름다운 풍광, 두 배우의 멋진 연기, 안타까운 사연 등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지만 오랜 세월을 짧은 상영시간에 담느라 영화가 좀 서두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먼저 저 세상으로 간 히스 레저의 비극적인 삶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그의 연기를 보며 기분이 묘했다. 영화 속에서 이혼한 아내로 나오는 미쉘 윌리엄스도 실제로는 히스 레저와 연인이었고 그의 죽음 뒤에도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으로 알려져 더 안타까웠다.

Arthur
부잣집 바람둥이 아써가 가족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가난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국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코미디. 통속적인 스토리지만 더들리 무어, 라이자 미넬리의 매력적인 연기와 버트 바카락이 작곡한 멋진 주제가 Best That You Can Do 때문에 보고 있자면 저절로 흥이 나는 작품. “When you get caught between the moon and New York city”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팝송 가사 중 하나다.

Matewan
메이트원이라는 탄광도시에서 펼쳐지는 20세기 초 미국의 노동운동을 다룬 영화. 감독 John Sayles가 근처를 들렀다가 이 무용담을 듣고 영화화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탄광도시의 모습은 전설적인 미국의 노동영웅 Mother Jones의 평전에서 그리던 것과 거의 유사하다. 회사는 노동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임대료를 받는다. 그의 노동도구, 그의 집, 그리고 가재도구까지. 이에 분노하여 백인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는 유색인종 노동자를 데려온다. 전국노조에서 파견된 조 캐너헌이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 간의 갈등을 봉합하면서 투쟁을 본궤도로 올려놓으려 한다. 미국영화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걸작이라 할만한 작품.

Searching For Sugarman
로드리게즈라는 1970년대의 가수가 있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두 장의 앨범을 냈지만 아무도 모른다. 놀랍게도 이역만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그의 음악이 흘러들어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후대 음악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당시 남아공은 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지라 로드리게즈는 그 사실을 모르고, 남아공의 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후에 한 기자가 그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에 그가 살아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남아공에 데려온다. 팬들은 콘서트 장에서 10여분이 넘는 기립박수로 그를 응원한다.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로드리게즈는 그러한 열광적인 호응을 뒤로 한 채 다시 디트로이트에 돌아와 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전설적인 가수이기도 하지만 노동의 가치를 알고 노동자들을 위해 살아가고자 했던 노동영웅이기도 한 분이다.

Thin Red Line
Terrence Malick의 1999년 작. 2차 대전 와중에 태평양의 한 섬을 둘러싸고 의미 없는 살육을 반복하는 상황을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의 전투씬에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화면처럼 그 동안의 시점과는 또 다른 박진감 있는 화면으로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거기에다 담긴 메시지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과 같은 고루한 관점이 아닌, 보다 차원 높은 철학적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줄만 하다. 영화의 메시지는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는데, ‘얇고 붉은 선’은 원래 크림 전쟁 당시 러시아군에 무모하게 대항했던 소수의 英-佛-트루크 연합군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들의 전투는 무의미한 희생자만을 낳은 사상 최악의 졸전으로 평가받는 전투였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