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에로영화

80년대는 군사정권하에 영화에 대한 많은 표현의 제약이 있었다. 정치적 필요에 의한 3S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에로 영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본격 에로물의 효시는 정인엽의 <애마부인>으로 꼽힌다. 당시 나온 에로 영화를 몇 가지로 분류해보면 먼저 육체적 에로영화로 대표적인 것이 애마부인 시리즈다. 그 다음이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변강쇠, 변금련 등의 토속에로영화. 또 하나가 바로 사회성을 바탕으로한 사회성 에로영화다.  
 
애마부인  

1982년 정인엽감독 안소영, 임동진, 하명중, 하재영 등이 출연한 영화로 방화 애로 영화의 대명사로 불려지는 작품.

<애마부인> 시리즈의 첫편은 여주인공 안소영의 가슴 크기와 함께 장안의 화제가 됐으며, 그 뒤 속편들도 가슴 크기에서 안소영 못지 않았던 오수비, 김부선, 유혜리 등 에로스타를 배출하면서 젖소부인이 나오기 이전까지 이 영화의 여배우는 가슴 큰 여배우의 대명사로 불려지게 된다.
1편의 극장제목은 <愛麻부인>이었다. <愛馬->라고 못한 이유는 검열당국이 보기에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려되어서였단다. 그래서 마약 좋아하는 부인으로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검열이라는 것이 골때리는 것이다.  

매춘

1988년 작품으로 나영희, 마흥식이 출연하는 영화로 줄거리는 사랑의 실패와 한남자의 폭행으로 삶을 자포자기하여 창녀가 된 나영이 우연히 어린시절의 친구였던 문희를 만나게 된다. 가난함 때문에 창녀가 된 문희는 고시지망생인 영민을 돕는다. 문희는 영민이 고시에 패스하고 나서 변심하여 고위층 딸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자 자살을 하게 되고 나영은 그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나영의 주도하에 영구차가 영민의 결혼식에 도착하게 되자 신부측과 하객들 앞에서 영민은 문희이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이 영화는 매춘이 용인되는 사회를 비판하며 천대받는 그들의 위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비판적 메시지보다는 과감한 노출과 정사신이 화제가 된 영화이다.  

어우동

1985년 작품으로 이장호감독 이보희 , 안성기 주연의 토속 에로물이지만 사회비판적 에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조 제9대 성종때 실존하였던 어우동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유교의 폐습인 칠거지악과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해 있을 즈음 사대부집 규수인 어우동은 미천한 신분의 사내와 사랑을 나누지만, 양반계급의 계율에 분노를 느껴 시집을 뛰쳐나와 죽음을 택한다.

이때 구사일생으로 향지라는 여인에게 목숨을 구원받는다. 이를 인연으로 기생이 된 어우동은 자신의 육체를 미끼로 양반들을 자신의 성의 노예로 만들며 잘못된 역사의 인습에 항쟁을 시작한다. 이에 자신들의 양반가문과 체통을 두려워한 시댁인 태산군 등은 자객을 시켜 어우동을 없애려하나 첫사랑의 연인의 도움으로 피해 그와 함께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자결한다.

폐쇄적인 제도와 윤리속에 억압받는 여인이 남성위주의 윤리에 정면으로 대결한다는 점에서 사회성이 엿보였다. 무인들의 호위속에 어우동이 임금과 정사를 나누는 장면은 국가원수를 비유 할수 있다고 해서 개봉 이후 다시 잘라내 말썽을 빚기도 했다.

변강쇠와 뽕  
 
80년대 토속에로물의 대표작은 변강쇠전과 뽕이라고 할 수 있다.

변강쇠는 1986년 작품으로 고전 변강쇠전을 영화화 하였고 뽕은 1985년 작품으로 나도향의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당대의 톱스타인 원미경과 이미숙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으며 이미숙은 이후 90년대에 정사에 출연하여 원숙미를 자랑하였다.

변강쇠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남자 주인공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기존의 애로물과 다르게 이대근은 전혀 에로물에 어울리지 않는 몸매로 그 자신 특유의 해학적 연기력으로 힘센 아저씨의 대명사처럼 불려지게 된다.

출처(이미 죽은 링크) : http://www.n-health.com/clinic/n-sex/screen/kor_scre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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