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Ig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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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y Pop – pinkpop87” by Yves Lorson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Iggy Pop.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이기 팝은 미시건 주 앤 아르버 태생이다. 그의 첫 밴드인 이구아나스(The Iguanas) 시절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1970년 『재즈 & 팝』지의 인터뷰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는데 그의 괴상한 성격이 유년시절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렸을 땐 몹시 불행했고, 지극히 수줍음이 심했어요. 항상 망상 속에서 살았는데, 18세 무렵 교통사고로 같이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난 상처하나 입지 않았어요.”

1960년대 중반부터 이기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이구아나스와 프라임 무버즈 등의 멤버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블루스 음악인 샘 레이와도 연주활동을 했다.

“난 시카고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흑인 소울 밴드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그 지역에서의 음악활동을 청산했지요. 샘 레이 외에 조니 영이나 피트 윌링포드 등도 훌륭한 뮤지션이지만 함께 연주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 있었어요.”

이후 이기는 도어스(The Doors)의 공연에 영감을 얻었고, 68년에 자신만의 허무주의적 음악관에 걸맞는 밴드 스투지스(The Stooges)를 결성했다. 이 때까지 이기는 드럼을 연주했는데, 스투지스를 결성하며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론 애쉬톤이 베이스를, 스코트 애쉬톤이 드럼을 담당했는데, 얼마후 베이시스트 데이브 알렉산더가 기타리스트로 가입하여 이기는 보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선배격인 도어스의 싱어 짐 모리슨과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이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전위적인 쇼맨십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상야릇한 무대 액션을 하며 노래를 하는 동안 밴드는 엄청난 볼륨으로 화음을 실어 원초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의 무대 액션은 단순한 쇼맨십이라기에는 심오한 부분이 많았다. 그의 행위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스투지스는 처음부터 청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차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미시건 주와 일리노이 주를 비롯한 중서부 지역에서 팬들을 확보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로 스투지스는 일렉트라 음반사와 레코딩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스투지스는 일렉트라 음반사를 통해 69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이 프로듀스한 1970년 2집 「Funhouse」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때 이기의 약물복용과 관련하여 스투지스는 해체하게 되었고, 이기의 활동도 중단되고 말았다.

72년 이기는 동갑내기이면서 음악적 동료인 데이빗 보위의 도움으로 데이빗 보위의 홈 타운 런던에서 새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앨범 제작에는 역시 스투지스의 멤버였던 론 애쉬톤과 스코트 애쉬톤, 그리고 데이브 알렉산더를 대신한 기타리스트 제임스 윌리엄슨이 함께 했다.

새로운 재기 앨범인 73년 3집 「Raw Power」는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Iggy And The Stooges)라는 아티스트 이름으로 컬럼비아 음반사를 통해 73년에 발표되었다. ‘핵폭탄으로부터 도망한 아이의 모습과 같은 앨범’이라는 이기의 표현대로 이 앨범은 허무주의 찬가 등으로 팬들의 가슴에 뜨거운 공명을 불어넣었다. 또한 빌보드 앨범 차트에도 상위권에 진입할 만큼 상업적 성공도 거둔 명반이 되었다.

하지만 76년 4집 「Metallic K.O」을 마지막으로 다시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이기는 데이빗 보위가 소속된 RCA에서 데이빗 보위의 지원을 받으며 77년 통산 4집 「The Idiot」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데이빗 보위와 공동 작곡한 노래들과, 데이빗 보위가 리메이크(스티비 레이 본의 노래)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77년에는 또 버진 음반사를 통해 5집을 발표하는데, 역시 데이빗 보위와 공동작곡을 했다. 77년에는 또 「Kill City」 6집으로 선보였다.

78년에는 RCA 음반사를 통해 첫 라이브 앨범, 통산 7집으로 선보였으며, 아리스타 음반사를 통해 79년 8집 「New Values」, 「Soldier」, 그리고 과 「Party」를 발표했다. 1980년에 「No Fun」이라는 타이틀로 앨범을 발매했고. 81년엔 앨범 「Party」를 낸다.

이기는 82년 12집 「Zombie Birdhouse」를 내놓으며 활약을 펼치지만 계속 마약문제가 뒤따랐고, 결국 다시 활동은 중단 되었다. 하지만 이 기간인 84년에 RCA 음반사를 통해 편집음반을 발매했다.

공연에서 이기는 마치 래퍼처럼, 노래한다.

“잘 먹어서 혈색 멀끔한 자식들아. ~~””

청중들은 이러한 언동을 그저 신비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기는 ‘통제불능의 과잉행동장애를 보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도 무대를 벗어나면 사라진다.

약 4년간의 공백후 이기는 마약문제를 해결하고, A&M 음반사를 통해 86년 통산 14집을 내놓았는데, 데이빗 보위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에는 존스도 참여하여 이기와 함께 곡을 썼다. 이기의 독특하고 왕성한 활동은 다시 시작된다. 데이빗 보위처럼 이기는 뮤지션일 뿐만 배우’이기도 하다. 우리는 “니코” “시드와 베이비” “하드웨어” “돈의 색깔”(The Color “크로우 2″(Crow 2)에서 이기의 연기를 접할 수 있다.

디스코그래피
1977 The Idiot Virgin
1977 Lust for Life Virgin
1978 TV Eye [live] RCA
1979 New Values Buddha
1980 Soldier Buddha
1981 Party Buddha
1982 Zombie Birdhouse IRS
1984 Choice Cuts RCA
1986 Blah Blah Blah A&M
1988 Instinct A&M
1990 Brick by Brick Virgin
1993 American Caesar Virgin
1995 We’re Not Talking About Commercial Shit Sky Dog
1995 Wake Up Suckers Sky Dog
1995 Live at the Ritz NYC (1986) New Rose Blues
1995 Live at the Channel, Boston MA 1988 ROIR
1996 Naughty Little Doggie Virgin
1997 Heroin Hates You [live] Other People’s
1997 King Biscuit Flower Hour [live] King Biscuit
1999 Avenue B [US] Virgin
1999 Avenue B [Japan Bonus Tracks] EMI
2000 Live EMI-Capitol
2000 Live in NYC King Biscuit
2001 Beat ‘Em Up Virgin
2001 Hippodrome, Paris ’77 [live] R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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