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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LeBon의 트윗

며칠 전에 듀란듀란의 싱어 싸이몬 르봉이 재밌는 트윗들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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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연주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The Smiths의 How Soon Is Now?가 생각났다면서 가사를 흥얼거린 – 사실은 트윗한 – 것이었다. 그 트윗을 보면 싸이몬 르봉이 “순이는 요즘 어때?”를 부르는 장면을 상상하니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이를테면 Morrissey가 Union Of The Snake를 부르는 장면이 상상이 안 되는 것처럼). 다른 팔로워들도 재미있었는지 90여 차례 리트윗됐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You shut your mouth”라고 멘션했다.

Morrissey 공연 후기 간단하게…

 출처 : @Kihang

처음 The Smiths의 존재를 안 것은 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의 존재를 거의 최초로 알린 이로 기억하는 복X주 씨의 글을 어느 음악잡지에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그 분도 어제 공연에 왔을까?) 글도 글이지만 멤버 네 명이서 반코트를 챙겨 입은 모습이 여느 메탈밴드는 물론이고 비슷한 음악을 하는 인디/뉴웨이브 계열과도 다른 분위기를 풍겨 인상적이었다.

그 뒤 외국에서 어렵사리 그들의 앨범을 구한 것이 라이브 앨범인 Rank. 그때가 1986년 아니면 87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들이 해산한 것이 1987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게 그들의 음악을 접한 셈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The Smiths의 음악은 나의 짧고 얇은 음악 듣기의 역사에 한 귀퉁이를 차지하였다. 정규앨범은 물론 국내 라이선스로 나오진 않았지만 90년대엔 수입CD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 확인해보니 Rank의 발매년도는 1988년. 내가 그 앨범을 얻었을 때는 이미 해산하였다.

Morrissey의 솔로 활동은 유명한 밴드 출신의 솔로 커리어 중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듯하다. The Smiths 나긋나긋한 음악이 약간 하드코어적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팬들의 팬덤도 여전했다. 차트에 오르는 곡은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팬들이나 모리씨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Your Arsenal을 가장 좋아했다. The Smiths와 모리씨 사운드가 가장 화학적으로 잘 결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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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을 팔던 부쓰

어제의 공연은 그러니까 햇수로 따지면 그들을 안지 27년쯤 되어서야 과거의 프론트맨을 겨우 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던 셈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목소리의 상태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상업적 인기를 유지하여 마침내 동북아 먼 곳 서울에까지 공연을 와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그 역시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코리아에 오게 될지 몰랐다는 취지의 말을 공연 중에 한 것으로 기억난다. 몰랐겠지.)

공연장은 예상했던 바, 관객의 적어도 1/3이상이 외국인이었다. 동행한 이에게 말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더라면 모리씨의 공연은 더 지연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인 관객들도 예상보다 많았던지라 크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적어도 중년의 성긴 머리처럼 객석이 비지 않아 보일 정도의 밀도는 됐다. 게다가 스탠딩 앞의 반응은 손 한번 잡아달라는 애타는 팬심까지 연출하였다.

그 덕분인지 공연은 나름 탄력을 받아 탄탄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모리씨의 음색은 깔끔했고 셋리스트는 – 다른 나라에서의 셋리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 적당한 강약을 유지하며 흐름을 탈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The Smiths 시절 곡이 네 곡 소개되었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리씨는 Meat Is Murder와 I Know It’s Over를 불렀고, 사실 이 두 곡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퍼포먼스는 Let Me Kiss You에서 연출되었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눈을 감고 네가 신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연상하면서 내가 키스하게 해달라’는 예의 모리씨스러운 가사의 곡인데, ‘눈을 뜨면 네가 신체적으로 경멸하는 누군가를 볼 것이다’라는 가사 부분에서 모리씨가 웃통을 벗어젖히고 셔츠를 관객석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곳은 난투장으로 돌변. 🙂

첫 곡으로 소개되지 않았던 Firs Of The Gang To Die는 예상대로 앵콜에서 등장했다. 기분상의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운드가 왠지 헤비하지 않아서 곡 자체는 앵콜곡에 어울렸지만 왠지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부족한 공허함이 있었다. 게다가 앵콜곡은 단 한 곡.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1시간 20분에 불과한 공연에 앵콜이 한 곡 밖이었니 27년을 기다린 보상심리를 채우기는 조금은 부족했다.

다시 오라 모리씨. 두 번 와라!

Johnny Marr “이 정부가 물러나면, 밴드를 재결성하겠다.”

2월 29일 열린 NME Awards에서 The Smiths를 재결성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한 Johnny Marr의 발언이다.

이번 주에 재결성하진 않겠다. 아마도 정부가 물러나면. 만약 이 정부가 물러나면, 밴드를 재결성하겠다. 어때? 공정한 거래다. 그렇지 않아? 나라는 더 좋아질 거고. 그렇지? 이 연립정부가 물러나면 하겠다.
We won’t be reforming this week. Maybe if the government stepped down. If this government stepped down, I’ll reform the band. How’s that? That’s a fair trade, isn’t it? I think the country would be better off, don’t you? I’ll do it if the coalition steps down.

출처

영화 속에 등장하는 80년대 팝 : Heaven Know I’m Miserable Now

유명한 The Smiths의 히트곡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쏘울밴드를 조직하여 성공하려 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다룬 알란파커의 1991년 작 The Commitments에 이 노래가 소개된다.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Jimmy가 밴드의 구성을 위해 오디션을 보는 상황에서 어떤 기타플레이어가 이 노래를 부른다.

Smiths’ Song Singer: [singing, auditioning for Jimmy] I was happy in the haze of a drunken hour, but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Jimmy Rabbitte
: Yeah, I know how you feel.[출처]

왜 Jimmy가 ‘네 심정을 알겠다’하는 이유는 Jimmy 자신도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였기 때문이다.

“David Cameron씨 내 노래 좋아하지 마~!”

현재 영국 수상 직을 맡고 있는 David Cameron은 여러모로 전통적인 영국 보수당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젊고 잘 생긴 외모에 대다수 보수들과는 달리 NHS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노회한 보수의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리버럴한 이미지가 더 풍긴다.(물론 그래봤자 토리~지만) 한편 그의 리버럴한 이미지를 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가 80년대의 전설적인 브리티시 뉴웨이브 밴드 Ths Smiths팬이라는 사실을 공언하고 다닌다는 점이다.

“보수당 당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리시는 ‘누가 내 비참함을 알까’라구 생각하겠죠. 유감스럽게도 저는 짱팬이에요. 미안해요. (I’m sure that when Morrissey finds that he’s getting endorsement from the leader of Conservative Party, he will think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I’m a big fan, I’m afraid. Sorry about that.)”[Morrissey와의 토크쇼 중에서]

왜 이 사실이 리버럴한 이미지인가 하는 것은, 비록 The Smiths가 드러내놓고 정치적 슬로건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반골기질이 강한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그들의 대표적인 앨범의 제목은 The Queen is Dead다. 이외에도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Panic1, There’s No Light That Never Goes Out과 같은 곡의 가사를 보면 그들이 보수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영국의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룹의 프론트맨은 각각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Morrissey와 Johnny Marr다. 이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Johnny Marr의 경우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David Cameron의 애정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Johnny Marr는 작년 12월 2일 트윗을 통해 “우리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Morrissey는 지지의 뜻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David Cameron은 의회에서 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추궁당하기도 했다.

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의회에서의 추궁 장면

우리로서는 이 정도의 일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구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윤도현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트위터에서 “내 노래 좋아하지 마”라고 트윗을 했다면 영국보다 훨씬 살벌한 전개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영국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펼칠 수 있는 풍토가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직설적인 대중문화 풍토덕분이다. 대중문화의 이렇듯 솔직한 정치참여는 순수를 가장한 현실외면보다 훨씬 더 건강한 풍토인 것이다.

한편, 우리 너그러우신 Johnny Marr 님께서는 자신이 너무 몰인정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지난 2월 17일 트윗을 통해 David Cameron이 그들의 노래를 좋아해도 된다고 윤허하셨다. 문제는 단서조건이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라는 단 한곡을 2주일동안만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Johnny Marr가 노래제목을 통해 또 한번 David Cameron을 조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당이 진행하고 있는 개혁은 결국 끝낼 수 없을 것이기에.

  1. 좀비의 습격을 다룬 영국 코미디 Shaun of the Dead에서 주인공 숀이 좀비로 런던이 폐해가 되기 시작한 날 아침, TV를 틀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며 상황에 대한 복선을 깐다

Johnny Marr, 자서전 집필 계획

The Smiths의 Johnny Marr가 한 출판사로부터 자서전 집필 제의를 받았고 이를 수락했다고 트위터를 통해서 밝혔다. 책을 쓰느라 노래를 만들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어쨌든 쓸 계획이라며, 이 책에는 자신의 80년대 공공 버스 티켓 컬렉션과 같은 것들에 관한 책일거라고~ ㅋㅋㅋ 출처 1, 2

Smith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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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sPromoPhoto TQID 1985” by Scanned promotional photograph.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스미쓰는 82년 봄 맨체스터 출신의 두 남자, 모리세이(본명 Steven Patrick Morrissey)와 자니 마(본명 John Maher)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해 여름 데모 작업을 위해 드러머인 사이먼 볼스탠크로프트(Simon Wolstencroft)와 녹음을 했지만 그는 스미쓰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후에 사이먼은 폴(The Fall)에 들어갔고, 결국 스미쓰에 합류한 마이크 조이스(Mlke Joyce)와 함께 맨체스터 리츠에서 데뷔 공연을 가졌다. 베이스가 없던 스미쓰는 82년 말 스미쓰의 평생 동반자인 앤디 러크(Andy Rourke)를 만났는데 그는 자니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스미쓰의 첫 싱글 ‘Hand In Glove’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83년의 두 번째 싱글 ‘This Charming Man’은 영국 차트 30위에 오르는 실력을 과시했다. 곧장 미국 투어에 오른 네 명은 새로운 싱글 ‘What Difference Does It Make?’를 발표하고 12위에까지 올랐다. 모리세이는 자주 성(性)의 개념을 무너뜨리는 가사를 썼는데, 그의 동료 자니의 기타 사운드는 이런 모리세이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하였다. 한편 1집의 엔딩곡인 ‘Little Children’은 60년대에 일어났던 끔찍한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어린 아이들에게 바치는 레퀴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비난했고 스미쓰는 언론의 표적이 되어 곤혹을 치뤄야만 했다. 다행히 피해자 측의 모리세이에 대한 변론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후 스미쓰와 모리세이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에피소드로 남았다.

스미쓰는 미국의 R.E.M이나 벡(Beck)처럼 대학가의 유명한 컬트 밴드가 되어가고 있었다. 86년 메이저 레이블인 EMI로 이적한 후 영국 투어를 하던 중, 자니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의 공백을 크래이그 개넌(Craig Gannon)이 대신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법적인 문제로까지 불거지게 되었다. 브릭스톤 아카데미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스미쓰의 영국 공연은 더 이상 실현되지 않았다. 자니는 더 이상 스미쓰에 남아있고 싶어하지 않았다. 음악적인 방향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에게는 휴식기간이 필요했다. 이들의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했으며, 결국엔 87년 8월 공식적으로 해산을 선언했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표된 앨범은 [Strangeways, Here We Come]으로 같은 해 나왔고, 이듬해 [Rank]가 발표되면서 스미쓰의 잔존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멤버들은 각자 세션맨으로서 분주하게 활동했고, 모리세이 또한 화려한 싱글 데뷔를 하였다.

자니는 프리텐더스(Pretenders)와 더더(The The)에서 기타맨으로 활약하다가 버나드와 함께 시작한 일렉트로닉에서 다시 한번 부활을 꿈꾸었다. 그는 과외활동으로 브라이언 페리, 토킹 헤즈, 빌리 브래이그, 커스티 맥콜, 팻샵 보이즈, 스텍스, 그리고 반데라스에 이르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에필로그

필자가 스미쓰를 처음 접한 것은 영화 Pretty in Pink의 싸운드트랙에서였다. 이 OST에 삽입된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라는 긴 이름의 이 노래는 그들의 서정적인 음악적 감성을 잘 표현해주는 곡으로 눈밭에서 반코트를 입은채 서있는 그들의 흑백사진과 오버랩되면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주는 곡이었다. 모리쎄이의 시적인 가사와 자니마의 발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절한 키타 사운드는 이들 음악의 핵심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고딕락의 우울한 자화상과 이언커티스(Joy Division)의 표정이 묻어나는 듯한 그들의 음악적 천재성으로 인해 한동안 영국 음악계에 등장하는 신진밴드들은 이들과 비교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했다.

이제 모리쎄이는 예전의 샤프한 모습에서 적당히 살집이 잡힌 늙수구레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한채 미국에서 하드코어 밴드를 이끌고 있고 자니마는 뉴오더의 버나드섬너와 함께 일렉트로닉으로 활동하여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는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있다 한다.

 

다른글(출처 : http://www.intermuz.com/theRocker/noiz_box/NOISE5.asp)

70년대 말 펑크의 소진과 함께 뉴 웨이브 팝이 영국 대중음악계를 휩쓸 무렵, 주류 팝 시장은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전자 음악의 홍수로 80년대 팝 음악시장의 모습을 갖춰나간다.울트라복스, 휴먼 리그같은 밴드들이 표방한 신스 팝은 이윽고 듀란 듀란, 컬처 클럽, 왬 등의 아이돌 스타들에 의한 세련된 포장으로 변신한다. MTV의 등장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가져왔고, 주류 팝 시장에선 음악성보다는 외모와 무대 매너로만 음악인의 자질을 판가름하는 경향이 점차 농후해 졌다.

여기서 소개할 80년대 맨체스터 사운드는 바로 이런 당시 영국 주류 팝 시장의 소모적이고도 치열한 ‘음악 팔리기’에 대해 저항하며 맨체스터라는 영국 북부의 공업 소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한 인디 밴드들의 음악 스타일을 통칭해서 말한다. 영국 내에서 보면 한갓 지방도시에 불과한 이 지역을 거점으로 바로 본격적인 영국 얼터너티브 록 씬의 맹아가 형성되었다.

맨체스터 내의 밴드들은 그들만의 ‘지역성’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 색깔을 지니려고 했고 80년대 영국 얼터너티브의 발화점으로서 바로 이 맨체스터를 꼽는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 하다. 80년대 당시 활동하던 맨체스터 출신 밴드들 중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던 밴드들론 스미스, 뉴 오더, 제임스 등이 있었고, 이들의 직계 영향 하에 등장한 ‘매드 체스터(일명 미친 맨체스터들)군단-스톤 로지스.해피 먼데이스, 인스파이럴 카펫, 살란탄 UK-들은 바로 위에 언급한 세 밴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90년대 등장한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와 같은 쟁쟁한 브릿팝 그룹들 역시 바로 이 맨체스터 사운드에서 직,간접으로 그 음악적 영향을 흡수했다 볼 수 있다.

이 글에선 맨체스터 사운드를 대표하는 중요한 두 거목 스미스와 뉴 오더를 소개한다. 이들 그룹은 각각 ‘기타-팝’과 ‘신스 팝’이라는 음악 스타일을 통해 영국 내의 ‘인디 팝’ 운동의 선두를 담당한 밴드들이다. 이 두 밴드는 펑크와 90년대 브릿 팝을 연결 시키는 중요한 가교로서 거론되곤 한다. 앞으로 두 편으로 나눠서 진행 될 본 내용에서 먼저 ‘스미스’에 대해 알아본다.

The Smiths –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

스미스의 음악을 ‘기타 팝’이라고들 한다. 이는 당시 영국 내 대중 음악 상황과 연관되어서 붙어진 명칭인데, 당시 영국 팝 음악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스타일은 신시사이저와 시퀸서가 만들어 내는 전자음 위주의 음악이었다. 스미스의 음악은 당시 이런 주류 음악 산업의 배경 대한 신선한 대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팀의 핵인 보컬 모리시와 기타리스트 자니 마는 밴드의 지향점을 규정한다.

팀에서 작사와 보컬을 맡고 있는 모리시[본명 스티븐 패트릭 모리시(Morrissey);1959-]는 천부적인 언어 능력을 소유한 음악인 이전의 문학도이다. 그의 정신적인 우상이기도 한 제임스 딘을 닮은 창백한 이미지는 입 안에서 구르는 듯한 맬랑꼴리한 느낌의 보컬과 결합하여 기존 록 음악의 ‘샤우트’한 거친 록 음악 특유의 마초쉽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리시의 공연을 보면서 ‘록 스타’라는 이미지는 오간데 없고 ‘동네 이웃의 친한 오빠’라는 친근한 이미지로서 다가온다. 그저 길을 지나치다가 쉽게 마주치는 그런 수줍은 청년 말이다.

그의 노래는 멜로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리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모리시의 보컬은 결코 넘치거나 나서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제한된 음정 폭(3도에서 길어야 5도)에서 보컬을 구사한다.

그의 보컬은 스미스의 음악 전체에서도 일관된 성격을 유지한다. 그는 명백한 ‘팝’주의자이다. 그의 음악적 자양분은 멀리는 50년대 버디 할리가 보여준 록커빌리의 이미지에서 60년대 크루닝 창법을 통한 스탠더드 팝, 걸 그룹, 그리고 70년대 쇼킹한 스테이지 매너를 과시한 뉴욕 돌스와 데이빗 보위의 글램, 그리고 섹스 피스톨스의 폭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모리시의 가사 속엔 사춘기 소년의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는’듯한 수줍음(추억의 책갈피 마냥)과,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마냥 독설 어린 객끼, 여기에 문학도다운 탁월한 언어 감각이 오밀조밀하게 거미줄처럼 짜여 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팝 음악의 ‘남녀 상열지사’류의 가사도 모리시에겐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처절할 정도로 비수를 품은 폭력성은 그의 또 다른 면모이다. 그는 한 때 펑크 매니아라고 자처할 정도로 어린 사춘기 시절 펑크 음악에 매료됐었다. 뉴욕 CBGB 출신 뉴욕 돌스의 팬 클럽 회장까지 역임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 펑크의 출현을 반겼었다. 밴드 내에선 그렇게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노래를 부르던 그이지만 한편으론 ‘섹스 피스톨’이 보여준 ‘파괴의 본능’이 그의 가사 속에 녹아 있다.

기타와 작곡을 맡고있는 자니 마[본명: 조니 마어(Johnny Marr) ; 1963- ]는 밴드내의 음악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기타 소리는 록 음악 특유의 디스토션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크린 톤의, 맑게 울리는 기타 소리이다.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하나하나 튕겨가며내는 소리는 울리는 소리다. 그의 연주는 한음 한음이 또렷하다. 필요 없는 음의 낭비란 찾아 볼 수 없고 정갈하고 깔끔하다. 일렉기타 또는 어쿠스틱 기타를 번갈아 가며 사용하는 그의 기타소리를 두고 평론가들은 ‘쟁글쟁글(기타의 소리를 두고 표현하는 말)한 기타 소리가 나는 기타 팝’이라고들 한다.

자니 마의 기타는 지저분하고 거친 록의 본연의 느낌과 거리가 있다. 크린 톤의 기타 음은 기존 밴드 내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쟁쟁한 기타리스트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단지 모리시의 보컬을 든든히 받쳐주는 반주자의 역할에 가깝다. 리듬 웍이 강조되는 그의 기타 연주는 롤링 스톤의 키스 리처드에 비견될 수 있다. 베이스 주자인 엔디 루어크와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의 연주 역시 파묻혀 버리지 않고 정확하고 또렷이 들린다. 과거 아트 록 그룹 록시 뮤직이나 재즈 록 밴드 스틸리 댄의 음악에서 느끼는 스튜디오 작업의 정확함과 치밀성이 스미스의 음악에도 살아있다. 각각의 소리가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 무시됨 없이 명료하게 들려온다.

이런 자니 마가 제시한 스미스의 음악 방향은 모리시의 음악관과 판이하다. 자니 마의 연주에 밀도를 둔 치밀한 스튜디오 작업을 선호하는 반면 모리시는 ‘엘리트’ 적이며 권위적인 록의 기존 이미지’를 증오하는, ‘팝’ 순수주의자이다. 스미스만의 독특한 색깔이란 바로 이들 모리시와 자니 마가 보여준 ‘앤티 록’과 ‘앤티 팝’간의 묘한 긴장관계의 존재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밴드 내의 국면은 분명 본격적인 영국 얼터너티브 씬의 출발을 알리는 심상치 않은 징조였다.

 

The Smiths – Discography

그들의 활동은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만5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다. 자니 마와 모리시의 묘한 대립관계는 인디 음악계가 배출한 훌륭한 성과였을지 몰라도, 팀의 지속에는 확실히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들은 활동한 기간동안 4장의 정규 앨범과 3장의 베스트, 미발표 모음곡 집을 내놓는다. 그리고 몇몇의 앨범에 미수록된 싱글들을 활동 기간 내내 발표한다.

그들이 발표한 곡들은 영국 내에서 싱글 차트의 중상위권을 유지하면서 자국 내의 고정 팬을 확보할 정도의 반응을 보여줬던 스미스였지만 이들의 음악은 미국에서는 미미한 반응을 가져왔다. 아마도 그들의 음악에서 표방하는 “영국적인 상황”의 강조는 미국인들에겐 낮설고 어렵게 받아졌으리라 생각된다. 더군다나 그들이 표방한 ‘팝’이라는 음악 번지수는 미국 인디 씬이나 미국 내 인디 음악을 틀어주던 거개의 대학 교내 방송국에서 결코 반길만한 것이 못 되었다. 더군다나 미국 문화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들어내는 모리시의 가사는 미국인들에게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리라 본다.

The Smith – (1984)

메이저 급 음반사의 도움 없이 ‘러프 트레이드’ 라는 인디 레이블을 통해 나온 그들의 데뷔 음반은 브리티시 얼터너티브의 출현을 예고했다. 앨범이 나올 당시 영국 주류 음악 씬이 신시사이저로 치장된 기계 음이었던 반면에 이들의 음악은 지극히 소박하고 투명했다. 물론 스트링이나 피아노가 가세된 ‘틴 팬 앨리’ 류의 팝 음악이 아닌 과거 초기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그랬듯이 ‘밴드 편성의 팝’이었다.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니 마는 ‘우리가 이런 음악을 시도하기 전에는 아무도 이런 식의 기타 반주에 멜랑꼴리한 팝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들은 없었다’고 얘기한다.

82년 클럽 라이브 무대를 통해 데뷔한 이들은 83년 러프 트레이드를 통해 첫 싱글 “Hand in Glove”를 내놓으면서 영국 음반 시장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가사 내용 중 ‘호모 섹슈얼리티를 나타냈다는 점이 논란이 된 이 곡으로 바야흐로 언더그라운드 씬의 ‘스미스 열풍’을 예감케 한다. 소녀 취향의 팝 넘버인 그들의 두 번째 싱글 “This Charming man”은 영국 팝차트 25위까지 진출한다. 모리시의 창백하고 풋풋한 이미지는 소녀 팬들의 모성애를 자극했다. 그러나 아동 학대 내용을 다룬 “Reel around fountain”과 무어인(북 아프리카 아랍인과 베르베르족의 혼혈 인종)의 손에 살해 당한 아이를 보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Suffer little Children”에서 보듯 그들의 음악이 표현 대상은 핑크빛 사랑 타령을 넘어 추악하고 암울한 사회 현실마저 적나라하게 투영시킨다. 커다란 뿔태 안경을 끼고 보청기를 낀 채 수선화를 뒷 주머니에 꽂고(스미스 시절 모리시의 전형적인 무대 매너)무대에 등장하는 모리시가 우스꽝스럽지 몰라도 그의 가사에서 보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은 냉정하다.

Meat is murder – (1985)

모리시의 ‘채식주의’선언의 계기가 된 음반. 만인의 화제로 떠오른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은 전작 앨범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한다. 성과면에선 전작에 비해선 다소 뒤떨어졌다. “That joke isn’t funny anymore”가 싱글 커트 됨.

The Queen is Dead – (1986)

그들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꼽히는 수작. ‘여왕은 죽었다’라고 하는 앨범 타이틀에서 느끼듯이 전작들에 비해서 거칠게 몰아치는 첫 트랙부터 본 앨범의 진가를 기대하게끔 한다. 영국 왕실의 부패를 꼬집으며, 왕실의 실상을 모리시의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마도 “The queen is dead” 만큼 자니 마와 모리시의 특성의 뚜렷이 대비를 지닌 곡도 없을 것이다. 강한 백 비트에 실릴 우렁찬 기타 리프는 단순한 코드 진행과 반복되는 패턴으로 지속되지만 어느 스미스 싱글보다도 강렬하다. 단연 자니 마의 기타 연주는 본 곡에서 가히 압권이다. 앨범 시작을 강한 파워로 몰아 부친 이 곡을 통해서 스미스의 음악적 뿌리가 펑크에 있음을 다시금 증명한다.

스미스의 특기인 전형적인 팝 역시 “I know it’s over”에서 들려주는 멜랑콜리한 보컬은 여전하다. 스트링 편곡이 선명한 본 앨범의 첫 싱글 커트 곡인 “There is a light never go out”와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는 모리시가 표방하는 “영국의 특수성”으로 비쳐진다. 그는 그의 가사를 통해 영국의 인종문제, 계급, 사회 부조리를 그만의 위트와 수사법으로 표현하고 있다.”Queen”이라는 명사의 쓰임에서 보듯이 그의 노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영국 사회이다.

그의 가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 이런 그의 글 쓰기에서 나타나는 상황적 고려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자니 마의 기타 연주는 이전보다도 훨씬 다채롭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가며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돋보이는 “Bigmouth Strikes Again”를 비롯 50년대 록커빌리 사운드의 숨결이 느껴지는 “Vicar in a Tutu”에서도 자니 마의 기타 연주는 유난히 돋보인다. “There is a light never go out”와 “The boy with the thorn in his side”에서 보여준 세련된 편곡 솜씨는 ‘스미스’의 음악이 ‘과연 기타 팝’임을 여실 없이 증명한다.

스미스의 모든 것을 유감없이 드러낸 본작은 그들의 1집,2집 앨범을 들은 스미스 팬이었다면 ‘정말로 이젠 모든 것을 거침없이 드러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확실한 그들의 음악 색깔을 규정한다.

“Strangeway-Here We come” – (1987)

본 앨범을 내기 바로 직전 스미스는 갑작스런 해산을 선언한다. 이미 전작 “The Queen is dead”를 제작할 당시부터 자니 마와 모리시와의 밴드 내 분열은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둘 간의 음악 성향 차이로 인해 팀 해산을 맞는다. 모리시는 자니 마의 외도( 그는 당시 록시 뮤직에 있던 브라이언 페리나 밀리 브래그와 음악적 교류를 나눴다)가 못 마땅했고, 자니 마 역시 모리시의 60년대 팝 음악에 심취한 태도가 못 마땅했었다. 둘 사이의 음악적 견해차는 결국 본 앨봄 발매를 몇 주 앞두고 자니 마의 밴드를 떠나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모리시는 주저 없이 팀을 해산하고 솔로 활동에 나서게 된다.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와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day loved me”가 싱글로 커트 됨.

Single Collection

Hateful of hollow (Single B-side collection)
The world Won’t listen (single collection-UK version)
Louder than Bombs (single collection -US version)

이외에도 정규 앨범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싱글로 발표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Panic”은 미국 문화로 범벅된 영국의 상황을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을 각오를 갖고 만든 곡이다. “DJ를 교수형에”라는 독설 찬 그의 항변은 그가 미국 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의 정도를 말해준다.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는 영국 내의 사회문제인 실업을 모리시의 위트 어린 가사로 표현해냈다.

-자스보이- ( jassboy@hanmail.net )

[지나가다] [불평]ah you jassboy -whatever you are- so much to answer for… This sounds half-baked, or half-hearted at its best! 그리고 정정: 무어인이 아니라 60년대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엽기 연쇄살인사건인 무어스 머더(Moors Murder)를 말하는 것. 무어(스)는 그 지방 외곽의 황량한 들판을 지칭. -11월10일-
[lupin] 예전 로저 샤툭이 샤드백작-후작인가? 가 무어스 살인사건과 테디번디 살인사건의 원인 제공자라 했는데 그무어스가 그 무어스군요.. -11월10일-
[lupin] 윗글 쓰신분 =자스보이님딴엔 정성껏 동아 대 백과사전 찿아가며 쓰신 무어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지나가다님의 글을 읽고 다시보니 참 쓸쓸 하네요.. -11월10일-
[lupin] 스미스의 패닉은 들을때마다 딴나라당 선거 유세에 쓰이면 딱이겠다는 생각이…hang the dj,hang the dj -11월10일-
[moz] Hang the blessed DJ~ 한때 제 시그내춰로 쓰기도 했던 문구였습니다. 아~ 토요일 날도 좋은데 저녁때 웬 생일파리에 딸려나가야 하는군요. 고양이 산책이나 시켜야 겠다. -11월10일-
[moz] 선거캠페인쏭 말이 나와서 생각난건데 한때 부쉬녀석(애비부쉬)이 선거캠페인쏭으로 토킹헤즈의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를 썼다는군요. 이에 토킹헤즈 측은 it’s bullshit이라고 짤막하게 논평하였답니다. -11월10일-

디스코그래피
1984 The Smiths Sire
1985 Meat Is Murder Sire
1986 The Queen Is Dead Sire
1987 Strangeways Here We Come Sire
1988 Rank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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