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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s Of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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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sOfGloryPoster”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United Artists.. Licensed under Wikipedia.

개인적으로는 영화 감상할 때 롱테이크니 트래킹샷이니 하는 현란한 영상문법보다는 내러티브에 빠져드는 편이다. 영화에서의 영상기법이나 소설에서의 문체는 그 자체로도 감상포인트이긴 하나 역시 매력적인 이야기를 꾸며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리큐브릭의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각적 요소의 탁월함과 현란함은 그 자체로도 매료될만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개미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는 장면이나 참호 속을 시찰하는 장면은 유사한 장면의 연출에 있어 고전으로 남을만한 – 또는 지금 재탕을 해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일만한 – 표본으로 남을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물론 지나친 비주얼함이 극의 집중에 방해가 될 만도 하나 적어도 개인적으로 그로 인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로 자리매김하였고 프랑스 군인에 대한 – 또는 군대 체제에 대한 – 신랄한 시각으로 말미암아 1975년까지 프랑스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는 이 작품은 큐브릭의 영화이력의 이정표로 인정되고 있는 역작이다. 그의 개인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배우 Susanne Christian 은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였던 서부전선에서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던 Broulard 장군은 개인영달을 위해 가능성 없는 개미고지의 점령을 명령하고 Dax 대령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피해를 뻔히 알고도 진격명령을 내린다. 일부 부하들이 진격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진격은 막대한 피해만 남긴 채 실패한다. 분노한 Broulard 장군은 희생양을 위해 무고한 사병 셋을 군사법정에 회부한다.

전직 변호사였던 Dax 대령은 그들을 변호하지만 법정에는 기소장도 없었고 증거제출도 거부한 채 사병들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 와중에 Broulard 장군의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령이 양심적인 장교의 고백에 의해 밝혀지지만 군부는 사형언도를 취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내용을 Broulard 장군의 축출에 활용한다. 이러한 더러운 암투에 Dax 대령은 진저리를 치지만 부하사병들이 포로로 잡힌 한 독일소녀의 노래에 나지막한 허밍으로 동참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명백히 잘못된 명령임에도 이에 복종하였으나 이내 부하들을 감싸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한 Dax 대령의 캐릭터는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법보다는 고뇌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그럼에도 말미부분에 암시되는 새로운 희망은 약간 작위적인 면이 없잖다. 차라리 부하사병들이 독일소녀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녀를 더 그악스럽게 약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배신당하는 Dax 대령의 모습이 더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The Sand Pebbles

Sound Of Music 으로 유명한 Robert Wise 감독이 Richard McKenna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Sound Of Music 을 제작한 이듬해인 1966년 만든 반전(反戰)영화이다. 시대는 1926년 혼란기의 중국에 정착 중인 San Pablo 라는 군함 – 선원들은 이 이름 대신에 조약돌이란 뜻의 Sand Pebbles 라고 부른다 – 에 배속된 Jake Holman(Steve McQueen)은 군인정신 투철한 군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배의 엔진에만 관심이 있는 엔지니어를 자처한다. 여정 중에 만난 아름다운 여인 Shirley Eckert(Candice Bergen)에 연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인 성격 탓에 극 초반 더 이상의 로맨스는 진행되지 않는다.또한 이러한 그의성격 탓에 동료들 중에서도 유일한 친구는 Frenchy(Richard Attenborough)뿐이었고 함장인 Collins(Richard Crenna)와도 충돌을 빚곤 한다. 

193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동안 화면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중국의 혼란상을 배경으로 국민당 군인 등 중국인과 미군과의 갈등, Mailey라는 중국여인과 Frenchy 의 가슴 아픈 사랑, Jake 와 Shirley 와의 만남, Jake 의 억울한 누명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선상반란의 긴박감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극적긴장감을 유지한다. 영화는 표면상으로 중국인 폭도들의 잔인함과 Collins 함장의 강직한 군인정신, 또는 신사도를 대비시켜 자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또 다른 이면에는 전쟁의 비참함과 부질없음을 깔면서 이 영화의 제작당시 자행된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헐리웃 주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감독과 작품 자체의 한계로 인한 타협으로 보이는데 Jake가 영화 말미 함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무정부주의적 성향의 선교사를 두둔하며 자신에게는 맞서 싸울 적은 없다고 선언하는 부분에서 감독의 제작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극중 등장한 San Pablo 호는 실존했던 군함이 아니라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에서 쓰였던 미군전함 Villa Lobos 를 모델로 홍콩에서 제작된 것이라 한다. 당시까지 중미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촬영되었다. Steve McQueen 은 이 작품에서의 호연 덕택에 생애 유일하게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The Four Feathers

A.E.W Mason 이라는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1939년 Zoltan Korda 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원작을 영화화한 네 번째 사례이자, 유성영화로는 첫 번째 만들어진 사례이다. 이후로도 TV 시리즈로 한번, 극장개봉작으로 또 한 번 영화화되었으니 총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비록 A.E.W Mason 이 헤밍웨이에 필적하는 훌륭한 소설가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소설이 여섯 번이나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작의 어떠한 매력요소가 이토록 영상작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일까? 그것은 영국의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활동이 극에 달하는 1800년대 말에 대해 영국인들 – 또는 서구인들 – 이 느끼는 강한 향수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이 시기는 서구열강의 지도자로서의 영국이라는 위치, 이를 대변하는 영국인들의 강한 자긍심, 식민지 아프리카의 광대한 평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감 등 모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상이 추구하여야 할 매력요소가 이 시기에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병대 장교이기도 했던 감독 Zoltan Korda 는 수단의 수도 카르툼을 둘러싸고 영국군과 마흐디(Mahdi는 구원자 또는 영웅을 의미하며 실제 이름은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이끄는 반란군(?) 간에 벌어졌던 실제전투을 실제 전투 장소에서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양쪽의 병사까지 일부 써가면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을 연출하여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촬영기법은 이후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답습되었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네 개의 깃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깃털은 겁쟁이를 상징한다. 주인공 Harry Faversham 은 영국군 장교로 수단으로의 파견을 얼마 두지 않은 시점에 불쑥 군을 떠나고 만다. 남은 친구 셋은 그를 겁쟁이로 간주하고 그에게 깃털 세 개를 보낸다. 남은 하나는 그의 약혼녀의 불신을 상징한다(1939년 작에는 약혼녀가 그에게 깃털을 주지 않았지만 2002년 작에서는 직접 준다). 바로 이 대목이 영화가 드라마의 형식으로써 가져야 할 기본갈등을 이루고 있다.

39년 작을 보면 Faversham 은 어릴 적부터 시를 읽기 즐겨하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군인집안 출신으로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억지로 군에 입대했을 뿐이다. 수단파견의 시점에 공교롭게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미련 없이 군을 관두고 만다. 반면 2002년 작에서는 집안의 강요는 동일한 설정이되 Faversham 의 아버지도 사망하지 않았고 다만 주인공은 약혼녀와의 결혼, 그리고 정말 수단파견이 겁이 나서 군을 그만두는 설정이다. 결과적으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39년 작이 보다 설득력이 있고 2002년 작은 이후의 어설픈 드라마 전개의 원죄로 작용한다.

영화가 계속 이어지려면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겁쟁이라는 비난에 반응하여야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원작의 가장 어설픈 설정일 수도 있는데) Faversham 은 비난을 무시하는 대신 한 맺힌 깃털 세 개를 들고 수단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는 전쟁 중에 눈이 먼 그의 친구 John 과 감옥에 수감된 나머지 친구들을 구하고 결국에는 카르툼 요새를 수복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참 의아한 게 결국 친구들이 그런 곤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가 수단으로 갔어야 할 의의가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가다보니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고 그래서 영웅이 된 빈약한 개연성의 설정이다. 특히 2002년 작에는 Faversham 을 돕는 원주민이 등장하는데 그를 돕는 이유가 다만 신의 뜻이라고 말해 관객을 의아하게 만든다.

이상에서 간단히 알아본 극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원작을 포함한 이 영화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철저히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은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1930년 작) 에 등장하는 국수주의 부르주아들처럼 조국을 위해 몸 바치라는 허세에 반감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반전(反戰)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깃털 세 개의 치욕을 씻기 위해 군인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으로 제국주의 영국의 명예(?)를 수호한다.

에르제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 땡땡이 콩고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열등민족에 대한 보호자적 지배를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점이 이 영화가 지니는 명백한 한계이다. 때문에 언제까지 제국주의적 관점을 당연시할 수 없었던 2002년 작은 어설프게도 John 의 연설을 통해 Faversham 의 행동이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우정을 위해 그러했노라고 변명을 한다. 어쩌면 여전히 이슬람을 적으로 몰아세워 난도질을 하는 다이하드 유의 액션물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Power of One 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백인 선지자의 역할은 놓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 작품이 또다시 영화화될 적에는 또 어떠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Hearts And Minds

영화는 태생부터 꿈의 공장인 동시에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아무리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하여도 그것은 그 주장 자체가 또 하나의 프로파간다가 되고 마는 순환 고리에 걸려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레닌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영화를 신생 경제/정치체제의 선전매체로 적극 활용하였다. 나찌나 자본주의자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특히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 대한 국가이데올로기의 선전은 때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집단최면극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라는 매체는 칼이다. 화려한 칼춤으로 대중을 현혹시키기도 하고 서투른 칼부림으로 대중을 협박하기도 한다. 칼을 쥐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또는 요리사든 살인자든 솜씨 좋게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력이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히 좋은 칼을 가진 요리사에 속하는 작품이다. 미국 전체가 광기에 휩싸여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1970년대 감독과 시나리오를 담당한 Peter Davis 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사이공 거리에서부터 백악관의 참전군인 파티, 심지어 군인들과 베트남 여인들의 매매춘 장면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파생되는 갖가지 풍경들을 소상히 담아낸다. 미시적인 개인사에서부터 거시적인 국가정책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을 둘러싼 서로의 입장들, 모순된 이데올로기, 뒤늦은 후회의 모습 등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적절하게 편집된 미식축구 장면과 미당국의 선전필름 들은 전쟁의 발발원인과 전개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바다로 둘러싸일 것이라고 주장하던 미행정부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탄생한 미국이 왜 우리의 독립을 저지하느냐고 항변하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각종 군상들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이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재탕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경쾌한 리듬 속에 흐르는 반전(反戰)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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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a Hero” by Derived from a digital capture of the album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7년 봄 Johnny Hates Jazz란 특이한 이름[1. 그들은 실제로도 Jazz를 매우 싫어했던 그들의 친구 Johnny에서 착상을 얻어 밴드명을 지었다.]의 팝트리오가 Virgin 레코드사에서 싱글로 발매된 Shattered Dreams란 곡으로 팝계를 강타했다. 여름에 들어서 지금 소개하는 두 번째 싱글 I Don’t Want To Be A Hero가 출시되었고 영국에서 11위 미국에서 33위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곡은 경쾌하고 세련된 댄스리듬과 어울리지 않게(!) 반전(反戰)에 대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 국내에서 한때 금지곡으로 억류되기도 했었다.[2. 내용이 하도 직설적이어서 당시의 돌대가리 검열위원들도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으리라.]

흔히 댄스싱글하면 풋내기 사랑이나 자극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가사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나 이곡은 그러한 편견을 깨고 있다. 귓가를 흥겹게 자극하면서도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곡으로 Johnny Hates Jazz의 전성기 사운드가 잘 표현되어 있는 곡이다.

Johnny Hates Jazz – I Don’t Want To Be A Hero

뮤직비디오

Oh, send me off to war
With a gun in my hand
But I wont pull the trigger
Out destiny is here
neath the red, white and blue
So lead me to the slaughter

오~ 내손에 총을 쥐어주고 전쟁터로 내몰아 보세요.
그러나 난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거예요.
운명이 여기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성조기에 대한 은유 : 역자주) 아래 있어요.
그래서 나를 학살로 몰아넣어요.

Now dont be afraid
Come and join the parade
For the ultimate in sacrifice
Its an old-fashioned story
Of hope and of glory
A ticket for taking life

이제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제 희생의 궁극을 위한 퍼레이드에 함께 해요.
희망과 영광을 위한 구식 이야기죠.
목숨을 앗아가는 티켓 한 장.

(chorus)
I, I dont want to be a hero
I dont want to die for you
I dont want to be a hero

나는 영웅이 되기 싫어요.
너를 위해 죽기 싫어요.
나는 영웅이 되기 싫어요.

Oh send me off to war
In a far away land
I never knew existed
Subject me to the truth
To the horror and pain
Until my mind is twisted

오~ 나를 존재하는지 알지도 못했던 머나먼 땅의 전쟁터로 보내 보세요.
내 마음이 비틀릴 때까지 공포와 고통, 진실에 복종시키세요.

And what if I fail
Will you put me in jail
For a murder I will not commit?
cos you dont understand
Till theres blood on your hands
That its time to forget and forgive

그리고 내가 실패하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살인을 이유로
나를 감옥에 처넣을 건가요?
당신이 당신 손에 피가 묻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에.
망각과 용서의 시간이에요.

(chorus)
And those who return
Come back only to learn
That theyre hated by those who they love
cos youre not satisfied
Till the thousand will die
And your anger is paint for blood

그리고 돌아와서 그들이 사랑했던 이들로부터
수천 명이 죽을 때까지 희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분노는 피로 칠해지죠.

The Great Escape

인간의 몸과 마음이 속박당하고 있는 상태에선 어떻게 행동할까? 십중팔구는 자유를 원한다. 이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탈출영화다. 인간의 자유갈구를 소재로 한 액션물이라 할 수 있다.

캐스팅은 초호화판이다. 스티브맥퀸, 찰스부른손, 제임스가너, 리차드아텐보 등 당대의 스타들이 연합국 포로로 등장한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한 이들 포로들은 그야말로 밥먹듯이 탈출을 일삼는 자들이다. 그러나 탈출의 명분은 묘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탈출을 전쟁의 일환으로 보는 반면 어떤 이는 그저 구속이 싫어서 탈출하려는 것뿐이다.

탈출계획은 그야말로 거창하다. 지하로 갱도를 파서 대규모 인원이 일순간에 빠져나간다는 시나리오다. 탈출공모자들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시니컬한 스티브맥퀸을 일행에 끌어들인다. 그의 임무는 우선 먼저 탈출하여 인근지리를 살피고 오는 것.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그도 일행의 음모에 동조하여 그들을 돕는다.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계획은 성사단계에 이르러 하나둘씩 수용소를 탈출한다. 이들이 성공하는지 아니면 실패하는지는 영화의 말미에 드러나지만 요는 탈출과정 그 자체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비극적인 결말은 우리를 아쉽게 한다.

수용소로 다시 잡혀 돌아온 스티브맥퀸이 벽에 쳐대는 야구공은 결코 의지가 꺾이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최고의 명장면은 스티브맥퀸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국경을 넘으려는 장면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끝 모를 지루하고 무의미한 전쟁터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 달리 무기의 발달과 참전국의 확대로 인해 대량학살이 동반되었던 그 이전의 어느 전쟁보다도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부전선은 밀고 밀리는 와중에 무의미한 죽음이 난무하던 곳이었다. 후대의 어느 역사가에 따르면 이러한 참혹한 전쟁에 대한 공포심으로 말미암아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준동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였고, 심지어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려 – 동맹국을 내주고서라도 – 하였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참전군인의 눈이 아닌 독일 참전군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 할만하다. 대개의 전쟁영화는 승리자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 또한 당연히도 그 배급자도 역시 승전국인 영미권이 주이기에 – 웬만한 웰메이드 전쟁영화조차도 선악이분법의 구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독일의 평범한 시민이자 학생이었다가 참전한 이들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는 설정이 우선 이 작품이 전쟁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석이 되고 있다.

군인들의 시가행진, 시민들의 환호, 참전을 부추기는 애국교수의 열변, 크게 감화되어 입대를 결심하는 학생들의 열기가 극 초반 숨 가쁘게 진행되며 극은 중반으로 돌입한다. 애국주의에 감화되어 도착한 전쟁터는 이념이 설 자리가 없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순함이 자리 잡고 있는 생지옥이었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며 호승심은 공포로 바뀌어 가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가 갖고 있던 신발이 내 차지가 되고, 전우의 죽음이 더 많은 식량배급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만족하는 이성마비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이들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잠깐의 휴식과 전우들뿐이다. 잠깐의 휴가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머릿속으로만 전쟁을 하는 국수주의자들은 멋대로 승리를 예견한다. 결국 역설적이게도 군인들의 휴식처는 전쟁터가 되고만 것이다.

선구자적으로 사용한 크레인샷을 통해 비참한 전쟁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주인공이 애국교수가 혼쭐이 날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장면, 그리고 나비를 좇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등이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Frontline : Private Warriors

프론트라인의 또 하나의 수작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군대의 민영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즉 공공서비스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군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민간의 효율과 창의라는 이름하에 어떻게 민영화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누구인가를 고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부시 행정부는 말 그대로 자본가의 정부라 할 수 있다. 행정부 수반 면면이 미국의 거대기업의 임원이나 사장을 지낸 인물들이며 그들의 중심축에는 핼리버튼의 CEO를 지낸 부통령 딕체니가 있다. 전투기능을 제외한 군이 행하는 업무를 민간에게 넘기는 방침이 확정되고 나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각국 – 특히 미국의 – 군사기업의 거대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최대의 수혜자는 딕체니의 본거지 핼리버튼이다. 이 기업은 모회사 및 자회사 등을 통하여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이들을 둘러싼 부정과 부패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군사기업으로서는 이라크 전의 단기간의 해결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이라크가 진흙탕이 될수록 그들의 이익은 증대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이들 군사기업에 의해 고용되어 유사전투기능을 수행하다 억울하게 숨져간 미국인들을 조명하여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들이 어떻게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고 있는가를 뜻있는 이들의 증언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의 군사기업의 실태와 부작용에 대해서 알게끔 했고 이에 영향 받은 국내 공중파 방송들도 앞 다투어 비슷한 포맷으로 군민영화 실태를 고발하였다. 2005년 방영.

사족으로…

군사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그들을 지원한 정치가는 뒷돈을 챙길 텐데 정작 나머지 행정부 자체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정답은 미군의 사망자 숫자를 조작하여 국내 반전 여론을 무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군사기업의 고용인들의 죽음은 산업재해 일뿐 군인으로서의 영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Frontline: Ghosts of Rw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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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ntline logo” by PBS.org. Licensed under Wikipedia.

“르완다 분쟁은 소수파로서 지배층을 형성해 온 투치족과 다수파 피지배계층인 후투족간의 정권 쟁탈을 둘러싼 갈등이다. 양 부족은 외모 및 문화관습상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투치족은 15세기 나일강 유역에서 남하한 호전적인 유목민 출신으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온순한 성향을 보유한 후투족을 지배하여 왔다. 양 부족은 외모 및 문화관습에 뚜렷한 차이점으로 갖고 있다.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거쳐 소수 투치족에 의한 다수 후투족의 지배는 고착화되었다. 1962년까지 르완다를 위임통치한 벨기에는 소수부족인 투치족(14%)을 우대하여 지속적으로 지배계급으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고, 다수부족인 후투족(85%)을 통치시켰다.

1962년 7월 독립후(초대 대통령 G. Kayibanda)에도 투치족은 후투족을 강압 통치해 오면서 1963년 12월 후투족에 의해 약 2만명의 투치족이 희생당한 학살사건을 계기로 양대 부족간의 갈등이 심화 되어왔다. 1973년에는 후투족(J. Habyarimana 소장)이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인수, ’75년에 <국가발전혁명운동당, MRND>를 설립하여 일당독재 정부를 구축하였다. Habyarimana는 MRND 주도에 의해 ’78, ’83, ’88년에 일당독재 체제하에서 대통령으로 선임되어 소수 투치족을 억압해 왔다. ‘90.6월 하비야리만다 대통령은 다당제 민주주의 실천의도를 선언하였으나, 10월부터 난민화된 투치족은 RPF(르완다 애국전선)을 조직하고, 주변국인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점으로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함에 따라 내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8월 UN과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중재로 약 2년에 걸친 내전 종식과 과도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아루샤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양 부족간에 구성된 잠정정부가 성립되었다. 1993년 10월 UN은 동협정의 이행 감시를 위해 2,500명의 평화유지군(UNAMIR)를 파견하였다. 1994년 1월 과도정부의 구성과 관련 아루샤 협정상 총리직에 투치족을 임명하도록 약속하였으나, 후투족 출신의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같은 후투족인 트와기라뭉구를 총리에 선임하자 RPF측은 과도내각 참여를 거부하여 정국의 불안은 지속되었다.“

미국의 공영방송의 Frontlin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강대국의 ‘제멋대로 국경 긋기’의 피해자인 아프리카 대륙의 모순이 한데 응축되어 분출되어온 현장 르완다의 참상이 어떻게 발발했으며 그 가해자인 강대국의 외면 속에 어떻게 집단학살로 발전해나갔는지에 대한 담담한 회고이다.

카메라는 당시 이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인물들을 찾아 그들의 증언을 녹취하였다. 매들린올브라이트의 증언, 코피아난의 증언, 당시 파견된 UN군 사령관, 미국인을 르완다에서 소개할 당시 이를 거부하고 르완다에 남아 피난민을 구출한 미국인의 증언, 그리고 참상의 치외법권 지역이라 할 수 있는 호텔을 근거지로 삼아 수많은 피난민을 구출한 UN군 장교의 에피소드 등이 소개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몇몇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 부족 간의 학살, 그리고 미국의 외면 등을 집중 조명한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용감하게도 미국의 공영방송 PBS의 다큐멘터리임에도 자국 정부의 학살에 대한 외면을 피해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자국의 이익이 걸린 곳에는 불법적으로라도 개입하면서 이익이 관철되지 않는 곳에는 개입을 하지 않는 미행정부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홉스봄에 의하면 20세기는 인류의 역사 중 가장 잔혹하고 몰인정한 학살의 세기였다. 전쟁 중에 그만큼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례가 이전에는 없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군사력과 자국의 이익이 발맞추어 철저히 진실을 은폐하는 언론에 의해 정당화되었던 ‘야만의 세기’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Frontline 의 이러한 용기있는 작품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한줄기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Amarcord

영화 제목 Amarcord 는 “나는 기억한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Mi Ricordo”를 소리나는대로 적은 시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Federico Fellini 의 반(半)자서전적인 이 영화는 1974년 발표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담은 이 영화는 소년의 정욕, 여인들의 밉지 않은 허영, 파시즘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복잡한 심정, 정신병에 시달리는 삼촌의 에피소드 등이 병렬적으로, 동시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뜻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