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앨범 9장

My9Albums라는 사이트에서 만들어봤다. 2026년 10월 4일 현재 내가 꼽는 최애앨범 9장. 안전지대의 라이브앨범을 넣으려고 했는데 해당 앨범이 검색되지 않아 결국 영미권 음악 중 최애앨범 리스트가 되었다.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jpg
By http://www.morrisseymadness.co.uk/The-Smiths-Last-Night-I-Drea-13111.jpg, Fair use, Link

얼마 전에 마이애미바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과 마주쳤다. The Rising Sun of Death라는 제목의 이 에피소드는 네 번째 시즌 아홉 번째 에피소드로 일본 야쿠자 세력이 마이애미에서 암약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쿠자 출신의 일본 형사가 활약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다. 야쿠자는 마이애미에 성매매를 포함한 스트립 클럽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나와 트루디가 직업을 구하는 여성인 것처럼 변장하고 클럽에 잠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The Smiths의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스미쓰 음악이 마이애미바이스에서, 그것도 스트립쇼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 분명 80년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 약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래는 꽤 길게 흐르며 부패한 정치인이 춤을 추던 트루디의 진짜 정체를 알아보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사실 솔직히 나른한 멜로디여서 나름 스트립쇼의 배경음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 노래는 영국 써머셋의 한 스튜디오에서 1987년 봄에 녹음되고 그해 12월 7일에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마이애미바이스 에피소드는 미국 현지에서 1987년 12월 4일 방영됐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제작진이 미국은 물론 영국에서조차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를1 상당히 이른 시기에 접하고 바로 배경음악에 사용한 것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이후 비슷한 주제로 만들어진 1993년 작품 Rising Sun2 이전에 야쿠자와의 갈등을 다룬 선구적인 작품이랄 수 있다. 특히 라이징썬에도 출연했던 케리히로유키 다가와가 이 작품에서 주요 캐릭터인 후지쓰 형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1. 싱글은 발매 당시 영국 싱글 차트 30위에까지 오른다 ↩
  2. 제목마저 흡사하다 ↩

The Jam, The Smiths, The Stone Roses & O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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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ll Fresch, CC BY-SA 2.0, Link

돌장미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가 그룹을 시작하게 된 이유야. 음…우리는 그 전에 The Jam과 The Smiths에 푹 빠져 있었지. 그러나 모리씨가 있는 스미쓰와 곱슬머리(quiff)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그 당시에 밴드를 하려면 우리가 대학에 가거나 아트스쿨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했어. 나는 Paul Weller가 될 거야. 음… 그리고 우리가… 내가 처음 The Roses를 보러 갔을 때 그들은 우리랑 똑같은 옷차림이었어. 이때는 모든 난리가 나기 전이었지. 당시에는 누구도 쿨하지 않았어. 우리는 모두 통이 좁은 바지(drainpipe trousers)를 입고 다녔지.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똑같아 보였어. 음… 그리고 88년이나 89년에 모든 것이 칼라풀해졌고, 내가 처음 Sally Cinnamon을 듣고서는 우리가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어. 내 운명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얼터너티브 80년대를 위한 20개의 필청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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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Man Alive!, kcarpenter_, 9999x – {{Cc-by-2.0}} by Man Alive!{{Cc-by-2.0}} by Man Alive!{{Cc-by-2.0}} by Man Alive!{{Cc-by-2.0}} by kcarpenter_{{Cc-by-2.0}} by 9999x, CC BY 2.0, 링크

That Eric Alper라는 사이트에서1 선정한 ‘얼터너티브 80년대를 위한 20개의 필청 음반’이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사이트에서 보시면 될 것 같고, 이 사이트에 앨범 리스트만 옮겨왔다. 그런데 20개 앨범이라는데 세어보니 21개다.

  1. Cocteau Twins – ‘Heaven or Las Vegas’ (1990)
  2. Depeche Mode – ‘Music for the Masses’ (1987)
  3. Dinosaur Jr. – ‘You’re Living All Over Me’ (1987)
  4. Hüsker Dü – ‘Zen Arcade’ (1984)
  5. Jane’s Addiction – ‘Nothing’s Shocking’ (1988)
  6. Meat Puppets – ‘Meat Puppets II’ (1984)
  7. Pet Shop Boys – ‘Please’ (1986)
  8. Pixies – ‘Doolittle’ (1989)
  9. Prince – ‘Sign o’ the Times’ (1987)
  10. R.E.M. – ‘Life’s Rich Pageant’ (1986)
  11. Sugarcubes – ‘Life’s Too Good’ (1988)
  12. Sonic Youth – ‘Daydream Nation’ (1988)
  13. Talk Talk – ‘The Colour of Spring’ (1986)
  14. Tears for Fears – ‘Songs from the Big Chair’ (1985)
  15. The Cult – ‘Love’ (1985)
  16. The Cure – ‘The Head on the Door’ (1985)
  17. The Replacements – ‘Let It Be’ (1984)
  18. The Replacements – ‘Tim’ (1985)
  19. The Smiths – ‘The Queen Is Dead’ (1986)
  20. The Stone Roses – ‘The Stone Roses’ (1989)
  21. U2 – ‘The Joshua Tree’ (1987)
  1. Eric Alper라는 음악 저널리스트가 만든 사이트 같다 ↩

The Smiths의 재결합 가능성에 관한 롤링스톤誌 칼럼

The cover of the 1000th edition of Rolling Stone, titled 'Our 1000th issue', depicting a large crowd of entertainers performing on a stag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s://www.amazon.com/dp/B00276AI66/., Fair use, Link

롤링스톤誌에서 The Smiths에 대한 팬심 가득한 칼럼이 올라왔다. 칼럼니스트 앤디 그린(Andy Greene)가 최근 뉴욕에서 열린 모리씨(Morrissey)와 자니마(Johnny Marr)의 공연에 다녀왔고 이 공연에서 느낀 소회를 올린 것. 모리씨의 공연은 9월 16일 라디오시티 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에서 열렸고, 자니 마의 공연은 9일 후인 27일 K 브리지 공원 아래(Under the K Bridge Park)에서 열렸다. 앤디는 두 공연에서 모두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모리씨는 공연의 시작 곡으로, 자니마는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특히 앤디는 모리씨가 이 노래를 공연에서 부른 것이 2017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두 번 정도 The Smiths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할 뻔한 에피소드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재결합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0에 수렴한다. 그래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오아시스의 재결합 공연을 바라보는 The Smiths 팬의 착잡한 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두 뮤지션의 아우라가 클지라도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리듬 섹션까지 완전체로 결합하지 않으면 ‘과연 진정한 The Smiths의 재결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어쨌든 그 둘이라도 – 사실 오아시스의 재결합도 갤러거 형제의 재결합이지 – 재결합하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게 재결합이니 아니니 논할 계제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참 큰 떡밥이기는 하다. The Smiths의 재결합. Talking Heads의 재결합만큼이나 확률이 낮아 보이지만, 가슴 설레는 떡밥.

The Smiths / The Smiths [1984]

The Smiths The Smiths.jpg
By https://www.amazon.co.uk/Smiths/dp/B00002496V/ref=sr_1_1?ie=UTF8&s=music&qid=1273132134&sr=8-1, Fair use, Link

The Smiths는 데뷔앨범 The Smiths의 녹음작업을 처음에 런던의 왜핑(Wapping) 지역에 위치한 엘레펀트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프로듀서는 소속사 러프트레이드가 선택한, The Teardrop Explodes의 기타리스트였던 트로이 테이트(Troy Tate)였다. 밴드 멤버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프로듀싱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녹음은 뜻대로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낙후한 지역인 왜핑에 위치한 열악한 스튜디오의 작업 여건이 한몫했다.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었고 에어컨도 없는 그 곳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기타 튜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자니마는 그럭저럭 작업을 해나갔지만, 모리시는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1

그래서 러프트레이드와 밴드는 대안으로 Roxy Music의 2집 For Your Pleasure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했었던 존 포터(John Porter)를 선택했다. 모시시가 회고하길 존은 매우 친절하고 이해심이 깊었고 녹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좋은 지침이 되는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존이 만든 앨범 The Smiths는 The Smiths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리시의 사견으로 마이크의 드럼 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벼락과도 같은 음색이었고 앤디의 베이스 연주 역시 “울려 퍼지는 듯이 자신감 있는(pealing swagger) 연주”였는데, 존의 프로듀싱의 결과물은 창백하고(pasty) 얇았기(thin) 때문이었다고 한다.2 프로듀서가 밴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모리시와는 다른 의견과 좀 더 깊은 내막이 있었는데 애초에 러프트레이드와 존 포터는 마이크 존스를 다른 드러머로 교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니와 모리시는 이를 거절했다.3 어쨌든 자니의 의견으로는 존은 풍부한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금방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앨범 제작 과정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밴드 전체의 실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4 특히 This Charming Man의 녹음 당시의 결과물에 대해 자니는 존의 실력을 극찬했는데5 모리시의 냉소적인 의견과는 완연하게 다른 의견이었다.

어쨌든 모리시의 불만과 별개로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앨범은 당시 영국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는데, 당시 1위는 Thompson Twins의 Into The Gap이었다. 이 앨범은 Hold Me Now와 Doctor! Doctor! 등이 인기를 얻은, Thompson Twins의 매력적인 뉴웨이브 사운드의 정점을 찍은 앨범이었다. 한편 밴드의 앨범이 1위까지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좀더 가슴 아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모리시의 회고에 따르면 러프트레이드의 Richard Boon이 모리시에게 “우리가 1위를 할 수도 있었는데 카셋테잎을 때맞춰 찍어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6 결국 소속사가 차트 진입의 요령은 아는데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다는 업계의 비밀을 소속사 뮤지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Side one
No. Title Length
1. “Reel Around the Fountain” 5:58
2. “You’ve Got Everything Now” 3:59
3. “Miserable Lie” 4:29
4. “Pretty Girls Make Graves” 3:44
5.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4:38
Side two
No. Title Length
6. “Still Ill” 3:23
7. “Hand in Glove” 3:25
8.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3:51
9. “I Don’t Owe You Anything” 4:05
10. “Suffer Little Children” 5:28
Total length: 42:55
US LP/cassette and UK cassette
No. Title Length
6. “This Charming Man“ 2:41
Total length: 45:36
  1. Set The Boy Free, 174p ↩
  2. 모리시 회고록, 159쪽 ↩
  3. 물론 모리시와 자니는 마이크와 앤디를 신뢰했지만, 그들을 밴드의 창작 활동에 동일한 기여를 하는 동료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리시와 자니는 이 즈음에 이미 밴드 멤버들 사이의 이익 분배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주장에 따르면 마이크와 앤디에게도 이에 대해 협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된 문서가 없었고 후에 이는 멤버들 간의 법적 논쟁의 씨앗이 된다. ↩
  4. Set The Boy Free, 174p ↩
  5. Set The Boy Free, 182p ↩
  6. 모리시 회고록 160쪽 ↩

Michael Stipe와 Morrissey의 만남

A close-up of Stipe holding a microphone
By Kris Krug @ https://www.flickr.com/photos/kk – https://www.flickr.com/photos/kk/2332841534/, CC BY-SA 2.0, Link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캐롤린플레이스(Carolin Place)에 나타났고, 우리는 퀸세이 식당들의 똥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가운데 뒷마당에서 차를 마셨다.
“이 동네가 싫어요.” 내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그럼 왜 여기 사세요?”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처음 Everyday is like Sunday를 들었을 때 정말 부러웠어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도 솔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 활동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말했다. “나는 The Smiths가 최소 30장 정도는 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모리시 자서전, 227~228쪽]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Talking heads burning down the house standard cover art.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iscogs.com/viewimages?release=2188727, Fair use, Link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in either case., Fair use, Link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

Johnny Marr & Talking Heads

토킹헤즈가 그들의 새 앨범을 파리에서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하였다. [중략] 그들은 우리 세대에서 너무나 중요한 밴드였고, 예술적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밴드 중 하나라는 희귀한 업적을 이루었다. 난 그들의 음악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의 앨범에 기여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에 대해 기뻤고 흥분했다. [중략] 앨범을 프로듀싱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작업실에 있었는데, 내가 알던 이여서 반가웠다. [중략] 나는 간헐적인 퍼커션과 드럼 그루브를 한동안 들었다. 그리고 기타 코드 두어 개가 흐른 후 티나 웨이머스의 베이스라인이 흘렀다. [중략] 나는 내 손가락에서 노니는 트랙에로의 접근을 개념화하기 위해 뇌를 비워냈다. [중략]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중략] 난 겁에 질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머리를 식혔다. 파리 거리를 걸었다. [중략] 난 너무 아끼고 있었다. 그냥 내 것을 던져 넣으면 된다. [중략]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깁슨-335 12현 일렉트릭을 꼽고 스티브에게 테잎을 다시 틀어달라고 했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생각 없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처음 것을 연주했다. 스티브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중략] 데이빗이 그의 영리한 가사와 보컬을 더했고 그 곡은 (Nothing But) Flowers가 되었다. [Set The Boy Free, 273-275pp]

창작의 어려운 과정이 짧게 서술되어 있는 재밌는 일화라 소개한다. Talking Heads와 The Smiths라는 희소한 조합을 만들어낸 계기는 자니마가 밴드를 떠나고 난 이후의 토킹헤즈가 그를 세션 연주자로 초대했던 덕분이었다. 토킹헤즈의 드러머 크리스 프란츠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를 초대하자는 생각은 자니마의 친구였던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자니는 연주를 쉽고 아름답게 해냈고 함께 와인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1 한편, 자니마의 회고록에서 후술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자니마는 이런 활동 때문에 오히려 The Smiths 해체의 주범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두 밴드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조합의 곡이 탄생해주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물론 The Smiths가 존속했더라면 어떠한 앨범이 더 나왔을지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The Smiths / Hatful of Hollow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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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Fair use, Link

The Smiths가 1984년 11월 2일에 Rough Trade Records를 통해 발매한 컴필레이션앨범이다. 앨범에는 밴드의 초기 활약을 잘 설명해주는 싱글들이 The Associates의 Billy Mackenzie를 겨냥한 노래라는 설이 있는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에서부터 영화 프리티인핑크의 수록곡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에 이르기까지 16곡의, 밴드의 음악적 풍부함을 밀도 있게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또한 앨범 수록곡은 주로 1983년 BBC Radio 1 세션에서 녹음된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정규앨범 버전이나 싱글과는 다른 변주들이 팬들에게 주는 의미 또한 각별하다.

The Smiths의 가장 잘 알려진 히트곡으로 꼽히는 This Charming Man 역시 Peel Session에서 나온 곡으로 훌륭하다. 싱글보다 더 침울한 곡으로, 음악적으로는 Blowin’ Your Mind! 시대의 밴 모리슨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Rourke의 베이스라인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며, 그가 역대 가장 과소평가된 베이스 연주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Still Ill’도 다르다. 하모니카 솔로로 시작하고 끝나는데, 밴드의 데뷔작인 The Smiths의 버전보다 더 완벽한 곡이다. 이것이 Still Ill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Is ‘Hatful of Hollow’ the definitive album by The Smiths?]

한편 BBC Radio 1 세션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면

1950년대와 60년대에 영국의 팝, 포크, 재즈 아티스트는 상업적으로 발매되는 음반의 형태보다는 BBC 라디오에서 들을 가능성이 더 높았고, 아예 없었다면 회사를 위해 녹음한 독점 세션의 형태로 들을 수도 있었다. [중략] BBC가 소유한 스튜디오와 극장(주로 런던 주변)에 매일 음악가들을 모아 콘서트 공연을 하거나 엄격한 시간 내에 몇 곡을 녹음하게 하여 방송 시간을 채워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중략] 60년대 후반에 런던에서 만들어낸 화제성 덕분에 예약된 일부 아티스트는 레코드 계약을 맺기도 전에 BBC 세션을 하나 이상 녹음할 기회를 얻었다. [중략] 다른 녹음 기회에 방해받지 않는 음악가들을 위한 이 국가적 플랫폼을 운영하는 BBC 라디오 진행자의 전형적인 사례는 존필(John Peel)이었다. ‘필 세션’은 명예의 상징이자 음반 계약을 찾거나 적어도 어떤 종류의 지속적인 청취권을 찾는 티켓이 되었고, 필이 이러한 기회를 관리한 기간은 1967년부터 2004년 사망할 때까지였으며, 60년대 후반 ‘언더그라운드’ 시대와 10년 후 펑크 시대에 록이 재부팅된 시기는 취향 선도자로서의 시기였다. [중략] 한때 BBC 라디오 세션은 일종의 행정적 예외였고 아티스트가 최신 상업적 발매분을 최소한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영국에서 유일한 방송 네트워크에서) 이제는 아티스트를 위한 일종의 트로피가 되었고 잠재적인 취향 선도자가 후원에 대한 미덕을 보여주는 방법이 되었다. BBC 자체는 아티스트를 ‘추천’할 수 없었지만 개별 진행자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A Short History of ‘the BBC session’)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에서 7위에 올랐고 차트에 46주 동안 머물렀다. 2000년에 Q 매거진은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국 앨범 100장” 목록에서 44위에 올렸다.

앨범 커버의 원본 사진은 작가 장 콕토의 사망 2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잡지 Libération의 1983년 7월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사진은 콕토의 책 “Le Livre Blanc”에서 Gilles Decroix가 찍은 콕토의 그림을 어깨에 문신으로 새긴 팬 Fabrice Collette의 모습이다.

1.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
2.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3. These Things Take Time
4. This Charming Man
5. How Soon Is Now?
6. Handsome Devil
7. Hand In Glove
8. Still Ill
9.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10. This Night Has Opened My Eyes
11. You’ve Got Everything Now
12. Accept Yourself
13. Girl Afraid
14. Back To The Old House
15. Reel Around The Fountain
16.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