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몇개의 영화 단평

Drive My Car movie poster.jpeg
By Bitters End – https://thefilmstage.com/first-look-at-ryusuke-hamaguchis-haruki-murakami-adaptation-drive-my-car/, Fair use, Link

OTT를 최근 넷플릭스와 와챠로 옮겼다. 옮긴 김에 어떤 영상이 있는지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나중에 볼 영상 찜하느라 시간을 좀 보냈는데, 오랜만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게 구석구석을 뒤져서 ‘희귀한’ 비디오를 발견하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 넷플릭스에는 없었던 – 또는 내가 그동안 찾지 못한 – 영상이 몇 개 있었는데, 예를 들면 동경러브스토리, 리포맨, 4차원의 난장이 E.T., 아푸 3부작 등을 발견했다. 아무튼 그 와중에 이번 달 압축적으로 꽤 많은 영화를 몰아서 본 것 같다. 그래서 여기 단평을 남긴다.

코드명 J (1995)

윌리엄 깁슨의 단편 소설 《메모리 배달부 조니》를 원작으로 하는 사이버펑크 계열의 영화다. 마침, 영화를 보기 몇 주 전에 오랜만에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다시 읽었기에 그 기분의 연장선상에서 넷플릭스를 끊기 며칠 전에 감상했다. 영화의 원제는 소설의 원제와 같은 《Johnny Mnemonic》인데 우리나라 출시 명은 뜬금없이《코드명 J》로 바뀐다. 좀 어이없는데 암튼, 호불호가 있는 영화인데 결국 윌리엄 깁슨 팬이라면 나름 즐기며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너무 어색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2023)

아내가 왓챠에 재밌는 영화가 있다고 추천해 줘서 왓챠에서 처음 본 영화다. 아무 정보 없이 본 이탈리아 영화인데 2023년 만든 영화인데도 2차 대전 직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흑백 필름에 주인공인 여성이 남편에게 수시로 폭력을 당해 《자전거 도둑》 유의 좀 짜증 나는 리얼리즘 영화인가 했더니 의외로 코믹한 연출도 있어 그리 많이 짜증 나지 않으면서 보았다. 결국 신파조로 흘러가는 듯한 고통받는 여성의 삶이 막판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통해 희망을 찾게 되는데 그 부분이 가장 큰 이 영화의 매력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2025)

트위터에서 다들 재밌다고 하는데 사실 디카프리오의 청승맞은 모습이 포스터여서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화장실에 갈 때는 제외하고는 거의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정주행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 영화가 괜찮으면서도 어딘가 현학적인 냄새가 났는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 없이 직관적으로 캐릭터들에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허공에의 질주》에 대한 21세기 변주라는 느낌도 들었고, 희망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희미하게라도 미소를 지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노예 12년 (2013)

이 영화는 쿠팡플레이에서 봤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실존 인물이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가 사기꾼의 꼬임에 빠져 남부로 갔다가 노예로 팔리며 12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보는 것도 고통스러워 한 며칠간 안 보다가 다시 보기도 했다. 극 중간에 노섭이 백인 관리의 린치로 나무에 목이 묶인 채로, 발끝으로 서서 며칠을 버티는 장면이 압권인데 거기서 며칠 감상을 쉬었다. 이 영화를 흑인에서 백인으로 인종을 바꾸고 SF적 요소를 가미하면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탈출》이 된다.

국제첩보국 (196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첩보물 3부작인 렌 데이턴 원작의 해리팔머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데 얼마 전에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게 되어 처음 스크린으로 감상하였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스파이 세계의 환상을 그대로 소설과 영상에 옮긴 작품이라면 이 해리팔머 시리즈는 ‘노동계급 스파이’라는 설정의 안티히어로물이다. 당시 영국 영화계의 대세 배우인 마이클 케인이 해리 팔머 역을 맡아 삐딱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지닌 스파이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존 배리의 서늘한 멜로디의 사운드트랙도 극의 분위기에 크게 기여했다.

드라이브마이카 (2021)

개저씨 없는 – 오히려 심히 심약한 성격의 일남 – 홍상수 영화 보는 느낌. 그 와중에도 물론 원작자 하루키 스타일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타르코프스키가 《솔라리스》에서 미래주의적 분위기 연출을 위해 도쿄의 고가도로 드라이브 장면을 찍었다던데 그 장면이 연상되는 드라이브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이 눈이 시원해지면서 인상적이다. 차는 현대인에게 이동의 수단이면서 대사 연습의 공간이자 진실한 대화의 장소다. 여담으로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차로 가면 그 비싼 민자도로 통행료랑 뱃삯이 얼마였을지 궁금하다.

플란다스의 개 (2000)

봉준호의 장편 영화 연출 데뷔작. 오랫동안 그 영화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 마치 그 영화를 진작 봤다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는데 어렴풋이 이 영화도 그런 영화. 백수 생활이 짜증 나는 와중에 아파트 내에서 짖어대는 개 때문에 짜증이 증폭되는 남주의 좌충우돌과 이 남주와 희한하게 동선이 겹쳐 같이 어울리는 여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단편 정도로 그칠 소재를 멱살 잡고 장편으로 만들어 극장 개봉에까지 성공했다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실력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는 어설펐고 남주 아내 역의 배우가 가장 연기가 좋았다.

알제리 전투 (1966)

폴 토마스 앤더슨《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만들며 레퍼런스로 중요한 영감을 얻었던 작품으로 언급한 영화다. 제국주의 일타강사 프랑스에서는 금기시되는 치욕의 역사인,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 과정을 다큐멘터리 찍듯이 만들어서 당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작품이다. 지금 다시 봐도 형식이나 연출 기법이 고루하지 않다. 이 의사(擬似) 다큐 형식의 연출은 그 뒤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오늘날 유럽이 왜 제삼세계 인민의 집단이민으로 고통받고 있는지에 대해 역사적 링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메트로폴리스 (1927)

개인적으로는《플란다스의 개》처럼 보지는 않았으나 여태 봤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영화였다. (아니면 봤어도 까먹었을 수도 있고) 암튼 최초의 SF영화라 할 수도 있고, 최초의 계급투쟁 영화라 할 수도 있고, 여러모로 엄청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도시 풍경에 대한 묘사 하나만 놓고도 할 말이 너무 많은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마리아. 배우가 너무나 극명한 두 명의 캐릭터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서 깜놀. 연기력, 춤솜씨, 그리고 특히 어떻게 양쪽 눈을 그렇게 차이 나게 뜰 수 있는지 감탄하였다.

난징! 난징! (2009)

조금 전에 막 감상을 끝낸 이 글의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중국 영화다. 요즘 만들어진 중국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연출이 예상보다 차분해서 좀 의외였다. 대학살이라는 잔혹한 역사에 비해 오히려 톤이 좀 낮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흑백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제리 전투의 존재를 부정하는 프랑스처럼 일본도 난징 대학살의 존재를 외면한다. 제국주의 전통(!)을 지닌 국가가 이 모양이니 세계평화가 요원한 것이다.

Moonlight

A multicolored monochrome close image of Chiron (Portrayed by Alex Hibbert, Ashton Sanders, and Trevante Rhodes), in three different stages of his life, as a child, teenager, and young adult. Accolades and excerpts of text from film reviews can be seen in the poster. The film's tagline reads "This is the story of a lifetime".
By https://a24films.com/films/moonlight/, Fair use, Link

지난 주말에 봤는데 흑인 판 왕자웨이(王家衛)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직접적으로 생각나는 영화는 해피투게더였고 그 외 이런저런 부분이 왕자웨이식 미장센이 연상되었다. 모든 배우가 흑인이었고 공간적 배경도 마약을 거래하는 정말 찐위험한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흑인이나 마약 관련 영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은, 심하게 말해서는 파스텔 톤의 느낌의 영화였다. 어린 샤이론(Chiron)을 돌봐주던 후안이 마약상이었고 성인이 된 샤이론이 마약상이 됐음에도 그들에게서는 악인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이건 이를테면 유색인종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정당성 부여 기제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영화를 계속 그런 톤으로 끌고 온 연출 의도에 따른 느낌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나의 몸에 손댄 것은 너뿐’이라는 샤이론의 고백도 그가 소년원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젊은 여성 혼자 살면서 아무런 위기감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느낌과 유사했다. 샤이론 연기는 청소년 시절의 샤이론 배우의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카에타노 벨로소(Caetano Veloso)의 노래가 나와서 반가웠다.

아파라히토 [1956]

Poster
By Likely to be Epic Films or Merchant Ivory Productions or Sony Pictures Classics, the producers/distributor of the film – http://www.movieposterdb.com/posters/13_10/1957/48956/l_48956_04db894c.jpg, Fair use, Link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전에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가 게스트로 출연해 인도에 관한 특집을 진행했는데 아침부터 보고 있다. 인도의 종교, 지리, 풍습 등 복잡다단한 인도 사회의 단면을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하고 있어 인상 깊게 보고 있다.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예전에 감명 깊게 감상했던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3부작』이 생각났다.1 현대 인도 영화의 특징을 규정하고 있는 소위 “발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춤과 노래가 뒤섞인 영화가 아닌 진지한 드라마로 차분하게 인도 인민의 삶을 전하는 작품으로 『파테르 판찰리』(1955), 『아파라히토』(1956), 『아푸의 세계』(1959) 총 3부작이다.

오늘 감상한 작품은 3부작의 2부에 해당하는 『아파라히토』다.2 애초 감독은 3부작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파테르 판찰리』의 국제적인 성공과 비평적 찬사에 힘입어 이 작품을 만들고 내친김에 3년 후 세 번째 작품을 만들어 3부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푸 3부작』이라는 별칭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전체 작품은 벵골 지방에서 사는 아푸라는 외동아들이 있는 성직자 가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1950년대 대다수의 탈식민지화된 나라가 그렇듯이 인도 역시 엄청난 문화적/문명적 격변을 겪게 되었고, 아푸 가족도 그 시기에 이전 세대와는 무척 다른 삶을 걷게 되었다. 3부작은 그런 아푸 가족의 여정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지가 거의 십 년이 지나서 줄거리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정도라 새로운 느낌으로 봤다. 그 와중에 앞서 말한 이광수 교수가 설명해 준 인도 사회의 풍습을 영화에서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어서3 더 보는 재미가 있었다. 줄거리는 사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약간 신파조라 생각되지만, 희한하게도 당시 서구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문화적 충격이 매우 컸다고 한다. 예로 서구식 교육을 받고자 대도시로 떠난 아들과 모친의 정서적 갈등 등에서 그런 신선함을 느꼈다고 하던데,4 그것은 역시 질풍노도의 격변을 겪었던 식민지 인민의 세대 간 갈등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제일세계와 제삼세계가 달라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중반의 영화를 감상할 때면 늘 하곤 하는 잡념이 있는데 ‘저 배우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잡념이다. 20세기 중반 작품이니만큼 아푸를 연기한 배우는 생존해 계시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 보니 이름이 피나키 센굽타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을 뿐 생존 여부 등 보다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이 배우를 비롯하여 당시 많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처음 연기를 했을 정도로 아마추어였다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정보가 없는 것 같다. 이 배우도 출연작이 이 3부작밖에 없는 듯하다. 어쨌든 어찌 보면 그의 삶 자체가 아푸였을지도 모른다. 근대화와 더불어 배우라는 삶을 살며 걸작에 출연한 인도 소년의 삶이었으니 말이다.

  1. 블로그 어딘가에 기록을 남겨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검색해 보니 2016년에 봤다. ↩
  2. 뱅골어로  অপরাজিত , “굴하지 않는 자”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
  3. 예를 들어 특정 카스트의 남성이 벌거벗은 상체에 긴 줄을 어깨에 걸고 다닌달지 ↩
  4. 아푸는 고향에서 기차로 3시간 거리인 캘커타로 유학을 떠나는데 어찌 보면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근대화로 인해 놓인 기차라는 존재를 통한 공간적 거리의 축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고 이 영화에서도 기차는 그런 사회의 풍경을 묘사하는 주요한 소재다. ↩

The Last of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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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데릭 자먼(Derek Jarman) 감독의 1987년작 ‘영국의 최후(The Last of England)‘를 보았다. 보았다기보다는 그냥 틀어놓고 딴짓을 했다. 그렇게 해도 감상에 지장이 없을 만큼 스토리라인이 복잡하지 않은 영화다. 이를 “시적인(詩的)”인 영화라고 표현한다. 내용은 넓게 보아 마가렛 대처 정부에서의 숨 막히는 상황을 – 특히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 등등 – 비판하는, 이를 “영국의 최후”라고까지 표현하는 내용이다. 영상들은 굉장히 퇴폐적이고 노골적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한 소년이 카라바지오(Caravaggio)의 작품(물론 복사본이겠지만) Amor Vincit Omnia에서의 큐비드를 강간하는 장면이다. 영화 소개에서는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영화 후반에 신부로 등장하는 정도다. 주인공이라는 것도 의미 없다.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 정도였을 것이다.

녹색광선(Le Rayon 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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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NING 스포일러 만땅

지난주 토요일 아침 다섯 시에 – 혹은 새벽 – 쿠팡 플레이에 있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86년작 ‘녹색광선(Le Rayon Vert)’을 봤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작품이었고,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 보지 않았나’라고 잠깐 생각했던 영화다. 그런데 봤던 영화는 아니었었다. 얼핏 비슷한 이름의 다른 프랑스 영화랑 헷갈렸던 것 같다. 문득 궁금해서 지금 검색해보니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1980년작 디바(Diva)랑 혼동했었다. 제목도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왜 헷갈렸는지 모르겠다. 내 열등한 회색 뇌세포 탓이겠지.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토요일 아침에 보기 좋은 영화였다. 플롯의 엄밀성이나 연출의 치밀함에 대해 바짝 신경 쓰지 않아도 감상에 큰 무리가 없는 스낵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 스타일이 생각났고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에릭 로메르를 지극히 존경하는 한국 영화인이 있었으니 홍상수였다. ‘녹색광선’은 프랑스판 홍상수 영화였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변방의 홍상수라는 영화인이 그 스타일을 베낀 에릭 로메로 스타일의 프랑스 누벨바그’였다. 이런 스타일에 익숙하게 해준 홍 감독에게 감사.

영화를 보는 동안 여주 델핀(Delphine)이 계속 영화 제목 녹색광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암시를 던진다. 녹색이 최근 자신의 운세에 좋다는 둥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극 중간쯤 가서 델핀이 들른 한 해변에서 마침내 델핀의 옆에 있던 한 노인들의 대화를 통해 녹색광선이 무슨 의미인지 밝혀진다. 극에서 말하는 녹색광선은 일몰시 태양의 윗부분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광학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그 표현은 그러한 현상을 소재로 사용한 쥘 베른의 ‘녹색광선’이라는 소설을 의미한다. 무척 다층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저물녘 드물게 볼 수 있다는 녹색광선의 한 사례(이미지 출처)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쥘 베른의 ‘녹색광선’은 평소 그가 주로 쓰던 공상과학 장르가 아닌 로맨스적 요소가 많이 담긴 소설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이에 대해 논하는 노인들의 관점이 흥미로웠는데 그들은 쥘 베른의 대표작인 ‘해저2만리’는 재미가 없었고 ‘녹색광선’이 좋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나도 현재 읽고 있는 여러 책 중에 예의 ‘해저2만리’가 있어서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사견으로 재미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신파조로 보일만 할 만큼 장광설적인 요소가 있다. 지루한 편이긴 하다.

어쨌든 이 대화를 엿들은 (삶이 무료했던) 델핀은 녹색광선을 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영화 줄거리에 ‘녹색광선을 찾아 떠났다’는 식의 소개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가 의도적으로 녹색광선을 쫓았다기보다는 남친도 무의미하고 휴가도 무의미한 무력한 파리쟁이 여행지에서 마주친 훈남과 석양을 보러갔다가 운 좋게 녹색광선이 보이는 일몰을 보게 된 쪽에 가깝다. 이러한 애매모호함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어쩌다 생각지도 않게 원하는 것이 걸려드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토요일 아침에 보기에 부담 없는 영화라고는 했으나, 사실 보는 내내 여주의 ‘까칠함’에 적잖이 짜증이 났었다. 어쩌다 휴가 계획을 망쳐버린 그를 위해 친구들이나 주변의 다른 이들이 이런저런 식으로 많이 배려해주는데 델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까칠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의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한다. 녹색광선을 여행지에서 마주친 훈남과 같이 보는 장면에서조차 그의 이런 기행은 멈추지 않는다. 델핀의 이런 행동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된 연출인 것 같다. 감독 스스로가 이런 식으로 누벨바그의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에서.

Down by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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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Jim Jarmusch)의 1986년 작이다. 사실 짐자무쉬 영화에서 엄청나게 정교한 설정과 시나리오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조금 심하다. 디스크자키, 포주, 이탈리아인이 한 감방에 갇혔다가 탈옥해서 각자의 길을 간다는 버디/로드 무비 장르의 이 영화는 예의 짐자무쉬의 다른 영화처럼 뉴올리언스와 고독함과 톰웨이츠의 음악을 찬양하는데, 다 좋은데, 개연성 등에서 어색한 부분이 많다. 결정적으로 세 죄수가 운동을 하러 나가는 그 씬 이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지하도로 탈출하는 씬이 등장한다. ‘뭐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맥락 없는 그 상황에, 대체 탈옥 계획을 꾸민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다른 설득력 있는 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냥 셋이 탈옥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에게 ‘그냥 이러저러 여차저차 설명은 조금 귀찮고 일단 탈옥했다 치고’가 짐자무쉬의 화법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보다 낯선’의 죄수 버전이, 리믹스 버전?, 완성된다. 다 보고나서 ‘전에 봤던가?’라는 미시감(jamais vu)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든 안 들든 크게 중요한 느낌은 아닌 그런 영화였다.

A Taste of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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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포드(Salford)에 사는 10대 여학생 주인공 조(Jo)1의 홀어머니 헬렌(Helen)은 철없는 40대 여성이다.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했지만, 딸에게 별 애정도 없이 연하의 남성과 함께 매일 클럽과 댄스홀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려고 딸과 함께 야반도주를 서슴지 않는 도덕성이 결여된 여성이다.2 조는 그런 어머니와 새 피난처로 도망가는 도중 흑인 선원 – 정확하게는 화물선의 요리사 – 지미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것을 인연으로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헬렌이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그를 떠날 기세고 남자친구도 항해때문에 곧 그를 떠날 예정이지만, 그는 남자친구에게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며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겠다. 그냥 지금만 내곁에 있어줘’라고 당차게 말한다. 지미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지만 3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는 자신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디는데 익숙해있는 듯 했다. 그의 이런 마음 상태는 끝내 그의 모친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떠나는 순간에 겉으로 나타난다.

Helen “Aren’t you sorry to see me go? 네가 떠나는 것이 슬프니?”
Jo “I’m not sorry and I’m not glad.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조의 모친이 떠나고난 후 그는 신발가게 점원일도 구하고 새로운 거처도 구하여 – 방은 크지만 집은 무척 낡은 –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언젠가 신발가게 들렀던 제프(Geoff)를 우연히 축제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 이 부분은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마도 개봉 당시에는 여전히 센세이셔널한 내용이기에 그랬던 것으로 짐작된다. – 거처가 없는 그와 동거하게 된다. 그뒤 임신을 알게된 제프는 조에게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는데 조는 ‘나는 사랑을 싫어한다’라는 말로 다시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어쨌든 조는 제프와 같이 지내며 그나마 우울한 임신, 엄마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우울한 사실을 잊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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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의 Morrissey가 디자인한 밴드의 컴필레이션 앨범 Louder Than Boms의 표지 그림에도 등장하는 영국 극작가 셸라흐 딜라니(Shelagh Delaney)가 A Taste of Honey라는 이름4 의 희곡을 19세의 나이에 써서 무대에 올렸고, 이 작품은 그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셀라흐와 감독을 맡은 토니 리차드슨(Tony Richardson)5이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여 1961년에 영화로 내놓았다. 실제 영화를 찍은 배경도 실내 세트를 제외하고는 맨체스터(Manchester), 살포드(Salford), 블랙풀(Blackpool) 등에서 촬영해서 사실감을 더 높였다. 산업화된 벽돌 도시의 우울한 풍경, 더러운 강물,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6

20세기 중반 영국에서 계급, 인종, 성관계 동의 연령, 성별, 성적지향, 사생아에 대해 논평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키친싱크 사실주의의 걸작으로 남기도 한 이 희곡과 영화는 모리시가 쓴 많은 초기 가사에 영감을 주었고, Louder Than Boms 앨범의 수록곡이기도 한 “This Night Has Opened My Eyes”는 조의 곤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솔로 시절에 발표한 “Alma Matters”에는 조의 대사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1. Rita Tushingham라는 배우가 호연을 선보이는데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었다. ↩
  2. Dora Bryan이라는 배우가 매우 실감나게 연기한다. 필르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꽤 관록이 있는 배우였다. ↩
  3. 영화에서 그가 타고 떠나는 배는 Manchester Liners라는 해운사의 대형 화물선이었다 ↩
  4. 사실 개인적으로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뇌리에서는 같은 이름의 흑인 여성 듀오가 히트시킨 Sukiyaki가 연주된다. ↩
  5. Look Back in Anger (1959), The Entertainer (1960), A Taste of Honey (1961),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962) 등 50~60년대 영국 영화의 리얼리즘 사조를 주도한 감독이다 ↩
  6. 영화에서 제프는 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늘 그가 어디에 있는지 대답을 해준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의 아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

보리수 린덴바움

어제 보리수 린덴바움(菩提樹 リンデンバウム)이란 영화를 보았다. 1988년 작품으로 당시의 인기 여배우였던 미나미노 요코(南野陽子)와 마츠다 세이코의 남편이기도 했던 칸다 마사키(神田正輝)가 남녀 주연을 맡은 영화다. 내용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윈 아사미가 내용은 정체 모를 독지가의 도움으로 의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발생하는 사랑, 갈등, 그리고 이별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판 ‘키다리 아저씨’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갈등과 그 극복 과정 등에 대한 묘사나 연기가 좀 밋밋해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자세한 내용에 대한 소개는 여기를 참고) 주요 감상 포인트는 오히려 일본이 잘 나가던 80년대 말의 도시인의 깔끔한 패션 센스와 풍경 등 당시 일본인의 삶이었다.(물론 이것도 영화 안에서 과장된 삶일 수도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주요 조연으로 출연하는 타케모토 타카유키(竹本孝之)라는 배우가 얼핏 The Smiths의 Johnny Marr와 닮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음악인이기도 하다. 노래 실력은 별로다.

“빤하지만 멋진” 노래 All Out Of Love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oster.jpg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의역 : 존재감 없는 이의 행복)’1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012년 작품이다. 좋아하던 이모와의 말못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Charlie(Logan Lerman)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만 사귀는 Sam(Emma Watson), 동성애자로서 학교의 인기 스포츠 선수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는 Sam의 이복 오빠 Patrick(Ezra Miller)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성장영화다.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Charlie와 Sam 둘 다 The Smiths를 좋아하는 팬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라 80년대 인디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The Smiths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Asleep은 Charlie의 주제곡처럼 쓰여 그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80년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가 호사할 만한 영화인데, 한편 의외의 80년대 곡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인디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팝발라드 그룹 Air Supply의 All Out Of Love. 카셋테잎에 노래를 녹음해줘서 본인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던 80~90년대인지라 Sam은 Charlie에게 이 노래를 추천해준 것이다. Sam은 Charlie에게 “빤하지만 멋진(kitsch and brilliant)” 곡이라고 했고 Charlie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넣어 따라 부르면서 Sam의 의견에 동의한다. The Smiths, David Bowie, Nick Drake를 즐겨듣는 주인공들에게는 Air Supply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빤한 멜로디에 빤한 가사, 그렇지만 그런 빤한 것이 또 우리 인생이다.

영화에서 The Smiths의 Asleep이 자신의 새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Charlie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고, David Bowie의 Heroes가 그 새장을 벗어나서 느끼는 자유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All Out Of Love는 Sam을 그리워하면서도 데이트 신청도 못하고 쭈뼛대는 Charlie의 우유부단함을 대변하는 노래일 것이다. 비록 앞서의 두 개의 곡의 비해 비중은 작고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빤하지만 공감이 가는 애정관계의 복선은 – Sam과 Charlie 사이를 부단히 끼어드는 노이즈들 – ‘인생은 원래 삼류’라고 말하고 있고 당연히 그 배경음악은 All Out Of Love가 제격이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는 1980년 발표되어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Air Supply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ost In Love에 수록되어 타이틀곡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높은 차트 순위에 오르기도 한 곡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H1은 2003년 이 곡을 ‘100곡의 가장 위대한 러브송’ 리스트에서 9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리듬 기타와 백킹 보컬을 맡았던 Graham Russell이 전반부를 부르고 메인 보컬을 맡았던 Russell Hitchcock이 후렴구를 부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홍콩의 Alan Tom이 리메이크 하는 등 많은 이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Air Supply의 노래 듣기
영화의 주요장면 보기
Alan Tom 버전으로 듣기

  1. Wallflower는 꽃이름인 동시에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서) 춤을 추지 못하는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Charlie처럼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Patrick이 Charlie를 새 친구로 맞아들이며 “You’re wallflower.”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

캣츠 아이

(스포일러 주의..)

캣츠 아이는 스티븐 킹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이다. 85년작이고 총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제목대로 도시를 떠돌아 다니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관찰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물론 스티븐 킹이 원작인 만큼 그리 평범한 모습은 아니다.

첫번째 부분은 [금연주식회사]. 구제불능 골초들을 위해 금연을 하게 ‘만들어 주는’ 조금은 무시무시한 회사가 등장한다. 젊은 시절의 제임스 우즈가 금연을 하려는 주인공으로 나오고 꼬맹이 시절의 드류 베리모어가 그의 딸로 나온다. 금연주식회사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금연을 하고싶어 하는 이가 의뢰를 하면 그를 일정기간동안 감시하고 그 기간동안에 한개피라도 담배를 피는 모습이 발각되면 그의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형벌은 크게 두가지였다. 전기고문과 손가락 절단… 제임스 우즈는 어찌되었건 금연에 성공하지만 뒷맛은 상당히 찝찝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영화 중간에 제임스 우즈가 금단현상에 시달리며 자신이 직장동료로 부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시달리는데 이 때 ‘Every Breath You Take’가 나온다. 폴리스의 원곡은 아니고 커버버전이다. 원곡은 너무 비싸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감미로운 멜로디와는 달리 가사는 스토커 오브 스토커스러운 곡이니 사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번째 부분은 [위험한 내기]. 무시무시한 크라임 로드 아내의 정부, 노리스가 당사자에게 딱 걸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그를 죽이는 대신 제안을 한다. 만약 노리스가 자신의 펜트하우스의 창 밖의 5인치짜리 턱을 한바퀴 돌아 온다면 아내도 주고 돈도 주겠다는 것. 배짱하나 믿고 산 노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막상 창밖으로 나가니 이게 생각했던 것 만큼 쉽진 않다는 걸 깨닫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불고 날개달린 쥐들도 그를 공격한다. 플롯은 이것뿐이다. 건물을 바깥을 한바퀴 도는 것. 하지만 개인적으로 손에 땀을 쥐며 본 편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은 언제나 흥미롭다.

마지막 부분은 [벽 속의 괴물]. 지금까지는 관찰자에 머물렀던 고양이가 이번엔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드류 베리모어가 다시 등장한다. 다른 가족의 일원으로. 꼬맹이니까 그냥 설정 무시하고 캐스팅했나보다. 아니면 캐스팅된 배우 중 당시 (그리고 지금도) 가장 유명한 배우는 드류 베리모어였으니 감독이 그녀만 믿고 어떻게 영화를 구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도시를 떠돌던 고양이가 새 보금자리를 찾는데 마침 그집 벽장 속에 사는 작은 트롤이 주인집 딸인 드류 베리모어의 숨을 빼앗으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고양이 주인공 뿐이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엄마 때문에 고양인 마당에 내쫓겨 그녀를 지켜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똑똑한 고양이 주인공은 여차저차해서 집 안으로 들어오고.. 그리고 선풍기로 트롤을 갈아버린다는 아주 꿈과 희망이 가득한 결말.. 고양이는 드류 베리모어를 구한 공로가 인정되어 결국 집안에서 같이 살게 된다.

고양이와 드류 베리모어 콤비가 꽤 잘 어울렸다. 1편에서 제임스 우즈와 드류 베리모어의 호흡보다 좋았다. 제임스 우즈가 드류 베리모어를 끌어안으며 내 딸 내 딸 하고 착한 아빠 연기를 하는데 적응이 안돼서-_-;;

옛날 영화인지라 동물(들)이 지금처럼 지독하게 트레이닝 받아 칼로 잰듯한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닌데 연기를 하는듯 마는듯 하는 게 또 나름 자연스럽고 괜찮았다.

의외로 국내에 DVD가 출시되어 있다.

솔직히 하나하나 덜어뜨려 놓고 보면 그저그런 영화인데, 3개를 묶어놓으니 명절 때만 파는 색소 다량 첨가된 과자종합선물세트 같아서 볼만했던 영화..